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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seeker Jul 08. 2020

태양왕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France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하기 전 오롯이 인간의 몸과 힘으로만 이루었을 고대 문명의 유적들이 세계 불가사의로 꼽혔던 것과는 다소 다르게 신 7대 세계 불가사의에 뽑힌 것과 노미네이트 되었던 유적들을 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왕들의 의지에 달렸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록 불가사의한 문명으로 뽑힌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의 경복궁,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오사카성 등의 아시아에서 권력의 중심이었던 곳들의 왕권의 위력을 보여주는 왕궁들이 그 규모나 자태를 뽐낸다. 이런 의미에선 아시아 대륙의 목조 건축에 비하여 석조 건축의 양식이 주를 이룬 유럽의 왕궁들은 그 규모 자체가 훨씬 더 웅장하고 돔과 화려한 조각과 석상으로 꾸며진 외관과 더불어 실내에도 인테리어의 질적 화려함과 완성도가 더 높다는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 경복궁 (위), 일본 오사카성 (좌하), 중국 자금성 (우하)


숱하게 많은 왕궁들 중에서도 단연 그 규모와 화려함에서 으뜸인 17세기 프랑스 건축의 대표작이자 찬란했던 절대 왕권의 상징이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이다. 지금의 수도 파리에서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는 궁전은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왕권을 누렸던 태양왕 루이 14세가 다스린 50년 동안 최고 건축가와 예술가를 동원해 지어진 최고의 건축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 궁


베르사유 궁전은 원래 루이 13세가 사냥용 별장으로 지었지만 이후 루이 14세가 궁전 전체를 증축하고 이곳에 대정원, 공원, 별관과 기타 부속 건물들을 건축하면서 거대한 궁전으로 탈바꿈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궁전임은 물론 현재 프랑스 고전주의라고 알려진 프랑스 바로크 양식을 탄생시켰다.




베르사유 궁전은 겨우 5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가 1662년부터 약 20년 간 공을 들여 증축하여 1682년부터 왕궁 기능을 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왕궁을 키워가다 1710년에서야 대공사를 마쳤는데 50년 동안 2만 명의 인원이 동원됐다는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완성되던 해 루이 14세의 나이는 72세였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최초의 증축은 대정원부터였고 이후 건물을  증축해 U자형의 궁전 형태를 만들었다. 이후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참여시켜 건물은 물론 실내 장식과 정원을 완성해나갔다.


프랑스 왕실 건축가인 르보가 설계한 거울의 방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냬부

베르사유 궁전은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면서 건물 전체 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게 됐다. 궁전은 정원 쪽에 위치한 거울의 방 등 크고 작은 15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방들의 배치는 거울의 방 중심으로 오른쪽에 왕이 거처하는 방이, 왼쪽은 왕비가 거처하는 방이 배치되는 등 대칭 구조를 이뤘고, 위대한 왕실 건축가, 미술가의 계보를 이어가며 그들의 노력들은 베르사유 궁전을 외부의 웅장한 위용에 그치지 않고 화려하고 이름 다움의 극치로 완성해나갔다.


베르사유 궁전 앞 분수대와 광대하게 펼쳐진 정원의 모습


베르사유는 궁과 광대한 정원, 크고 작은 분수와 조각들이 같이 어우러져 조형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 규모를 살펴보면 정원의 면적은 30만 평, 숲이 무려 14개이다. 정원을 제외한 베르사유 영지가 모두 공원으로, 그 면적은 180만 평에 이르고, 벽의 길이만도 20㎞나 된다. 

궁전 뒤쪽 정원은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이다. 이 정원의 주요 특징은 큰 축의 개념을 도입해 설계한 것이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여기에 조각과 분수 등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인데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따라 라톤 분수, 아폴론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인 그랑 운하 등을 배치하고 꽃밭과 울타리, 분수가 있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조가과 어우러져 극치의 풍경을 자아낸다.

아폴론 분수는 1670년 제작한 것으로 태양의 신 아폴론을 묘사한 걸작인데 여기서 태양신은 루이 14세를 의미한다. 분수를 지나면 나무와 관목, 잔디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있고 대리석 아치로 만든 기둥을 지나면 호수가 나타난다. 이곳이 그랑 운하로 루이 14세가 뱃놀이를 즐기기 위해 만든 곳이다. 베르사유에서는 수직 물대포,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 폭포 등을 이용해 물을 매우 역동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담쟁이 넝쿨이 가득한 왕궁의 벽


루이 15세 때에는 바로크 보다 섬세한 로코코 양식으로 교체했고 이후 넓은 공원 안에 왕의 은신처인 프티 트리아농 궁전을 추가로 지었다.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의 서민 코스프레를 위한 장소라는 이야기도 있다. 왕궁터 내 그 어떤 건물과도 매칭이 안되는데 꼭 왕궁내 하인들의 거처 같은 느낌이다. 루이 16세 때인 1770년에 궁전의 마지막 주요 건축물인 1000석 규모의 신고전주의 오페라극장을 건설하면서 베르사유 궁전이 완성됐다.


프티 트리아농


세계 어느 곳보다 전 세계 어느 문명, 국가의 왕궁보다도 더 웅장하고 최강의 건축물인 베르사유 궁전은 찬란했던 절대 왕권 절정기의 상징이자 프랑스혁명을 가져온 귀족적 퇴폐의 온상이기도 했다. 베르사유는 왕궁 기능을 갖춘 1682년부터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와 왕실이 파리로 옮기게 된 1789년까지 약 107년 간 프랑스의 정치적 수도이자 통치 요새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절대 왕권의 상징물로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되면서 이후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 마리 앙투와네트의 많은 일화를 함께 간직한 곳이다.




파리에서 베르사유 궁전 가는 법



1. RER-C선 타고 가기

Gare de Versailles Chateau Rive Gauche 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10분 이동

해당 역에서 함께 내린 이들은 베르사유 궁전 외 다른 곳에 갈만한 사람이 아니니 대부분이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2. 지하철 9호선 (우리나라와 흡사) 타고 가기

종점 Pont de Servres역에서 하차 후 버스정류장에서 171번 탑승하여 종점까지 가서 내린 후 도보로 20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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