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 가까운 사람이 더 어려운 이유
대학교 사회학 강의 내용중 기억에 남는 배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사귈 수 있는 친구와 인간관계 수는 최대 150명까지라는 겁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의 진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가 제시한 '던바의 수'라는 가설은 인류가 뇌에 담을 수 있는 인간 관계의 용량은 150명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쉽게 다른 사람과 만나고 연락하는 세상입니다. 페이스북 친구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가볍게 수백 명을 넘기지만 온라인 친구 모두를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무리 발이 넓은 사람이라도 지속할 수 있는 관계의 넓이엔 한계가 있습니다. 정말 가까이 지내고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 나와 닿은 인연이 쉽게 끊이지 않을 사람은 아무리 많아 봤자 150명까지이고, 게다가 이 150명과 이룬 관계 안에서도 '진실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훨씬 적습니다.
두 번째는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같이 아는 지인이나 겹치는 사회 생활 반경이 없는, '연결고리'가 적은 사람에게 고민을 말하기가 더 쉽습니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 가벼운 세미나나 강좌를 같이 듣는 사람, 온라인 채팅으로만 얘기하는 사람과는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더라도 다시 보지 않을 사이기에 부담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일상에서 쉽게 듣지 못할 내용을 접할 때가 많습니다. 7년 전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하버드 대학생은 불우한 어린 시절과 부모의 학대, 청소년기의 심각한 마약중독 경험까지 자신의 개인사를 몇 시간 동안 털어놓았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나눈 대화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서로의 비밀이 되어 사라집니다.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 이렇게 치부를 드러내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직장 동료나 친구들 사이에 자신이 내뱉은 말이 소문이 되고 가십이 되어 나의 평판을 해칠까 봐 걱정이 먼저 됩니다. 경솔하게 꺼내놓은 자신의 비밀이 어떤 판단을 받을지 두려워 쉽게 털어 놓을 수 없죠. 가까운 사이 일수록 비밀은 늘어갑니다.
<완벽한 타인>은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수십년지기 친구들이 서로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함께한 네 명의 친구는 부부 동반 모임중 정신과 의사인 예진(김지수)의 제안으로 스마트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채 받게 되는 모든 메시지와 통화를 공유하는 게임을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로 게임에 빠져들게 되지만 곧 스마트폰을 공개하는 행위는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옵니다. 열명이 안 되는 작은 그룹 안에서도 인간관계는 복잡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각 인물이 숨기고 있던 시기심, 이기심, 악감정이 드러나고,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이들이 감추고 있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나 연인이 말 못할 비밀이나 속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에 서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평소 자신 앞에서 보여왔던 모습을 거짓이라 비난할 수 없습니다. 나를 숨기고 내가 가진 모든 걸 털어놓지 않는 이유는 상대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해서입니다. 자신의 못난 모습이 드러나면 소중한 친구, 가족, 연인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클 테니까요. 어쩌면 비밀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신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