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Kittrick Hotel in NYC
가로(Street)와 세로(Avenue) 길을 따라 블록으로 나뉜 뉴욕 맨해튼. 그 중심부에는 유일하게 대각선으로 뻗은 길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브로드웨이(Broadway)다. 46번가(street)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지점이 타임스퀘어(Times Square)고, 유명한 작품을 걸어놓은 극장들은 보통 타임스퀘어를 기준으로 브로드웨이 북쪽에 위치해있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서 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뮤지컬 혹은 연극 관람이지만, 그렇다고 꼭 ‘브로드웨이’ 일 필요는 없다. 뉴욕에는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 극장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브로드웨이가 아닌 곳에 위치한 모든 극장들을 일컫는데, 브로드웨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작품들이 있다면, 오프-브로드웨이에서는 브로드웨이 입성을 바라는 신생 작품이나 편입을 거부하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Sleep No More(슬립 노 모어)은 5층 건물 전체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그 건물을 자유롭게 다니는 전례 없는 형식, 그리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용으로 전혀 새로운 연극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Sleep No More은 연극을 찾아다니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가장 ‘핫’한 작품 중 하나다.
‘경험’이 아닌 ‘체험’이라고 한 이유에서 이 작품의 특성이 바로 드러나는데, Sleep No More은 분명 연극이지만 관객이 자리에 앉아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다. 관객들은 러닝타임 3시간 동안 19세기 호텔을 콘셉트로 한 McKittrick Hotel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배우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따라 이동하며 연기를 펼친다.
이때 관객들은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마스크를 써야 하며,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말도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 흐름에, 관객들은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 관람하는 것이다.
Sleep No More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의 시점이 다른 작품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무대가 있는 작품들은 보통 관객이 무대 밖에서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3인칭 관찰자 시점이나 때에 따라서 전지적 시점을 취한다. 또 주인공의 시점을 취하는 영화의 경우에도 관객이 사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 정보를 제공하면서 진행된다. 하지만 Sleep No More는 너무나 분명한 1인칭이다. 관객들은 작품 안에 직접 들어가서 배우들을 보는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배우의 연기에 이용되어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또 관객들은 한 시간에 물리적으로 하나의 장소에만 있을 수 있고 다른 이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들여다 볼 수 있는데, Sleep No More는 불친절하게도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Sleep No More을 보는 내내 작품이 관객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다.
대략적인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차용했다고 한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과정을 거친 후에 마지막에는 2층에 있는 거대한 홀에 다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어떤 세리머니를 하면서 마무리되는 줄거리였다. (이 부분도 정확하지 않다) 그 과정 속에는 독백을 하는 배우도 있었고, 호텔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도 있었고, 급박한 추격 장면도 있었으며, 홀에서 무도회를 하기도 했고, 배우가 관객 한 명을 독립된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관객의 마스크를 직접 벗기고 대화를 하듯 말을 건네는 장면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금지사항(마스크 벗기, 사진 촬영, 대화)을 제외하고는 관객이 원하는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 소파나 침대에 앉아있어도 되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책상 서랍을 열고 어떤 문서가 있는지 보아도 된다. 한 명의 배우를 계속 따라다녀도 되고, 한 장소에 있으면서 배우들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심지어 화장실도 작품의 일부이기 때문에 호텔 카운터에 있는 화장실을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 (이걸 몰라서 애먹었었다)
보통 어떤 작품을 추천할 때는 ‘이건 어떠어떠한 내용인데, 한번 봐봐’라고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려주거나 감상평을 쓸 때는 전체를 설명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짚는 흐름을 가지지만, Sleep No More는 그게 불가능하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성향을 노린 듯, 처음부터 끝까지 불확실함으로 일관한다.
‘줄거리를 알기는 어려운데, 이러이러해서 독특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어서 추천하기가 여러 모로 애매하다. 하지만 거기서 오는 익숙하지 않음이, 그리고 불친절함과 불확실함이 Sleep No More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한다.
다음은 Sleep No More를 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팁이다.
전체 러닝타임은 세 시간이고 예매 시 선택한 시간에 따라 세 번에 나누어 입장하는데, 가장 빠른 시간에 입장하는 것이 좋다.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이 많아져서 이동에 제약이 생긴다.
한 시간 분량의 연극이 세 시간 동안 총 세 번 반복된다. 하지만 매번 100% 똑같은 것 같지는 않다.
짐을 맡기고 호텔 로비로 입장하면, 그때부터 사실상 작품은 시작된다. 관객들은 카드를 한 장씩 받고 나서 각자의 문양에 따라 서로 다른 입구로 안내받는데, 사실 이 문양은 중요하지 않다. 필자의 카드는 하트였는데, 옆에 있던 배우가 와서는 스페이드 카드를 먼저 부를 테니 따라가 보라는 팁을 주었다. 그 말대로 스페이드 카드를 부를 때 갔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올라갔는데, 카드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연령 제한이 있고 전위적인 장면이 있다. 연령 제한은 만 19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전위적인 장면이라 함은, 폭력이나 전라 노출 장면을 의미한다. 작품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 만큼 시각으로만 보는 것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5층이었나, 호텔의 절반 정도를 숲 혹은 공동묘지처럼 꾸며놓은 곳이 있다. 구석에는 비어있는 오두막집 같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다리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우가 한 명만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선택될 수 있다. 오직 그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는 기억이다. 물론 기다린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받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입장 시에 주는 마스크는 기념품으로 가지고 갈 수 있다.
운동화를 신는 게 좋다. Sleep No More은 많이 움직여야 하는 작품이다. 세 시간 동안 여기저기 다니기에 (배우를 따라 뛰는 경우도 있다) 구두나 힐 같이 활동성이 떨어지는 신발은 좋지 않다.
금지된 행동은 하지 말자. 답답하다고 마스크를 벗거나, 동행과 이야기를 하거나, 특히나 사진을 찍는 건 작품과 배우, 그리고 함께 보는 관객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Sleep No More은 미스터리한 작품답게 예매도 TKTS나 브로드웨이 통합 예매 사이트가 아니라 독자 웹사이트에서만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http://www.sleepnomore.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