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욘킴 Nov 11. 2024

침대 머리맡의 노트 - 3P

3P

샤워를 하다 무릎의 멍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생긴 멍자국은 늘 당혹스럽다. 푸르스름한 언저리에 드문드문 누런 멍자국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본다. 아프진 않은걸 보니, 생긴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 부딪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탁자 모서리? 의자 팔걸이? 어제의 그제의 기억을 모두 되감아 봐도 무릎을 부딪친 장면만 없다.   
  
멍은 그다지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받질 못하는 걸까. 다치긴 했지만 칼에 베이거나 불에 덴 것보다 덜 심각해서일까. 하지만 멍이 생기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끔찍하다. 피부 아래의 작은 혈관들이 손상되어 혈액이 조직 내로 새어 나오면서 시작된다. 어디 부딪쳤나, 하고 넘길만한 사소한 충격으로 여기기엔 다소 그로테스크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멍은 특별한 간호를 받지 못한다. 그까짓 거, 언제 생긴지도 모르는 거, 놔두면 알아서 없어질 거, 닦아내면 지워질 것 얼룩 같은 멍을 괜히 손으로 문질러보지만 없어지지 않는다. 대충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둔다.   
  
멍이 든 곳에 남은 기억은 홀로 버려져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다시 느릿느릿 몸의 속도를 따라온다. 언제인지 모를 지난날을 겪고 있을 멍자국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어본다. 내일이면 없어질 거야, 모레면 없어질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