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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욘킴 Oct 22. 2024

느낀 점: 시대예보-호명사회

책을 느끼고, 읽습니다.


표지사진 출처: 교보문고

135x191mm 사이즈로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 좋아하는 크기의 묵직한 양장본입니다. 빨간 성냥이 그려진 자켓은 광택이 없는 종이 겉표지이고, 안쪽의 하드커버는 무채색입니다. 청바지를 만질 때와 같은 거칠거칠한 텍스처를 만드는 미세한 가로줄 홈이 있습니다. 책등 상단에는 시대예보의 "代"가 쓰여있습니다. 작년 시대예보인 "핵개인의 시대"는 "時"입니다. 만일 4권이 출판되어 모두 소장한다면 가로로 "시대예보(時代豫報)"가 완성됩니다. 표지디자인은 군더더기가 없고, 하얗고 깔끔한 띠지와도 조화롭습니다.


내지로 들어오면 더욱 담백합니다. 모든 활자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똑똑한 소리가 나는 기계식 키보드로 타이핑되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본문 하단이나 뒤에 각주 미주가 없고, 책 끝의 참고문헌만 간단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페이지 한 면을 채우는 흑백 사진들은 멋지지만 의미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전자책의 가벼움을 사랑하지만, 굳이 서점으로 달려가 묵직한 양장본을 사들고 온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멋진 디자인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기획하고 만들어 펴낸 공수에 소비자로써 느낀 기분 좋은 소감을 전하고 싶습니다.




1장: 시뮬레이션 / 2장: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

 [시대예보: 호명사회]의 1장과 2장에서는 정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는 소비의 명령[^44p]에 잠식당하는 개인의 삶과 전통적 의미의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취해야 했던 '선발'이라는 사회시스템의 몰락[^103p], 그리고 이에 대한 작용-반작용을 다룹니다. 1,2장은 독자에게 어떤 것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묻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기형적 경쟁의 격화 속에서 내몰릴 것인지, 필연적으로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깊이를 축적할 것인지.


3장: 호오(好惡)에서 자립을 찾다 / 4장: 선택의 연대

3장, 4장에서는 호오(好惡)에 조예, 전문성, 퍼포먼스가 누적되며 만들어진 팬덤을 기반으로 삼는 자립의 중요성을 예찬합니다. [^183p] 저자는 강제된 관계가 아닌 호오(好惡)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연대한 핵개인들 각자의 부가가치가 호명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5장: 호명사회

5장은 '호명사회' 자체를 사전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개인과 사회가 작용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견합니다. 호명사회는 1,2장에서 각성한 이들이 3,4장의 과정을 거쳐 서로 연대하며 완성되는 사회입니다. 앞으로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실질적 덕목은 자기 안으로 향하는 탐색과 몰입, 그리고 문해력이라 말합니다. 특히 문해력은 시대예보를 비롯하여 많은 서적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단골 주제이기도 합니다. 정보와 선택의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미리 저장된 지식을 끌어내 정해진 답을 하는 기능보다 맥락을 파악하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거쳐 결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312p]

 


현대  사회는 정보와 소비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 속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움직임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몰아치는 물살 같기도 하고,  예측 불가한 태풍 같기도 합니다. 이번 시대예보는 다가오는 지상의 태풍을 정면돌파하기보다, 각자의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하는  사회를 상상하게 합니다.


일찌감치  땅을 파고 내려간 사람들은 각자의 땅굴 안에서 고립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땅굴을 연결하며 새로운 지하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각자 개척한 경로와 깊이가 맞는 곳에서 교차로를 만들고 오고 가며 상생하는 두더지들의 연대 같습니다. 그들의 연대  안에서는 권위적인 두더지 부장님도 위축된 두더지 사원도 없습니다. 각기 다른 깊이에서 서로 이웃한 두더지들로 살아갑니다.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개인을 정의하는 기반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삶에 어떤 지침을 세울 것인가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은 귀합니다. 기분 좋은 두더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 아직도 골똘히 생각해보고 있는 점은 표지의 성냥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라는 점입니다. 알파벳이 A로 시작하지 않는 이유도 궁금하고, 3개의 C 성냥은 알파벳은 같지만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성냥들의 길이와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중간의 B성냥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형태의 성냥이고, 나머지 성냥들은 빠르게 타버릴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성냥끼리 너무 가까워서 어느 위치에서 불을 놓건 불이 서로 옮겨붙을 것 같습니다. 더 큰 불을 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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