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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Nov 14. 2024

애니

<아노라>(2024)



<아노라(Anora)>(2024, 션 베이커)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오프닝, 일하고 있는 댄서들의 모습을 천천히 지나던 카메라는 애니에게서 멎는다. 유연하게 흔들리는 몸을 잠깐 찍는가 싶더니, 얼굴로 중심을 옮겨 한동안 머무른다. 애니의 표정- 앞으로도 카메라가 가장 집중해 담는 바다.


애니는 누구인가. 그는 스물 셋이고, 자매와 함께 산다. 댄서이자 성 노동자인 그는 주로 클럽에서, 경우에 따라 클럽 밖에서 일한다. 가지고 태어난 이름은 ‘아노라’이나, ‘애니’라고 불리기를 선호한다. 할 말은 하는 편이다. ‘식사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며 보스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맘대로 쉬지 못하게 할 거면 보험이나 수당을 보장해 달라’고 따지기도 한다. 자꾸 시비를 거는 동료를 기세로 누르고, ‘네 가족은 네가 이런 일 하는 거 아냐’는 고객에게 ‘네 가족은 네가 여기 오는 거 아냐’고 되받아친다. 대수롭지 않은 톤으로 때로 유머를 곁들여, 그러나 상대방을 정확히 겨냥해 날리는 언행의 효과는 성공적이다. 그런 면모들은 그의 미소만큼이나 매력적이다. 클럽은 일터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사연’은 등장하지 않는다. 애니와 동료들은 프로답게 일하고, 담배를 피우며 고객들 뒷담화를 하고, 대기실에서 쉬며 식사한다. 보스는 나름 젠틀한 사람인 듯 보이고, 딱딱해 보이던 가드는 애니가 일을 그만둘 때 엉엉 운다. 애니를 질투해 대놓고 적대하는 ‘다이아몬드’를 제외한 클럽 직원들은, 반야와의 결혼 소식에 축하와 응원을 건넨다.



아주 대단한 사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영화는 애니와 반야 사이 오가는 작은 애정과 만족의 신호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고객과 댄서로 처음엔 클럽에서, 이후에는 반야의 저택에서 만난다. 반야는 ‘일주일 동안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들만의 별난 호감 표현 방식은 반야의 제안에 두 사람이 가격을 흥정하고 거래를 성사하는 장면에 담겨 있다. 그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야는 애니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애니의 의사를 존중하는 듯 보였고, ‘행복하냐’고 묻기도 했다. 애니는 고객인 반야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비위를 맞추려 애쓰지는 않았다. 일하는 중임을 잊을 정도로 그와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고, 그건 단지 화려한 파티와 비싼 유희들에 둘러싸여서만은 아닌 듯했다. ‘당연히 너의 돈이 그립겠지’라고 하는 등 가볍게 거리를 두는 언어들에서 오히려, 상대를 향한 끌림이 비친다. 헤어지기 직전 농담처럼 시작된 청혼은 금새 진지해진다. 믿지 않는 애니에게 반야는, “너와 있으면 돈 한 푼 없어도 즐거울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맹하던 눈동자가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빛났다고 여긴 건 착각이었을까.


그 사이 다른 신호들도 있었다. 애니도 아마 감지했을 테다. 반야는 하우스키퍼 클라라를 고의로 취하게 만들었던 전적이 여러 번 있고, 그 사건을 클라라 앞에서 그가 못 알아듣는 영어로 늘어놓는다. 카지노 입구에서 제 일행을 환대하는 아시아인 매니저에게 ‘갑질 장난’을 걸기도 하며, 친구들이 일하는 과자점에서 대마초를 피우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가게 주인을 놀리기도 한다. 악의는커녕 별 생각도 없이,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는 듯하다. 한구석에 석연찮음을 남기며 그 모든 장면들은 코미디의 톤으로 경쾌하게 흘러간다. ‘지난번엔 우리 엄마가 클라라를 저온 저장고에서 발견했다’며 웃는 반야, 영화는 애니의 편치 않은 표정을 포착하지만, 애니가 그랬듯 곧 ‘저온 저장고’로 초점을 옮기며 ‘디즈니랜드 여행’을 이어간다.



애니가 디즈니 주인공이었다면 결혼이 곧 동화의 끝이었겠지만, 반야의 부모가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되면서 결혼은 위기를 맞는다. 사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으면서, ‘러시아 재벌 2세와 평범한 성 노동자의 결혼’이라는 껍데기에 불필요한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 뻔하다. 자카로프 부부의 고용인 토로스와 가닉, 이고르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반야의 집에 찾아온다. 작품을 뒤덮고 있던 로맨틱 코미디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일종의 상황극이나 슬랩스틱이라 할 법한 장면들이 뒤따른다. 문을 붙들고 실랑이하는 반야와 가닉, 도망가는 반야와 쫓아가다 넘어지는 가닉, 애니를 해하지 않고 붙잡으려 애쓰는 이고르와 그를 욕하고 때리는 애니. 그 일련의 난장판을 따라가며 폭소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웃을 수 없음을 감각하게 된다.


‘문제’는 저들이 그렇다고 말하듯 애니‘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애니‘에게’ 또는 애니를 ‘향해’ 일어난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정말로 ‘상황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면, 애니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클럽에서 다이아몬드에게 그랬듯 몇 마디 던져주고 무시했을 것이다. 애니에겐 힘이 없다. 저쪽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남편에게 계속해서 “무슨 일이야?”하고 물었으나,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가 ‘또라이’가 되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깨물기까지 하는 까닭은, 거대한 저택을 자신의 고함으로 채워야만 그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때문이다. 난리를 피우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토로스와 가닉, 이고르가 그런 자들이라는 게 아니라- 애니는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지 못하는데, 반야는 애니를 홀로 남겨두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애니는 “RAPE!”이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그것을 듣고 반야가 돌아오길 바라는- 남편을 믿고자 하는 절실한 제스처로 보인다. 화면 가득 울려 퍼지던 애니의 음성이 배경으로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 컷이 있다. 느슨한 템포로 ‘코미디스럽게’ 지나가지만, 그가 처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저택을 나서며 반야가 선물한 리얼 퍼 코트를 걸치고 불편한 하이힐을 신은 것은, 애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주로 가닉과 토로스를 사용해 연출하는 다크 코미디는 또 어떤가. 성직자인 토로스는 어마어마한 권력과 돈을 소유한 고용주들이 맡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세례 도중 조심조심 문자를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반야는 “아르메니아인”을 욕으로 쓰지만 가닉은 맞대응하지 못하고 예의를 갖춰 설득하려 쩔쩔맨다. 토로스는 일한지 겨우 2주 됐다는 기사에게 욕을 날리고 견인차를 망가뜨린다. 가닉은 아프다고 호소하지만 토로스는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핀잔을 준다. 이 형제에게도 주도권은 없다. 전용기에서 반야와 부모가 대립하는 와중 그들은 뜬금없이 우물쭈물 ‘영광’을 표한다. 성공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 이게 대체 무언가. ‘오늘은 특히 지저분할 텐데 아무 것도 묻지 말라’며 토로스가 건네는 지폐 한 장, 그것을 받은 클라라의 얼굴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반야의 부모와 토로스는 결혼을 ‘반야의 또다른 말썽’으로 취급한다. 결국 그 짐작의 전부가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건 애니가 ‘그런 여자’여서가 아니라 반야가 ‘그런 남자’여서다. 애니는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고, 반야는 부모의 재력 말곤 아무것도 없는 남자 그 이하다. 와이프에겐 부모에게 알렸다고 거짓말하고, 부모가 두려워 와이프를 두고 도망쳐 술집과 클럽을 배회하는 자. 애초에 결혼 자체부터 반항이나 유예의 수단, ‘미국에서의 마지막 유희’로 여겼던 자. 자카로프 부부와 토로스는 반야의 행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와중, 애니의 존재는 용서하지 못한다. 결혼 무효화 서류에 사인을 마친 후 애니가 사과를 요구하자, 반야의 엄마는 “내 아들은 사과 따윈 하지 않는다”며 화내고, 반야의 아빠는 폭소한다. 주로 가만히 무게를 잡으며 대부분의 말을 와이프에게 맡기던 그가 웃은 건, 애니를 별로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으니, 그저 웃긴 것이다.



애니는 왜 그토록 이 결혼을 지키고자 했나. 사랑에 푹 빠져서라거나 다시 클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이렇다고 말하는 나’ 그대로를 유일한 존재로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는-믿음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애니가 결혼 무효화에 동의하는 건 그 믿음이 깨졌을 때다. 부모와 재회한 후 제 부모처럼 애니를 줄곧 없는 사람 취급하며 대화 요청을 무시하던 반야는, 답답하다는 듯 ‘결혼은 끝’이라고 말한다. 그때 애니는, 이 결혼이 (반야의, ‘악의’ 없는)거짓이었음을 확인한다. 전용기 안에서 눈물까지 맺힌 채 자유를 토로하는 반야를 보며 결혼이 반항의 수단 그 이상이 아니었겠다는 것을 깨닫자, 애니는 ‘너처럼 한심한 놈과 이혼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 통쾌한 대사에는 일종의 자기방어가 섞여 있다. 바로 몇 분 전, 고소하겠다고 버티는 애니에게 반야의 엄마는 ‘그렇게 한다면 너의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없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끝내 사과를 받지 못한 애니가 코트를 반야에게 던져버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영화가 코미디를 한 겹 걷어내고 애니를 클로즈업 하는 순간, 카오스에 숨어 있던 그의 고군분투를 감각하게 되는 순간, 웃음은 잦아든다.


와중 홀로 품위를 유지하는 건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이고르다. ‘깡패’, ‘강간범’이라는 애니의 모욕에 그는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지 않음을 알아서다. 카메라는 자주 애니를 진중한 눈길로 바라보거나 애니의 말에 조용히 귀기울이는 그를 포착한다. 애니가 취한 반야와 대화하려 애쓸 때도, 영화는 어색하게 굳어 있는 그를 둘 가운데에 아웃포커스로 끼워 넣는다. 그 지난한 여정에서 애니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단 하나의 시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그렇기를 바랐지만), 결론적으론 거기 로맨스가 섞여 있었던 듯하다.


애니를 데려다주며, 이고르는 챙겨두었던 웨딩 반지를 돌려준다. 대가를 바라고 건넨 호의는 아니었을 테지만, 애니는 최선을 다해 최악으로 대했던 이고르에게 자신이 잘 하는 일인 섹스로 ‘보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혹은 위로를 받고 싶었을 수도 있고. 이고르는 키스를 시도하고, 애니는 밀어낸다. 이내 품에 안겨 우는 모습까지가 영화의 엔딩이다. 로맨스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거기엔 ‘감히 나를 불쌍해하지 말라’는 애니의 목소리가 실려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당신이 ‘아노라’가 더 좋다 해도, 나는 나를 ‘애니’로 부르겠다는.




“각기 다른 해석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디자인된 엔딩이다. 나는 그 장면이 애니가 그 순간 이고르에게 주는 것보다는 애니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그 모든 여정 동안 애니가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는 무언가인 것이다. 우리는 여러 주제들을 아우르는데 그 중 하나는 consent(동의/상호 합의)다, 이고르가 애니에게 키스하려 하는 것, 그건 애니에게 있어 선을 넘는 것이다. “안 돼, 이 순간 주도권은 내게 있어.” 같은 거지."

- Sean Baker, [Indiew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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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부분적으로만 만족스러워서 인용을 덧붙였다. 이고르가 그저 따스한 시선으로만 남았더라면 마음이야 더 편안했겠으나, 션 베이커는 관객을 편안하게 내버려두는 감독은 아니니. 감독 인터뷰를 읽은 후 든 생각이지만, 엔딩의 접촉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아노라>가 애니와 누군가의 로맨스보단 ‘애니의’ 이야기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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