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제모름 Apr 07. 2019

클라우스의 블라우스

"Weakness is so good!"



-캐릭터:  클라우스(Klaus) in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Netflix)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첨부하는 모든 이미지는, 페이스북 페이지 ‘Umbrella Academy’와, 유투브 채널 ‘Netflix’에 올라온 영상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그래서 화질이 나쁩니다.)




한국 평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마음 편하게 먹고 봤는데, 취향이었다. 아주 만듦새가 뛰어나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음악 덕에 반은 먹고 들어가고, 살짝 느껴지는 B급 중2병 스러운 감성이 오히려 중독되게 만든다. 뭐 누군가는 어벤져스처럼 딱 모여서 멋지게 세상을 구하는 팀을 기대했기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그룹 히어로물과 달리, 이들은 시즌의 반 이상을 따로 논다. 시놉시스나 예고편에도 나오듯,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콩가루가 마음에 들었다. 엎어놓고 추천하기엔 꺼려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보고 또 보고 싶다.


전체적인 평을 하라면, 사실 좀 곤란하다. 장면에 따라, 아니 장면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에 따라 재미가 갈린다. 주인공인 아카데미 맴버들의 캐릭터는 대부분 클리셰다. 그럼에도 개성 있게 살려낸 인물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인물도 있다. 개인적으로 넘버1, 2, 3에게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앨리슨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었는데 루터와의 관계와 가족 이야기에 비중이 실린 탓에 실패했다. 루터와 디에고 같은 싸움 잘하고 무게 잡는 남성 캐릭터는 역시 한물 간 것일까, 그래도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넘버5의 경우 어린이의 몸에 나이 든 영혼이 들어가 있는 설정 자체가 크게 신선하지는 않았으나, 재치 있는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만나 귀엽고 무섭고 사랑스러운, 최연소자이자 최연장자 리더가 탄생했다. 홀로 떨어져 있는 바냐는 기본적으로 우울해서 ‘재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엘렌 페이지의 연기가 캐릭터를 잘 이끌어낸 덕에 집중해서 볼 수 있다. 가장 클리셰가 덜한 것이 아마 헤이즐일 것이다. 넘버5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계적 악당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서사 속에서 움직인다. 의외로 흥미로웠던 인물이 그레이스였다. 옛날 미디어 속 ‘완벽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지만, 사실 하그리브스가 만든 ‘엄마 로봇’에 불과하며, 그의 차별적 여성관과 ‘모성애’의 허상을 나타낸다. 그레이스에게 가장 의지했던 디에고가 팔의 피부를 헤쳐 그녀를 ‘끄는(turn off)’ 부분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 중 하나였다.
 

장면의 재미는 캐릭터의 조합에 따라서도 갈린다. 루터와 앨리슨이 만나거나 디에고와 유도라가 만나면, 미안하지만 약간 지루하다. 헤이즐과 애그니스의 씬은 클래식하게 로맨틱하면서도 독특한 재미가 있어, 작품의 장르가 달라진 느낌마저 든다. 클라우스는 그냥 등장하기만 하면 빠져든다.(편애함) 디에고나 루터와 클라우스가 만나면 클라우스 효과가 일어나 흥미로운 장면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재미있는 부분’을 담당하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상당해서,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한 부분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클라우스를 대놓고 편애해 보도록 하겠다. 사실 얼마 전 올린 로버트 시한에 대한 글에 어느 정도 쓰기는 했으나, 배우에 대한 글을 캐릭터 설명으로 채울 수는 없어 충분히 넣지 못했다. 덕심을 가라앉히지 못해 시작한 글이 이것인데, 엑기스를 이미 사용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또 우려먹기로 했다. [대괄호] 안에 들어간 문장은 로버트 시한에 대한 글에 이미 적힌 것들이다. 



클라우스는 이기적이다. 아니 이기적이지 조차 않다. 제 한 몸 간수도 못한다. 살아남아 마약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이슈다. [마약, 담배, 술 등 가능한 모든 물질에 중독된 구제불능의 인간인데, 작품 속에서 가장 인기 많은 캐릭터 중 하나다. 왜지? 보편적으로 훨씬 폼 나는 수식어를 지닌 맴버들도 많은데? 매력의 구성요소는 근육질의 몸과 석고 조각상 같은 얼굴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클라우스와 로버트 시한은 보여준다. 무게 잡는 루터와 디에고를 비웃듯, 대놓고 풀어지고 망가진다. 결국 몸싸움을 벌이는 둘을 보고는 담배를 문 채 웃어댄다. 이 장면을 본 관객이 과연 심각한 표정으로 주먹질을 해대는 두 남자가 멋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닐 거다.]
 

클라우스는 약하다. 완력도 정신력도 부족하다. 허나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상태로 살아남는다. 그 별난 ‘약함’이 헤이즐과 차차의 고문에 애를 먹이기도 한다. 클라우스가 납치당한지도 몰랐던 형제들이 진지한 얘기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던 탓에, 정말로, 애초에 정보가 별로 없는 데다가, (또라이 같아서..)통상적인 고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때려도 웃고, 목을 조르면 흥분하며, 물을 붓자 다 마셔버린다. 결국 약으로 협박하자 단번에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을 불지만, 멀쩡해진 정신으로 벤의 조언과 죽은 자들의 도움을 받아 킬러들을 흔드는 데 성공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투덜투덜 쓸데없는 말을 해대는 모습이 클라우스답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들쭉날쭉한 수염, 아이라인인지 다크써클인지 구분하기 힘든 시커먼 눈가, 기다란 목걸이와 퍼 목도리, (앨리슨에게서 훔친)하늘거리는 치마에 맨발까지. 미디어에서 비호감의 상징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패션 아이템을 걸친 모습이 오히려 특이한 방향으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넘버5가 돈을 주고 아빠인 척 해달라고 하자 가장 좋은 옷이라며 치렁치렁한 블라우스를 입는다. 클라우스는 스스로를 원하는 대로 꾸미고 훌륭하게 소화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기존의 남성성을 깨뜨린다. ‘연기’는 완벽하게, 옷은 화려하게.] 각각 ‘Hello’, ‘Good Bye’라고 문신한 양 손 손바닥이 키치한 매력을 더한다.
 
‘어렸을 때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내려오다 다쳤던’ 클라우스는, 몸과 정신은 망가뜨려도, 취향이나 개성, 패션과 정체성 -넘버4를 ‘클라우스’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잃지 않는다. 의자에 묶이며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디에고는 묻는다. “What's her name? 그 여자 이름이 뭐야?” 클라우스는 강조해 답한다. “HIS name is Dave. 그 ‘남자’ 이름은 데이브야.” 너 게이냐고 촌스럽게 묻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가는 디에고의 반응도 좋았고. (다시 말하지만, 디에고는 클라우스랑 있으면 매력이 상승한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클라우스의 물건들.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 수퍼히어로로 길러진 아카데미 맴버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무법자 자경단 역할을 하는 디에고나, 배우가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앨리슨처럼, 시간여행에 갇혀 있던 넘버5를 제외하면 모두 과거를 피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클라우스의 선택은 약물중독-자기파괴다. 겉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 보이지만, 어쩌면 그 멍청함은 괴로움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다.]
 

원치 않아도 그에겐 죽은 자들이 보인다. 저주받은 능력이다. 정신이 멀쩡하지 않아야 능력이 희미해지므로, 일부러 흐트러진다. 그럼에도 잠들 때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덜덜 떨고,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는다. 안쓰러워할 새도 없이, 도둑질을 잡아떼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웃게 된다. 허나 웃음 끝이 어쩐지 쓰다. 그가 말했듯, ‘맨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들어서’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 느껴져서다.] 그래도 클라우스는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나름대로 삶을 즐긴다. 욕조에서 잠들었다가 악몽에서 깨어나자, 곧바로 비누거품이 묻든 말든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튼다. 금새 아주 황홀한 표정으로 음악에 잠긴다.  



 
클라우스가 하그리브스의 일기장을 훔쳐 케이스만 팔고 버린 일이 아포칼립스를 불러오는 중요한 변수가 됐지만, 그를 욕하는 관객은 없다. (역시 문제는 캐릭터의 매력인 것이다.) 그래 좀 훔치면 어때서. 죽은 아버지와 그가 붙인 ‘넘버1’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지식한 루터가 더 이상하지 않나, 그도 물론 피해자이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달에서 보낸 보고서를 하그리브스가 하나도 열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에 술에 취한 루터가 기대는 대상은, 다름 아닌 클라우스다. 골칫거리로 여기며 무시했던 형제를,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에 의지하다니. 아이러니하다. 클라우스가 비로소 맨 정신이 된 순간, 루터는 인생 ‘클라우스하기로’ 결정한다. ‘너처럼 속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싶다’고 말한다. 넌 이미 망가진 인간이니까 내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건가. 하지만 클라우스는 징징거리는 루터를 열심히 달래준다. 항상 그랬듯, 본인의 괴로움을 티내지 않은 채 위로한다. “나처럼 되고 싶지 않을 거야, 한숨 자면 괜찮을 거야.”라고.


클라우스가 속이 편해 보인다니, 말도 안 된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시간여행에서 죽은 연인을 불러내기 위해 약을 끊으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마침내 클라우스에게 소중한 것, 살아갈 의지를 주는 무언가가 생겼는데. 오래지 않아 끝나버리다니. 전쟁 트라우마까지 남기고! 왜 작가는 클라우스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함께 단단히 얽힌 비극을 창조했나요. 하지만 그가 겪는 고통 때문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잔인한 사실이다.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 중 하나는, 디에고의 도움으로 밧줄에 묶인 클라우스가 마침내 데이브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을 때, 넘버5 ‘덕에’ 시간이 되감긴 부분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클라우스는 아버지의 유골더미에 담배꽁초를 꽂으며 웃는다. ‘너희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서였다’며, 아카데미 맴버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자살했음을 고백하는 하그리브스와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었다’는 클라우스. 둘의 사고는 정확히 대립한다. 하그리브스가 야심차게 길러낸 아카데미는, 달리 보면 아동학대의 현장이었다. ‘너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 희생하라’니, 끔찍한 말이다. 이제 ‘대의’를 위해 개인을 묻어두는 시나리오가 당연한 시대는 갔다. 왜 너희는 팀이고 형제인데 뭉치지 못하냐고 나무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능력 좀 있다고 세상을 구할 의무는 없는 거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하는 클라우스를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클라우스는 클라우스다. “가자.”, “어딜?”, “세상을 구하러.”, “오 그게 다야? 그래 가자.” 넘버5와 클라우스의 대화다. 아포칼립스를 막는 데에 동참하기로 했어도, 그 대단한 ‘결정’, ‘구원’, ‘대의’ 따위의 단어들은 클라우스에게선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구하는 태도에서조차 그다운 뉘앙스가 묻어난다. 루터와 같은 부서지기 쉬운 맹목적인 믿음도 없고, 감정에 매몰되어 앞뒤 안 가리는 바냐와도 다르다. 자신다운 모습은 유지하되, 최고의 융통성을 지닌다. 거참 오히려 바람직하고 생산적인 태도 아닌가.



 
루터를 찾아 나간 클라우스는 클럽에서 그를 구하려다, 죽었다 깨어난다. 누가 클라우스를 이기적이라고 했나.(저요) 벤이 계속 부추겼다고는 해도 결국 선택은 클라우스의 몫이었다. 죽은 상태에서 ‘신’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며, ‘너 맘에 안 든다’는 신의 말에 ‘나도 그렇다’고 답한다. ‘저 잘난 줄 알아서 인생을 망친 것’이라는 레너드의 말은, 적어도 클라우스에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클라우스는 바냐의 존재를 망각하지 않고 ‘가족’으로 대하는 유일한 남자 형제이기도 하다. 쓰러져 있는 앨리슨을 보고 다들 뜬구름만 잡을 때, 그는 ‘바냐를 찾아서 물어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묵살되지만. 비슷한 대사가 후에 다시 등장한다. 바냐를 가둬놓고 풀어주지 못하게 하는 루터의, 두꺼운 팔에 가로막힌 클라우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바냐를 여기서 꺼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되잖아!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던 애라고. 아무튼 새 능력이 생겨서 두려워하고 있을거야, 우리 모두 그랬잖아. 나도 모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건 엄청 두려운 일이라고!”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사실은 상식적이고 설득력있는 의견을 내는, 공감능력도 가장 건강한 것이 바로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있던)클라우스 아닌가. 신체적 힘이 약하고 ‘두려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약하고 ‘평범’하다고 세뇌당하며 소외되었던 바냐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뜬금없고 때도 늦었지만, 바냐가 클라우스와 좀 더 얘기를 나누며 자랄 수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클라우스, 자기혐오와 자기파괴를 반복하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을 아는.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타인에게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사랑할 줄도 알고, 사랑 받을 자격도 넘치는 사람. 아포칼립스가 닥쳐도 클라우스 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의 명언 중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Weakness is so good! (나약하다는 건 진짜 좋아!)”




+ 로버트 시한에 관한 글  


https://brunch.co.kr/@yonnu2015/34



이전 09화 ‘normal’하지 않은 소년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