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을 부유하는 미확인 비행물체

Pyrit, <UFO>(2015)

by 않인



어떤 음악이 ‘좋다‘는 건 무슨 뜻일까. 중의적이고 정답도 없는 물음을 던졌다. Pyrit(프히트/피리트)의 음악이 ’좋은 동시에 좋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Pyrit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시끄럽지는 않으나, 카페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기에 부적절한‘,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이 ’chill-out’, ‘relax’ 등의 제목을 붙여 제공하는 재생목록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다. 개인적으론 ‘depressed’ 카테고리에도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내 애플 뮤직 알고리즘이 그의 데뷔작 <UFO>를 ‘휴식’ 분류로 추천해서 괜히 해보는 이야기, 감상에 정해진 방향이 있는 건 아니므로 이 문장 앞뒤의 내용은 무시해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업을 더욱 독보적으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거기서 감지되는 모종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영화 전공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근거지를 옮긴 토마스 쿠라틀리는, 2015년 ‘Pyrit’이라는 이름으로 데뷔 앨범 <UFO>를 공개한다. 장르가 구분과 규정이 아닌 느슨한 수식과 설명의 언어라는 전제 하에, 익스페리멘탈-블루스-인더스트리얼-일렉트로닉이라고 적어본다. 10년 이상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급진적이고 예외적으로 다가오는 작품, 버려진 주차장에서 녹음했다는 이 8피스 레코드는 외계(경계 바깥)의 존재 그리고 심장을 품은 사이보그들과 공명한다.


“You’re oily, thick and rusty / and you’re sliding away / It smells like smoke / and feels like air / It looks like dust / You fade away / fade away / I’m fading away / I’m gone”

- ‘Fade Away’


“Now you’re gone / You took all away / How should I move on / Nothing left to say / I cried at night / Showed my shell at day / Day was too bright / So I hid and left no trace / no trace // Your bright eyes / saw my eyes / They saw dead eyes / In ten years we’ll blow it all away”

- ‘Bright Eyes’


첫 트랙 ‘Fade Away’, ‘기름지고, 짙고, 녹슨 너’는 미끄러지며 연기의 냄새를 풍긴다. ‘공기와도 같이 느껴지는, 먼지처럼 보이는 너’는 ‘사라져 간다’. 그러면서 ‘나’ 역시 사라지게 만든다. 다음 트랙 ‘Bright Eyes’에서 ‘너’는 ‘내 모든 걸 앗아간’, ‘빛나는 눈’을 지닌 자다. ‘나’는 ‘낮이 너무 빛나서 흔적을 지우고 숨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우울증? 실연? 글쎄. 이 앨범에 등장하는 하나 또는 여럿의 ‘너’를, 망상을 공유하는 연인, 화자가 집착하는 상대방, 분열된 자아, 상태의 의인화, 혹은 미지의 생명체…로 단정할 수는 없다. ‘너’는 앞서 예로 든 모든 것일 수도 있으나 꼭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거나 대입가능’하지는 않다. (불분명한 서술을 양해해 주기를.) <UFO>의 느슨한 가사와 비전형적인 구성은 분석을 튕겨낸다. 어쩌면 이 앨범을 글로 소화(시도, 실패)할 가장 적합한 방법은 묘사와 비유일지도 모른다.


토마스 쿠라틀리는 민감하고 독창적인 송라이터, 노래에 얽매이지 않는 보컬이자 전복적인 연주자다. 그가 퍼커션을 비교적 ‘많이 쓴다’고 여겼으나 이제보니 ‘독특하게 쓴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바탕에 깔아 박자를 잡는 대신 포인트나 디테일로 끼우는 일이 잦고, 심벌즈 위주로 사용한다. 소리가 날카롭게 분산되는 각진 금속 판은 기성 악기가 아니라 본인이 따로 구해 설치한 것이다. 저음은 스트링이나 신스가 담당하는데, 그 울림은 간혹 기이한 외계의 목소리로 들린다. 보컬은 예민하고 멜랑꼴리한 사이보그의 음성을 바라본다. 신중하되 생소한 배치가 귀를 긴장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Fade Away’과 ‘Free’의 블루스풍 리듬은 후반부의 변주로 인해 불편함을 획득한다. 다소 관조적인 ‘Fade Away’에는 메탈릭한 타격음 그리고 -그것과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비명처럼 시작해 희미해지는 보컬이, 처연한 ‘Free’에는 클라이맥스의 예상을 깨고 서서히 로보틱하게 축적되는 보컬이 있다. 이 ‘로보틱함’은 뒤따르는 ‘Time For Wind’에서 음성 변조와 더블링을 통해 보다 본격적으로 실험된다. 인스트러멘탈은 회오리치는 와중 보컬은 일종의 무감정을 유지한다. ‘Bright Eyes’의 경우 첫 음부터 맴돌던 긴장과 불안이 점차 고조된다. 연약한 기타와 보컬은 뒤로 물러나 있거나 간격을 두고 틈입한다. 전면에 나와 있는 건 (아마도)모듈러신스에서 비롯된 음울한 진동들이다. 정체모를 생물의 나직한 신음처럼 들리는 추임새들, 가끔 치고 들어오는 심벌… 이렇듯 여덟 트랙은 저마다의 형태로 위화감을 취한다.


몇 트랙은 바람을 닮은 사운드를 매개로 이어진다. ‘Fade Away’ 끝에서 잦아들었다가 ‘Bright Eyes’ 도입부에 잠깐 끼어들고, ‘Time For Wind’의 마무리에서 ‘Heroes / Everything’으로 이어진다. 연주곡인 ‘Q Bird’에는 그러한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 그런가하면 ‘Free’ 마무리의 기타 잔음 바이브레이션은 ‘Time For Wind’에서 질감을 달리해 연결된다. 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Heroes / Everything’ 사이의 흐름도 그렇다. ‘Heroes’는 줄곧 강렬하게 몰아치는 인더스트리얼풍 피스다. 가늘게 떠는 목소리와 금속 판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황홀하게 어긋난다. 오래된 불면증, 자신의 머릿속과 내면에 사로잡힌 상태를 토로하는 화자는 거기서 헤어나오기 위해 분투하는 동시에 그대로 머물고 싶어하는 듯하다. 너도, 나도, ‘내가 필요로 할 때 없었던 너의 영웅들’도, 모두 함께 ‘시간을 낭비하자’고 주문하는 음성은 유해하고 유혹적이며 고독하고 괴롭다. 긴 신음을 토한 쿠라틀리는 둔탁한 타격음 사이로 “waste your time with me”를 되뇐다. 그 남은 음으로부터 ‘Everything’은 시작한다. ‘Heroes’를 휩쓴 파괴의 잔해가 ‘Everything’에서 소진된다,고 적어본다.


“I am the river, you are the boat”, ‘I Am the River’의 낭만은 화자의 믿음에 가깝게 들린다. 감미로운 선율은 뒤틀려 있고 멜로디의 끝 음은 정착하지 못한다. 그럴듯한 러브송으로 흐르는 것 같았으나 곧 화자는 ‘어젯밤부터 네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oh baby are you freezing / or why are you so cold”: 마지막 구절의 물음은 미해결 상태로 잘리고, 무거운 울림이 퍼진다. 그 지점에서 ‘Dirt On the Ground’가 기습한다. 목소리의 에코는 여전히 악기 소리와 구분되지 않고, 반복되는 리듬은 ‘정신이 없다’(라이브 비디오를 살피면 드럼 스틱으로 기타 스트링을 때리거나 긁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여러 톤의 금속성 타격음과 마찰음이 사방으로 분산되는 와중 추임새를 넣는 새된 하울링. 서서히 잦아들지만 ‘노이즈’는 오히려 증폭되어 귀가 먹먹하다.


이질적인 소리들이 차례로 등장해 겹치고 다시 분리되는 동안 리듬과 멜로디가 깔끔하게 맺히는 일은 잘 없다. 개별 트랙은 끝날 듯 끝나지 않거나 붕 뜬 채로 끊긴다. 여백은 빈칸이 아니라 사운드 요소가 늘어지는 구간이다. 인스트러멘탈의 잔여 음이 스스로 이야기를 지속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은 ‘달에 반사된 햇빛과도 같이 무언가의 불충한 그림자/반향으로서 (비)존재하는’ 이라는 비유-서술에 부합한다. 느린 호흡과 미니멀한 그룹사운드에서는 여유보단 지연감이, 느긋함보단 늘어짐이 감지된다. 가장자리가 불분명한 음, 처음 비롯된 표면에서 동떨어져 부딪히고 퍼지는 파동은 촉각적이다. <UFO>를 듣는 일은 피부에 기어오르고 스미는 것들을 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트랙들은 일방향으로 흘러 완결되는 선형의 곡song보단, 갖가지 형태의 소리조각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포착되는 기묘한 사운드스케이프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UFO>는 ‘일종의’ SF 앨범이자 S(ensual&)F(reaky)한 공기가 감도는 레코드다. 그 슬로우버닝의 외계성, 위화의 미학으로부터 나는 조너선 글레이저의 <언더 더 스킨>과 같은 별종의 에일리언 필름, 혹은 쥘리아 뒤크루노의 <티탄>과 같은 사이보그 바디 호러를 연상한다. 콘셉트 앨범으로 구분할 수도 있지만, 그 콘셉트는 그럴듯한 설정이나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UFO>에는 미지와 조우하는 낯설고 불안한 감각이 흐르나, 그것은 어떤 면에서 낯익다. 문자그대로의 UFO나 ‘외계인’보단 alien적인/alienation소외의 정서와 만나는, 사이언스 픽션과 닿으면서도 서사를 거부하는, 이 소리들은 스스로 해체와 결합을 되풀이한다. 달에 반사된 햇빛과도 같이 무언가의 불충한 그림자/반향으로서 (비)존재하며, ‘~~가 아닌 것’으로서 거기 있다. -기성품에 안착하지 못하고 떨어져나온 부품들로 이루어진-기계의 몸을 지닌 이 미확인 비행물체는 상공이 아니라 심연에서 부유하는 덩어리다. <UFO>는 청자를 그 이공간으로 끌어들여, 전신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 미완결의 감각과 함께 공터에 남겨둔다.


https://youtu.be/RPixAYcy_DU?si=qv-Qjdnn5m-qeSPj

<UFO> 풀 앨범. (북메이커 레코드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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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레코드에 과몰입하는 내 방식이자,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약하고 혼란스러운 실마리다. 수 년간 간헐적으로, <UFO> 안에서 헤맸다. 마침내 글로 소화(시도, 실패)하는 과정에서 Pyrit의 이후 작업들에도 새로이 귀기울이게 되었다.


거칠게 적으면 Pyrit의 작업 중에서는 <UFO>의 스타일이 비교적 ‘널리 수용될만한’ 편일 것이다. 이미 예외적이었던 데뷔 이후 토마스 쿠라틀리는 사운드와 비주얼 모두의 측면에서 심화된 실험을 지속한다. 예를 들어 2집 <Control>의 오프너 ‘Control Pt.1’: 그로테스크하게 단절되는 외마디 음성들을 악기의 음처럼 잇고, 공연에서는 이를 녹음한 샘플러를 드럼스틱으로 두드린다. 무대 위 쿠라틀리는 손이 닿는 범위에 심벌즈, 샘플러, 떼레민 등 각종 장비를 늘어놓은 채 노련하게 연주와 연기를 수행하는 멀티태스커다. 2집 투어 공연에서도 대개 홀로 서지만, 다른 (연주자가 아닌)퍼포머를 올려 행위예술을 연출하기도 한다. 뮤직비디오에는 글리터를 뒤집어쓰고 출연해 자신을 신비로운 몬스터로 전시한다. <Control>에 비쳤던 극음악의 흔적은 비교적 근작인 <Tttz>에서 다크 오페라로 폭발한다. 그 사이에는 Marc Bauer의 전시 사운드트랙과 Verveine과 함께한 EP 등 콜라보레이션 레코드를 냈고 영화 사운드트랙도 여럿 작곡했다.

(이 군더더기는 다음 글의 예고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