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온다(敵)>(2024, 요시다 다이히치)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와타나베 기스케는 ‘민폐 끼치지 않고자’하는 현대 일본사회에 잘 적응한 겸손하고 검소한 노인처럼 보였다. 전직 불문학 교수로, 스무 해 전 아내를 잃고 오래된 집에서 책에 둘러싸여 홀로 지낸다. ‘강의료 10만 엔’ 원칙을 지키려 애쓰고 ‘생존만을 위한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정부 제도에조차 경제적으로 의존하길 꺼려, 가용 자산이 0이 되는 날을 계산해 ‘X데이’로 정하고 유서까지 써두었다. 그런 그의 일상은 일견 소신있고 정갈하며 평온해 보인다. 기스케는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끼니를 깔끔하게 챙긴다. 지인과 ‘야간비행’이라는 바에서 가끔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제자들은 원고를 청탁하거나 집 정리를 돕고 식사를 함께하는 등 스승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쯤에서 이 영화의 화면이 흑백이라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흑백 화면을 사용한 까닭을 여기서 바로 짚어내기는 어려울 터이나, 기스케가 요리하고 먹는 모습이 유독 자주 묘사된다는 점과 관련 있으리란 짐작을 우선 던져본다. 무채색의 음식은 무채색의 인물보다 한층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적이 온다>는 언뜻 무채색의 배경, 반복과 변주를 통해 일상 사이로 드러나는 노년의 고독, 부정적 자의식, 경제적 불안 등을 포착하려는 듯 보였다. 아주 틀리지는 않으나 핵도 아니었다. 오프닝으로 돌아가보면, 영화는 집의 외관을 잠깐 조명한 다음 잠에서 깨어나는 기스케를 비춘다.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는 그의 하반신 중앙께 이불이 솟아 있다. 화면이 바뀌고, 화장실에서 나온 기스케가 세수를 한 후 다시금 짧은 한숨을 곁들여 식사를 준비한다. 이 ‘별 볼 일 없는, 또다른 하루’의 재현에 ‘이제부터 기스케의 숨은 욕망과 회한을 반영하는 꿈과 환상 그리고 그것이 깨지는 과정을 다룰 것’이라는 암시가 포함돼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흑백 화면이라는 연출 선택이 어쩌면 기스케의 방어 기제와 연결돼 있어 그의 의도적으로 무딘 (초)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두 번째 짐작을 해 본다. 그러므로 그의 관점을 따라가는 관객이 현실과 초현실을 인식하는 감각적 간극-이를테면 ‘실감’-또한 좁아지는 효과가 생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령 이런 장면이 먼저 던져진다. 어느 여름날, 기스케는 말소리를 듣고 집 앞으로 나간다. 옆집에 사는 노년 남성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젊은 여성을 불러세워 똥을 치우라며 타박하고 있다. 여성은 우리 개의 배설물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보아하니 한두 번 벌어진 말다툼이 아니다. 다투던 중 남성이 여성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여성은 손으로 코를 가린다. 이 사건은 정말로-즉 기스케만의 세계가 아닌 공동의 세계에서-일어난 일일까? 일단은 그럴 것이라 가정한다. (아닐 가능성도 없진 않다. 정확히 실제로 분류할 수 있는 장면은 다만, 기스케가 홀로 잠에서 깨어나 요리하고 빨래를 널거나 청소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근거는, 이 장면에서 기스케가 주된 행위자나 상대의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대상보단 그저 우연히 거기 있던 이웃 주민, 목격자, 사건에 영향을 받는 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펴야 할 것은, 여기서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그 반응이 어떤 장면으로 이어지는가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스케는 집으로 돌아와 몸 구석구석의 냄새를 심각하게 맡아보더니 샤워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정한 미소를 띤 여성이 기스케를 방문한다. 장을 본 바구니를 들고 혼자 식사중이던 기스케의 집 문을 두드린 그의 이름은 야스코. 예의바르고 친근한, 젊지만 어리지는 않은 그는 기스케의 옛 제자다. 기스케가 교수였을 때 그를 곧잘 따르고 동경했으며 개인적인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던 학생으로, 그를 스토킹하던 남학생을 기스케가 꾸짖은 일화도 있다. 그들이 가까이 서 있을 때 야스코는 ‘비누향이 좋다’고 말한다. 사제는 식사와 반주,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간혹 미묘한 공기가 감돌기도 한다. 야스코는 소파에서 무방비하게 잠들었다가 한밤중 귀가한다. 그리고 아유미가 있다. 그는 기스케가 지인과 함께 방문한 바 ‘야간비행’ 사장의 조카다. 불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인 그는 ‘프랑스문학의 권위자인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기스케의 전공과 (프랑스 작가에 대한) 호불호를 잘 알지만 의심하고 질문하기보단 다소곳하게 가르침을 요청해 기스케의 면을 세워주며, 프루스트의 책에 나오는 음식을 해 달라 부탁하기도 한다. 아유미는 등록금을 미납한 탓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늘을 내비치되 노골적으로 도와달라고 하진 않는다. 이 여성들은 기스케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먼저 다가와서는 호의를 보이고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불문학 전공자로서 기스케의 적절한 말상대가 되어주되, 그의 기를 죽일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한다. 기스케를 존경하는 그녀들은 학문과 학문 이외의 부분에서 모두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기스케는 자상하고 예의바른 어른이자 그다지 ‘능숙’하지 않은 남성의 얼굴로, 적당히 당황하고 내심 즐거워하며 이들을 대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현실과 초현실이 쉬이 구분되는 것도 같았다. 매운 김치를 먹고 배탈이 난 기스케가 꾸는 병원 배경의 꿈처럼, 대놓고 황당한 상황은 쉽게 꿈으로 분류가능했다. 하지만 기스케가 잠에서 깨어나는 묘사가 점점 잦아지며 꿈의 범위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전직 교수(인 남성) 맞춤형 판타지에 부합하는 언행을 보이던 두 여성이 등장하는, 다소 의아한 상황들은 (+후배나 다른 남성 제자들과의 만남들도 대부분) 결론적으로 기스케의 그럴듯한 상상/환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세계에서 기스케는 스스로를 ‘1년 내내 방학인 노인’이라 낮춰 이르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다들 그를 존경한다. 위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서로 진심과 호의를 공유하는 정교한 판타지, 그러나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은 판타지다. 상징적인 허구의 장소였을 가능성이 있는 ‘야간비행’의 폐업을 시작으로 상상의 공간은 점차 허물어진다. 그 무렵 죽은 아내 노부코가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출현은 기스케가 ‘이 시공간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점을 외면할 수 없게 한다. 처음에 기스케는 영정 사진을 살며시 엎어 놓으며 꿈임을 인지하는 채로 거기 잠시 머물고자 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그러나 기스케의 회한을 따라 움직이던 노부코의 형상은 마침내 진짜처럼 보였던 다른 인물들과 한 화면에 잡힌다. 고운 얼굴의 제자 야스코, 문화란이 축소되었는데도 선생의 글을 실어야만 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는 경영학 전공 잡지사 직원, 팔을 걷어붙이고 마른 우물을 파는 제자 역시 환상임을, 기스케는 이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 꿈/환상은 극도로 비현실적으로 치달아 결국 야스코와 기스케가 시체를 (다른 제자가 방금 되살린)우물에 빠뜨리는 순간에 다다른다. 기스케가 ‘이건 내 꿈일 뿐이야’라는 말로 야스코를 안심시키려 하자 줄곧 상냥하던 야스코의 태도는 달라진다. 그는 기스케가 소중히 여겼던 과거의 일화들을 ‘위계를 이용해 당신의 이득을 취한 것’이라 표현한다. ‘좋은 추억이 아니었냐’고 울먹이며 되묻는 전 스승에게 전 제자는 “가여운 사람…”이라고 답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상상 속의 내게 이런 말을 시키고 안도하기는”이라고 차갑게 덧붙인다. 기스케의 얼굴과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야스코의 얼굴, 두 클로즈업숏 모두 기스케 본인의 ‘시점숏’이리라. 비로소 와타나베 기스케는 타인의 환영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그 초라함을 똑바로 마주한다. <이창>의 “저질” 주인공에 쌍안경을 든 자신을 빗대던 기스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직면을 미루었을 뿐.
적은 동떨어진 외부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적은 서서히 잠식하지 않고 불현듯 덮쳐버린다’. 스팸메일의 형태로 끼어들던 공포와 고독, 회한을 무시하던 기스케가 마침내 ‘적’을 마주보고 걸어나가자 총알이 그의 몸을 꿰뚫는다. 물리치기 위함이 아닌 제대로 관통당하기 위한 맞섬, 패배하기 위한 전투. 화면에 아른거리던 흰 빛이 걷힌 곳에 긴 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눈을 뜨는 기스케의 얼굴이 있다. 상상을 직면하고 소진한 그는 무기력하고 무방비하게 널브러져 있다. 내일은 오늘과 다름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무수한 어제-환상의 재료-들 은 기억만큼 아름답지 않았을 것임을 납득한 남자의 쓸쓸한 내레이션이 들린다, ‘봄이 되면 모두를 만날 것이다’. 다시 흰 빛이 아른거린다.
처음에는 동시대의 전반적인 노년 생활에 질문을 던지려는가 싶었으나, <적이 온다>는 그보단 필연적인 ‘끝’의 공포와 제 못남을 들여다보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게 읽힌다. 무의식을 반영한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꿈과 마치 현실같은 교묘한 판타지, 두 초현실이 서로 점점 섞이며 균열을 일으키고 소진되는 방향으로 영화는 나아간다. 낡은 판타지를 재현하는 까닭은 그것을 배반하면서 꿈꾼 자 스스로 반추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상상하는 자도, 그 상상의 이면을 마주하고자 하는 자도 기스케다. 그 용기는 초라하나 (그렇기에) 의미있다.
뒤따르는 엔딩, 아마도 변호사일 남성이 유언장을 읽는다. 제자들도 당연히 아유미도 그 자리에 없고 유언장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기스케가 지나가듯 말했던 친척, 마키오는 있다. 창고에 들어간 마키오는 낡은 사진첩에서 자신의 얼굴과 흡사한 초상 사진을 목격한다. 구석에서 발견한 쌍안경을 무심코 눈에 대고 주위를 둘러보다, 2층에서 기스케를 닮은 형상을 목격하곤 놀라 쌍안경을 떨어뜨린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생활 소음이 들린다. 기스케의 유령이 요리를 하고 있는 걸까. (여기까지 보고 나면 기스케가 처음부터 혹은 초반부터 유령인 채로 집을 떠돌고 있었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도 있는데, 씁쓸하게도 그 여부를 밝힐 증인이 이 영화에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어느 쪽이든-)제대로 꿰뚫린 ‘지금’, 그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못한 자신(의 잔여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