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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un 01. 2019

때늦은 헌사   

나타샤 로마노프



-캐릭터: 나타샤 로마노프 (in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감독: 조 루소, 안소니 루소)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2014)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취향과 관계 없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대단한 영화다. 루소 브라더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캐릭터 각각과 전체적 서사에서 무엇 하나 빠트리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해낸다. 한 히어로 세대의 피날레로 충분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 한구석을 얹힌 듯 답답하게 만드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나타샤 로마노프’.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악당의 ‘희생양이 되는’ 여성 캐릭터는 많았지만, (‘엄마’ 역할이 아닌 이상) 스스로를 희생해 다른 이들을 구하는 여성 영웅 캐릭터는 드물었다. 목숨을 바쳐 ‘약자’를 구하는 건 항상 멋진 남성의 몫이었고, 그의 매력과 죽음은 작품이 끝나고 오래 기억에 남곤 했다. (<타이타닉>이 끝나고 관객들이 잭과 로즈 중 누구를 기억했는지 생각해 보면-) 하지만 나타샤는 몸을 바쳐 클린트를 밀어내고 목숨을 버린다. 그러고도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이 되진 못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토니 스타크는 인피니티 건틀렛을 끼고 멋지게 손가락을 튕긴 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한다. 추모는 가까운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식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슬펐지만, 마음껏 웅장하고 위대했다. ‘그가 가져다 준’ 희망 덕에 햇살은 밝았고 지구는 평화로웠다.


반면 나타샤의 죽음은 달랐다. 어둡고 어두웠다. 목숨을 버려 스톤 하나를 얻는다 해도 갈 길이 멀고, 계획이 성공할지 또 절망으로 돌아갈지 불투명한 상태였다. 카메라는 낭떠러지 아래 떨어진, 눈도 감지 못한 나타샤의 시체를 차갑게 담는다. 할 일이 남은 어벤져스는 그녀의 죽음을 미처 다 슬퍼하기도 전에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이야기가 한창 흘러가던 도중 죽은 어벤져가, 가족도 없고 친구라곤 어벤져스 뿐인, ‘잃을 것 없는’ 나타샤 였던 건, 정해진 결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너무 많은 것을 담아야 했기에, 카메라는 그녀의 차가운 죽음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물론 이 똑똑한 감독들은 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나타샤의 존재가 마지막 토니의 ‘멋진’ 죽음에 가려진 것 아닌가 속상해하고 있을 때, 클린트와 완다가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을 넣어 갈무리해 줬다. (비전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였는데.…….)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나타샤가 벼랑 끝에 몸을 던진 까닭 중 하나가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었던 일들에 대한 속죄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녀는 스파이로 길러졌다. 아마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이기 전에 피해자였다. 어려서부터 강제로 혹독한 훈련을 해야 했다. 인간이 아니라 무기로 다뤄졌고, 조직의 기계 부품으로 ‘생산’되었다.
 
허나 그녀는 스스로의 과거를 피하거나 합리화하는 대신, 마주하고 인정한다. 괴로워하면서도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보안을 풀고 ‘쉴드=하이드라’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던 도중, 피어스가 ‘네가 진짜 어떤 사람이었는지 세상에 알려져도 괜찮냐’고 묻자,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차분한 눈을 들어 상대를 응시하며 “Are you(너는)?”라고 되묻는다.(<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앞으로 자신, 자신이 죽게 만든 사람들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정확히 행동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나타샤에겐 적절한 융통성이 넘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가장 팀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했던 게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자. “현실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하므로” 일단 협정에 동의하지만, 목숨 걸고 동료들의 길을 막지는 않는다. 마지막 순간 스티브를 믿고 자신이 체포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길을 열어준다. 싸움이 끝난 후 “이렇게 싸우다간 모두가 다치게 될 거다, 우리가 잘못 대응했다”고 토니에게 말한다. 친구가 다치고 감정이 상한 토니가, “전직 이중 스파이 기질이 DNA에 박혀 있다”며 해선 안 될 말로 비꼬아도, 똑같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한 순간이라도 자존심을 내려놓는 게 그렇게 힘들어?”라고 핵심을 찌른다. 나타샤가 믿는 건 자존심이 아니라 팀이고 동료이며, 그들이 뭉쳐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민 없이 목숨을 버렸던 것일 게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마지막 순간과 달리, 나타샤의 눈에는 유독 고민의 순간이 많았다. 자신의 아픔은 숨긴 채 끊임 없이 동료의 감정과 상태를 살피고, 옳고 그름에 대한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다.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주변을 더 나아지게 한다. 이성을 잃고 화내는 일은 없다. 그 침착함이 혹독한 훈련의 결과 같아 마음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현재의 나타샤를 만든 건 스파이 학교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나타샤는, 편을 갈라 싸우면서도 “우리 아직 친구지?”라고 물을 정도였던 클린트의, 스티브의, 토니의,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이자, 자존심 강한 그들을 하나로 모아 주는 보이지 않는 구심점이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하나 덧붙이면, 나타샤는 싸움을 굉장히 똑똑하게, ‘잘’ 한다. 본인보다 신체적 능력이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전기충격기나 녹음기 등을 재치 있게 사용한다. 그 와중에도 시민들을 대피 시키는 건 잊지 않는다. 열심히 달리면서 연신 “Runaway!”를 외친다.(<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 고성능 수트나 초능력이 없어 아주 돋보이지는 않지만, 몸의 움직임만 보면 절대 뒤지지 않는다. 멋져 보이려는 허세 없이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액션을 펼친다. 오히려 그게 폼난다. 할리우드 최고 액션 배우(‘여’배우 아니다.) 중 하나인 스칼렛 요한슨이 역할을 맡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여성 히어로들이 모두 모여 싸우는 장면에 블랙 위도우가 없어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녀에 대한 서술을 모두 과거형으로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다 다시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2014)



 
내 최애는 언제나 로키랑 버키다.(왜냐면 로키랑 버키니까…..) 하지만, 최고의 어벤져를 꼽으라면, 두말없이 블랙 위도우, 아니 나타샤 로마노프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아아 그녀는 가장 완벽하고 멋진 존재여서 그렇게 죽어버린걸까. 나름의 일관성을 위해 영웅적 면모에 대한 찬사만 단편적으로 나열했으나, 과거를 언급할 때 아프게 어두워지는 표정은 개인의 서사에서도 끌어낼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재치 있는 말투와 자신 있는 태도’는 매력의 극히 일부를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나타샤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너무 많고, 지금보다 남성 중심적이던 시대에 출발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치만큼 주목 받지 못하고 죽었다. 죽음 이후에야 나온다는 이토록 풍부한 캐릭터의 솔로 무비가, 기다려지면서도 아쉽다. 이 글은, 대형 상업 영화를 소재로 쓰는 것을 지양하겠다는 내 의지를 가볍게 무너뜨린, 나타샤 로마노프에 대한 때늦은 헌사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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