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레안디노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바를 운영하다보면 의도치않게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다. 눈높이가 가장 낮아지는 소파에 앉은 두 남녀는 서로가 좋아하는 걸 물어봐주느라 와인을 정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결국 그들은 '발레안디노 까베르네 소비뇽'을 주문했다. 와인 자체에 대해 탐구를 하려는 것보다는 와인과 치즈 안주를 곁들여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러 온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좀 흘러 와인에 취기가 올랐을까?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간 있었던 속상했던 일을 남자에게 털어놓는듯 했다. 눈물을 연신 닦아가며 서럽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남자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왜 울고 그래'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랬구나. 속상했겠네'라며 그저 여자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다정한 공감을 받은 것에 맘이 가라앉는지 여자는 마지막 눈물을 털어내고, 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문득 그들의 테이블에 올라와있던 와인, 발레안디노 까베르네 소비뇽과 그 커플이 묘하게 잘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발레안디노 까베르네 소비뇽은 당도가 높은 와인은 아니다. 처음에 한 모금 입에 넣으면, 딸기와 플럼 등 산뜻한 과일향이 먼저 올라오는데, 바로 다음 초콜릿, 타바코, 오크와 같은 묵직한 향이 마무리를 해준다. 산도, 바디감, 탄닌감이 적절히 어우러진 밸런스가 좋은 미디엄 바디의 칠레 와인이다. 색감은 밝은 루비 색상을 띄는데, 육류 음식과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마치 과일향이 날 것 같은 여자와 묵직한 향이 날 것 같은 남자는 안정적인 밸런스를 이루며 따듯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갈 때가 되자, 여자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괜히 배웅을 해주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칠레 와인을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마주보고 앉은 두 남녀 사이에 놓여진 그 날의 발레안디노 병은 괜히 한 모금 마셔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비워진 발레안디노 병을 치우며, 괜히 간질간질해지는 하루였다.
발레안디노(Valle Andino)는 칠레 와인 최대 생산지인 마욜 밸리(Maule Valley)에 정착한 와이너리이다. 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대로 일교차가 커 레드 품종을 키우는 데 적합하다. 이후 발레안디노는 콜차구아 밸리(Colchagua Valley)와 카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 지역의 포도밭을 추가로 구매했다. 콜차구아 밸리에선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르미네르, 말벡, 쉬라를 베이스로 한 특급 레드 와인을, 카사블랑카 밸리에선 샤도네이, 소비뇽 블랑을 베이스로한 훌륭한 화이트 품종을 생산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