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아메
버스 안에서 드라마를 홍보하는 얇은 목소리를 들은 적 있다. “수요일, 목요일 밤 9시 ENA 채널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만나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일반적으로 버스에서 다음 역을 안내하는 목소리와는 사뭇 달라 기억에 남았고, 이후 그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마침 좋아하던 배우 박은빈이 썸네일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첫 화를 시청했다. 그러나 1화를 끝까지 보자마자 나는 이 드라마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통통 튀는 캐릭터와 가슴을 뛰게 하는 러브라인, 지루할 틈 없는 옴니버스 형태의 이야기 아래에서 시청률은 연일 고공 행진했다. 1회에서 0.9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던 시청률은 7회 기준 11.6퍼센트를 달성하며 무려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단지 높은 시청률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받는 점은 ‘우영우’라는 캐릭터 그 자체였다.
우영우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영우는 반향어를 사용하거나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등 자폐인의 특징을 보인다.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우영우의 이러한 특징들에 대한 관심 또한 급증했다. 명석의 발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질문 그대로 답변하는 모습, 방에 들어가기 전 3초를 세고 들어가는 장면 등에 있어서 자폐인이라는 우영우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편견을 만들어냈던 이전의 여러 사례들을 비추어 보았을 때, 우영우를 이루는 큰 특징인 자폐를 제대로 다루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신경 발달 장애의 한 범주로, 초기 아동기부터 상호 교환적인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손상을 보이는 한편 행동 패턴, 관심사 및 활동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반복적인 것이 특징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만큼, 2013년에 나온 가장 최근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개정판(약칭 DSM-5)에서는 기존에 따로 분류되었던 자폐성 장애, 아스퍼거 장애, 레트 장애, 소아기 붕괴성 장애, 고기능 자폐, 비전형적인 자폐증 등을 같은 선상에서 스펙트럼으로 바라보았다.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우영우와 함께 지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처럼 시청자들도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에 대해 자연스럽게 더 알아가게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징에 대한 고증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심각도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손상, 그리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패턴에 근거한다. 이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패턴의 몇 가지 예시 중 하나가 바로 반향어의 사용이다. 반향어란 반복적으로 말하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이전에 보고 들었던 대화 혹은 영상, 노래 등에 나온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특유의 문구를 반복 사용하는 것도 반향어의 일종으로, 우영우의 시그니처 대사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도 반향어라고 할 수 있다. 흥미가 고래라는 주제에 제한되어 있는 것, 소리나 손 잡기 등의 감각에 예민한 것, 눈맞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등이 모두 자폐 스펙트럼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드라마를 이렇게나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영우가 한 번 보면 뭐든지 기억하는 천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변호사 시험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도 했다. 장애를 가졌지만 제도권 안에 무사히 편입되어 좋은 스펙을 갖추었다는 사회적 효용성에 대한 증명은 작중 인물들도, 시청자들도 불편함 없이 대형 로펌에 있는 우영우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자폐인 캐릭터가 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회적인 효용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 우영우의 순수성과 사랑스러움이 그의 능력과 더불어 극대화되었다는 점은 불편한 사실이다.
같은 자폐인이지만 천재 변호사 우영우와 다르게 3화에 등장했던 정훈은 형에 대해 물어보면 “죽는다”라는 단어만 반복하며 자신을 때리는 등 기본적인 의사소통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자폐인의 모습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우영우가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고 인정받는 변호사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자폐인, 어떤 자폐인의 가족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상일 수 있다. 우영우라는 캐릭터는 지능이 높고 사회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 고기능 자폐이면서 중등도 자폐의 특징인 김밥 정렬, 손 꼼지락거리기, 스킨십 기피, 반향어 사용 등의 전형적인 자폐 증상을 보이고, 동시에 특정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서번트증후군까지 갖고 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의 70~80퍼센트는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우영우가 자폐인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될 수는 없을 듯하다.
익숙한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성격은 순수한 자폐인 캐릭터. 이러한 캐릭터를 보며 이런저런 질문이 들었다. 자폐 배우가 직접 자폐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 주위에 자폐인 배우가 존재하기는 하나? 미디어 속에는 존재하지만 미디어를 만드는 현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내용을 어디까지 온전하게 수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이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는 매 회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독립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인데, 그중 5화와 6화의 내용은 차별과 역차별에 관한 내용이었다. 권민우 변호사는 정명석 변호사 아래에서 우영우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우영우를 배려하는 일이 없고 경쟁자로 여기며 ‘권모술수’를 부렸다. 권민우의 이러한 특징은 1화에서부터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니까 도와주지 마요. 나보다 강한 사람 왜 도와줘.
권민우에게 ‘강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이전에는 권민우의 우영우를 향한 적의에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강자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권민우의 세계관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강자’, 혹은 ‘약자’로 판가름한 뒤 이에 따라 돕거나 끌어내리는 전략을 사용한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이러한 권민우의 사고방식은 어쩌면 당연하다. 권민우 역시 계약직 변호사라는 상황에 당면해 있다.
로스쿨 때 별명도 어차피 일등은 우영우였다면서요. 이 게임은 공정하지가 않아요. 우영우는 매번 우리를 이기는데 정작 우리는 우영우를 공격하면 안 돼, 왜? 자폐인이니까. 우리는 우변한테 늘 배려하고, 돕고, 저 차에 나온 빈 자리 하나까지 다 양보해야 된다고요! 우영우가 약자라는 거, 그거 다 착각이에요.
하지만 우영우를 단순히 강자라고 축소시킬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명석 변호사 밑의 우영우는 에이스고 천재이지만 13화의 장승준 변호사 밑에서 자폐인 우영우는 눈치 없는 변호사고 결국 공판 준비에서도 제외되고 말았다. 우영우는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6개월 간 아무 로펌에도 취직할 수 없었다. 만약 권민우가 말하는 ‘공정’이 똑같이 작용한다면 우영우가 받았던 이런 불이익도 보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영우의 장애를 혼자서 감당하라고 하고 그것도 자신의 능력이므로 알아서 하라고 하는 목소리는 비정한 사회를 낳는다.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장애가 있을 때 주변에서 조언이나 도움을 주지 않고 혼자서 극복하라는 목소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누구도 안정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권민우가 말하는 공정은 결코 진정한 공정이 아니다. 장승준 변호사의 우영우를 향한 타박에 반발하지 않고 하나대 졸업생을 중심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서 우영우를 향한 배려에 공정을 꺼내드는 것은 결국 모두를 위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기존 사회의, ‘정상인’ 중심의 논리에 충실히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행동일 뿐이다.
경쟁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약자를 도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6화에서는 클라이언트와 변호사단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 사람이 배제되는 모습을 잘 담아내었다. 군대 이야기 하기, 뚜껑을 느리게 따는 우영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건배하기 등 사소한 행동에서 우영우가 배제되었다. 남에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위화감을 만들어내는 행동, 작은 눈빛이나 말 한 마디들을 우리 모두 살면서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다. 서로에게 하는 기본적인 배려가 부재한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당혹스럽다. 누구나 능숙하지 않은 모습과 분야가 있고 나 또한 그랬다. 그럴 때면 작아져 있는 나를 향한 사소한 배려에도 큰 감동을 느꼈었다. 그 따뜻함을 기억하고 보답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미디어 속 우영우의 모습에는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다. 사람들은 ‘봄날의 햇살’ 차수연처럼 자신도 현실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지닌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권민우 변호사가 과연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을까. 권민우 변호사가 오히려 현실의 자신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일부를 제외하고, 현실의 많은 사람들은 자폐인을 직접 마주하고 함께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매체를 통해 보고 전해 들어도, 드라마 속 캐릭터를 열렬히 비판해도 지금 현재 나의 현실에서 내 주위 약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모두 허사가 될 일이다. 현실의 약자는 우영우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미숙하거나 사회의 통상적인 기준에 맞지 않게 보이는 모습에도 끝까지 서로를 향한 이해와 배려의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만이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2005년에 개봉한 《말아톤》에서 비추는 자폐인의 모습은 우영우와는 달랐다. 《말아톤》의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으며 5살 정도의 지능에 머물러 있는 20살 남성, 윤초원이다. 초원은 어머니의 지도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연습했고 작품 초반, 10km 마라톤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뒤 서브 쓰리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된다. 42.195km의 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안에 완주하는 서브쓰리는 페이스 조절 없이 경기 초반부터 무작정 달려나가는 초원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이에 초원의 코치 선생님을 새로 구하게 되며 초원이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가 바로 《말아톤》이다. 초원의 자폐증은 우영우의 경우와는 달라서, 초원은 사람들과 잘 소통하지 못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 초원은 동생인 중원에게도 여러 번 존댓말을 쓰고, 노랫소리가 들리면 어디에서든 춤을 춘다. 그는 표정이나 말투, 몸짓이 어색하고 5살 수준의 지능을 갖추어 로스쿨은 커녕 특수 직업 교육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 영화는 실제로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여 최연소 기록을 보유하고 마라톤 서브쓰리를 달성한 배형진 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여러모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비해 사실적인 영화이지만, 특히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말아톤》만의 특별한 점을 포착할 수 있다. 초원의 가족들은 초원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영화는 그 중에서도 초원의 어머니 경숙에 주목한다. 경숙은 초원을 돌보기 위해 직장에 다니지 않고 전업주부 생활을 하는 듯했다. 마라톤 코치 정욱을 구하기 전에는 직접 초원을 가르쳤고, 초원 때문에 여러 번 경찰서에 불려가거나 주변인에게 사과하는 일이 잦았다. 납치 위험을 막기 위해 남이 주는 음식은 거절하도록 가르치거나,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등의 반복된 문장을 주고받으며 초원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가 사회에 적응하도록 노력한 경숙의 모습이 돋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소원은 초원이가 사망한 뒤 하루 뒤에 죽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할 만큼 초원을 잘 돌보고자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로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비, 따라 해 봐, 비.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첫 장면에서부터 경숙은 반복되는 가르침에도 멍하니 허공만 보고 서 있는 어린 초원에게 윽박지르듯 말하고, 초원을 비가 내리는 바깥에 내버려 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경숙은 가족들, 코치 선생님, 그리고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까지 마라톤과 초원에게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경숙이 무너지는 마음을 기댈 곳은 없었다. 초원의 동생 중원은 다른 사람의 차 백미러를 걷어차고 경찰서에 가는 등 엇나갔고, 초원의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도통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원과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도, 제대로 보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경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보호자라면 그 책임과 무거운 마음은 더욱 심해진다.
친해지는 거? 쉽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절대로 아니라고!
친해지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르는 코치의 입장과 달리 아들을 지켜내야 하는 어머니 경숙이 외친 말이었다. 어쩌면 《말아톤》은 자폐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 초원과 소통하는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영화 《말아톤》을 시청하다 보면 현실 속 자폐인의 삶의 고충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의 대사가 떠오른다.
역시 자폐인과 사는 건 꽤… 꽤 외롭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말아톤》과 다른 점은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 그 힘겨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특유의 발랄함 때문일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인으로서 사는 것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우영우를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하지 않았다. 주인공 우영우는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고 시청자들이 결국 영우의 편에 서도록 했다. 시청자들은 힘겨워하는 경숙과 초원의 가족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시선이 아니라 자폐 당사자인 영우의 시선에서 드라마 속 사건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폐’만이 극의 주제가 아니라는 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말아톤》과 다른 점이었다. 이는 법정물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옴니버스 형식 아래에 우영우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서사 아래에서 자폐인은 다시 태어난다. 장애를 가진 몸을 극복하는 신화의 주인공 대신 법정 드라마 속 좌충우돌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작가 문지원의 전작인 영화 《증인》 역시 자폐를 다루었다. 《증인》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15세 여자아이 지우가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지우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폐증을 가지고 있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로펌 변호사 순호는 살인범으로 몰린 가정부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서 증인 지우를 만났다. 변호사 순호가 지우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끝내는 어떠한 유대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 《증인》만의 매력이었다.
첫 공판에서 순호는 지우의 증언이 자폐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지우의 의도파악 능력 부족을 판사에게 증명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고, 결국 지우는 상처를 받아 공판이 끝나고 엄마에게 자기가 정신병자냐는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순호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공판에서 순호는 지우만의 특별한 기억력을 강조함으로써 그 효력을 입증했다. 즉석에서 넥타이에 그려진 물방울 개수가 몇 개인지 묻고, 목격 당시 가정부가 했던 말들을 인출하듯 전부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판사가 지우의 증언 능력을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순호는 매일 오후 5시, 지우에게 전화를 걸어 논리 퀴즈 문제를 냈다. 지우는 그 퀴즈의 답을 고민하고 맞추어 내는 과정을 좋아했다. 매일 정해진 시각 문제를 내고 맞추며 둘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증인》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 과정을 보여준다. 아니, 사실 그 소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지우가 좋아하는 것, 지우의 말하기 방법, 지우의 세계관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을 통해 순호와 지우는 소통할 수 있었다.
극의 마지막 부분, 지우는 일반 학교에서 특수 학교로 옮기고 ‘정상인 척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능력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마 나는 변호사는 못 될 거야. 자폐가 있으니까. 하지만 증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증인》이 출발한 곳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질문에 멈추지 않고 생각한 결과를 보여주듯, 변호사가 된 자폐인은 문지원 작가의 후속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증인》에서 지우는 특수 학교의 다양성 아래에서 편안함을 찾았지만 우영우는 비장애인들 사이에서도 무사히 살아간다. 고민을 털어놓는 동료와 상사가 있고 든든한 조력자이자 가족인 아버지가 있고 우영우를 사랑하는 애인도 있다. 혹자는 우영우의 판타지스러움이 그의 능력보다도, 우영우를 생각하는 주변인의 존재에서 나타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결국 자폐라는 장애 자체보다도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자폐인의 삶에 진정한 문제였던 셈이다.
결국 주변인과의 소통에 대하여 《증인》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상당히 비슷한 관점을 가지는 듯하다. 순호와 지우가 퍼즐 맞추기를 하며 친해졌듯 영우와 그의 애인인 준호는 고래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다. 영우의 시야에서 회전문을 바라보고 고래를 생각하는 과정은 준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에 있어서도 그렇다. 빠삭하게 외우고 있는 법조문과 관련 서류를 바탕으로 한 우영우의 관점은 여러 사건을 해결해 왔다. 결국 두 작품 모두 자폐인이 사회에 녹아드는 방법을 보여준다. 우리는 때로 순호의 방법으로, 준호의 방법으로, 아니면 정명석 변호사나 최수연 변호사의 방법으로 자폐인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자폐를 다루는 매체가 많아질수록 그 특징과 시선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폐인 캐릭터들은 점점 입체적이게 그려졌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도 멀어 보인다. 자폐를 다룬 미국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의 자폐인 주인공 샘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천재도 아니고 장애로 인해 가족에게 큰 슬픔을 안기지만 결국 자폐를 극복하는 사람도 아니다. 드라마의 내용이 평범한 18세 소년의 성장기일 뿐이라는 《별나도 괜찮아》의 태도는 어쩐지 비장애인인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그런 무심한 태도가 때로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세계 20개국에서 넷플릭스 순위 1위를 달성했고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시청률 증가는 이제 익숙한 이야기다.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자폐와 관련된 글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며, 17년 전 영화인 《말아톤》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하고 실제 자폐인 가족을 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많은 기사와 인터넷 게시물로 올라오고 있다. 자폐와 드라마와 관련된 수많은 논의와 관심이 촉발되었지만, 그 관심이 자폐를 납작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지면 안 될 것이다. 자폐인의 어색한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컨텐츠가 그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불편감을 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최고 인기를 달리는 드라마였던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판타지’로서 찬양받기도 하고 비판받기도 했다. 현실과 판타지 그 사이에서 우영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도 겹겹의 레이어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레이어 속 하나하나의 인물들과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증인》의 지우는 특수 학교로 옮겨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말아톤》의 경숙과 가족들처럼 울고 힘들어하는 시간이 분명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초원이 서브쓰리를 달성하고 다시금 담담히 집안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장면에서처럼 그들의 삶과 이야기는 계속될 뿐이다. 우영우도 한바다의 변호사로서 변호 일을 계속하며 의뢰인들을 만나고 새로운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할 것이다.
아직은 수적으로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자폐를 다룬 여러 가지 시선과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영우와 드라마에 집착하며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스펙트럼 속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 작품 자체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글을 마친다.
편집위원 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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