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신입편집위원 정원
#0.
나는 기후활동가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이상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기후변화는 이미 위기를 넘어 재앙의 이름을 가질 정도가 되었고, 통계나 보고서 속 수치로만 인식 가능한 영역을 벗어났다. 5월의 눈, 한여름의 스콜성 비, 10월의 더운 공기. 축제가 한창인 백양로에는 일회용 젓가락과 그릇을 담은 쓰레기봉투가 가득했고, 연고전이 끝난 신촌 길거리에는 맥주 캔과 플라스틱 병이 나뒹굴었다.
<대체텍스트- 보도블록 위에 종이상자, 플라스틱병, 비닐봉지 등 각종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쌓여 있는 모습다. 'OUTDARK' 로고가 적힌 흰색 비닐봉지와 HBO 로고가 있는 종이상자 등이 뒤섞여 있으며 주변 바닥에도 쓰레기가 흩어져 있다.>
나 역시도 이 재앙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배운 대로 텀블러를 쓰고 육류를 줄이는 개인적인 실천을 시작했다. 이마저도 부족해 적극적으로 학내 환경 동아리와 전국 단위 대학생 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 약 천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위기 인식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를 기반으로 탄소중립캠퍼스를 위한 정책 요구안을 만들어 제출한 적도 있었다. 9월에는 지속가능한 축제 문화를 위해 기획한 컨퍼런스를 학내에서 동아리 부원들과 진행했다. 나름대로 세상을, 대학을 바꿀 수 있다는 효능감이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가장 친하다 생각하는 친구들마저도 내게 순진한 질문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나도 알아. 근데 뭐 얼마나 심각하다고?”
“어차피 미국이나 중국이 공장 돌리면 답도 없잖아. 대학이 바뀐다고 뭐가 바뀔까?”
“그래서 탄소중립캠퍼스가 대체 뭔데?”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나온 결론은 명확했다. 기후위기가 아주 다양한 형태로 실존한다고. 심지어 연세대학교 캠퍼스 내에서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대학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1.
기후위기가 심각하긴 한 거야?
기후위기가 정확히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라도, 심각하다는 인식 자체는 대부분에게 존재할 것이다. 기후위기는 대개 ‘기후변화가 극단적인 날씨뿐만 아니라 물 부족, 식량 부족, 해양 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등 인류 문명에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여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상태’를 칭한다. 즉, 대응하지 않는다면 인류와 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의 변화다. IPCC[1] 6차 보고서는 티핑 포인트[2]인 1.5도 상승까지 약 0.3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을 일절 하지 않는다면 2040년에 이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 예측했다. 중요한 것은 티핑 포인트를 넘어간다고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인류 문명이 한 번에 멸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항상 점진적인 불평등 심화를 동반한다. 이상 기후에 의해 작물 생산량이 감소하면 수급이 줄어들고, 가격이 상승하며 식량 위기가 찾아온다.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증가하면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한 지역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 외에도 대규모 이주, 건강 위협 등으로 현실화되는 위기는 취약 계층과 미래 세대가 가장 크게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따라서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인 동시에,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강하게 반영하고 증폭하는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대체 텍스트-두 개의 그래프로 구성된 지구 지표면 온도 변화 도표. 왼쪽 그래프는 서기 1년부터 2000년까지 재구성된 온도와 1850년부터 2020년까지 관측된 온도를 비교하며, 최근의 온난화가 지난 2,000년 중 전례 없는 수준임을 보여준다. 오른쪽 그래프는 1850년부터 2020년까지의 관측값과 시뮬레이션 값을 비교한다. 인간 활동과 자연적 요인을 모두 고려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 관측된 급격한 온도 상승과 일치하는 반면, 태양 및 화산 활동 등 자연적 요인만을 고려한 시뮬레이션은 온도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기후위기는 이미 가시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찾아온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몇 차례에 걸친 채소 수급 파동이다. 2024년, 기록적인 폭염과 일시적 강우로 인해 토마토 수급이 불안정해진 시기가 있었다. 이때 맥도날드는 일부 버거에서 토마토를 빼고, 써브웨이는 수량을 3개에서 2개로 줄였다. 이전 해인 2023년에는 롯데리아가 산지 이상 기후로 인한 양상추 수급 불안정으로 양배추를 섞은 햄버거를 제공했다. 어디 그뿐인가? 초콜릿의 가격도 놀라울 정도로 올랐다. 2025년 2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가나마일드 초콜릿은 2,800원에서 3,400원으로 무려 600원의 가격 상승을 보여주었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는 32도 이상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데, 당시 서아프리카의 주요 생산지에서 42일 동안이나 32도 이상을 유지한 탓이다. 오리온, 해태 등 국내 제과업체들은 초콜릿 제품 가격을 평균 8~10% 인상했고, 파리바게트 역시 초콜릿 제품의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3] 가까운 미래에 우리 후배들은 초콜릿을 사치품 취급하며 한경관 학식 한 끼에 40,000원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은 햄버거에 들어가는 야채 조각 하나, 기호 식품인 간식 하나에 불과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야 물가가 오르니 생기는 자연스러운 가격 인상이라 생각하며 넘겨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되돌려 보자. 초콜릿을 구매하며 물가 상승을 말할 때, 원인 중 하나로 기후위기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혹은 장기적인 물가 상승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것을 그저 일반적인 현상이나 복잡한 유통 과정의 산물 정도로만 치부했는가? 서술했다시피 기후위기는 분명히 불평등의 문제를 수반한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한 이 불평등을 체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들이야 당장 써브웨이의 토마토 하나가 줄어든 게 아쉽겠지만, 실제로 토마토 농사를 지은 농민들의 피해는 그 아쉬움에 감히 견줄 수 없다. 폭염과 이상기후로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생산량이 급감하며, 노동 강도와 위험이 커지는 현실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자연스러운 물가 상승’ 이라는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하는 한 우리는 위기의 구조적 폭력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 속에서 가장 크게 상처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것으로 밀어낼 수 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기후위기는 기이한 소리를 내는 침대 밑 괴물이 아니다. 마감이 3시간 남은 조별과제와 더 닮아 있다.
#2.
왜 대학이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해?
사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과학자와 관계자들이 지구 온도가 몇 도 올랐는지,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증명해 보였다. 대학생용 교재까지 갈 필요도 없이,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만 읽어도 근거를 찾아줄 수 있었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의 당위성에 관한 질문이 늘 뒤를 이었다. 설령 기후위기가 실존한대도 내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라는 질문이, 왜 대학교에서 그걸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항상 따라왔다.
대학은 왜 기후위기의 책임을 지는가? 대학은 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가? 명확히 말하자면, 대학을 지탱하기 위해 대학 공간 자체가 기후위기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은 학생들에게 안락하게 공부할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 공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냉난방이 완비된 건물, 24시간 운영되는 학습 공간, 각종 편의시설과 상업 공간까지. 전부 거대한 에너지 소비가 이를 밑받침해야 가능한 구조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를 구성하는 교수와 교직원, 학생 등을 전부 합하면 무려 3만 6천 명 정도가 나온다. 경상북도 청송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인구가 약 22,000~24,000명 대인 것을 감안하면 대학 하나가 거의 군 단위 지역 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 규모의 집단을 위한 냉난방, 조명, 전자기기는 막대한 전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연세대는 서울특별시 내 대학 중 2번째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으며, 2023년 기준 서울시 전체 건물 중에서 에너지 소비량 16위를 기록했다.[4] 연구라는 특수 기능 수행과 다양한 건물이 모여 있는 대학 환경의 특성상 전력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수치다.
이 논의는 곧바로 다른 순진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그게 정말 대학만의 문제인 거냐고. 우리보다 더 많이 쓰는 단체, 더 많이 배출하는 국가들이 있지 않냐고. 당연히 미국과 중국 같은 거대 산업 국가들에서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의 탄소 배출 책임, 기후위기 대응의 의무성이 면제되지 않는다. 기후위기 앞에서는 어느 주체도 완벽히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규모와 위치에 관계없이 모든 기관은 대응의 의무를 져야 한다. 연세대학교가 가진 특수성이 그 책임을 강화할 뿐이다. 애당초 서울과 수도권의 대규모 대학이 운영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외부 지역의 자원과 노동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캠퍼스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상당 부분이 교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발전소에 의해 공급되고, 식품과 물자 역시 다른 지역의 환경 부담과 노동 조건 위에서 유지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개별 대학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수도권 전체가 가진 구조적 의존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한국전력의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은 전국 전력 소비의 절반에 달하지만, 전력 자급률은 7.5%에 불과하다. 즉, 대학은 결국 수도권의 소비 중심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외부 전가적 성격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대학은 단순한 소비 기관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교육의 장으로서 대학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가치와 책임을 실천할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 방식은 외부 지역의 환경 부담 위에 세워져 있고, 대학 구성원들의 일상적 활동 역시 탄소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학을 ‘기후 악당’이라고 칭하는 것이 근거를 가진다. 단순히 탄소를 많이 배출해서가 아니라, 배출과 소비가 보이지 않는 외부의 희생을 토대로 유지되는 구조여서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대학은 단순히 ‘탄소를 덜 배출하는 기관’을 목표 삼아서는 안 된다. 대학이 내세우는 탄소중립 캠퍼스의 구호가 시설 몇 가지를 교체하고 숫자 지표를 낮추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대학이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대학이 스스로를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성할 의지가 있는지, 그 의지를 구성원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천과 제도로 현실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3.
탄소중립캠퍼스가 뭔데?
수많은 대학들이 탄소중립캠퍼스의 이름 앞에서 탄소중립 정책을 실행하지만, 사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많은 학생들이 알지 못한다. 본래 환경부는 2011년부터 그린캠퍼스 선정 및 지원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는 대학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문화 확산을 선도하여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대학 내 에너지 고효율 설비 도입·친환경 교육과정 개발 및 동아리 지원·탄소중립 문화 조성 캠페인의 세 축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이 당시 환경부가 정의한 그린캠퍼스란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대학 운영 및 교류·협력, 교육 및 연구, 친환경 교정 조성 등의 사업 수행을 위해 환경부 장관이 지정하는 대학’이자,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교육, 연구, 운영, 지역사회 협력이 어우러지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이 포부 가득한 정책과 호칭은 대학 사회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그린캠퍼스 사업은 정부 주도 사업이었기 때문에 대학들은 자율적인 전략을 세워 탄소를 감축하기보다는 정부의 기준을 맞추는 것에 급급해야 했다. 정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기엔 한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린 캠퍼스 지원은 1년 단위로 갱신되었다. 매 해마다 지정 대학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대학이 그린캠퍼스를 조성할 만큼의 충분한 지원과 기간을 충족하지 못했다. 선정 대학교들은 그린캠퍼스 홍보와 안내를 위해 다양한 행사를 열었으나 많은 경우 그린캠퍼스 조성에 대한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닌 행사 자체를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지속성 없이 불규칙한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 큰 인식 제고의 효과를 기대하기엔 힘들다.[5] 더하여 2023년에는 환경부에서 그린캠퍼스 조성 사업을 조기 중단하면서 예산이 갑작스럽게 감소하는 일이 있었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 조기 중단 때문에 2022년 선정대학이였던 5개 대학(경상국립대, 고려대, 광주교육대, 중원대, 한신대)은 3차년(2024년 7월~2025년 6월)의 예산 편성 제외를 통보받았다. 학생 활동 참여의 축소도 마찬가지였다. 고려대 중앙환경동아리 KUSEP은 그린캠퍼스 환경동아리 지원 사업에 선정돼 환경부로부터 매년 지원금과 활동 게획 컨설팅 등을 받아왔지만 해당 지원들은 그린캠퍼스 사업과 동시에 중단되었다.[6]
그럼에도 대학교들은 자체적으로 협회를 구성하고, 학내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당할 기관을 별개로 만드는 등 탄소중립캠퍼스를 향한 움직임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연세대학교는 제법 탄소중립 캠퍼스에 관심이 많은 학교 중 하나에 속했다. 2008년,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로부터 그린캠퍼스 대학에 지정되며 관련 사업을 시작한 이후부터 대학 내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2010년대에는 백양로 재창조 사업을 통해 녹지를 확대하고, 차량 통행을 줄여 보행자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대규모 지하 주차장이 함께 조성되면서, ‘보행 중심 캠퍼스’라는 호명과 달리 자동차 편의를 위한 개발이라는 비판도 존재했지만 말이다. 2024년 11월 27일에는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포항공대의 지속가능캠퍼스 이니셔티브 공동선언식이 열렸다. 해당 선언식에서 연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원장 안신기 교수는 현재 연세대가 운영하고 있는 열효율 상승 프로젝트, 캠퍼스 지하도 조성 등의 사업을 소개하고 “지속가능 캠퍼스 조성을 위한 사업이 학생들에게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도록 노력할 것” 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열효율 상승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YEPS 사이트에 들어가면 건물별 에너지 사용량 등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7]
#4.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하지만 대학의 노력이 아무리 활발하더라도, 결국 학교를 이루는 주요한 주체는 학생들이다.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탄소중립 정책을 직접 체감하지 못한다면 연세대학교를 ‘탄소중립 캠퍼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재 글로벌사회공헌원이 진행하고 있는 탄소중립 관련 교육은 분명 존재하지만, 기독교나 글쓰기 교양처럼 전 학년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기에 대학 구성원 전체의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그마저도 대부분 단기 프로그램이나 홍보성 캠페인에 가까워, 학생들이 일상의 실천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탄소중립 관련 사업이 주로 글로벌사회공헌원 같은 ‘교육 및 대외협력’ 부서에서 수행된다는 점은 대학이 기후 대응을 대학 운영 전반에 내재된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의 부속물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 건물의 열효율을 높여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프로젝트처럼 시설·인프라 중심의 투자는 진행되고 있으나, 정작 이 정책이 학생들의 생활 및 교육 전반에 녹아들어 이어지는 변화를 찾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일상적 실천이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수준의 개인 선택을 넘어, 학생이 소비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스스로 성찰하고 재구조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문화·제도적 기반의 형성을 말한다. 예컨대 학과 차원의 에너지 감축 계획 마련, 교내 탄소중립 관련 정책 구성과 제안, 학교 프로젝트에 학생들이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과 같은 집단적인 실천이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의 탄소중립 전략에서는 이러한 관점의 정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대학의 강력한 상부 주도형 정책은 기후 대응을 단순히 토목공사 중심의 하드웨어 전환에 한정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거대한 단위에서 기술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은 실질적으로 대학 본부만이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대학생들을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멀어지게 만들며, 대학의 탄소중립을 구성원들의 삶과 분리해 주변화한다. 오로지 대학 본부만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있을 뿐, 대학 구성원과 공동체는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를 재생산하게 된다. 그럼에도 연세대학교의 탄소중립 정책에서는 구속력 있는 목표도, 중장기 계획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실질적인 효과도 없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가 아닌, ‘기술만으로 충분한가?’ 이다. 기술은 전환의 요소일 뿐, 전환의 전부가 아니다. 대학은 기후 대응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혹은 들어오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위한 관계적, 문화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5.
우리는 기후활동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후위기는 실존한다. 멈출 줄 모르는 기후위기의 지구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 살아가는 모든 공간에서 기후위기와 마주쳐야 한다. 따라서 이 지속불가능한 공간을 지속가능하게 바꾸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단순 운영과 행정, 시설 개편의 범주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대학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최근 많은 대학이 탄소중립이라는 정책적 언어에 갇혀 토목·시설 중심의 하드웨어 개편에 집중하는 반면, 대학생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전환은 탄소중립 정책을 요구하는 소비자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가 변화를 실천하는 행위자로 발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대학을 구성하는 탄소 배출의 시스템 자체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질문 하나를 던진다. 지금까지 무엇을 문제 삼지 않은 채 이 공간을 살아왔는가?
우리가 매일 걷는 백양로, 학식당의 음식과 트레비앙의 커피 한 잔, 누군지는 모르지만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까지. 이 모든 것은 단절된 요소가 아니다. 서로에게 기대어 움직이는 하나의 순환을 이루고, 연세대학교는 그 순환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도시의 에너지망, 외부 노동과 자원, 우리가 소비하는 일상의 물질들이 모두 직접적으로 얽혀 하나의 단위로서 작용한다. 그렇기에 대학이 짊어진 책임은 단순히 전력 다배출 기관이라는 사실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가 대학에서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기후위기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이 글에서 굳이 대학교의 책임을 짚어 말한 이유도 대학만이 문제의 원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연세대학교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특정 집단만의 몫이 아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과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 있는 공간부터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텀블러 사용, 꼼꼼한 분리수거, 대중교통 이용 같은 작은 실천들이 때로는 너무나도 작아 보이고, 피곤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천이 쌓여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제도와 구조를 움직인다. 연세대학교라는 거대한 단위를 행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말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기후활동가다. 누군가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정체성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역할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대학을 다시 바라보자.
연세대학교, 지속가능한가?
[1]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2] 지구 시스템이 한계점을 넘어서면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
[3] 1. “애인 줄 초콜릿 사려다 멈칫…가격 5배 뛴 코코아플레이션,” 중앙일보, accessed November 26, 202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3940.
[4] 출처: 서울특별시 에너지정보-에너지 다소비 건물 현황. 2023년도 기준 에너지 사용량은 21,925.0 Toe(석유 1톤을 태웠을 때의 에너지량을 기준으로 환산한 ‘석유환산톤’ 단위), 온실가스 배출량은 46,036.0 tCO₂ eq(여러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의 온난화 영향으로 환산해 표시한 ‘이산화탄소환산톤’ 단위)였다.
[5] 허필윤, 이용숙, "지속가능한 캠퍼스의 가능성과 한계: K대학교 그린캠퍼스 사례를 중심으로," 환경정책 32, no. 4 (2024): 247-277, 10.15301/jepa.2024.32.4.247
[6] “그린캠퍼스 사업 중단, 피해는 학생과 연구자에게,” KUnews, March 18, 2024,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42104.
[7] 흥미로운 내용이 많으므로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s://yeps.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