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편집위원 동심, 신입편집위원 두보, 정원
A가 연세대학교를 마음에 두기 시작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길거리에서 기차놀이를 하는 연고전 영상을 본 후부터였다. 그 영상의 어떤 점이 A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A도 잘 알지 못했다. 다른 대학들과는 다른 ‘특별함’ 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7년 후, 그토록 고대하던 연대에 입학했지만 A는 마음속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연대생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선배들의 말과 ‘연대생 프라이드’를 강조하는 행사들에 참여하면서, A는 과연 이게 ‘진짜 연세대’일까 생각했다. ‘우리는 달라’라며 폐쇄적인 공간으로 들어가고 파하는, 적나라하진 않지만 분명한 욕망들이 보이는 ‘연대생’들의 관습은 어딘가 묘하게 비어 있다고 A는 느꼈다. 밟고 있던 베일 아래를 한 꺼풀 들추어낸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 주위의 ‘연대생’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아 한다. 그 순간, A는 생각한다. 나만 불편한가?
여기 한 명의 새내기 B가 있다. B는 기적적으로 연세대학교에 붙었다. 대학 합격 결과를 보고 B는 인스타 스토리에 자랑스럽게 합격증명서를 업로드했다. 입학하자마자 선배들과 함께 응원가를 배웠지만 왜 고대와 서로 비난하고 비하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몰랐다. 카페 알바를 구했다고 했을 때는 연대생이면 과외하면 되지 왜 그런 ‘노가다’를 하냐며 다들 의아해했다. 연대생이면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는 걸까? 아카라카 축제를 즐기다가도, 미래캠에 아카라카 표를 왜 주냐는 동기의 말을 들었을 때 쉽게 동조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에 자유와 진리를 외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지만 B는 청소 노동자의 식대 인상을 요구하는 현수막에 더 눈길이 갔다. 대학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달성했다는 포스터보단 총학의 탈정치화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더 읽고 싶었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학자로 학교 밖에서는 비판의 대상이었던 유발 하라리의 강연을 듣겠다며 연세대가 들떠 올랐던 어느 날, B는 생각한다. 나만 불편한가?
C는 대학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내신을 따기 쉬운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노력에 비해 높은 성과에 대학을 보는 눈이 높아졌다. 그렇게 적당한 상향 곡선과, 나름대로 챙긴 생기부까지. 결국 3년의 시간은 연세대학교 합격이라는 결과로 남았다. C는 이 대학이 좋았다. 외모도 성격도 썩 잘나지 않은 판에, ‘연세’ 라는 이름은 C의 자존감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어디를 간대도 대학교를 들으면 감탄과 선망의 눈길이 따라왔다. 이 시선은 C로 하여금 확신을 주었다. 그 확신을 기반으로 자신의 영역과 경력을 늘렸다. 그러나 학년이 오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 이 대학의 이름이 없으면 난 어떤 사람일까? 대학의 이름이 한 사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대학을 다니든 혹은 다니지 않든 배울 것은 차고 넘쳤다. 그렇다면 단지 연세대라는 이름 하나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가? 그 순간, C는 생각한다. 나만 불편한가?
A, B, 그리고 C는 연세지의 ‘불편한’ 새내기 세 명이다. 두보는 송도 새내기이고, 정원과 동심은 신촌 새내기이다. 새내기 세 명이 보고 느꼈던 연세대는 어떨까? 우리는 무엇이 불편했을까? 우리는 각자가 새내기로서 기대했던 대학 공간의 모습과, 또 실제로 본 대학은 어떻게 달랐는지 여러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 대학 공간
동심 각자 대학 공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학이 어때야 한다.
두보 일반적인 생각이랑 좀 다른데, 대학은 고등학교보다 더 넓은 공간이어야 자신의 기준이 있었음. 인종이든 무엇이든 다양성을 충분히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공간.
동심 대학은 훨씬 넓은 공간.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기대. 막상 와서 보니 대학 공간은 사람끼리 혐오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두보 고등학교 땐 다들 배경이 비슷한데, 그게 목소리를 내는 제약이 되었다고 생각. 대학은 그거에 비해서 내 목소리를 낼 때 훨씬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음. 무언가가 날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심 사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이 올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다. 서울 출신만 해도 너무 많다. 우리 과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 온 애들일 정도로. 서울 애들, 그것도 절반 이상이 9-10분위[1]인 학생들 사이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된다.
정원 뭐든 할 수 있는 공간.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큰 책임 없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공간. 특별하고 소중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그 정도로 생각하지 않더라. 취직의 관문?
동심 취업을 위한 학원처럼 된 것 같긴 하다.
정원 대외 활동 하고 인턴하고.
동심 그리고 학생들이 뭐 하나 말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보일까 봐 엄청 걱정하고.
두보 정치적인 대화를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는 걸 오고 나서야 알았다. 계엄 때도 스토리 하나하나 조심해서 올린다. 모두들 정치적 얘기를 기피한다. 생각했던 대학의 모습과 크게 달랐다.
동심 오히려 고등학생 때랑 반대. 고등학생 때는 정치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여기 와서 정치적인 얘기를 꺼내면 다들 ‘어? 위험한 얘기를 하네?’하는 반응. 다른 과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자기들끼리 헛기침하고 눈빛 교환하고 하는 것들이 있더라. 대학이라는 공간이 내 이야기를 맘대로 하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건가 싶었다.
두보 개인적으로 굳어진 엘리트 집단의 특성처럼 느껴진다. 숨겨야 하는 얘기처럼 취급. 능력주의적 가치들은 표준이 되고, 거기에 어긋나는 얘긴 전부 정치적인 얘기로 취급하면서 말 꺼내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
정원 탈정치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정치라는 건 반대의 성향을 보인 사람도 포함하는 것이고, 이제 우리가 진보적인 얘기를 하면 당연히 반론이 따라올 텐데. 가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류로 올라갈 바에야 차라리 탈정치가 낫다는 생각도 해본 적 있다.
동심 난 나와 다른 의견을 (주류로) 듣는 것이 낫다. 내가 의견 한마디 했다고 못할 말한 것처럼 분위기가 변해버린 게 너무 안타깝다. 예전에 팀플하면서 트럼프가 혐오 발언한다고 말했더니 다들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이 정도의 말도 못 할 정도로 탈정치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싶고… 대학 공간이라는 게 이렇게 변하는 게 아쉽고.
# 입결
동심 수시/정시? 정시로 오면 몇 등급 이런 거 기본적으로 물어보는 거. 수시면 내신 몇이냐고 물어보고.
정원 입결이 중요한 이유는 숫자로 나오기 때문. 수능이 몇 개 틀리면 오고, 몇 개 틀리면 못 오고. 고등학교 입시 준비할 때 되게 많이 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동심 새내기 때는 그런 얘기하면서 더 친해지는 듯. 고등학교 삼 년 내내 그런 얘기만 해서.
두보 대학에 오면 어차피 다 입시가 끝났으니 (성적 얘기를) 안 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고등학교 내신, 출신 고등학교, 등급, 이런 것들로 잘 본 애들은 자기들끼리 칭찬해 주고. 은근히 구분 짓는 느낌이 아직도 이어지는구나 싶어서 이상했다. 에브리타임에서도 문과대나 국제대가 이과대 같은 다른 단과대보다 공부를 안 했다고 얘기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연세대생의 자격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정원 구별 짓기를 계속하려는 것 같다. 연세대라는 거대한 단위로도 입결이 낮은 대학과 구별되는데, 단과대별로 또 나누고, 단과대 안에선 정시 수시로 나누고. 구별 지어서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보 구별 지어서 우월함을 증명한다는 게 와닿는다. 고등학교 때는 내신이 나오니까 한눈에 누가 잘하는지 구별된다. 근데 이제 잘하는 애들이 모인 거니까 그걸 대학에서도 계속 증명하려고 나누는 느낌? 하던 걸 하는 것.
동심 아직도 오르비[2]에 사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한다. 1학년 끝나고부터는 많이 없는데, 그래도 몇 명 있다.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사실 수능 잘 봐서 온 좋은 대학인데 자랑하고 싶을 수 있다. 나도 뿌듯하긴 했는데… 그걸 기준으로 또 나누기 시작하니까. 다시 구별 짓기를 시작하게 된다. 단과대를 가지고 공부 안 해서 거기에 갔냐 이런 식. 같은 학교인데도 계급을 나누려고 하는 느낌?
정원 웃긴 건 이렇게 계급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 자신의 우월함을 가지고 그러는 것 같아서 더 해답이 없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설득이 안 된다?
동심 밖에서 연대생으로 구별 짓기 하다가 그게 학내로 번진다. 이게 학교 밖을 구분 짓는 행동이 학교 안까지 온 것 같다. 아까 학교 밖에서도 얘기하면, 다른 학교랑 엄청 구별 지으려는 게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응원 문화도 있는 것이고, 과잠을 사랑하는 것도 있고. 사실 큰 단위로 보면 우리 다 대학생이고 청년이고, 우리 다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연대 사람들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실제로 연세대학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 응원 문화
동심 사실 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2등 학교. 혹은 1등 사립학교를 놓고 1등이냐 2등이냐를 경쟁한다는 게 웃긴다고 생각했다. 연대와 고대의 라이벌 구조는 사실 유서 깊고 재밌는 하나의 요소. 그렇지만 서로 비하하는 영상들을 볼 때 계속 이상했다. 하지 않는 방법은 없나?
정원 방금 연고전의 역사를 찾아봤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내려온 굉장히 유서 깊은 행사. 그때나 지금이나 구별 짓기를 위해 학교가 이용한다는 것 같다.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서 두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한다.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두보 사실 입결 따지면 성균관대가 더 잘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음. 학교가 프로모션을 통해 인식을 만들어서 계속 이용. 연세대 고려대는 늘 우리나라 2, 3위를 다투는 위치에 있고 그 밑은 끊어놓는 느낌.
동심 응원 문화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응원가 부르면서 재밌게 노는 게 우리만의, 대한민국 명문대만의 문화가 된 것. 그러니까 더 기차놀이나 이런 릴스가 퍼지고, 고등학생들 더 자극받고. 문화 자체는 옛날부터 있어서 이런 거에 불편하다고 느끼면 공동체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연고전 때 걸리는 현수막들이 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친구들은 다 웃고 인스타에 올린다. 현수막이 버려지고 또 낭비되고 하는 것에 불만 갖는 내가 왜 이상한 사람이 되지?
두보 응원 문화를 불편해하면 연대생이 아닌 느낌.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대생의 표준성이 있는 것 같다. 우리만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과 분위기. 이걸 동기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다른 학교 학생들한테 말하면 배부른 소리되고.
동심 비슷하게 다른 학교 학생들이 기차놀이 보고 이거 불편하다, 시끄럽다고 하면 그거 네가 대학 못 가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한다. 실제로 다른 학교 학생들이 불편 제기하면 대학 콤플렉스가 된다. 그렇다고 학교 내 사람인 내가 불만 제기하면 못 어울리는 사람. 심지어 2월도 응원 오티를 해서 입학한 지 2주 만에 고대를 싫어해야 한다.
정원 진짜 입학하자마자 ‘고대 못생겼어’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를…
두보 응원 문화라는 게 하나의 성역처럼 취급되는 느낌. 외부인이 말을 얹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게 만들었다.
동심 교류반 얘기를 하자면, 교류반이라는 게 고려대 어떤 과와 연세대 어떤 과를 교류반으로 맺어서 뒤풀이하고 응원도 같이하고 그런다. 이게 꼭 남녀 성비를 맞춘다. 남녀가 오 대 오인 학과는 같은 과를 연결하는데, 공대나 문대는 항상 그렇게 짝이다. 뒤풀이 자리 맞출 때도 남녀 섞이게끔 앉힌다. 이게 얼마나 예전부터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유성애 중심적 사고. 그리고 이렇게 사귀는 게 바람직한 연애 모범. 연대생 고대생 사귀는 게 많이 인스타에 보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고 괜찮은 방식이지만 너무 불편하다. 이게 불편하면 연애 생각이 없는 특이한 사람으로 찍힌다.
정원 교류반이란 문화 자체도 기이하지만 실천하는 방식도 기이하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교류반의 취지를 따지면 문화적 교류도 하고 학술적 교류도 하고 그런 말을 하잖아요. 만나서 하는 건 정작 술 마시기. 그러나 사회에서 이런 게 하나의 선망으로 다가오는 게 무서웠던 것. 과외 학생들에게 교류반 얘기를 해주면 학생들은 또 좋아하고, 거기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고.
동심 뭔가 그걸 기대하고 온 연대생들도 되게 많다. 내가 연대나 고대에 가고 싶어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두보 처음에 교류반이라고 해서, 성비 맞추는 것 모를 때, 그냥 가서 노는 거니 했는데. 성비 맞추는 걸 보면서 교류반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껍데기고, 학교에서 주관하는 연애? 연대생과 고대생이 사귀는 것을 권장하며 문화로 굳어지게끔 한다고 생각한다.
동심 사실 교류반끼리 하는 일일호프도 그 일환.
# 과잠
정원 할 말이 많음. 아까 말했던 고대남 밈. 사실 과잠이란 건 여러 학교에 많다. 모두가 과잠을 입는데 내 개인적 경험으로, 고대생 친구가 과잠 입고 오면 고랄[3]한다, 이런 얘기를 친구끼리 많이 한다. 과잠을 입으면 ‘고대남’처럼 보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 과잠이란 게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도라면 왜 연대생 나랑 고대생 친구한테만 뭐라고 하는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
동심 사실 과잠 입는 사람 많다. 연고대 과잠만 밈화 된 건 해외여행 가서 연고대 과잠 입는 사람이 엄청 화제 되기도 했었고, 연대 고대만의 어떤 특권화된 문화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여주려고 입었나?’가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보여주려고 입는 사람도 많고. 제 친구도 연대생이 아닌데, 알바 면접을 보는데 연대 과잠을 입는다고 욕했다.
정원 과잠을 자주 입으시나요?
동심 저는 팔았어요.
두보 송도 안에서만 입는다. 본가 올 땐 안 입는다. 과시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사람 많은 데서 과잠 입으면 좀 그렇고.
정원 유달리 연고대가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건 두 학교가 엘리트 의식으로 이런 문화를 만들었다는 게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동심 아까 말한 응원 문화와 연관되어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라는 인식이 있어서.
정원 양심고백 하자면 1학년 때 과잠 열심히 입었다. (동심: 당연히 입어도 됨. 전 남색이 안 어울려서 팔았다.)송도 갈 때 과잠 입고… 본가 올 때. 1학년 때 서울 바깥 열심히 입었는데 그때 정말 열심히 입었다. 솔직히 자랑하려는 의도 없지 않았다.
동심 자랑하려고 입을 수도 있고, 사실 대학생이면 과잠인데. 왜 연고대생이 과잠을 입는 게 이렇게까지 밈화되었는가.
두보 휘문고, 단대부고 등 입결이 높은 고등학교면 전부 과잠이 만들어져 있다. 엘리트적인 마음? 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입는 게 고등학교 때와 겹친다.
# 인스타와 미디어
정원 연고티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고등학생들의 선망인 동시에 어떻게 대학에 저런 게 있나 싶기도 하고. 대학 생활 이야기하는 영상도 많고 고등학교 땐 너무 멋있었다. 연고티비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대학 와서 보니깐 흔한 입시 유튜버랑은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연세대와 고려대를 묶어서 연고티비란 이름을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다르게 다가옴.
동심 연고티비를 안 봤는데 중고등학생 때 다들 많이 봤던 것 같다. 연대 와서도 연고티비나 그런 연대생이라 지원할 수 있는 것들 있다. 주변 보면 연고티비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고등학교 때 있었던 선망에서 비롯되어서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원 인스타 설명? 바이오 창에 대학 박아두는 친구들 있다.
동심 이해가 감. 나도 옛날에 했었다. 어느 순간 인스타 친구들도 별로 없고 나 연대생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싶어서 내렸다. 근데 이것도 연고티비와 비슷하게 로망이다. 인스타에 연대도 꼭 적어놓고 아카라카 간 사진도 올리고, 합격증 꼭 올리고. (정원: 나도 올렸다.)인스타 같은 데에 기차놀이나 연고전 영상도 엄청 올라온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생들보다 더 좋아하는 듯.
두보 개인적으로 충격받았던 게 SBS 드라마 치얼업. 고등학교 때는 주변 애들이 좋아했는데, 그걸 지금 와서 클립을 보니까 기이하다고 해야 하나. 그게 제가 알기로는 연고전 응원단 속 교류하면서 연애도 하고 그러는 대학 생활 얘기. 그게 미디어에서 사용하는 소재라는 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대학이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미디어에서는 어떤 ‘엘리트적 정상성’을 가정하고 강화하고 있어서. ‘무릇 연대생(고대생)이라면 서로 급 맞는 이성과 연애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규범적인 생각이 드라마의 전개를 이끄는 동력이라는 게 너무 이상했다. 사실 정상성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끝도 없고, 대학은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인 만큼 그런 정상성과는 거리가 멀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대학과 사회는 나에게 어떤 이성애적, 가부장적 정상성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정원 이렇게까지 연고대를 성역화하는 이유?
동심 학교의 이미지가 올라간다. 광고하는 것처럼.
두보 생각해 보면 다른 학교는 많이 안 한다. 왜 우리 학교만?
# 신촌캠과 미래캠
동심 늘 생각하는 건데 신촌캠 사람들은 미래캠에 관심이 너무 많다. 인스타 같은 곳에서도 미래캠 사람들이 나 연세대 다닌다고만 해도 욕하는 게 신촌캠 사람들. 같은 연세대 사람이지만 신촌캠 사람들은 미래캠을 아예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 원세대[4]라고 부르고. 솔직히 아카라카나 합동 응원전에 미래캠에 좌석 주는 걸로 뭐라하는 사람들 많다. 왜 안 되는 거지? 같은 연세이지 않나. 그리고 미래캠에서 학적 변경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걸 막겠다는 게 총학의 공약이었고. 이건 차별을 막는 게 아니라 차별을 재생산해내는 행위이다. 또 작년에 고려대 세종캠에서 ‘우리는 입장객입니까’라고 입장문을 냈다. 서울캠퍼스 측에서 세종캠퍼스를 다른 학교 사람인 것처럼 얘기했다. 실제로 좌석 배정에서도 세종캠은 서울캠에 비해 정말 적은 좌석을 배정받는다. 연세대학교도 큰 차이 없다. 이것도 또 입결 때문에 같은 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정원 수업에서 학적 변경 한 분이 있었다. 듣자마자 들었던 생각이 ‘어? 이게 밝혀져도 괜찮을까?’였다. 다들 미래캠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안 좋으니까.
두보 주제를 나눠 놓긴 했지만 다 같은 얘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신촌캠 사람들이 미래캠 사람들을 미워하는 이유도 여긴 우리 공간인데 왜 너희가 들어오냐고 하는 거고. 또 똑같은 급 나누기 하는 거다.
동심 신촌캠 사람들이 가장 화내는 게 미래캠 사람들이 미래캠에서 왔다고 말을 안 하는 것. 신촌캠 흉내를 낸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실 연세대뿐 아니라 다른 학교도 심한 것 같긴 하지만, 특히 연대와 고대가 심한 게 입결에서 나오는 격차가 크니까.
정원 과외 학생에게도 얘기하는데, 분교 갈 바에는 비슷한 다른 수준의 사립대학교에 가라고 해요. 너무 차별이 심하니까.
두보 미래캠 사람들 목소리가 여기까지 안 왔다. 침묵당하는 느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한 쪽(특히 신촌캠)의 일방적인 통보처럼 보인다.
# 수다를 마치며
동심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새내기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하고 겉도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를 완전히 싫어하냐. 그건 아님. 연세대 붙은 게 너무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만 내가 이 공동체에 제대로 소속되어있지 못한다는 느낌, 나만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내가 비슷한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붙었는데 뭐 그렇게 불만이 많고 비관적이냐고 한다.
두보 나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게, 주변 동기들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게 보인다. 그들은 학내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그런 문화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나만 예민하고 하나하나 짚는 건가? 내가 이들과 어울리려면 더 무뎌져야 할까? 지금도 그렇고, 이런 학내 문화에 있어 섞이는 데 일종의 어려움이었다. 연고전이나 합응할 때도 그렇고, 동기들하고 있을 때도 그렇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이 동화되지 못하는 것 같다. 부유하고, 동떨어진 느낌.
정원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도, 결국 연세대란 이름 아래에서 얻게 되는 특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얘기했던 학내 문화들이 이 편익을 얻을 때 일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학교가 계속해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니까 우리가 더 편하게 있었던 것.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느낄 때 내가 과연 이런 편익을 생각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을까? 하고 되게 고민이 좀 많이 된다.
두보 이 얘기를 꺼내는데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학교에서 준 편익을 내가 스스로 못 누린 기분.
동심 편익이라고 하면 어떤 것? 나 같은 경우는 연세대 나와서 좋은 자리 취업하고 명문대 타이틀 얻는데, 이렇게 혼자 불만 얘기하는 것이 ‘고상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두보 내가 연세대 학생으로서 얻는 사회적인 가치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구체적인 예시로는 과외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나, 어디 가서 연대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나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는 것이나… 근데 한편으로는 이게 내가 ‘엘리트’임을 의식해서 나오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게 어떤 계급주의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냐는 우려도 들어서 한편으론 죄책감도 들고…
동심 맞다. 내가 연대생이라서 최저 시급 대신 높은 시급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엘리트’를 비판할 자격이 있나 싶다. 아무래도 오히려 학교에서 준 편익을 못 누렸다기보다는 너무 누리고 있어서 드는 불편한 감정이겠다. 그래서 더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것도 있다.
정원 마음먹으면 ‘엘리트’처럼 살 수 있는데. 내가 기준에 못 맞춘 느낌.
동심 근데 학내에 있어서 오히려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실제로 느끼고 본 것들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마음 맞는 사람끼리 수다 떠니까 좋다.
1부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왜’ 불편했을까? 우리는 이 ‘불편함’을 깊고 넓게 확장해 보기 시작했다. 1부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학내 문화들은 계속해서 명문대학교인 ‘연세’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대학을 다녔음에도, 우리가 본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 내 여러 정치적 의제에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모습은 명문대학교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마 그래서 더 보여주기 식 학내 문화가 불편하고 부끄러웠던 건 아니었을까. ‘비상하라 연세여’ 현수막이 휘날리는 백양로를 지나며, 각자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연세’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 동심
학교에 혐오가 만연하다. 혹은 그렇게 보인다. 혐오는 ‘연세’란 이름을 타고 더욱 빠르게 번진다. 2022년 5월, 연세대학교 재학생 세 명이 교내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했다.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의 소음 때문에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유였다. 이는 명백한 노조, 노동자에 대한 혐오였다. 모든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이 세 명의 연대생을 비난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연대생이!’ 식의 비슷한 말들을 하며 명문대의 이름값을 못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탄핵 선고를 앞두었던 때가 떠오른다. 교내에서 진행되었던 연대생들의 탄핵 반대 기자회견은 많은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들은 대표적인 탄핵 반대 ‘네임드’가 되어 ‘연세대’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수많은 혐오 발언들을 남발했고, 여전히 남발하고 있다.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선 더 심각하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수많은 약자를 향한 무분별한 혐오는 학교 이름과 함께 캡처되어 ‘연평(연세대 평균)’으로 인터넷에 떠돈다. 실제 연세대 학생인지 아닌지, 혹은 그 글을 작성하는 이들이 다수인지 소수인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이렇듯 일부의 극단적인 목소리는 명문대라는 그 ‘이름값’과 합쳐져 자극적인 소재가 되며, 마치 전체의 목소리인 양 퍼져버린다.
왜 연세대학교에는 혐오가 만연해 ‘보이는’ 걸까? 물론 ‘명문’대학교라는 그 지위 때문에 더 빠르게 화제가 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일단 그 명문대학교부터가 다양한 의견을 외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해서란 생각이 든다.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교류하기 위한 대학 수업은 그저 학점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수업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마치 금기로 여겨진다. 어쩌면 수업뿐 아니라 학교 내 어디에서도 말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극단적인 혐오 발언들은 아무렇게나 배설된다. 학교 내 여기저기 붙어있는 찰리 커크[5]를 추모하는 포스터처럼 말이다. 수많은 혐오 사이에서 다시 우리는 자유롭게 의견을 내지 못하고 비판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는다. 에타에서 기후 위기와 팔레스타인 해방, 페미니즘을 외칠 수 있을까? 순식간에 피씨충, 빨갱이, 꼴페미가 되어 내 신상을 추측할 뿐이다. 조용해진 대학 속에서, 오직 혐오의 목소리만 크게 공명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취업을 위한 관문에 그치는 대학이 아닌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학 공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진정으로 연세대학교가 ‘자유’와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
# 두보
작년 5월, 교내에선 연세대학교의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해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연세대학교가 가자 지구에서 강행되는 집단학살에 간접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연세대학교는 지난 2019년, 이스라엘의 대통령 레우벤 리블린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가 하면 텔아비브 대학과의 학술 교류 협정 또한 체결했다. 여기서 텔아비브 대학은 이스라엘의 방산 기업 엘빗(Elbit Systems)과 함께 가자 지구의 민간인 공격에 쓰인 기술을 개발한 대학으로, 가자 지구의 민간인 학살에 학문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학생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 측은 이러한 목소리들에 귀를 귀울이지 않는 듯싶다. 오히려 윤동섭 총장은 올해 초 이스라엘 대사 라파엘 하르파즈와 접견하며 ‘많은 이스라엘 대학과의 국제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라고 언급하면서, 이스라엘과의 학술적 교류를 이어 나갈 것을 예고했다. 텔아비브 대학과의 협력사업 또한 진행되고 있는 지금, 연세대학교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간접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의문은 ‘우리는 과연 연세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까?’였다. 우리는 매번 ‘연세’의 이름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연세’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남에게 부끄러울 일들에 가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는 왜 ‘연세’의 이름을 강조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면서, 자랑하면서, 왜 이런 주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가? 내가 이곳에 입학하고 나와 내 동기들이 연고전과 기차놀이, 학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동안 왜 우리 대학의 학살 행위 가담에 대한 얘기는 나누지 않는가? 그 누구도 숨기지 않은 얘기다. 인터넷에는 윤동섭 총장이 이스라엘 대사와 접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적은 기사가 버젓이 나와 있는데도, 우리 학교가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인지, 왜 우리 학교 안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열리는 것인지를 아는 학생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편으론 과거의 무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연대생’인데도 왜 이런 이야기들을 몰랐을까? 우리 안의 이야기조차 모르는 우리가 진실로 ‘연대생’일까? 만약 연고전, 아카라카나 과잠 같은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연대생’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 정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당시, 전국 각지 대학들에서는 시국선언과 학생총회가 잇따랐다. 연세대학교 역시도 12월 12일 학생 총회를 열어 퇴진 요구를 가결했다. 이는 연세대학교에서 18년 만에 일어난 학생 총회였고, 약 2,7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총회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역설적으로 ‘신기하다’에 가까웠다. 조금만 정치적인 발언을 해도 자제 당하는 탈정치 시기의 학교에 다니는 우리가 이렇게 정치적인 행사에 참여하다니. 그리고 이렇게 정치적인 발언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니. 학생 총회의 정당성과 그 의미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분명 민주적 절차를 이행했고,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드러낸 총회였다. 그러나 사회의 흐름에 쫓겨 정의로운 발언을 위해 애써 노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비단 연세대학교뿐 아니라 당시 학생총회를 진행했던 많은 대학들에게 받은 공동의 이질감이었다. 부정의에 맞선 학생들의 결집은 정당했고, 총회의 함의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이벤트성 정치 참여’와 다를 게 무엇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게 일상이 된 학생회가 우리 이렇게 행동했어요, 하고 사회에 보여주기 위해 애써 노력한 느낌이었다. 국가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부정의 앞에서 그들은 잠시 '정치적 행동가'의 가면을 썼다. 총회의 본질이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아닌, 비상시에만 작동하는 '사회 전시용 이벤트'로 변질된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상사태에만 호출되는 일회성 '이벤트 정치'가 아닌, 일상의 무관심 영역을 변화시키는 정치화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당장 학업과 스펙 쌓기에도 바쁜데, 굳이 정치 얘기를 하며 서로를 검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졸업하면 나와 큰 상관도 없어질 곳, 굳이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두가 탈정치의 허상 속에서 숨을 죽이는 사이, 대학 사회, 심지어 우리마저도 현재에 입을 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사실 연세의 현실이 부끄럽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단순히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비판하는 범위에서 정치가 멈춰서는 안 된다. 정치화는 곧 무관심의 공간을 논의 가능한 현장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정치화를 위해, 혹은 정치화된 학교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가?
우리는 0부와 1부에서 연세대의 ‘보여주기’ 식 학내 문화들을, 또 2부에서는 그와 비교되는 학내의 혐오와 무관심의 모습들을 이야기했다. 과잠을 입고, 기차놀이를 하며 응원하고, 또 아카라카를 즐기지만 정작 학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는 무관심했다. 마치 학교가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만 남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상상한 대학은 이게 아니었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는 공론장이자 서로 연대하고 지지를 보이는 공동체일 줄만 알았다. 그러나 마치 형식만을 위했던 지난 학생총회처럼, 그 ‘공론장’ 역시 하나의 껍데기로만 남아버렸다. 그렇게 탈정치는 우리 대학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대학은 이제 하나의 취업 관문이 되었다. 백양로 곳곳에 붙어있는 대학 순위와 취업 축하 현수막은 마치 입시 학원에서 보던 광경들이 떠오르게 한다. ‘우리 학원에서는 로스쿨 이만큼 보냈어요.’ ‘우리 학원 출신 학생들이 대기업에 취업했어요.’ 등등. 학생들조차도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곤 한다. 대학이란 ‘연세대학교’가 써진 졸업장을 쟁취하기 위한 공간이지 공론장이니 공동체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은 그저 배부른 소리로만 들릴지 모른다. 어차피 몇 년만 있으면 ‘사회’로 나가는데, 그 몇 년 동안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고 학점을 챙기면서 정신없게 보내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대학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걸까? 형식주의만 남아버린 대학 사회를 마주하는 것이 슬픈 건 우리뿐일까?
현재의 대학은 개인과 단체 간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복합체보다는, 파편화된 개개인의 느슨한 집합에 불과해 보인다. 따라서 파편화된 대학 속 개인은, 수업 빠짐없이 듣고, 학점 잘 챙기고, 교우관계 원만히 하면 그만인 ‘나의 바운더리’ 속에 있는 일만 신경 쓰면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내 정치가 학생들에게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절차다. 학내 청소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고, 시위자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건 ‘나의 세계’ 속에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나의 세계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어느새 나와는 관련 없는 학교의 수많은 NPC[6]들 중 하나, 즉 타자가 된다. 사실 청소 노동자들이 시위하는 이유도,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전부 연세대 안에 존재하는데도. 연세대 학생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연세대 학생이 아닌 학생들은, 어느샌가 대학 안에서 일어나는 일 중 어느 부분 이상은 나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치를 배제하는 과정을 밟았다. 우리는 이제 예민한 문제에 말을 얹고 싶지 않아졌다. 어차피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발판의 대학. 굳이 의제에 목소리를 내고 공론장으로 뛰어들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가장 정치적인 사건이라 생각했던 학생총회도,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포럼도, 그 수많은 현장에서 우리가 정말 진솔한 목소리를 꺼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일상에서 정치 의제가 그저 예민한 문제로만 취급받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의견을 나눌 시간에 스펙을 하나 더 쌓고 학점을 올리는 게 내 미래에는 분명한 이득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내 것이 아닌 목소리도 일단 남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렇게 끝없이 말을 줄이는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한 결과는 명확하다. 목소리를 내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환경. 어떻게든 자신이 정치와 상관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 우리의 대학은 이제 ‘결백’하지 않으면 검열당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연세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원하던 이상적인 대학 공간, 그러니까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연대하며 지지하는 그런 공동체가 될 수 있긴 한 걸까? 우리는 ‘난 정치에 관심 없어’,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 ‘난 정치 잘 몰라.’ 이런 말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는 ‘정치’를 단순히 제도권 내의 정치로 축소해 버린 오류에서 비롯된다. 대학에서 이제 ‘정치’는 마치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혹은 비판하는 것만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사람이 두 명만 모여도 정치라는 말이 있다. 대학은 애초에 공동체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모두 정치적인 속성을 불가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다 보면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것만 같다. 어려운 뉴스뿐이 아니라 등록금도, 총학생회 선거도, 하물며 수업 때 대충하고 끝내는 토론마저도, 우리가 대학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다 본질적으로 공동체 내의 ‘정치’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우린 누구보다도 연세대학교를 아낀다. 그래서 더욱 연세대학교가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남질 않길 바란다. 입학하면서 기대했던 다채로운 의견을 주고받는 정치 공간으로 변화되길, 학교 안 혐오와 연대, 그리고 다양한 정치적 제재를 인식하고, 그에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가 되길 끊임없이 기대한다. 우리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또 그 일들을 끊임없이 언급하며 베일에 가려졌던 연세대의 정치성을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 있길 원한다. 지금 당장 여러 시위에 나가고 격렬한 투쟁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연고전과 아카라카를 즐기기 전에 신촌캠과 미래캠의 표가 정당하게 배분되었을지 논의해 보자. 백양로의 현수막이 자유와 진리를 외칠 때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어떤 말을 외치고 있는지 들어보자. 연세대학교가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가담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이 대학 공간이 다분히 정치적임을 기억하자. 연세대학교가 정치적인 공간임을 인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연세대에서 ‘살아’ 갈 수 있을 테니까.
[1] 김다영, “[단독] 성적은 소득순?…5년간 SKY 신입생 고소득층 늘었다”, 2023년 03월 16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7561. 기사에 따르면 상위권 대학의 신입생 중 고소득층 가정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이지만, 저소득층 학생이 먼저 국장을 신청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사된 국가장학금 신청자보다 더 많은 고소득층이 배경 학생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상위권 수험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입시 커뮤니티. 주로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학벌 논쟁에 열을 올린다.
[3] 고대 와 ‘지랄한다’라는 비속어의 합성어.
[4] 연세대학교 원주 미래캠퍼스를 줄여 부르는 말. 주로 비하의 의미로 쓰인다.
[5] 2025년 9월 10일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의 정치 평론가이다. 정치단체 ‘터닝 포인트 USA’를 설립해 이끌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MAGA 공화당 진영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사상은 인종차별 주의, 반동성애, 반트랜스젠더, 낙태 반대, 총기 규제 반대 등 극우적 성격을 가진다.
[6] Non-Player Character(NPC):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로, 영화의 엑스트라 배우처럼 게임의 배경 역할을 하거나 플레이어가 게임 내 수행해야 할 과제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