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내 이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세편집위원회 Jun 21. 2019

<120호> 학생사회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수습 편집위원 이해일



 지난 4월 제54대 총학생회 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는 계속해서 선거가 무산되었던 3년의 시간을 딛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Catch>와 <Flow> 두 선거운동본부의 경선으로 진행됐다. 치열한 유세 접전 끝에 <Flow>가 승리하면서 3년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많은 학생이 드디어 학생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할 기구를 되찾게 된 것을 기뻐했지만 실망감과 우려도 제기되었다. 바로 갈수록 저조한 학생회에 대한 관심과 선거를 자극적인 가십거리로만 소비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학생사회에 신경 끈 학생 그리고 사회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53.05%였다. 언뜻 보기에 가장 최근의 경선인 2017년 11월 선거의 50.01%, 그리고 2015년 11월 선거의 50.02%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는 투표율이다.        

                  

[표1] 역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및 무산 사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투표율을 보고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걱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물론 투표율이 낮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학생들이 학내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현이기 때문이다. 20%대 투표율을 보인 <다-함께>선본 찬반 투표와 30%대의 투표율이 나왔던 <팔레트>선본 찬반 투표의 경우를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찬반 투표의 경우 투표율을 넘기면 일반적으로 당선이 된다는 인식에 따라 해당 선본의 준비 부족이나 도덕성 논란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보이콧을 선택하기도 한 학생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양 선본의 준비는 매우 양호했다. 그 근거로 역대 선본들의 주의, 경고 기록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표2] 역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 징계조치 내용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판에서는 ‘원래 선거는 2 경고부터 시작이다’라는 농담도 있었다. 주의와 경고는 시행세칙을 어겼을 때 받게 되는데, 주로 정책자료집의 준비가 미비하거나 후보자와 선본원들이 시행세칙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3주의=1경고. 경고가 세 개 누적되면 선본 자격이 박탈된다. <STANDBY>선본과 <CONNECT>선본이 경고누적으로 선본 자격이 박탈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Catch>는 1경고, <Flow>는 2주의로 선거를 완주했다. 물론 이에는 어떻게든 총학생회를 세워야겠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굳은 의지도 한몫했으리라고 분석된다. <CONNECT>가 경고 누적으로 선본 자격이 박탈되었을 때 중선관위원장이 격렬한 비난에 시달렸던 사실로 인한 부담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계속되는 선거 파행으로 인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양 선본 모두 양질의 정책자료집과 유세를 준비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래서인지 준비도로 인한 보이콧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게다가 양 선본의 후보자는 지난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에서 크게 이슈 되었던 인사다. 총여에 관한 의견은 둘째치더라도 일반적인 정치 성향 또한 양 극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 후보의 색깔이 워낙에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으리라고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 투표율의 증가 속도는 조금 의아했다. 사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 예상된 가장 큰 이유는 투표가 전자 투표로 진행되었다는 부분이다. 오프라인 투표구가 운영될 때에 비해 투표 과정이 크게 간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의 뚜렷한 증가가 없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사회의 적신호는 단순히 투표율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선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되었다. 한 켠에서는 싸늘한 무관심이, 다른 한 켠에서는 비상식적인 과열이 포착된 것이다. 투표가 끝나고도 주요 건물 입구에 배치되었던 정책자료집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국제캠퍼스에서 열렸던 첫 정책토론회 생방송을 시청한 시청자는 최대 21명이었다. 두 선본 모두 파란색 계열의 선본 색을 사용한 탓에 아예 두 선본의 성향이나 정책 내용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표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의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해당 커뮤니티는 선거기간 동안 한쪽 선본에 대한 뚜렷한 선호를 표시했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주요 흐름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글이나 댓글에 대해서는 격렬한 인신공격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뿐 아니라 여성인 양 선본 부 후보의 외모 비교나 ‘난 싸우는 게 재미있어서 선거 관련 글은 무조건 다 추천한다.’라는 글, 혹은 연세춘추에 실린 양측 후보자들의 얼굴에 볼펜으로 낙서를 한 인증샷 등이 게시되고, 추천을 받았다. 각 선본의 정책과 기조에 대한 고민이 없이 선거를 단순히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이렇게 학생자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신입생 OT나 새내기 배움터 등의 소위 ‘달력 사업’들이 비대위 체제 하에서도 평소처럼 운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안은 내내 괜찮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이 바로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이었다. 우리가 학생회를 정치적인 집단이 아니라 단순히 학생 복지를 위한 행정 처리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여학생회의 존재 이유와 대표 기구의 정치적인 의의 등은 전혀 고려되지 못한 채 ‘총여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라는 단순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그로 인해 총여의 존재가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학생회를 정치적인 곳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은 학생 대표 당사자들에게도 느껴졌다. 일부 중운위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판단하여 의견을 내기보다는 무조건 표결만을 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수결에 맡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태도는 민주주의 대의제하에서 대표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생 대표들조차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일은 기피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대표자들의 탓만을 하기는 어렵다. 총여 폐지의 중심이었던 에브리타임에서는 연일 폐지 투표에 반대하는 중운위원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에브리타임에서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여성, 장애인, 여대 학생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계속되었다. 지속해서 문제되어 왔던 것은 이뿐 아니다. 국제대, 비상경계열, 원주 캠퍼스 학생, 수시 합격자, 편입생과 소속변경학생 등을 끊임없이 주변화하고 집단 간 서열을 매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위 ‘떡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주제들은 시시각각 돌아가며 매번 자유게시판을 달궜지만 학생사회의 의제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이렇게 학생사회가 혼란한 상황 속에서 학교 당국은 더욱 편리하고 거침없이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이다. 강사법은 시간 강사들에게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해줌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지만 대학은 이를 핑계로 강사들을 대규모로 해고하고 수업 수를 줄였다. 이로 인해 학생의 교육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당했다. '연세대학교 강사법관련구조조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019-1학기 신촌캠퍼스 선택교양 수업은 생활/건강 영역을 제외하고 약 66%나 감소했고 글쓰기를 비롯한 중요 수업의 개수가 20% 이상씩 감소했다. 이뿐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사이 외국인 학생 등록금이 인상되었으며 일 년 동안 입학한 과가 아닌 GBED 소속으로 지내면서 훨씬 높은 등록금을 내게 되었다. 해당 내용이 정해진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당시 비대위원장은 참여하지 않았다. 각자 맡은 단과대가 따로 있고, 기조와 정책이 없는 비대위 체제 하에서는 대표자들이 전체 학생사회에 책임감을 갖고 학교와 맞서는 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학교 당국에게 계속해서 대표기구를 내지 못하는 학생사회의 압박이 압박으로 느껴질 리 없다. 


학내에 혐오가 증식하고 교육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받아도 우리는 이를 어디에다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부작용은, 이를 당연히 여기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전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로부터 해당 단과대 학생들이 대학원 준비 과정에서 학교가 제공해야 마땅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거 부당한 거 아니야?”라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다 예비 도비들이라 알아서 굴러서 해결하는 거 같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도비는「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집요정’. 다양한 농담들에서 노예라는 뜻으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나의 친구는 대학원 지망생들을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알아서 해결해보는 데에 익숙해진 것이다. 학내 정치의 오랜 부재 속에서 우리는 일상의 문제와 정치를 분리하게 됐고, 공동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다 쉽게 좌절하곤 했다.          




연세는 왜 학생사회에 관심을 껐나


연세대의 학생들이 학생사회를 외면하기 시작한 원인을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2015년 활동했던 학생회 <SYNERGY>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이하 비권) 선본이 하나씩 나와 경쟁하는 구도로 진행돼 왔다. 그래서 실제 눈에 보이는 ‘정당’이 없더라도 전대 학생회의 공과가 다음 선거에 나온 같은 계열의 선본에 대한 인식에 크게 영향을 주면서 마치 정당이 기능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지금은 이러한 ‘라인’이 거의 와해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선거판의 프레임을 지배하고 있다. 높은 준비도와 행동력을 보여준 전대 총학생회 <Solution>의 후광을 입고 당선된 <SYNERGY>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고 평가 받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SYNERGY>가 총학생회로서 학생들의 삶과 편의보다 학교 외부의 거창한 의제들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당시 백양로 공사, 수강신청 마일리지제도 시행 등 학생들의 일상에서 체감되는 굵직한 이슈가 많았지만 총학생회는 가시적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와중에 총학생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전국 대학생 공동행동’에 참여하자 “총학생회가 학내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밖으로만 나돈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던 중 다음 해 총학생회를 위한 2015년 11월 선거 과정에서 <SYNERGY>의 실무력에 대한 신뢰에도 크게 손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총학생회장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되어 선거를 진행하는데, 당시 중선관위원장이 공정성을 잃고 한쪽 선본을 밀어주려 했다는 의심이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선관위원장이 돌연 사퇴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총학생회장 자리까지 동시에 사퇴했다는 것이다. 중선관위장은 중운위에서 선출해야 하는데 중운위를 소집할 총학생회장이 사라졌고, 이런 경우 대리를 하게 되는 부총학생회장은 선거 준비를 위해 이미 사퇴해 있었다. 이로 인해 선거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SYNERGY>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 이는 나아가 ‘운동권 선본은 일은 못하고 정치에만 관심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학생회가 단순 행정 처리 기관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그것을 바라게 된 면이 있다. 정치적인 학생회를 꺼리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비권인 <Collabo>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편의에 관련된 정책에 집중하고 정치적인 스탠스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Collabo>의 행보에 많은 학생들이 열광했다. 하지만 <Collabo>를 마지막으로 연세대 학생사회는 긴 비대위 체제에 들어가게 된다.      


계속해서 총학생회를 세우지 못한 이유는 매번 출마자가 없거나, 출마를 하더라도 각종 잡음 끝에 선거가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최근 학생들이 선거를 비롯한 학내 정치 활동에 무관심해진 데에는 몇 년간 지루하게 반복되어 온 선거 파행의 탓이 크다. 결과적으로 총학생회를 세우지 못한 여섯 번의 투표는 매번 대자보전으로 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대자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매 선거마다 자극적인 이슈가 계속됐고, 이로 인해 선거철 대자보전은 고발보다는 정쟁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피로를 높였다. <다-함께>선본은 단선이었으나 중선관위와 대자보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학내 정치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17년 <팔레트>와 <STANDBY>의 선거에서부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모 단과대 비대위원장이 해당 단과대 소유의 주류를 <STANDBY>의 선본 행사에 무단으로 가지고 갔던 일을 시작으로 삐걱거리던 <STANDBY>는 결국 투표 기간에 경고 누적으로 인해 선본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미 진행된 투표에서는 오차율 이내의 득표율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팔레트>에 대한 찬반 재투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팔레트>의 국장급 단체 카톡방에서 당시 선본장을 중심으로 당시 중선관위원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고발되었다. 상대 선본에 비해 인권 방면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만큼 더 큰 실망과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 파행은 다음 해 선거에서도 벌어졌다. 두 번의 학생 총투표 이후로 ‘총여학생회 모음 퇴진 및 총여학생회 재개편 추진단’과 ‘총여학생회 폐지 위원회’를 기반으로 한 <CONNECT>선본이 유세가 시작하기도 전에 경고 3회 이상 누적으로 선본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에 대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중심으로 당시 ‘중선관위원장이 총여 폐지에 반대했기 때문에 중선관위원장의 지위를 남용하여 일부러 선본을 떨어뜨린 게 아니냐.’는 비난이 들끓었다. 혹시 모를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해당 중선관위원장의 공식적인 별칭을 만들어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한 주의 및 경고 사유가 밝혀지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주의와 경고를 받은 사안들이 정책자료집에 총 16건의 허위사실을 기재하는 등 변호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자료집을 포함해 선거 유세에 사용하는 모든 자료의 기준이 되는 서류는 제출한 ‘선거 공약 및 으뜸구호 파일’이다. 그러나 <CONNECT>는 정책자료집에서 8건, 중선관위용 포스터에서 9건의 공약명 오류를 냈으며 공약 목록에 없는 공약을 정책자료집에 수록하거나 국문판 정책자료집과 영문판 정책자료집의 기재 내용이 다르기도 했다. 또한 허위사실 기재로 인해 정책자료집에서 완전히 삭제해야 하는 공약 8개, 내용 수정 혹은 삭제가 필요한 공약이 8개였다. 그밖에 정책자료집과 등록 서류 오탈자 문제까지 합하여 총 경고 4회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학생들이 함께 학내 정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자신이 지지하던 선본이 운동권, 비운동권을 막론하고 도덕적 결함을 보이며 침몰하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CONNECT> 선본 자격 박탈 당시 SNS에 중선관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올렸던 이들은 슬그머니 글을 내리기도 했다. 확실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진실이 아닌 일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필사적이고 기계적으로 ‘중립기어’를 넣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선본을 지지했다가 해당 선본이 잘못되면 ‘ㅇㅇ사건 터진 선본을 지지했던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학내 정치가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학내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시끄러운 학생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조금 ‘유별난’ 사람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에브리타임과 세연넷은 여타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자체는 낯설지 않다. 진짜 문제는 익명 커뮤니티의 공격적이고 편향적인 성향이 다른 공론장을 통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자리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내 정치 이야기를 나눌 곳은 익명 커뮤니티밖에 없고, 익명성을 타고 더욱 자극적이고 단편적으로 변한 담론은 학생사회에 대한 피로감을 가중하면서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 싶은 학생들의 입을 막거나 이들을 떠나게 한다. 마치 레몬시장(양질의 재화나 서비스가 시장을 이탈하여 불량품만 유통되는 시장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처럼 저질의 논의만 남게 된 플랫폼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 재생산하면서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러한 익명 커뮤니티의 차별과 혐오가 오프라인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의 총투표를 통해 스스로가 다수임을 확인한 이들은 현실 공간에서도 혐오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총여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을 보이는 대자보를 구겨서 버리거나 현수막을 칼로 찢었고, 비슷한 시기 미팅 카톡방에서 여성주의 관련 프로필 사진을 게시하고 있는 여성에게 욕설을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또한 여성과 원주 캠퍼스 학생 등에 대한 혐오발언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에브리타임의 연세 트럼프 계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림1], [그림2]



동일인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철저한 익명성 속에서 고정된 닉네임은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서만 의견을 표출하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대범함을 보여줌으로써 스타로 급부상했다. 이런 현상들이 커뮤니티의 여론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학생들에게 겁을 주고, 이들을 배제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론장의 부재는 학생사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책임은 일반 학생대중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대표자에 대한 도덕기준이 높아졌다. 그동안 이를 충족하는 후보자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은 학생회에 몸담은 이들이 분명히 부끄러워해야 할 지점이다. 선거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터지지 않을 선본’을 원하게 된 것과 함께 사회 전체적으로 향상된 성인지 감수성이 학생 대표자들을 평가하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Collabo>와 <ABLE>이 맞붙었던 선거에서는 양 선본의 후보자 모두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졌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했다. 동시에 선본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선거기간에만 반짝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비록 선거에 대한 학생 대중의 관심이 자극적인 이슈에 치중되고 있는 면이 있으나, 그동안 대표자들이 대표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대표자의 역량에 대한 실망은 <CONNECT>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출마하면서 절정을 찍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야


하지만 이 문제를 연세대학교만의 문제로 분석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무거운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봄에는 서울 시내 대학 중 연세대, 한양대, 성신여대를 비롯하여 7개 대학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기층 단위인 단과대 학생회까지 합하면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학내 정치가 원동력을 잃고 있는 것은 훨씬 광범위한 현상이며 그 이유도 매우 다층적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오니 더 치열하고 필사적인 경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IMF 이후 최악의 구직난이라는 기사들이 앞다투어 쏟아지는 가운데 청년세대는 앞만 보고 달리지 않으면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는 대학생으로 하여금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일을 불필요하고 한심한 일로 보도록 강요한다. 학생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 자치활동들은 학회와 같은 소수의 활동들을 제외하고는 ‘시간 낭비’ 취급을 받게 되었다. 특히 ‘정치’는 대표적으로 취업에 방해되는 활동으로 분류된다. 나도 한때 대학에 입학한 후배들에게 “학생회는 절대 하는 거 아니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우리는 학내 정치에 관심을 끄고 싶어서가 아니라, 관심을 가지기 무서운 상황에 내몰렸다. ‘학생회 하다가 취업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학생회 선거에도 관심을 쏟을 수 없고, 당연히 역량 있는 대표자도 잘 나오지 못한다. 


게다가 오늘날 사회는 대학생을 그저 취업을 위해 대학을 잠시 경유해 가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정작 대학생의 목소리는 존중받지 못하고, 학교는 학생의 의사를 너무나 쉽게 배제한 채로 의사결정을 한다. 몇 해 전 이화여대의 어느 교수가 학생들에게 “4년 있다가 졸업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학교의 주인이냐”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당 교수의 발언에 분노했던 학생들 자신조차 이런 생각을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다. 학생들은 그저 교육의 ‘소비자’이고 이를 생산하는 교수와 학교 당국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의 결정에 순응하고, 모든 교육환경을 주어진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번 선거에서 <Catch>선본은 ‘총장직선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에 대해 에브리타임에서 ‘학생이 총장을 뽑는 게 말이 되냐’ 혹은 ‘어차피 안 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학생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한때 한창 이슈가 되었던 담론들 중에 ‘20대 개새끼론’이라는 게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 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당시 야당이었던 진보진영이 정권교체 실패의 책임을 20대에게 돌렸던 것이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져야 할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선거 날 놀러갔기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내용이다.   

   

전우용 “젊은이들 투표해야 불공평 악순환 끊겨”

장하성 “2030 세대가 투표에 참여하면 '헤븐 대한민국''”

이재명 “선거 날에 MT 가는 한심한 대학생” 

김용옥 “투표 안 하는 청년들이 '헬조선' 만들어”   

  

물론 이런 담론은 곧바로 여러 비판을 받았다. 전체투표율과 비교했을 때 20대 투표율이 전혀 낮지 않다는 점, 청년들이 투표를 하지 않아서 청년정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청년정책이 없기 때문에 청년들이 투표를 할 유인이 없다는 점 등이 비판으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20대 개새끼론’이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시내 대학들 중 상당수가 총학생회를 세우지 못했다는 뉴스의 댓글에서 많은 이들이 “민주화 운동의 선봉이었던 학생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냐.”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정치

 

사실 구조 ‘안에’ 있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거대한 측면까지 인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다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아서’, ‘싸우는 게 머리 아파서’, ‘소꿉장난 같아서’와 같은 이유들이 불안한 우리의 앞을 막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자유롭게 정치에 관심을 쏟기 위해서는 청년에게 경쟁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대학생이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생의 정치적인 역량이 커져야 한다. 어딘가에서 이 고리를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거창한 이유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라면 해결할 수 있을 많은 일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정치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작년은 우리와는 마냥 멀게 느껴졌던 문제들이 캠퍼스로 스며들어 우리 일상의 문제가 된 한 해였다.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은 우리가 들을 수업수를 줄였고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청소·경비 노동자 근로 시간 조정의 여파는 건물 출입 시간을 단축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학식, 우리가 사는 기숙사와 자취방, 또 강의실 안의 혐오발언들에 대하여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실제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전국의 대학교의 총학생회가 모여 입학금 폐지에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분명히 바꿀 수 있다. 


또한 대학생이 대학을 ‘경유해 간다’는 것은 오히려 훗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이 사회의 모든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생자치는 단순히 사건사고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의제를 제시하고 목소리를 모으는 일이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우리를 모든 사회문제와 단단하게 연결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일이 없다고 해서 국정 교과서나 스쿨미투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 중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이것들은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들이다.


학생자치가 소꿉놀이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학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라고 해서 총선이나 대선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사실 학생자치는 필연적으로 소꿉놀이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학생사회는 전체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운동권과 비권이 정당과 같은 역할을 함과 마찬가지로 단과대는 마치 실제 선거의 지역구처럼 기능한다. 각 선거운동본부들은 스스로의 성향과 이를 지지하는 학생이 많은 단과대를 고려하며 선거 전략과 일정을 짜기도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놀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워왔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학교 당국의 결정에 문제제기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또 학교 안의 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길 요구하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의 여성인권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학생사회는 소꿉놀이 주제에 너무 시끄럽고, 싸움에는 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원래 시끄러운 것이 아닌가. 학생자치란 민주주의의 소음에 익숙해지고거기에 나의 의견을 더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우리는 3년 만에 총학생회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해결의 완성이 아니라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총학생회는 이제부터 학생들에게 ‘학생회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연세대학교 학생사회는 다시금 학생자치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회복할지, 아니면 그 불씨를 영원히 꺼트릴지의 기로에 서있다. 신기하게도 이번 선거에서 두 선본은 모두 ‘함께’와 ‘변화’를 넣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함께 만드는 변화의 물결 <Flow>', 그리고 '함께하는 순간, 손에 잡히는 변화 <Catch>'였다. 비대위 체제와는 다른 ‘변화’를 체감시키지 못한다면 학생사회의 회복을 위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표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마 두 선본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를 강조한 이유는 거기에 있을 테다. 학생대중의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그 어떤 대표자도 학생자치의 불씨를 살릴 수는 없다.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에 지쳐있는지 안다. 하지만 사회가 만든 피로에 져서 우리의 목소리와 에너지를 잃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무릎을 꿇는 마음으로 부탁하고 싶다.      

제발 학생사회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이해일(dlgodlf00@gmail.com)



<참고문헌>

1. “[인턴액티브] 성희롱·혐오 만연한 대학 익명 커뮤니티, ‘광장 되찾자’ 목소리”, 매일경제, 2019.05.05

2. “총학생회장 선거 무산되거나 당선취소...사라지는 대학교 총학생회, 왜?”, 중앙일보, 2018.04.15

3. “386세대의 운동실패와 20대 개새끼론”, 오마이뉴스, 2016.04.12




YIRB 듣는 교지 사운드클라우드 들으러 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