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케찹
이 글에서 월경 현상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들 중 한 단어를 채택해 통일해서 글을 작성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특정 단어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있다고 생각했고, 해당 맥락이 없는 용어로는 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간과 사회적 인식을 염두에 둔 채 논의를 이어나갈 때에는 생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신체적 현상으로 논의를 좁히고 피 흘리는 사람 전반의 경험으로 확장해서 이야기할 때엔 월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세번째 변화
생리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은 삶의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는가에 따라 종종 모습을 바꾼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갖게 되는 개인의 변화,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한 사람이 생리에 대해 가지는 인식도 함께 맞물리며 달라진다. 중학생 무렵을 떠올려본다. 나는 생리에 더해진 성애적 이미지에 한껏 위축되어 나의 생리를 모르는 체 하던 아이였다. 자신의 질을 볼 기회도, 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 질은 저 수풀 아래 있는 이름 모를 미지의 코드와 같은 것이었고, 질을 통해 나오는 생리혈 역시 기원 모를 무엇일 따름이었다. 십대 시절 나에게 생리란 작은 상자 속에 꾸깃꾸깃 밀어 넣고 뚜껑까지 꼭 덮은 다음, 방구석 어딘가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상자 속에 들어있던 생리가 용수철 인형처럼 ‘짜잔!’하고 튀어 오르면 깜짝 놀라 누가 볼세라 며칠간 뚜껑을 부여잡고있는 식이었다. 처녀막 미신, 생리혈은 더럽다는 생각, 산부인과 방문에 관한 터부 등 생리에 관한 온갖 사회의 시선에 철저히 얽매여있었다. 생리용품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생리대만이 내 수중에 놓인 유일한 생리용품이었기 때문이다. 생리대를 버릴 때마다 나조차도 생리대를 외면한 채로,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생리대를 처리하느라 매번 숨을 헐떡이던 나였다.
성인이 되고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자연스레 스미는 빗자국처럼 나에게 젖어들었던 사회의 시선들이 실상 편견임을 알고 그 모든 시선들을 덜어내는 시간들이 있었다. 생리를 숨기게 만들고, 나조차도 나의 생리로부터 한참 멀어지게 했던 높다란 갈대숲들(처녀막미신, 더러운 생리혈, 산부인과 방문 터부)을 잘라내는 과정이 있었다. 더는 섹슈얼리티를 마주대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거나 몸을 배배꼬는 일은 하지 않게 되면서, 이전에 가졌던 생리에 대한 부끄러움을 날려버리는 시간도 있었다. 아울러 생리 N년차가 되었으니만큼 그로부터 찾아온 익숙함, 내지는 안정감도 있었다. 그 후 앞 글자 시옷을 괜스레 흐린 채 ‘...리’라고 말하는 일은 없어졌다. 20대의 나는 생리를 생리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물 셋의 여름,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20대가 된 나의 생리 라이프에는 분명 전에 없던 자신감과 어떠한 개운한 느낌이 자라나 있었다. 나는 탐폰은 쓰지 말라는 엄마에게 메롱 혀를 내밀 배포도 있었고 쉬쉬하는 사회적 터부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 낮추지 않은 채 사람들 앞에서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오는 생리에 대한 이야기는 늘 자조 섞인 한탄과 짜증이었다. 20대의 나는 생리를 생리라 하지 못하는 생리 홍길동은 아니었지만, 생리에 대해 갖는 감정은 대개 불쾌감이었으며 생리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신체 강탈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기저귀 찬 여자”, “생리대 말고 위생대라고 불러라”, “참지 그러냐”와 같이 생리를 매개 삼아 표출되는 여성 혐오에 분노하는 동시에 내 안에는 또 다른 결의 생리에 대한 혐오가 있었다. 생리는 부끄럽거나 더러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생리는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라는 생각은 삶의 어느 순간에서든 변하지 않았다. 생리가 시작될 즈음이면 짜증이 났고 팬티에 묻은 피를 볼 때면 한숨을 푹 쉬었다. 이 글은 세 번째 변화와 관련된 여정을 담은 글이다. 초경을 시작하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그 해, 생리란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라는 말 뒤에 단정적인 느낌표로 일관하던 내가 물음표를 던져보게 된 여정을 담은 글이다.
체험에서 앎으로
작년 여름방학을 나는 성교육 워크숍에 참석하며 보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참여를 권해주셨는데, 별다른 계획 없이 지내던 나는 뭐라도 하면 좋겠지 싶어 신청한 것이었다. 기대 없이 첫 수업을 들으러 간 날 깨달은 바는 내가 월경에 관해 모르는 것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 맛과 모양은 익히 접해봤기에 알고 있지만, 정작 무슨 레시피와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인지는 전혀 모르는 것과 같았다. 스스로가 월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10년간 경험으로 익숙해진 탓에 가졌던 ‘느낌’이었다. 나는 경험을 앎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교육 수업은 실기에만 열중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필기 공부를 해보는 시간과 비슷했다.
수업을 듣는 3개월 간 점액 관찰기록표라는 것을 작성했는데, 질의 건조감과 수분감의 정도를 관찰하고 점액이 나온다면 색깔과 탄성은 어떤 모습인지 기록하는 일이었다. 아울러 하루를 시작하며 나의 기분은 어떠했는지, 하루를 마칠 즈음 나의 마음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는지도 적어나갔다. 이 과정은 나의 월경 주기를 알아보기 위한 일환이었는데, 자신의 월경하는 몸과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며, 스스로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지 ‘인지’해보자는 취지에서 하게 된 활동이었다. 질의 건조감이나 분비되는 점액,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한 감정적 변화를 몸의 언어이자 하나의 신호로서 바라보며 자신이 월경 주기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고 구체적으로 자신은 자신의 월경하는 몸과 마음의 일들을 어느 정도로 느끼는 지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 딱딱할 수도 있지만 월경 주기와 호르몬의 메커니즘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더한다.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월경혈을 중심으로 월경하는 시간과 월경하지 않는 시간으로 자신의 일상을 이분화해서 바라보기 쉽지만, 이차성징 이후 몸은 생식성을 띤 주기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월경은 월경 주기라는 맥락 속에 있다. 월경 주기는 난포기, 배란기, 황체기, 월경기로 나눠볼 수 있는데, 시기별로 포궁에서의 작업을 진전시키는 호르몬이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주기의 시작은 월경혈을 눈으로 확인한 첫날을 기준으로 한다.[1] 난포기는 배란을 위해 난포를 성숙시키는 시기, 황체기는 월경하기에 앞서 자궁 내막이 증식되는 시기라 말할 수 있겠다. 주기별로 호르몬의 작용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월경하는 당사자의 정서와 몸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친다. 난포기에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상승한다. 에스트로겐은 뇌가 테스토스테론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수용체를 만들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의 상승은 테스토스테론이 몸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스트로겐은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분비를 유도하여 이 시기의 월경하는 사람은 전반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삶의 만족감도 늘어나게 된다.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보다 대담해지고 사회적으로 변한다. 활기가 생기고 외향적인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
에스트로겐이 상승하던 중, 에스트로겐의 일종인 에스트라디올이 충분한 농도를 가지면 이에 대한 반응으로 황체 형성 호르몬이 급증한다. 이러한 기전을 거쳐 배란이 되고 배란 이후 에스트로겐은 서서히 감소한다. 배란 이후 남은 난포는 황체가 된다. 황체기에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난포기와는 다른 호르몬이 주로 분비된다. 이 때 앞 시기에 분비되었던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면 뇌에서 금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2]호르몬도 카페인처럼 중독되기에 금단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는 월경하는 사람을 내면으로 몰입하게 하고 사색적인 모습으로 이끈다. 모험과 대담함, 밝은 에너지를 가져오던 난포기와 달리 황체기에는 안정과 평온, 개인적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 주로 분비되는 셈이다. 황체가 줄어들고 수정되지 않으면 프로게스테론 수치도 점진적으로 감소한다. 포궁 내벽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던 호르몬 수치가 사라지면, 내벽이 혈액으로 배출되면서 월경이 시작된다. 절대화할 수는 없지만, 월경 전 경험하게 되는 감정 기복과 우울감은 높은 수치였던 호르몬이 감소하는 등 호르몬의 금단 현상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는 생리학적으로 호르몬 수치의 급감, 변화 등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이에 피로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정리해보자면 성교육 과정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배우고 스스로 주기의 각 단계를 지나오며 각 단계별로 경험할 수 있는 컨디션, 정서적 변화, 몸의 통증드을 어떤 방식으로 감각하게 되는 지 인지해보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겐 월경 설명서가 없다
워크숍의 과정, 즉 월경하는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나의 몸과 마음이 월경 주기와 어떻게 공명하는지 짚어보는 일은 개인적인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도 큰 명쾌함을 주는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그간 월경하는 삶 안에서 무엇이 빠져있었고, 그 빈자리가 어떤 방식으로 엉킨 실타래의 첫 시작점이 되어 나의 월경하는 삶을 힘겹게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월경하는 사람은 일평생 400번 가량의 월경을 하게 되는데도 월경, 그 이면의 과정을 들여다볼 기회는 충분히 갖지 못한다. 월경하는 삶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던가, 생각해본다. 흔히 100명의 사람은 100가지의 각기 다른 월경을 한다고 한다. 각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 개인의 월경 경험이란 저마다 다를수 밖에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개별적 맥락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테지만, 월경하는 삶이 전개되는 대체적인 양상은 충분히 일반화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순서는 대략 이런 식이다. 첫 월경혈을 발견하면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그것이 월경혈임을 확인받는다. 다음 수순은 월경 용품을 건네받고 월경혈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초경의 장소, 상황, 주변 사람들은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이것만은 같다. 우리는 첫 월경을 시작하고, 월경 용품을 받고, 다시 평소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암묵적인 지시 아래 놓인다. 경우에 따라 환호받는 사람, 외면받는 사람, 환호 이후 외면 받는 사람 등 다양하겠지만 방금 일어난 초경이라는 사건에 대한 충실한 해명을 듣는 이는 드물다. 시간을 들여 자신의 월경하는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떤 영향 아래 놓이게 되는지 듣지 못한다. 그래서 월경은 늘 발생과 함께 알게 되는 과정이 된다. 머리를 꽝 부딪히고 나서야, ‘아 저기 벽이 있었구나’ 하고 아는 방식이다.
초경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두 가지 알림 사항이 적힌 빈 종이 하나만을 건네받는다. 두 가지 공지 사항 중 하나는 월경혈 수습 방법에 관한 간략한 안내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니까 하는 것”이라는 명령조의 고지이다. 이후로는 알아서 빈 종이 위에 자기만의 월경 일기를 써내려가게 된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던져진 존재, 즉 피투성의 존재처럼 월경하는 사람은 월경의 시작과 함께 세상에 내던져진다. 월경에 대한 사전 지식, 준비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월경에 대한 해명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러니까, 우리는 월경 설명서를 받아본 일이 없다. 빈 종이만 건네받았고, 여전히 빈 종이를 건네받는다. 빈 종이를 채우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나만 아는 월경 일기, 주변으로부터 듣게 되는 ‘카더라’, 억울한 사건, 당황하고 상처받았던 마음, 불편한 일상의 기록, 빨간 별표가 가득가득 쳐진 주의사항들 (절대 흐르면 안돼!와 같은.
초경이 서둘러 ‘봉합’되고 월경 이후의 일들은 홀로 ‘처리’하게 되는 동안, 월경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다만 이후 자연스럽게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으로 그 모든 일의 이름과 이유를 대신할 뿐이다. 첫 월경통을 경험했을 때 엄마에게 물었다. 생리하는 데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엄마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생리할 땐 원래 그렇다’는 것이었다. 월경 중 겪을 수 있는 이 모든 일들 - 허리가 아프고, 다리 부종이 생기고, 밑이 빠질 듯이 아프고, 기분은 달리 좋지 않고, 몸에서 열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식욕은 왕성해지는 등- 을 월경하는 사람이 “불편하게” 감각했을 때 당사자 스스로 그 불편함의 원인을 규명해보거나 개선할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의 월경 방식은 흘러간다. ‘생리할 땐 그래’라는 말은 ‘그 불편함은 어쩔 수 없어’라는 의미와 사실상 다를 바 없다. 초경 때 받았던 ‘하니까 하는 것'이라는 엄숙한 목소리의 고지처럼,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에 대해서도 ‘생리할 땐 그래'라는 고지가 붙는 것이다.
공적인 월경 담론에서는 월경하는 몸과 마음의 경험이 개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잘 조명되지 않는다. 다만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만이 전해질 따름이다. 먼저 월경한 사람으로부터는 ‘카더라’와 주관적 체험에 따른 설명 이외의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체질은 다르기 때문에 가까운 전문의와의 상담을 권하는 문장으로 끝나는 인터넷상의 정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대개 지극히 병리적 증상으로 기술된 단정적 서술들이다. 때로 우리의 일상을 보통의 상태에서 빗겨나가게 하기도 하는 월경 중 몸의 통증과 감정적 변화를 월경 당사자들은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으로 덮어버리게 되고 그 뒤편의 기제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못한다.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는지 스스로 알고 개선해 나갈 수 없기에 월경은 불편한 것이 디폴트, 당연한 것이 된다. 여기에 그 자체의 불편함과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타자화되는 것 같은 데에서 느끼는 불쾌함까지 더해진다. 월경을 할 때마다 그 모든 부정적인 경험과 인식은 눈 덩어리 커지듯 커져 월경하는 삶을 힘겹게 만든다. 결국 힘겨움의 원인을 월경 자체에 돌리게 되는데, 월경 역시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부정적인 말들을 품고 있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 된다.
삼진 제약이 출시한 생리 진통제 광고에서 생리 2년 차 중학생의 말은 작금의 월경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광고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어쩐지 배 아프고 싸하더니 뾰루지 크리야. 늦었는데 생리통은 왜 이렇게 심한 거야. 아랫배는 쥐어짜지. 배는 빵빵. 재석이는 열심히 할 텐데, 왜 나만, 아 짜증나!” 같은 제품의 다른 버전의 광고에서는 20대 회사원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음과 같다. “둘째 날이라 몸도 쑤시고 얼굴도 팅팅! 생리할 땐 하루 종일 조마조마. 복통은 시도 때도 없이 오고 식욕은 왜 이렇게 나대는 건데, 생망진창이야!” 하얀 바지를 입은 채 오늘도 상쾌하다며 외치는 대학생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월경통의 실제적 경험을 월경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담아내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한 광고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통의 경험을 최대한 반영해서 만들어진 두 사람의 대사가 위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은 월경에 있어서 자신의 월경하는 몸과 마음의 일들에서 빗겨난 채로 월경하는 것이 보편 경험이라는 것 또한 드러난다. 언제쯤 월경할지 모르고, 아랫배가 왜 쥐어짜듯이 아픈지 스스로 규명하지 않는 게 대체적인 월경 경험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무지로 인한 것이 아니다.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아무 준비 없이. 처음부터 10살 무렵의 아이에게 핸들 잡는 법만 가르쳐 준 채 도로 위로 나서게 했기 때문이다.
10살 무렵 어느 날 우리는 운전석에 태워진다. 누군가 시동을 건다. 얼떨결에 핸들 잡는 법을 배우고 사고 내면 안 된다는 무서운 으름장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출발한다. 자신이 타고 있는 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길을 나선다. 불확실함 속에서 멈춰볼 새 없이 악셀 위에 발을 얹고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인 운전자는 가끔 덜커덩 차가 고장이 나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아니면 내가 문제라고 말하거나 자신도 같은 문제가 있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도로는 험하고 가끔 차를 타지 않은 사람들이 튀어나와 손가락질하고 비난한다.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나는 이 차에 태워진 것일까 무력감에 빠진다.
중력의 법칙을 안다고 중력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오랫동안 호르몬 인간이라 자조했다. 우울함에 잠식된 채 몇날 몇일을 보내는 날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면 팬티에 묻어있는 피를 확인할 때가 있었다. 이를 몇 번 반복한 뒤로 나는 확실하게 스스로에게 호르몬 인간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도둑처럼 찾아온 광복처럼 초경 역시 예기치않게 시작되었고, 이후의 월경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월경은 불확실함 속에서 하는 일이었고, 다가오는 월경 앞에서 나는 또 침울한 사람이 되리라 예감했다. 월경은 다분히 불편한 감각을 가져오는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을 불러올 것이며 그것은 또 다시 내 일상의 발목을 잡게될 거라 여겼다. 그렇게 월경해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이 모든 과정 앞에서 ‘어찌해볼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여겼다.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뒤에는 ‘생리할 땐 그래'라는 말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월경하는 몸의 일, 월경통과 월경전증후군의 발생 맥락을 ‘이해하고 바라보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이해하고 바라보는 일 자체가, 월경과 함께 다가오는 통증과 정서적 변화를 마법처럼 사라지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통증과 마음의 기복 앞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겠다는 심리적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 큰 도약이고 변화였다. 붙잡을 수 있는 언어가 없던 시절, 월경이 수반하는 일들에 자연스레 휘감겼다. 뒤편의 기제를 알게 된 뒤로 거리를 둔 채 나의 월경하는 몸과 마음의 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는 차분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생리할 땐 그래' 라는 말을 옆으로 들어옮기고, ‘왜’ ‘어떻게' 라는 설명을 가져왔다.
월경이 시작되면 며칠간 어김없이 밑이 빠지는 느낌이 찾아온다. 이러한 통증은 일반적으로 점성이 있는 월경혈을 포궁 경부 밖으로 내보내기엔 경부의 폭이 좁기 때문에 프로스타글란딘이 분비되어 포궁 근육을 수축시키는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 근육 수축이 원활하지 못하면 혈액 순환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복통, 요통, 설사, 소화불량이 오게 된다.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통증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월경 기간 중 그와 같은 통증을 느낄 때마다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스트레칭을 찾아 틈틈이 해주어야겠다는 심리적 여유의 출발점은 되었다.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붓고 변비가 생길 때마다 이를 월경통이 심해서, 라고 치부하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가볍게 운동을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 실행에 옮긴다. 눈을 질끈 감고 예감하곤 했던 부정적 통증 뒤편의 기제를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지금, 월경 그 자체가 내 삶을 흔들리게 만드는 무엇은 아니었다.
현재 나의 월경 방식은 이렇다. 월경이 시작되면 앞으로 다시 에스트로겐 수치가 올라갈 테니 전반적으로 나의 몸 상태와 기분은 더 좋아지리라 예상한다. 며칠이 지나 계란 흰자 같은 점액이 묻어나올 땐 지금 나 자신이 배란기 즈음을 지나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서 또 다시 몇 주가 지나면 곧 월경하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정체 모를 점액, 혹은 분비물과 냉으로 생각해서 못 본척하던 것들을 현재는 몸의 지표로서 관찰하고 있다. 기분 나쁜 쎄한 직감으로 다음 월경을 때려 맞추던 시절에서 벗어나 현재 월경 주기 어디 즈음에 와있는지 몸의 일들을 살피며 다가올 월경 시기를 예감하고 있다.
괜스레 우울해지거나 자책감 같은 부정적인 사고 회로로 감정이 종종 흘러 들어갈 때면, 현재 나 자신이 황체기 말미에 와있지는 않은가 한번 생각해본다. 월경이 다가오는 시기라면 황체기에 내가 느낄 수 있는 작은 동요라고 생각하고 너무 흔들리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월경할 시기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나를 진짜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 자문해본다. 오늘의 불안을 짜증나는 날로 동여매는 것과 황체기 말미에 찾아온 동요임을 인지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월경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으레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질 테니 좀 더 열심히 운동을 하며 나의 세로토닌 수치들을 힘차게 끌어올릴테다라고 마음을 먹는다. 과거 월경이 시작되면 당연히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플 테니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며 불만스러워했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월경 방식이라 생각했다. 월경을 몸의 언어로서 바라보고, 그 몸의 언어를 들으며 일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가는 지금, 그것은 고생스러운 일이라기보다 편안함과 안정을 주는 일로 느껴진다.
아울러 성교육 워크숍에서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은 호르몬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의 제안이었다. 호르몬 분비에 따라 움직이는 신체의 내부 주기가 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자신이 호르몬의 일방적인 영향 아래 있는 사람임을 뜻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배란 이후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오르기 쉬운 시기에 있더라도, 그와 별개로 매일 자신의 일상과 스스로가 선택하는 삶의 태도가 다시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평소처럼 활기차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를 통해 평소보다 더 즐거운 마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르몬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묘사의 서술이 현재로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음을 확인해보는 시간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월경 전 증후군 증상이 나타난다고 여겨지는 시기인 월경 전 4일에서 10일 전 신체 내부에서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고, 프로게스테론의 수치가 높아진다. 도파민과 세로토닌, 엔돌핀의 흡수를 돕는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몸의 피로감이 늘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황체기에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 그 자체는 사고의 지향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고, 대인 관계나 사회활동이 주는 모험보다는 안정과 익숙한 것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호르몬이다. 우울과 불안, 대인관계 혼란과 같은 부정적 기술 대신 명상과 사색이 깊어지는 시간, 내적 사고가 활발해지는 시간, 마음이 섬세하고 예민해지는 시간, 등 보다 중립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서도 해당 시기의 변화들은 설명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월경하는 나의 몸과 마음의 일을 규명해보지 못하던 시절, 월경은 아틀라스가 짊어지던 어깨 위의 무거운 지구와 다름없었다. 내가 들고 있는 어깨 위의 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그것은 조율하고, 조정하고, 대화해볼 수 있는 것으로 변했다. 앞으로 돌려매서 살펴본 짐더미 그 자체는 대단히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불편하게 들쳐업게 만들고 스스로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조정해볼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 있었다. 지금 나에게 월경은 내 삶의 발걸음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주는, 가방 속의 작은 공 하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월경에 있어서 몸의 언어를 들으며 나의 일상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꿔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뒤로, 월경하는 삶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지금의 나에게 월경이 어떤 의미인가 묻는다면, 가임 상태임을 알려주는 공허한 표지판, 내지는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월경이 나의 일상을 흔들리게 만드는 무엇으로 ‘증폭’시켰던 것은 작금의 월경 방식이었다. ‘증식된 자궁 내막의 탈락 과정’이라는 명제 하나로 월경에 대한 설명이 대체되고, 월경하는 몸의 일들은 모두 지워진 채 ‘당연히 불편한 것’으로 만드는 월경 방식이 있었다.
나가며
은연중에 터부와 편견이 놓인 자리 위에 걸음을 맞추고 편견의 시선을 내면화하기 쉽다. 이 때 한 발자국 뒤로 자리를 옮겨 원래 서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시선을 덜어내는 시작점이 된다. 월경하는 몸의 일에 대해 그것이 자신의 몸인데도 그 동안 너무 멀어져와있지 않았는가를 생각했다. 월경 자체에 힘겨움의 원인을 돌리고, 다가오는 월경 앞에 무력함과 짜증을 느끼는 방식으로 월경하게 되어오지 않았는지, 언어가 없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언어조차 없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월경하는 몸, 몸과 마음의 일에 그간 어떤 시선에 자연스레 걸음을 맞추고 있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1]여성의 월경주기와 피임약의 작용기전, <한국의약통신>, 2016,04,08
[2]가브리엘리 리히터만, 『28days』,이수연, 두드림, 2006, 168쪽
수습편집위원 케찹(yooangie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