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향기로운 달은 둔탁한 천장 아래 뜨고

수습편집위원 찰리

by 문우편집위원회

창문도 없이 저녁이 찾아왔다

언니는 화실에 앉아 완성하지 못한 종이를 가위로 자르는 버릇을 길렀다 빳빳한 도화지 사이를 파고드는 가윗날에 미처 마르지 않은 물감이 묻어났다 지나간 저녁들이 무작위로 잘려나가 발밑에 쌓였다 시계를 보는 언니는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 듯이 몸을 움츠렸다 저녁에는 뭔가 저녁다운 일을 하고 싶어 언니는 자주 하품을 했다

자꾸만 서늘해져 가는 좁은 방에서 그림들은 벽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이젤에 걸려 넘어졌다 무너지면서 걸어가는 것들이나 쓰러지면서 일어서는 것들 언니는 붓을 닦고 반짝이는 것들을 생각했다 손가락 사이에 먹구름처럼 번진 연필 자국을 보면서 짧은 치마를 입고 비 오는 식물원에 가는 상상을 했는데

의자의 얇은 원목 기둥은 서로를 껴안은 모양새로 넘어져 있었다 화실은 부러지면서 감각하는 몸을 타고났다 우리는 저물고 나서도 흐르는 저녁이지 고장 난 시소에 앉은 것처럼 화실의 온도는 예고 없이 바뀌었다 어지럽도록 밝은 화실에 앉아 언니는 혁명 같은 걸 그렸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은 안 했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머리를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엎질러진 물감통처럼 저녁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