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호 독자모임

정리정돈 포도

by 문우편집위원회

0. 자기소개


포도 각자 어떻게 문우를 접하게 됐는지 이야기하면서 자기소개 해 주시면 됩니다. 먼저 저는 지난 호에 제 글을 집필하진 않았지만 지난 호에서도 독자 모임 진행을 맡았던 편집위원 포도입니다.

유연 저는 유연이고,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제 임기가 얼마 안 남아서 좋습니다.

비상 저는 비상입니다. 70호에 제가 쓴 글이 4개 정도 되는데, 이 자리가 소풍 같고 좋네요.

단(丹) 저는 단(丹)입니다. 문우 편집위원이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현 저는 김서현이고, 단(丹)의 친구입니다. 친구가 문우에 속해 있어서 몇 번 글을 읽긴 했는데 독자 모임에 초대받아서 온 건 처음입니다.

산도 저는 70호에 글을 썼던 산도입니다.


고요 저는 고요이고요, 2학기에 합류해서 70호에는 이름이 없는 수습 편집위원입니다.


유자 저는 유자이고, 옆에 있는 고요의 친구로 오게 되었습니다. 글 정말 잘 읽었어요.

1. 내지 구성

단(丹) 제가 집필엔 참여하지 않았지만 70호 표지 회의할 땐 같이 있었거든요. 표지 글씨의 간격을 어느 정도로 해야 멋있을지 흐림 정도는 어떻게 할지 등 사소한 것들로 오랫동안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시를 통해 어떻게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지를 오래 고민하다가, 오히려 제일 심플하게 디자인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처음엔 너무 직설적인가 싶었지만 보다 보니까 정이 들었습니다.


서현 이거 제목 정할 때 어떻게 정해진 거죠?


비상 제 기억으로는 제가 제안을 했어요. 팔복이라는 시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8번 반복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이렇게 끝나잖아요. 그래서 70호 메인 기획인 사회적 참사라는 주제랑 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떻게든 팔복을 이번 호에 활용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게 제목까지 됐어요. 제 의견이 관철되어서 기쁩니다.



2. 권두시 / 비상


서현 이 시를 읽으면서 표지와 제목과 연결 지어 생각을 해봤어요. 70호가 24년 여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맞닿은 부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2024년을 계속 슬프게만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이 아쉽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냥 슬픔의 무게에 잠기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교지를 작성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제가 외부인으로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유연 슬픔이라는 것이 이번 호에 되게 중요하게 작동하는데, 제목과 연관 지어서 권두시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무래도 산문보다는 시에서 훨씬 더 정동적으로 와닿았어요. 이 호는 우리의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구나, 슬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단(丹) 제목의 마지막에서 영원히 슬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권두시 첫 문장이 바로 ‘눈물을 흘려라’여서 제목이랑 권두시랑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시너지를 만든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희가 70호가 발간된 이후인 24년도 2학기에 기후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런 권두시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들이 다음 학기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산도 눈물이라는 게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연대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걸 이 시를 읽고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 여기서 말한 것처럼 그 눈물이 강이 되어 사회를 적시고 다같이 그 슬픔을 느끼면서 연대를 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였어요.



3. 편집장 서문 / 유연

고요 첫 번째 문장이 ‘2024년은 유독 슬픈 해입니다’로 시작하잖아요. 저는 읽자마자 ‘그렇지’ 하고 끄덕였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게 여름방학에 나온 책이더라고요. 여기 있는 문제들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한테 새로운 시련들만 끝없이 닥쳐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여름에 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도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앞으로도 꾸준히 생각해 나가야 할 거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이런 소망이 언제쯤 없어질지, 당연한 것이 되어 없어질지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자 저도 이 글을 애경 제주항공 참사 이후에 읽었는데, 처음에 읽을 때 시의성이 너무 커서 조금 힘들어하면서 읽었거든요. 고요처럼 첫 문장을 읽으면서 ‘맞아 그렇지’라고 생각해 봤는데 이 책이 여름에 나온 거예요. 그래서 이번 해가 정말 쉽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마지막 문단에 ‘이제 독자 여러분께 우리의 슬픔을 드립니다’라는 문장이 좋아서 계속 곱씹게 됐는데, 표지랑 권두시, 서문까지 쭉 이어지는 눈물과 슬픔의 모티프가 좋았어요.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서문을 다시 한번 읽었거든요. 그랬더니 글들에 애정을 가지고 쓰신 게 보여서 되게 좋았어요.


4. [메인기획] 재현과 사건 / 데어


유연 디자인이 정말 좋았어요. 다들 알아채셨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소제목이 끝말잇기처럼 연결이 됩니다. 사건과 서사, 서사와 왜곡, 왜곡과 경청, 경청과 재현, 다음에 저의 재현의 글로 넘어가는 구조라서 그 점이 좋았어요. 내지 디자인에도 소제목이 다 줄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비상 이것도 노벨 문학상 수상하시기 전인데 『소년이 온다』가 나오더라고요.


단(丹) 저는 이 글을 되게 오랫동안, 여러 번 읽었어요. 한 권의 책이나 다큐멘터리, 아니면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되짚는 모든 기록물들을 보면서, 제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부분에서 흐릿하게 느꼈던 인상에 대해 데어의 글이 ‘이건 이런 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라고 이야기를 해 주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어떤 고민이나 걱정에 대한 대답이 되어준 것 같아서 이 글이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슬픈 사건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계속 기억하는 게 나을지 빨리 다른 내일을 살아가는 게 나을지 고민을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데어의 글을 읽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기억을 통해서 재현을 하고 진술을 하는 게,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다른 맥락들을 되짚어보면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재현을 해낼 수 있겠다는 의지를 얻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서현 이 사회가 유독 참사가 많은 사회잖아요. 근데 이 연속적인 사건들을 안에서 바라보는 거시적인 요소들이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글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서사’, ‘경청’, ‘재현’ 이런 키워드를 중심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결국 이 키워드들을 관통하는 것 중 하나인 기록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개개인이 거시적인 걸 바라보는 방법, 우리가 살아가는 이 구조적인 요소가 하나로 결합이 되어있는 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단편적인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도 생각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하는 글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포도 재현에 있어서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말하는 게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말을 편집하는 과정 속에서 의도가 다 전달되지 못하거나 발화하는 사람이 그 상황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여도 객관적으로 사건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고. 저도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이 문제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그런 언어를 저희가 또다시 정리해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글을 쓴다는 게 되게 조심스러웠는데 그런 고민들을 데어 글에서 되게 잘 짚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마 세미나를 준비했던 사람들에게 그때 느꼈던 고민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글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들을 잘 정리해 준 것 같았어요.

유연 어쩔 수 없이 최근 한국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슬슬 집회에서 있었던 발언이나 깃발들을 아카이빙하고 기록하는 작업들이 시작되고 있잖아요. 그런 기록 작업 아카이빙 작업에 붙는 이야기가,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이것이 아카이빙 되어 있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진실을 왜곡하고 가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최대한 많은 것을 기록해야 된다는 말들을 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은 제가 쓴 건 아니지만 어쨌든 같이 연속기획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아카이빙 작업을 보면서 ‘그렇지, 아무래도 진실이 파묻히면 안 되니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어제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이건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것, 우리가 행동하고 말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게 중요한 거구나. 이것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의 장이기에 기록이 중요한 거구나. 데어 글에 ‘그러므로 유가족의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공론이다’라는 문장이 나오잖아요. 뭔가 문우의 일원으로서 글을 적으면서 우리의 역할은 기록함으로써 이런 의견, 사실들이 있었다는 걸 적어서 공론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현재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발언이나 깃발 등을 기록하는 것은 투쟁의 의미로서 기록되는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도 ‘위안부’ 관련한 예시를 보면서 이 재현이라는 게 ‘위안부’ 사례에도 마찬가지로 자칫 잘못하면 조금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피해자나 당사자의 고통을 도구화한다는 그런 비판이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재현이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에 이런 윤리적인 문제가 상당히 많은 거고 그래서 윤리적인 재현이라는 것은 피해자의 경험을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을 좀 상기시켜줬던 글인 것 같아요.


5. [메인기획] 피해와 사건과 글과 연대에 대한 너무 많은 생각 / 유연

포도 초반에 ‘집회 가면 연대인가?’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이 글을 썼을 때의 유연은 지금과 다른 마음이었겠지만, 저는 최근에 있었던 집회를 갔다 오고 나서 느낀 점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받는 것보다는 집회에 나가서 그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게 해소된다는 거였어요. 적어도 같은 뜻을 가진 매우 다른 사람들끼리 같은 자리에 모여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초반의 그 문장에 대해 ‘그렇지’라고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연대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현 이미 오래전에 쓰인 글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비슷한 맥락에서의 고민을 주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계속 연대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을 때 단어의 정의만으로는 절대 그 느낌을 알 수가 없겠더라고요.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이게 맞지’라고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정말 다양한 방법의 연대가 있음을 추상적으로나마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연대가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연대의 방법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이 글을 통해서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글이었어요. 똑같은 자리에 있어도 각자가 느끼는 연대는 다를 수 있거든요. ‘너무 많은 생각’부터가 출발점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유자 제가 했던 고민을 다른 누군가가 정돈된 글로 써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초반에 ‘결국에는 이 글이 어떻게 끝맺어질지를 앎에도 정리를 한다’라고 쓴 부분이 좋았어요. 저도 항상 연대라는 단어처럼 좀 거창해 보이는 개념들을 쓰면서도 저는 언제나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남의 고통을 이용해서 ‘내가 이렇게 효능감을 얻는 게 맞나?’ 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가니까. 그 고민이 좀 공감이 됐어요. 우리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반부가 좋았던 게 ‘어떻게 재현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적어주신 부분에서 그 방식이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거리를 둔다는 명목으로 그 안에 있는 스스로를 편집해 버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에 타자로서 직접 다가갈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 자체가 좋았어요. 메타적으로도 이 글에서 보이는 작가의 고민이 드러나서 좋았어요.

고요 저도 연대에 대한 고민이 되게 와닿았는데, 저는 제가 하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보다는 제 개인의 동기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내가 진짜로 연대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불행한 서사를 접한 뒤 일종의 소비를 하는 건지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글을 읽고 연대가 무엇인지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해봤어요. 그리고 ‘연대자는 투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의 언어를 사용합니다’부터가 마음이 좀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과도하게 정치적이거나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것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되게 많잖아요. 우리가 인권에 대해서 얘기하고 피해자에게 연대를 하는데 그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서 왜 싸워야 하나,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6. [메인 기획] 기억할게, 애도의 언어로 적는 삶의 편린 / 도토리


포도 70호 편집회의 할 때도 느꼈지만 저는 이 글이 정말 좋아요. 제가 최근에 주변인의 죽음을 겪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처음으로 가까운 타인의 상실을 겪고 나서 도토리의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어떤 죽음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그 애도가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부분이 갑자기 확 와닿았어요. 저도 장례식 끝날 때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 다음 날부터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감정이 훅 몰려와서 힘들었거든요. 도토리의 글은 물론 국가적인 참사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개인의 상실과 죽음을 어떻게 애도하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 주로 다른 글이잖아요. 분명 70호가 발간될 때까지만 해도 저는 개인적인 상실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상실을 겪은 후에 이 글을 다시 읽으니까 어떻게 개인의 상실을 극복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많이 됐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상실과 죽음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서 계속 슬퍼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도토리가 쓴 말과 비슷하게 그 상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가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토리의 글이 저한테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서현 저도 이 글을 읽고 관련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다가 ‘유효기간 없는 애도의 행복’이라는 그 기사를 발견하고 이 글과 이어서 생각을 해봤어요. 참사 이외에도 죽음은 누구와도 떼어놓을 수 없잖아요. 그 누구도 개인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제가 가진 모순을 공유하자면 저는 죽음이 너무 무서운데 또 그 단어에 압도돼서 죽음이 너무 무겁지만은 않으면 좋겠거든요. 나를 다 연소시키면서까지 죽음에 너무 몰두하거나 그 무게에 눌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이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서 그 무거운 마음을 좀 더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저도 좋았던 문장이 있었는데, 마지막쯤에 ‘애도는 그 행위 자체보다는 상실을 받아들이고 낙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라는 문장에서 저는 이 ‘나아가는’이라는 단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죽음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라짐과 남겨짐이라는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떠난 사람을 기억하면서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비상 죽음이라는 것은 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겪는 횟수가 많아질 거고 주변인들의 죽음이나 재난, 사회적 참사 등이 더 많아질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처음 경험하거나 경험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죽음이 예기치 않게 삶을 침범한다.’라는 문장처럼 삶을 엄청나게 침범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내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저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거나 최근에 일어난 제주항공 참사를 보기만 해도 상당히 삶이 뒤틀리고 일상이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그동안은 이런 감정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그냥 계속 겪으면서 무뎌지는 방법뿐인가 생각했었어요. 실제로도 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나름 개인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갔던 것 같아요. 근데 도토리의 글을 보면서 예전에 어떻게 애도해야 되고 어떻게 이런 시간들을 견뎌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을 때 읽으면 참 도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글들이 더 많은 사람한테 읽히고 더 많아져서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애도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7. [메인 기획] 애도와 함께 모두의 내일로 / 비상

단(丹) 저는 비상 글이 좋았던 이유가, 글에서 하우스랑 볼룸 문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비상이랑 같이 볼룸을 한번 가봤었거든요. 저는 비상이 다룬 주제가 슬프다고 느꼈었어요. 많은 소수자들을 계속 묵살하고 애도도 하지 않는 슬픈 일들에 대해 비상이 이 글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끝을 ‘함께 사랑을 하자’, ‘서로 위로하고 돌봐주자’라는 이야기로 맺는 게 저한테는 큰 인상을 줬어요. 비상과 같이 볼룸을 가서 비상이 생각하는 슬픔과 애도, 삶의 방식, 방향성을 와닿게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해 보는 대신 깊은 상상을 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비상이 하는 기쁜 상상이 어쩌면 더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거든요. 우리가 이걸 현실적인 방법으로 고민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돌보는 공동체를 키워나가는 게 정말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연 저는 글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문화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저도 단(丹)이 얘기한 것처럼 이것이 상상이라고 글에는 적혀있어도, 이것이 현실로 넓혀질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건 상상이지만 동시에 실존하는 것이잖아요. 실존하는 공간이고 실존하는 존재들, 실존하는 문화잖아요. 이런 식으로 제가 글을 읽음으로써 실존하는 존재들에 대해 알게 된 것처럼 아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면 상상과 동시에 실현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아요.


유자 이 글을 정말 잘 읽었어요. 저는 항상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가책이 있지만, 개인적 고통에서 시작된 발화는 항상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적 애도랑 개인적 애도를 나눈 부분이 좋았던 게, 바로 이전 글이 개인적으로 애도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글이잖아요. 이전 글과 이어져서 ‘그럼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의 글로 이 글이 나오는 흐름이 좋았어요. 사회적 애도 같은 경우는 응어리진 게 풀어지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죽음에는 가해자가 없잖아요. 만약 있어도 해결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데 사회적인 죽음의 경우 명백히 사회라는 가해자가 존재하는데 해결이 되지 않잖아요. 해결할 의지도 없는 사회 속에서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개인의 상황에 빗대면 자기를 가정폭력을 행하는 부모와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아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폭력에 대해 구별해 주는 부분이 좋았어요. 또 마지막에 현실의 공동체를 제시하는데, 저는 언제나 사람들이 나와 다른 타인을 포용한 사회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타인에 대한 포용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에 우리는 우리가 상상한 대로 현실을 이루어갈 수밖에 없고 믿는 것들만 현실화해가며 살아가는데 그런 현실을 깨고 어떻게 바람직한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간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준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8. [문우의 눈] 선의의 함정 / 산도

유연 저 이거 너무 재밌게 읽었었어요. 처음에 본인의 과거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근데 그거를 마지막에 다시 언급해 주면서 이야기하는 게 확 와닿아서 아름다운 개인의 성장을 보여준 것 같았어요. 저는 다문화라는 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어떻게 해야 될까’에 대해서 사실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말을 작동하게 하고, 이 말이 어떠한 함의들을 갖도록 기저에서 작동하는 제도와 인식이 문제인 거라고 짚어준 것이 좋았어요.

비상 우리 사회에 있는 소위 다문화 가정이라는 언어가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제도가 어떻게 되어있고, 지금 인식이 어떻고 등의 전체적인 내용을 집약적으로 설명을 해 준 것 같았어요. 이런 글을 정책을 만들거나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읽어보고 많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서현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 저희 학교가 글로벌 어쩌구 학교로 선정이 돼서 다문화 가정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개념에 대해서 익숙해진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 동시에 혐오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이 글의 제목이 ‘선의의 함정’이잖아요. 저는 이 말이 곧 ‘프레임의 함정’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물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걸 너무 당연하게 이미지화해서 그게 정답인 양 만드는 이 구조, 프레임이 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 과격하게 얘기를 하면 기존에 만들어진 이미지를 뺏어 와서 우리가 언어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문제는 급진적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절대 아니잖아요.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 하고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프레임 안에서 구조적인 것과 하나하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런 글들을 통해서 논의의 장이 좀 더 커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유자 이런 글은 유독 간결한 언어로 정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추상적이지 않게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주셔서 글이 잘 읽혔어요. 제가 환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환대에 대한 논의는 외국인에 대한 담론이 많잖아요. 저는 외국인에 대한 조건부적 환대가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차별이든 혐오든 조건에 따라 사람을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을 하는 것 같아요. 민족차별 같은 건 왜 전 세계가 권장하는 차별이 되는지를 항상 고민하거든요. 저는 민족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예전에 인권 관련해서 조사 하다가 국적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갖춰야 하는 인권 자체가 국적에 종속돼 버린다는 게 씁쓸하더라고요. 저는 사립초랑 학구열이 강한 중학교, 외고를 나왔는데 한 번도 다문화 가정 친구를 본 적이 없어요. 이게 우리가 속한 사회가 얼마나 분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다문화 가정, 소위 취약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는지를 일생 자체를 통해서 경험한 느낌이 들었어요.

유연 한나 아렌트였나, 누가 ‘권리를 가질 권리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인권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데, 인권이 침해되면 우리는 항상 국가를 찾게 되잖아요. 국민이 아니라면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존재하고, 그래서 국민이 된다는 것은 사실 권리를 주장할 권리를 가지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근데 다문화라는 사람들은 국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위치성에 놓여있고, 국가에게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권리를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번에 집회하면서 중국인이 집회에 참여했다는 식의 말들도 되게 많았잖아요. 근데 ‘왜 중국인이 한국 집회에 참여하는 안 되는 거지?’라는 질문이 따라오더라고요.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 글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9. [문우의 눈] 천막을 붙잡아 세우며 / 어푸, 비상

포도 읽으면서 학교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은 학교의 구성원인데 왜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노동자분들이 일을 안 하면서 투쟁을 하신 건 아니잖아요. 학교는 맨날 돈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청소 업체 부를 돈은 있었다는 게 어이가 없네요. 그리고 매번 학기 끝나면 등록금 인상에 관한 인식 조사를 하잖아요. 등록금 인상을 설령 한다고 해도 청소 노동자분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거든요. 등록금 인상을 해도 돈을 써야 할 곳에 돈을 쓸 것 같지도 않고. 답답합니다.

유연 이 글이 나오고 나서 10월쯤이었나? 타결이 되긴 했어요. 연세대학교가 제일 나중에 도장을 찍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타결을 축하합니다’ 하고 다 같이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 글이 여름에 나왔는데 날씨가 좀 추워지고 나서야 타결이 된 걸로 기억해요.

고요 그리고 여기서 재작년에 고소 사건 때문에 투쟁하면서 학생들 수업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쓰셨다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좀 부끄러웠어요. 저는 신촌에서 학교를 다니진 않아서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도 모르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아요. 기숙사에서 맨날 아침마다 그렇게 크게 스피커로 방송을 해도 저는 ‘또 무슨 얘기를 하는구나’ 하고 별로 신경 안 쓰고 그냥 자거든요. 그게 수업에 방해가 되면 얼마나 방해가 된다고 굳이 고소까지 해서 그 이후에 투쟁을 하면서도 또 학생들이 고소할까 봐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유연 관련해서 연세대 노학 연대에 더 관심이 있으시면은 오늘의 교육이라는 교육 공동체 벗에서 내는 책이 있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80호의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였나 그 책에 연세대 학생운동 인터뷰에서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2024년 노학 연대의 고군분투와 쟁점들 인터뷰,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풀네임인데요. 공대위 김태현 대표의 되게 긴 인터뷰가 있어요. 진짜 재밌어요. 참고로 그 책은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연희관 015B 자치 도서관에 있어서 관심 있으면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서현 저 궁금한 게 이전에 청소 노동자 관련해서 또 쓰인 글이나 이런 게 있었나요?

유연 ‘아코디언’이라고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언론 모임을 옛날에 만든 적이 있었어요. 연세대학교 투쟁 역사를 정리해 놓기도 했었는데 이때 쓰였던 글들이 문우에도 몇 개 실려 있고 문우 말고도 이때 같이 참여했던 다른 언론 단체들 매체에 실려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포도 이 글을 69호에 실린 쓰레기 탐험대 글과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연세대학교가 청소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지를 쓰탐이랑 연계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70호에 실린 이 글은 학교가 청소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고, 69호 쓰탐의 글은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읽으면 읽을수록 연세대라는 학교와 공간에 대한 정이 떨어지지만.

유연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어요. 어쨌든 문우는 학내 언론이고 학내의 이야기들을 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는데, 이 기획에서 인터뷰를 진행해 주고 그걸 잘 정리해 글을 써서 감동적이고 고마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현 외부인의 시선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이 글을 정말 인상 깊게 읽었어요. 저희 학교에서도 2024년 5월부터 크게 선전전을 시작하면서 다시 이 이슈를 학생들에게 익숙해지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어요. 이 선전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아리나 단체들이 모여서 인권 네트워크를 출범했어요. 이때는 제가 막 편집장을 넘겨받은 시점이어서 조금 나중에 듣기는 했는데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이쯤에 이 이슈가 또 한 번 크게 있었대요. 저희 교지에서 인터뷰 따고 다큐를 만들어서 기록을 남겼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거든요. 2023년이 10년째가 돼서 노학 연대도 좀 더 크게 활성화되고 움직임을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24년 5월에 다시 모인 학생들끼리 이 의제로 처음 시작은 했지만 어떻게든 이 모임을 이어가고 싶다는 이 마음으로 이제는 정말 다양한 의제를 다루면서 연대 필요한 일 있으면 같이 하고 있어요. 여기 부록에도 쓰신 것처럼 옛날에 했던 게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실 요즘 학생 운동이든 뭐든 다 흐지부지해진다고는 하지만 다시 모여서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이 연세대학교라는 공간에서의 현재의 움직임과 이후에 또 어떻게 움직임이 이어질지 두고두고 보면 여러 의미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연 이 단체는 언제까지 활동을 할 예정인가요?


서현 사실 많은 단체들이 고민하는 거긴 할 텐데 소진되지 않을 때까지예요. 재생산이 되는 게 제일 중요하죠.

10. [활동 정리] “길이 참 좁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마음은 따뜻하고 넓었으면 좋겠습니다.” / 어푸


포도 이거 얘기할 때 꼭 말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데어 글에서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참사 희생자들을 두고 ‘미처 다 피지 못한 꽃’ 이런 식으로 지칭을 하는 게 젊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서 적절하지 않다고.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때 오셨던 활동가분들께서도 포스트잇 정리할 때 그런 문구가 되게 많지만 사실 그런 문구는 유가족분들이나 피해자 지인분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참사 피해자가 젊은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이태원은 젊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렇게 쓴 사람들의 마음은 알겠으나 모든 피해자들을 아우를 수가 없는 말이라서 그런 표현은 좀 지양해 달라고 하셨던 게 되게 기억에 남았어요. 저도 몰랐을 때는 그런 문구 보고 그냥 넘겼었는데, 이 활동을 하고 나서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좋은 말이다’ 생각하고 내뱉는 말이 누군가를 배제해서 또 다른 피해와 상처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의미 있었던 활동이었어요.

서현 이 활동에 대해서 조금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유연 연희동에 ‘문화연대’라는 단체에서 찾아가는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으로 진행하는 추모 메시지 아카이빙 하는 활동이었어요. 포스트잇 같은 거 너무 훼손된 거 있으면 떼고, 포스트잇에 테이프나 다른 이물질 붙어 있는 거 다 떼서 흰 종이 같은 거에 붙여서 스캔을 뜰 수 있게 만드는 활동이었어요.


포도 활동가분들께서 직접 연세대학교로 와주셔서 자치도서관에서 진행했었는데 메시지가 담긴 박스를 되게 많이 들고 오셨거든요.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셔서 놀랐었죠. 사람들이 되게 많이 남기고 갔구나.

유연 활동하면서 포스트잇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았어요. 되게 다양한 언어로 적혀있어서 영어뿐만이 아니라 일본어처럼 우리가 접하기 쉬운 언어도 있었고 완전 모르는 언어들도 있어서 그걸 분류하는 과정에서 뭔가 이런 식으로 공간을 어떤 이야기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비록 우리가 서로 이 언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말을 하고자 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떤 감정들은 글을 통해서 전해질 수 있고 그런 것을 읽어볼 수 있어서 그걸 아카이빙 하는 작업이 좋았어요.

단(丹) 이태원 참사 때 정부에서 애도의 공간과 시간을 주지 않고, 시민들끼리 서로 아픔을 위로하는 등의 당연히 있어야 할 애도의 과정들을 묵살한 것을 저희가 지켜봤잖아요. 그러면서 최근에 제주항공 참사랑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태원 참사처럼 사회적 애도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외면당한 참사는 시민들이 개인적으로라도 그 애도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포스트잇이나 편지 같은 모양으로 애도의 흔적이 남기게 되었다고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고 연대하고 싶고 애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정부의 잘못된 대처 때문에 애도하고 싶은 본인의 마음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되게 인상이 깊었어요.

비상 드랙쇼나 볼룸 이런 걸 이태원에서 많이 해요. 이태원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소위 문화적으로 다양한 동네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태원을 정말 자주 가는 편이라서 이때 할로윈 즈음에도 이태원 갈까 말까 고민을 했었어요. 제가 관심 가지는 드랙 같은 행사만 해도 할로윈 시즌 되면 이태원에서 행사가 열리는 편이라 이태원은 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여러 장소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어서 그 뒤로 저는 되게 기분이 이상했거든요. 내가 이태원에 가면서 봤던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 있었던 장소고 정말 많은 즐거운 일이 있었던 장소인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그 뒤로 한동안 그런 행사들이 열리지 못해서 저도 못 갔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서 이 당시에는 제가 뭔가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어푸가 정리해 준 글을 읽고 또 여러분의 감상을 듣다 보니까 저도 이번에 10월이 되면은 한번 이태원을 가서 관련된 행사들에 참여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이 아카이빙 활동 당시에 참여를 못했었는데, 저도 이태원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것을 저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당시에 이태원 참사라고 부르지 말고 10.29라고 부르자는, 지역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것의 취지에 공감을 하지만, 그래도 이태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계속 생각을 해보고 우리가 이태원에 갈 때 때 종종 이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 장소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태원을 제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있는 장소로 여기는 사람으로서 이번 10월에는 그런 마음으로 이태원에 가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11. 마무리


포도 저는 독자 모임이 있어서 제가 계속 문우에 매달려 이름을 실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이 자리가 귀하네요. 저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라서 참 좋네요.

유연 이 연대에 관한 글을 쓸 당시에는 너무 마음에 안 들었고 지금도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이 글을 누군가가 읽었다고 생각하니까 좋네요. 이것이 제가 문우에서 계속 글을 써오면서 했던 생각들이고 고민들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다시 읽고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고 느꼈는지를 듣는 자리는 우리의 동력이 되어주어서 소중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상 유연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독자분들의 말을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요. 감상을 듣고 서로 나누는 게 중요하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저도 독자 모임 할 때마다 드는 것 같아요. 저도 이때 글을 굉장히 급박하게 써서 이게 괜찮을까 고민이 됐었는데 다들 재밌게 읽어주셨다고 해서 굉장히 기뻤고요. 앞으로도 자기 이야기를 좀 더 거리낌 없이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 담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럴 것 같고요.

단(丹) 저는 교지라는 글이 독자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글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바로 소통이 되는 SNS에 올리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교지가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학교 가판대에 있는 책들이 매일 조금씩 사라지다가 어느 순간 그 가판대가 비었을 때뿐인 것 같거든요. 그 순간 묘한 후련함이 있고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 독자들의 한마디 코멘트나 ‘이런 부분이 좋았어요’ 하는 말들이 그다음 글을 또 쓰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원래 독자 모임을 마감 다 한 다음에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마감이 아직 몇 주 남은 시점에서 이렇게 독자 모임을 진행했다는 게 이번 호에 글 쓰실 분들한테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 같아서 좋은 마음이네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현 저는 완벽한 외부인으로서 이렇게 학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 소중했던 것 같습니다. 신분은 외부인이지만 그래도 같은 대학생으로서 고민하는 지점이 겹치는 게 많다는 걸 느끼고 늘 말하지만 저희 소진되지 맙시다. 앞으로도 글 계속해서 잘 읽을게요.

유자 사실 독자로써 이렇게 글을 읽고서 그 글을 쓴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일단 그 점에서 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읽는 내내 고마움과 부끄러움과 공감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읽었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 내에 존재하고 이런 공동체가 나의 동료 시민이라는 점에서 오는 뭔가 든든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어요. 외부인 아닌 외부인으로서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요 저는 독자 모임 이번이 처음인데 약간 토론 꼭지 없는 세미나 4개 정도 한 번에 하는 느낌이어서 익숙한 느낌과 낯섦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고요. 저는 이번 호에 글을 쓰기엔 이미 너무 늦었지만, 다음 호에는 꼭 열심히 써서 내년 이맘때 즈음에 제가 쓴 글로 독자 모임을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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