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3년 차 경력의 통번역가라는 것은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통번역 직무로 지원한 한 기업체의 면접장에서, HR팀 면접관께서 하신 말씀
이 정도 경력이면 4년 차 정도는 인정되시겠는데요?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사실 나는 통번역을 학생 시절부터 해왔다. 당연히 페이를 받고 해왔지만 그렇다고 통번역을 커리어로 삼을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었기에 경력을 정리해둔 적은 없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 한 일들은 경력이 아니라 '대외활동' 쯤으로 취급했다. 내가 스스로.
여기에는 나의 부족한 자존감도 한몫했다. 영어는 해도 해도 모자란 것 같고, 나도 유학파였지만 5년 차 이상 유학파가 득실득실한 학교에서 공부하며 항상 나는 내 영어가 부족하다 느꼈다.
회사에 입사하고서도 나는 계속 업무에 영어를 사용했지만 통번역이 내 주된 업무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영문 기사를 번역한다거나, 영문 자료집을 번역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정도를 제하고는. 그래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받아 든 모 인터내셔널 기업의 기밀문서 번역은 매우 짧은 시간에 해냈음에도 클라이언트사 이사님이 "매우 잘했다"라고 만족해주셔서 이때 나의 번역 자신감이 많이 자랐다. 물론 이때도 전문통번역가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사실 꿈도 못 꿨다고 보는 게 맞다. 나는 여전히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나는 늘 자기부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올해 세상의 풍파를 못 이겨 유럽으로 훌쩍 떠났는데 북미야 영어를 쓰는 국가였으니 그렇다 쳐도, 영어를 쓰지 않는 국가에서도 나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의 영어 자신감도 제법 붙었다.
그렇게 '통번역가'로 다시 방향을 잡고 이력서를 써보니 경력이 제법 나왔고 햇수와 달수를 다시 제대로 따져보니 3년 1개월이라는 경력이 나왔다.
사람*이라는 취업 플랫폼에서는 햇수로만 무조건 따지니까 내가 7년차라고 했다. 이건 내가 바로잡아서 재계산하니까 3년차 정도가 내게 알맞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동안 내가 한 통역과 번역은 에이전시를 끼고 일을 받아서 한 것이 아닌 다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한 것이라는 점이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오늘 한 카톡을 증거자료로 첨부한다.
그래서 정규직 통번역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회사에서 보는 통번역 테스트가 조금 겁이 난다. 회사에서는 오히려 "매일 하시는 건데 뭐가 걱정이세요?" 하지만 일단 통번역에도 분야가 여러 개이고, 믿고 맡겨주시던 분들과 작업을 해왔기에 테스트를 따로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긴장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번역 퀄리티가 낮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낮았다면 진즉 일이 끊겼어야 맞다.)
또 네이티브 코리안 스피커인 우리도 한국어에 모르는 단어가 있듯 내가 아무리 유학 파고 캐나다에서 몇 년을 살았고 대학교 내내 영어만 사용하고 다녔어도 모르는 단어는 있다. 게다가 내가 굉장히 디테일하게 번역을 하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사실 지금도 해야 할 번역 일과 나의 일들이 있지만 오빠의 일을 거절 하지 않았다. 오빠가 번역비는 두둑하게 준댔지만 조금만 받기로 했다. 내가 평소 받는 선에서 아주, 아주 저렴하게. 왜냐면 이 오빠의 일이라면 무료로라도 나는 해주고 싶으니까. 근데 왜 무료로 안 하냐면 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Connec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점찍기라고. 당장 점을 찍어 나갈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뒤를 돌아봤을때 그 점들을 이을 수 있으니 점을 찍을때 확신을 갖고 찍으라고. 그렇게 나도 하나 하나 점을 찍었더니 어느새 3년차 통번역가가 되어있었다. 나를 믿고, 행동을 하나 하나 소중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