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의 좌충우돌 유럽여행기
프랑크푸르트의 밤. 그날은 기분이 유난히 좋았다. 친구와 헤어진뒤 호텔에 돌아와 이 밤을 더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
내가 숙박한 호텔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로 한국인 다른 여행객들 사이에선 위험하다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는 역시 노숙자와 약에 취한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온갖 약물이 난무하는 밴쿠버에서 이미 노숙자와 약쟁이들에게 이골이 난 내게는 두려울 것 없었다. 외려 역과 가까워서 편리했다.
밖으로 나서자 두명의 노숙인이 분주하게 무언가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다가갔다. 웃으며 “하이”하자 자기들도 웃으며 “하이”한다. “그거 뭐야?”하고 피우는 것을 물어보니 “크랙”이란다. 크랙은 코카인에 다른 약물을 섞은 것으로 알고 있다. 코카인이 너무 비싸 피우지 못하는 이들이 찾는 차선책이라고.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많이 유통되는데 큰 문제가 되는 약이라고 알고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는 크리스토퍼고 얘는 알렉산더야”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리햅을 알아보고 있어”라는 말도 덧붙이며. 나는 리햅얘기나 나오니 반가웠다. 거짓말일진 모르지만 그래도 약물에 의존된 자신들이 자랑스럽지는 않다는 것 아닌가.
크리스토퍼는 17살에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다녀왔다고 했다. 독일도 한때는 징병국가였고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으니 크리스토퍼의 나이와 맞춰보면 거짓말은 아닌듯하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은 크리스토퍼에게 밥을 달라거나, 사탕을 달라는것 대신 늘 ‘펜’을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펜을 주면 그걸로 벽에 그림을 그렸다고. 항상 마음이 짠했단다. 그 모습을 보면서. 파병을 다녀온 뒤 크리스토퍼도 힘이 들었고 거리로 흘러들게 됐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는 연신 알렉산더를 “닥터, 닥터”라고 불렀다. 진짜 의사는 아니지만 의대에서 공부한적은 있다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알렉산더의 영어가 짧아 많이 알수는 없었지만 알렉산더는 여자친구와 아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거리에 머물고있으니 아들을 볼 수 없다고. 그래서 꼭 리햅가서 치료받고 아들을 만나라고 했다.
둘은 내게 “절대 크랙은 하지 말아라”라고 당부했다. 담배피우는 사람들이 “후~ 너는 절대 이거 하지 마라”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진지하게. 전에도 어떤 여자가 크랙 피워보겠다고 자기한테 제의했다는데 절대안된다고 했었단다.
약은 어디서 구하냐고 했더니 홍등가쪽에 가면 흑인들이, 언제나 흑인들이 판다고 했다. 나를 데려가 구경도 시켜주었다. 친구들 주려고 사둔 시가가 있었는데 한개피를 알렉산더에게 주니 신이나서 시가를 피웠다. 프랑크푸르트의 길바닥에 셋이 쪼로록 앉아 알렉산더는 시가를 피우고, 크리스토퍼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올드보이”를 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아! 그거 대사 있잖아, 울어라 온세상이 함께 울것이다…” 올드보이에 나왔던 이 대사는 사실 미국 여류 시인의 시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시인데 알렉산더가 읊으니 나도 참 반가웠다.
우리는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메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알렉산더는 자기이름으로 구글에 치면 자기가 썼던 논문들이 나올것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치매 등에 대한 연구를 했었다고.
그가 준 풀네임으로 검색해봤지만 아직 이렇다할 자료는 찾지 못했다. 아마 독일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우연히 만나 말동무가 됐던 두 노숙자들 덕분에 그날 밤도 재밌었다. 부디 지금은 리햅에서 재활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