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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치매'
by
여느Yonu
Aug 31. 2022
아까 쓰고 발행을 눌렀는데 글이 사라져 다시 쓴다.
꽤 만족한 글이었는데 똑같은 글이 나올 수 없음을 알아 속이 상한다.
얼마 전 입원을 했다. 다인실이라 간병사 분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할 수 있었다.
내 맞은편엔 치매 할머니가 계셨다. 간병사 분들은 할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치매 환자가 가장 맡기 싫은 환자라고 했다. 그나마 온 것도 치매라는 얘기는 없어서 왔는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직업적 애환이니 나는 비판하거나 비난할 맘은 없다.
치매 할머니 간병사 분은 그나마 이 환자 분은 '예쁜 치매'라 다행이라고 하셨다. 화도 안 내고, 말도 잘 들으신다고.
예쁜 치매. 그렇게 나는 단어를 하나 배웠다.
우리 할머니도 예쁜 치매일 것이다. 할머니는 예전에 입원했을 때, 간병사 님께 고생한다, 점심 사 먹으라며 5만 원짜리 돈을 건네신 적도 있다.
한참 인터넷으로 간병사 직업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들었던 터라 할머니 병문안을 위해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가면서도 나는 간병사님과 기싸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병사님 드릴 케이크는 따로 준비했지만서두.
그렇지만 참 좋은 간병사님 이셨다.
얼마 전엔 할아버지께서 입원을 하신 적이 있다. 온 가족이 할아버지 입원 수속을 밟는 동안 할머니는 아무 데도 안 가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계셨다고 한다. 밖에 나가면 언제 어디든 발길대로 따라가는 분이.
가족들이 할아버지 입원 수속을 마치고 돌아오자 할머니 왈
"날 병원에 두고 가는 거야?"
할머니는 자기를 입원시키기 위해 병원에 온 것으로 착각하고 계셨던 거다. 그런데도 도망도 안 가고, 화도 안 내고 그냥 자리에만 앉아계셨던 거다.
누군가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 했다. 잊고 싶은 기억만 잊을 수 있다면 그건 행복이겠다. 하지만 치매는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을 구분하지 않는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만 앗아가는 게 아니다. 할머니는 이제 컴컴한 방에서 혼자 TV를 보는 게 최대 낙인 분이 되셨다. 도둑이 든다고 한여름에도 창문을 꽁꽁 닫는 분이 되셨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도 모두 치매를 앓았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둘인데 우연의 일치치곤 신기하다.
여기에 한 명 더. 우리 할머니.
의학기술이 치매를 정복할 날은 꿈꾸지 않는다. 세상엔 수많은 병이 있고 그 병을 연구하는 데는 결국 돈이 든다. 의사며 박사며 인력들에게 단순 인류애만을 강요하며 일하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냥 속상하다.
날리기 전의 글에선 끝맺음이 달랐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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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예의 없는 세상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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