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식탁

우리家한식 - 2020 한식문화 공모전

by 디디






소셜 네트워크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아주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가 식습관일 것이다. 투박하지만 맛이 좋았던 토속적인 한 상은 사진에 예쁘게 담기지 않아서 속절없이 밀려났다. 그 빈자리를 메꾼 것은 정갈한 1인용 식기에 갖가지 반찬을 조금씩 올린 외국식 한 상이었다. 나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예쁜 식당, 우아한 찻집에 일찍이 매료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외식이 잦았던 나는 때마다 소문난 번화가에서 몇십 분씩 줄을 서가며 식탁 위의 세계를 누볐다.


이렇듯 ‘인터넷 맛집에서 예쁜 사진 찍기’에 심취했던 내가 후미진 골목의 백반집에 간 것은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으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가려고 했던 가게의 대기 인원이 나와 친구의 예상보다 많았고 그 기다림을 겪기에 우리가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외진 골목에 자리 잡은 ‘요즘 식당’ 주위에는 대충 한 끼 때우기에 적합해 보이는 작은 백반집 하나만이 있었고, 결국 그곳이 우리의 행선지가 되었다.


나와 친구는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하나씩 주문했다. 특별할 것 없는 주메뉴에는 더욱이 평범한 밑반찬이 따라 나왔다. 소가 잘 배어들어 빛깔이 고운 배추김치와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 하얀 콩나물 무침, 그리고 그 옆에 푸릇한 애호박 볶음이 있었다. 허기가 진 상태였던 우리는 밥이 없는데도 허겁지겁 반찬을 건져 먹었고 뜬금없이 엄마가 생각난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젓가락이 애호박 볶음을 건져 올린 순간 말이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인한 사람이었다. 결혼 후 시작된 주말부부 생활 탓에 오빠와 나를 거의 홀로 키웠고 그러는 중에도 회사 생활을 무사히 해냈다. 게다가 엄마는 뭐든 잘했다. 손끝이 야무져서 손으로 하는 일은 못하는 게 없었다. 그런 엄마가 가진 수많은 장점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음식 솜씨였다. 흔히 말하는 손맛. 엄마의 손맛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어려운 요리도 조리법 없이 척척 해냈고 조미료 하나 없이 무심하게 끓여도 맛만 좋았다. 밖에서는 절대 돈 주고 먹지 않던 음식도 엄마의 손만 닿으면 특급 호텔 한식당의 대표 메뉴라도 된 양 맛있었다. 평생 그토록 호화로운 만찬 속에서 살아왔던 내가 그 음식들이 그리워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엄마의 한식은 유난히 담백했다. 간이 세지 않아 어떤 음식을 먹어도 뒷맛이 강하게 남지 않고 깔끔했다. 아삭한 맛이 살아남을 정도로 적당히 익힌 콩나물에 연한 간장과 고춧가루로 맛을 낸 콩나물 찌개의 칼칼한 국물은 술 한잔하고 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났다. 사과와 배를 갈아 넣고 살짝 달곰하게 간을 한 간장 양념에 하루를 재워 만든 갈비찜의 맛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앙상한 갈비찜 정식을 먹을 때마다 그리웠다.


개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요리는 대부분 호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입이 짧은 엄마는 좋아하는 음식이 한정적이었는데 호박 요리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동그랗게 썰어 밀가루를 입히고 부친 호박전이나 작게 썬 호박을 넣고 푹 끓인 된장찌개, 달달한 맛을 낸 뒤 새알을 띄운 호박죽, 곱게 갈린 호박에 신김치를 넣어 끓인 호박국.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돋우는 호박 요리들이 많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요리는 호박 양념 조림이었다.


엄마의 호박 조림은 만들기가 간편해 이른 아침에도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메뉴였다. 출근 준비를 하며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야 했던 엄마에게는 나름대로 안성맞춤 메뉴였던 것이다. 곧게 자란 애호박을 반으로 썰어준 뒤에 기름을 두른 팬에 새우젓과 함께 넣어 볶다가, 살짝 익었을 즈음 호박이 반쯤 잠길 정도로 자작하게 물을 넣어 끓여준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고춧가루로 매콤함과 색감을 살려주면 그만이었다. 김이 솔솔 올라올 때에는 맨밥에 양념처럼 얹어 먹어도 좋았고 차게 식었을 때에는 쇠고기 고추장과 함께 쓱쓱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주황 빛깔 양념은 새우젓의 짭짤함과 애호박의 단맛이 스며들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했다.


작은 백반집에서 푸릇한 애호박 볶음을 보고 엄마의 생각이 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알맞게 익은 호박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동안, 나는 잊고 있던 엄마의 요리를 떠올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 나갔다. 감기를 호되게 앓고 입맛을 잃었을 때 막 만든 호박 조림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일이나 엄마가 며칠 집을 비웠을 때 내가 처음으로 호박 조림을 만들었던 일 따위의 기억이 차례대로 끌어올려졌다.


‘너 혹시 애호박 양념 조림 같은 반찬 먹어봤어?’ 기억을 헤집던 내가 뜬금없는 물음을 건넸을 때, 친구는 대답 없이 눈썹만 까딱거렸다. 우리 엄마가 가끔 해주는데 진짜 맛있거든. 친구는 내가 그렇게 덧붙이고 나서야 말뜻을 이해한 듯 맞장구 쳐주었다. 이어진 이야기들은 솔직히 시답잖은 것들이었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엄마의 호박 조림 조리법을 줄줄 읊었고 친구는 몇 해 전 자신의 엄마가 해주었던 호박전이 얼마나 바삭하고 맛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호박 볶음 하나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콩나물 무침을 지나 배추김치, 종래에는 갓 나온 된장찌개와 제육볶음까지 이어졌다. 4인용 식탁 하나가 이렇게나 많은 기억을 품고 있다니. 쉴 틈 없이 조잘대면서도 퍽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스물여섯에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혼자 산다는 것에 엄청난 환상이 있던 순진한 영혼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따뜻한 밥에 바로 만든 반찬을 멋들어지게 차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평소 눈치 보여 먹지 못했던 인터넷 속 고열량 음식을 만들어 먹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일이 익숙해지고 난 뒤부터는 종종 야근했고 그때마다 회사 근처에서 대충 저녁을 때웠다. 모처럼 일찍 퇴근해도 친구를 만나 번화가에서 외식하거나 편의점에 들러 잡다한 간편 음식을 사 와 먹었다. 가끔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도 있었지만 다섯 평짜리 원룸에서 요리한다는 건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너비가 좁은 개수대에서 설거지하는 일이나 작은 방에 꽉 들어찬 연기와 냄새를 빼는 일 같은 것들이 꼭 따라붙기 때문이다.


잦은 외식과 배달이 집 밥이라도 되는 양 익숙해졌을 무렵, 당연하게도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피부도 울긋불긋해졌고 식도염과 위염까지 생겨 가끔은 새벽에 일어나 속을 게워낸 적도 있다. 한동안은 소화제를 영양제처럼 매일같이 먹기도 했다. 그러나 몸이 상한 건 둘째 문제였다. 당시 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병이었다. 나빠지는 건강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에 지쳤던 나는 그것들로도 부족했는지 아주 강렬한 향수병을 앓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주는 집 밥이 그리워진 것이다.


예기치 않게 방문했던 작은 백반집에서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던 때가 바로 그즈음이었다. 예술품처럼 화려한 외관의 음식을 보고 먹는 것으로 간신히 막아두었던 향수병이 한 번에 터진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집 밥을 향한 강한 그리움은 미처 손 쓸 틈 없이 역병처럼 퍼졌다. 그리고 나는 그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일 년도 넘게 흘렀지만,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원래라면 머리가 좌석 가죽에 닿는 순간 곯아떨어졌을 텐데, 고작 먹는 생각에 설레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은 많았고 휴가가 금이었던 내게 이틀은 마치 두 시간처럼 짧은 시간이었다. 산발적으로 떠오르던 몇십 개의 음식 중에서 고르고, 또 고른 것을 문자로 적어 보내고 나서야 미뤄둔 잠 기운을 느꼈다.


그날의 저녁 식탁은 특별할 것 없는 한 상이었다. 가장 먹고 싶던 호박 조림이 가득 올라왔고, 새우젓 특유의 짭짤함이 배인 조림에 맞춰 만든 담백한 생선구이도 함께였다. 팽이버섯과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만든 두툼한 계란말이, 물기를 바짝 말린 두부를 당근, 양파와 섞어 부친 동그랑땡도 소담하게 담겨있었다. 갖가지 음식이 푸짐하게 담긴 접시는 집에서 쓰는 짝이 맞지 않는 것들이라 어딜 봐도 예쁜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한 상의 기억을 사진으로 옮겨 지금도 이따금 되찾아본다.


사진 속 그날의 생선구이는 아빠가 야심 차게 주문한 양면 팬으로 처음 요리했다. 연기가 새지 않아 좋았지만, 너무 무거워서 고생했다는 엄마의 말에 머쓱하게 웃던 아빠의 표정이 바로 앞에 있는 것 마냥 생생하다. 계란말이를 준비하던 엄마는 문득 내가 팽이버섯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렸고 이어서는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아빠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에서 계란말이는 팽이버섯과 청양고추를 한 움큼 넣어 만드는 별식이 되었다. 두부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한 엄마의 맞춤 동그랑땡은 오히려 나와 오빠가 더 잘 먹었다. 여유를 갖고 맛을 음미하면 좋았으련만. 내가 한 입 베어 물 때, 오빠는 두세 입씩 더 먹는 걸 곁눈질하며 먹느라 맛을 느끼기는커녕 씹어 먹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나는 이날 이후로 한식 찬양론을 들고 일어섰다. 가족의 기억이 곳곳에 묻은 한 상을 차려 먹고 나면 혼자 잠들어 홀로 일어나는 하루가 덜 외로웠고 내가 속한 가족이라는 존재가 실감 났기 때문이다. 엄마의 집 밥을 향한 향수병이 사실은 타향살이하는 내가 느끼는 외로움의 한 종류였다는 것을 수많은 음식을 통해 깨달았다. 하루는 택배 속 엄마의 멸치 볶음을 통해, 또 하루는 아빠의 손맛을 닮은 동네 밥집 청국장찌개를 통해, 또 가끔은 오빠보다 내가 더 많이 먹겠다며 다퉜던 기억을 담은 김치볶음밥을 통해서 말이다.


예쁜 식당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는 엄포를 들어왔던 친구들이 보기에는 분명 어이없을 일이다. 오직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탐미하며 한식을 등한시하고 양식과 일식, 중식에 중독되어 지내던 내가 고작 호박 볶음 하나에 변하다니. 나와 함께 후미진 식당 안에서 제육볶음에 얽힌 제 추억을 이야기했던 친구는 나와 만날 때면 이제는 당연하게 소문난 한식집을 찾곤 한다. 이런 변화가 멋쩍던 시간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평생을 당연히 먹어왔고, 앞으로도 원 없이 먹을 테니까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한 상이 나의 마음속 공허를 채워주고 외로움을 달래줄 치트키였다는 걸 깨닫고 말았는데!






상상해보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하게 담은 쌀밥.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은은한 맛을 낸 배추 된장국. 화려한 꽃무늬 접시에 나름대로 멋을 부려 얹은 갖가지 반찬들. 특별한 조리법 대신 우리의 추억이 양념처럼 배인, 사연 많은 우리 식탁을.


우리는 분명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헤더 이미지 Photo by. Brooke Lark (http://brookel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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