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써도 졸업이 가능한 대학원이 있다. 모든 대학원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보통 일반대학원의 경우 논문을 써야만 졸업이 가능하다. 특수대학원의 경우 논문을 쓰지 않고, 추가적으로 학점을 더 듣고 졸업할 수도 있다.
이런 선택권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석사 졸업생이 논문이 없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통념과 배치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석사 과정에서의 논문이 (최소한 우리 분야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입학 당시에는 기왕이면 논문을 쓰고 졸업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치료라는 분야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하는 분야여서, 책상에서 글로 쓰는 연구만으로 좋은 치료사가 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실제 논문을 쓰지 않았더라도 풍부한 실습 경험을 바탕으로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는 졸업생을 많이 만날 수 있었기에, 많은 실습 경험이야말로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인 것 같았다.
게다가 논문이라는 특성상, 형식의 자유가 없다. 이 말은 정해진 형식을 지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 형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형식을 지켰는가는 해당 논문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형식에 공을 상당히 들이게 되는데, 논문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거의 마지막 1-2달은 형식에 맞게 썼느냐 아니냐만 점검해야 한다.
문제는 그 형식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개정이 꽤 자주 된 터라, 아무도 (심지어 교수님도) 해당 형식이 맞는지 아닌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꽤 유명하다는 대학들의 홈페이지에도 설명이 다 다르게 나와있기 때문에, 해당 연도에 같은 형식이어야 하는 논문들을 훑어보면 각양각색(?)의 형식을 사용한 것을 볼 수가 있다. 물론 나도 '내가 형식을 바꿀 수 없는 위치라면 따라라'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복잡해서 교수님도 모르는 형식을 맞추기 위해 몇 달을 신경 쓴다는 것 자체에 진저리가 난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불만이 많으면 그냥 쓰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석사를 졸업하신 아버지, 석사나 박사를 졸업한 친구들, 친척들 모두 나에게 석사는 논문을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나에게 영향을 주었냐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니 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논문을 쓰지 않고 졸업을 하면 내가 석사 졸업한 것을 무의미하게 생각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졸업을 축하해주겠지만 속으로는 논문도 없는 석사생이라니..라고 생각하며 나를 평가 절하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몰아붙였다.
차라리 내게 선택권이 없었다면, 논문을 써야 석사졸업이 가능했더라면, 나는 막말로 '닥치고'썼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이런 선택권은 나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논문을 쓰는 것에서 피할 구멍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구멍은 내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었지만, 그 구멍 안에는 사방에 독소가 묻어있어서 지나가면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불편한 구멍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문을 쓰고 졸업하게 됐지만, 논문을 쓰는 내내 논문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주변 사람들의 떠밀림에 억지로 쓰게 됐다는 억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옆에 일반대학원생이 아닌 특수대학원생이 있다면, 그(녀)가 논문을 쓰는 것에 회의적이라면, 그냥 그대로 받아주며 존중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