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ve bin Feb 19. 2021

스트레인저

낯섦에서 오는 편안함

펜팔,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언제 어떻게 어디서 시작하는지 모를 뿐더러 내 시간을 들여서 찾아보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펜팔’이 재밌겠다는 추상적인 생각만 해왔을 뿐.

어느 날, 애플이 추천하는 앱을 쭉 둘러보다 보니 펩팔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모바일의 특성상 카카오톡처럼 바로 답장이 올 텐데 어떻게 펜팔 느낌을 느낄 수 있나?


여기 이 앱의 묘미가 있다.


떨어진 거리만큼 시간이 계산되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 브라질 친구의 편지는 이틀 뒤에, 한국인 친구의 편지는 30분 이내에 받아 볼 수 있는 식이다.

신박한 아이디어에 나는 감탄했다. 이런 방법은 비록 모바일 편지라고 해도 실제 편지를 하는 것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하던 문자메시지보다 지금의 카톡이 더 편리하긴 하지만 문자메시지가 줬던 그 설렘은 줄었다.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는 카톡에는 ‘긴장감’ 같은 것은 없다.


여러 명과 처음 대화를 하다 보면 지루한 면도 있다.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나의 소개를 해야 하고, 사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이 앱의 또 다른 장점은 자신의 사진 등을 올리지 않고, 이모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닮은 가상의 캐릭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른 펜팔 앱을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보통은 자신의 사진을 올려서 데이팅앱 비슷하게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외모를 볼 때 느끼는 것들을 제외하니, 자연스럽게 아무 편견 없이 대화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다.


초반에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로의 동의 없이는 사진 등을 보내지도 못하고, 단지 대화만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게 되고 궁금증이 커졌다. 서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


지금  열명 정도와 펜팔을 하고 있는데, 아직 영어를 아주 잘하지도 못하거니와 성의 있는 답장을 쓰려고 내용을  구성하려고 하다보니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7 대륙의 대학생, 대학원생, 회계사, 공무원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문화에 대해 나누고, 일상을 나눈다.


아무리 자신의 여유시간에 마음대로 보내면 되는 펜팔이라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하나씩 되새기면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쌓아가며 정성스러운 답장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서로 주고받았던 편지가 많아질수록 이미 언급했던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이해가 되어가는 부분이 있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서로에게 실례가 되기 쉬울 것이다. 편지에 정성이 들어가면, 상대방도 그것을 느껄 것이라고 믿는다. 진심이 결여된 편지는 금방 힘을 잃는다.


나도 영어를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기에, 일단 편지를 써놓고 번역기를 돌려 문법에 어긋난 것들을 몇 번 체크한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고치고, 더 적절한 단어는 없는지 찾고. 이 과정에서 나도 성장한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이고, 실제로 만날 가능성이 아주 적다는 점은 우리를 더 편안하게 한다. 엮여 있는 것이 없기에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다.


slowly, 앱의 이름도 아주 마음에 든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것

작가의 이전글 야망 있는 작가의 전시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