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떨림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위대한 권태'와 그 소중함에 대하여
구두를 벗고 낡은 슬리퍼를 신는 시간
연애가 발이 퉁퉁 붓도록 예쁜 구두를 신고 상대에게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시간이라면, 결혼은 그 구두를 벗어 던지고 발 뒤꿈치가 다 닳은 낡은 슬리퍼를 신는 과정이다.
신혼 초,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라기보다는 '한집에 사는 연인'이었다.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 먼저 일어나 세수를 했고, 화장실에 갈 때도 물을 틀어 소리를 감췄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우리 사이에는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존재했다.
하지만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 먹은 밥그릇의 숫자가 수천 개를 넘어가면서 그 고무줄은 느슨해졌다. 이제 우리는 서로 앞에서 방귀를 트고, 며칠 머리를 감지 않은 떡진 머리를 보여주며, 늘어진 티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해서, 가끔은 이 사람이 이성(異性)인지, 아니면 내 몸의 일부인지 헷갈리는 단계. 오늘은 그 '편안함'이 우리에게 준 선물과, 우리가 그 편안함에 속아 잊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많은 부부가 고민한다. "우리는 이제 설레지 않아요. 사랑이 식은 걸까요?"
심장이 쿵쿵 뛰고, 손만 스쳐도 전기가 오르던 그 짜릿한 감정은 분명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건 슬픈 오해다.
도파민이 휩쓸고 간 자리에 옥시토신이라는 평온 호르몬이 차올랐을 뿐이다. 연애 시절의 내가 "이 사람이 날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과 긴장 속에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사람은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깊은 신뢰, 즉 '안심(安心)'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남편의 등 긁는 소리, 코 고는 소리, 밥 먹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것. 서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공기가 어색하지 않은 것. 그것은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사랑이 생활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삶 그 자체'가 되었다는 증거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탐색하지 않는다. 이미 서로의 밑바닥까지, 가장 지질하고 약한 모습까지 공유했으니까.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대나무 숲'.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하지만 이 축복 같은 편안함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너무 편하다 보니, 상대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숨을 쉬지만 공기에게 "고마워"라고 인사하지 않는다. 없으면 죽을 만큼 중요한 존재인데도, 늘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감을 잊는다. 오랜 결혼 생활 속의 배우자가 딱 그렇다.
연애 때는 물 한 잔만 떠다 줘도 "어머, 고마워요"라며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이 월급을 가져와도, 아내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줘도, 아이를 씻겨줘도 그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감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왜 이것밖에 못 해?"라는 핀잔이 들어선다.
편안함은 무례함을 낳기 쉽다. 밖에서는 남들에게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상냥하게 웃으면서, 정작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는 짜증을 붓고 막말을 던진다.
"야, 비켜 봐."
"아, 좀 알아서 해."
왜?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받아줄 거라는 오만함이, 그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 키우느라 힘들다는 핑계로, 남편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했던 날들이 있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또 늦어?"라고 쏘아붙였고, 주말에 잠만 자면 "잠이 오냐?"라고 등짝을 때렸다. 그가 우리 가족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있는 게 당연한 '가구'처럼 여겼다.
그러다 남편이 며칠 출장을 가거나, 심하게 몸살이 나서 앓아누웠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집안을 꽉 채우던 그 든든한 공기가 사라졌음을.
남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아이들과 놀아주던 목소리, 전구를 갈아주던 손길, 밤이면 내 하소연을 들어주던 귀. 그 사소하고 지루했던 일상이 사실은 남편의 존재로 인해 지탱되고 있었음을, 그가 멈추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왜 꼭 잃어버릴 뻔해야 소중함을 알까. 편안함에 취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옆사람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귀한 손님'이라는 사실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완전히 익숙해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역설적으로 **'낯설게 보기'**다.
내 남편을, 내 아내를 '원래 저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때 내가 미치도록 갈망했던 남자/여자'로 다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6살 연하의 풋풋했던 내 남자 친구가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되어, 돋보기안경을 쓰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있는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해 보자. 짠하고, 고맙고, 그리고 위대하지 않은가.
익숙함이 권태가 되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에 나가는 남편에게 "다녀와"라는 건성 인사 대신, 3초간 눈을 맞추기.
물 한 잔을 건네받을 때도 "거기에 놔"가 아니라 "고마워"라고 말하기.
가끔은 아이들을 맡기고 둘만의 데이트를 하며 '연인' 시절의 공기를 환기하기.
이 작은 노력들이 굳은살 박인 우리의 관계를 말랑말랑하게 유지해 주는 윤활유가 된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가슴 뛰는 시기는 지났다. 대신 우리는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의 미래'라는 방향, '우리의 노후'라는 방향.
서로의 눈을 볼 때는 몰랐던 것들이, 같은 곳을 보니 보인다.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등 맞대고 싸우는 전우애. 네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는 운명 공동체 의식. 이것은 사랑보다 더 질기고, 더 숭고한 결속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침투하여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의 살이 되고, 나의 피가 되어버린 사람. 그래서 때로는 소중함을 잊지만, 결국엔 "이 사람 없이는 내 인생도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
가장 편안한 의자가 되어준 당신에게
오늘 밤, 옆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연애 시절의 그 날렵한 턱선은 사라지고 살집이 붙은 둥근 얼굴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이 얼굴이 더 좋다.
이 주름 하나하나는 나와 함께 웃고 울며 생긴 흔적이고, 저 뱃살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생긴 훈장임을 알기에.
우리가 서로에게 이토록 편안한 존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다툼과 눈물, 그리고 용서가 있었던가. 그 세월을 견뎌내고 내 옆에 남아준 당신이 참 고맙다.
설렘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편안함은 유통기한이 없다.
나는 이 지독한 익숙함 속에서, 매일매일 당신을 새롭게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여보,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양말 좀 제발 빨래바구니에 넣어줘."
"남편이랑 있으면 심심해요. 할 말도 별로 없고요."
혹시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지금 결혼 생활의 가장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셨습니다.
매일 사건 사고가 터지고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드라마 같은 사랑은 피곤해서 못 삽니다. (웃음) 아무 일 없이, 그저 멍하니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그 '심심함'이야말로 신이 부부에게 준 축복이자 기적입니다.
단, 한 가지만 약속해요. 그 편안함을 핑계로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로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 너무 흔하지만 그래서 진리입니다.
오늘 퇴근한 남편, 혹은 아내의 엉덩이를 한 번 토닥여주세요.
"당신 참 편하다. 그래서 참 좋다." 라고요.
익숙한 당신의 냄새를 사랑하는, 유다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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