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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또시 Jul 24. 2023

할 수 있다고, 내가 아니면 안 될 거라고 착각했다.

다묘가정의 현실이야기


2019년은 첫째 또시를 입양한 지 1년이 넘어가던 때였고, 임보도 한창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7번째 임보냥이를 무사히 입양 보내고, 또시와 남은 임보냥이 1마리, 두 냥이와 함께하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생활을 하려나.. 싶었지만 협회(고양이 구조 단체)로부터 추가로 2마리를 임보 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네 마리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건 임보에 도가 튼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고민스러웠다. 그 2마리가 병원 케이지를 비워줘야만 그날 구조된 아픈 냥이를 입원시킬 수 있다고 했다.  


‘딱 두 달만 데리고 있을게요. 그 안에 꼭 입양처를 찾아주셔야 해요.’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불가능한 현실에 도전하는 거라는 걸 잘 알았다.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합리화해보려고 협회에게도, 내 마음에게도 두 달이라는 기한을 뒀다.


그날 저녁, 우주선 모양의 노란 이동장을 메고 집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병원에 들어섰고, 인포데스크에 계신 직원분께 꾸벅 목례를 하고 진료실 뒤편 고양이 입원실로 향했다.


총 4칸의 투명한 입원 케이지. 그중 오른쪽 가장 아래칸에 2개월 남짓한 치즈와 삼색이 아깽이가 자기들끼리 깡총대고 있었다. 몸길이가 한 뼘은 되었을까? 유난히 작고 보송했다.

협회에서 전달받은 사진과 실물이 전혀 달라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오랜 시간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본연의 털 색조차 알 수 없는 꼬질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혹시 아이들이 목욕을 했나요?’ 때마침 입원실로 들어오신 직원분께 질문했다. ‘전혀요, 서로 부지런히 그루밍하더니 며칠 만에 깨끗해지더라고요.’ , 고양이의 신비한 능력이었다.

케이지를 열어 조막만 한 아이들을 하나씩 이동장에 옮겨 담았다. 3키로 성묘 한 마리면 꽉 차는 사이즈의 작은 이동장이었지만 이 정도 크기의 아깽이라면 못해도 열 마리는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아이들이 삐약삐약 목청 높여 불안감을 알리는 사이, 알 수 없는 설렘과 걱정이 물밀듯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집에 들어섰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둘째, 셋째와의 첫 만남 이야기다. 두 달을 약속하고 집에 들였지만,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2년 넘는 임보 기간에 입양 문의는 단 한 건도 없었고 내가 임보를 중단하면 입양처가 없는 몇 십 마리 고양이가 사는 작은 오피스텔로 옮겨가야 했다.‘아깽이 때부터 함께한 나를, 우리 집을 떠나면 이 아이들이 괜찮을까?’, ‘이젠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할 텐데 내가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았고, 오랜 고민 끝에 우린 식구가 되기로 했다.


지금도 우린 잘 살고 있다. ‘잘 산다’의 정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행복하고 매일 여러 번 크게 웃는다. 하지만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첫째와 둘째, 셋째의 합사는 처참히 실패했다. 셋째가 처음부터 첫째의 관심을 귀찮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귀찮음이 증오로 변해갔고 지금은 둘을 같은 공간에 둘 수조차 없을 만큼 사이가 안 좋다. 이젠 둘째도 첫째를 싫어한다. 셋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먹이사슬 같다. 첫째는 셋째를 공격하고, 둘째는 첫째를 괴롭힌다. 셋째는 혈육인 둘째를 귀찮아하고, 둘째는 셋째에게 꼼짝 못 한다. 도대체가 서열을 알 수 없달까....


사이 안 좋은 게 다는 아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첫째는 방광염을 달고 살고, 때때로 새벽에 응급실을 찾아가야 할 만큼 위태로운 순간이 닥쳐오기도 한다. 약은 하루 두 번 꼬박꼬박 먹여야 하고, 물 싫어하는 아이에게 하루 100미리씩 강수해야 한다.

셋째는 첫째한테 가끔 물린다. 주로 등에서 허벅지 사이 어딘가를 물리는데, 날카로운송곳니가 제대로 박히면 꽤나 큰 구멍이 뻥 뚫리고 그 안에 고름이 들어찬다. 소염제와 질켄을 먹이고 고름을 짜내는 일을 한동안 반복한다.

둘째는 언젠가부터 식이알레르기가 생겼다. 아직 원인을 분명하게 알 순 없지만 가금류 알레르기로 추정하고 있다. 닭고기 성분이 들어간 사료는 철저히 배제해야 하고, 고단백 사료를 먹이면 장이 반응하기 때문에 조단백 함량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서 가장 거대한 둥냥이라(차마 뚱.. 이라곤 안 할게) 저칼로리 사료인지도 꼭 따져서 구매해야 한다.


입양을 결심하기 전 고양이 셋과 함께 한다는 전제로 인생 계획을 세우고, 내가 적합한 집사일지 객관적 시각으로 검토하고, 이들의 평생을 책임질 수 있을지 스스로 점검하고, 그밖에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고려했다... 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가끔 고양이들을 붙들고 물어보고 싶다. 이래도 행복하냐고. 종종 삶에 지치면 이 모든 게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너흰 괜찮냐고. 난 앞으로도 부족하기만 한 집사일 것 같은데 그래도 나랑 사는 게 좋으냐고. 너희 덕분에 쉽게 행복해지지만 너흴 행복하게 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집사 몸이 침대인 첫째(고등어)랑 집사 침대가 자기들 침대인 둘째(치즈), 셋째(삼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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