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관하여

기분이 나빠서 그랬어

by 유병천
감정은 의도와 해석이다.


기분 (氣分) 대상ㆍ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표준국어대사전


"기분이 좋아!"


기분이라는 단어의 표준어국어대사전을 보면 한동안 지속되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라 모두의 기분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작품을 감상할 때도, 사람을 마주할 때도 각자 다른 감정이 마음에 피어오른다. 단어의 뜻을 살펴보더라도 기분을 만드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경험한 개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의도가 없는 말에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는 이유는 자신의 해석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간혹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는 경우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화를 내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은 상대의 화를 돋울 의도가 없었다는 말과도 같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건 감각의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다. 감각적으로 기분이 좋고 나쁜 상태를 인지할 수 있지만, 감각적으로 이유까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유는 논리의 영역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례한 사람으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 무례한 말이나 행동을 들었거나 봤다면 이유까지 알 수 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무례한 말을 들었다면 다른 한 사람은 모를 수도 있다. 타인으로 혹은 어떤 대상으로 기분이 나빠진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은 감각적인 영역으로 제한된다. 다시 말해서 논리적인 영역인 이유까진 알 방법이 없다.


"요리하는 사람이 너무 더러워서 밥맛이 떨어졌어."


원인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기분이 나빠진 이유를 감각적으로는 알더라도 논리적으로 모르는 상태를 피할 수 있다.


지나치게 타인에 관하여 민감한 사람의 경우 자신만의 생각으로 미리 결론을 내리고 소통하는 경우도 있다. '저 사람은 기분이 나쁘군.' 특별한 의도가 없이 무덤덤하게 대답할 때라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도 눈빛이 기분 나빠 보인다고 말하는 사례도 있다. 물론 인간은 언어 이외에 메타 메시지로 소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에 관해서는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처럼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에피소드마다 눈빛만으로 상대의 기분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눈빛만으로 상대의 의도를 판단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표정이나 말투로 기분 나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 오히려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다.


"아니, 그걸 왜 몰라요?"


표정이나 말투에서 상황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의도까지 알아차려야 비로소 공감할 수 있다. 관심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하거나 무표정하게 있을 때가 있다. 잘 아는 사람의 경우엔 관심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상대를 무시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말처럼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일상을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는 부부나 직장동료 혹은 친구 사이라고 해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지만, 타인의 말, 행동, 표정 등에 자신의 해석이 더해진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사건을 보고 같은 해석을 더한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지만, 다른 해석을 더한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혹은 한 마디의 말로 관계가 틀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얄팍한 관계라 고백하는 것이다. 두터운 신뢰가 쌓였다면 한마디 말로 사이가 틀어지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다만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기분에 매몰되어 상대를 몰아가면, 구십구 퍼센트의 확률로 상대도 기분이 나빠진다. 냉정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쌓아온 감사의 마음과 교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나쁜 기분을 가라앉히는 것은 오랜 신뢰 관계를 쌓는 것보다 쉽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기분에 우선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관계의 깊이를 생각하는 관점이 매몰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상태이기도 하다. 사회생활 중에 가끔 만나는 사람의 경우에 깊은 신뢰를 쌓은 관계는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초반에 좋은 면만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자주 만나면서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태도로 인하여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분 나쁜 말 한마디에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몇 번 만났다고 해서 친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경우가 이런 사례를 자주 만들어낸다.


특히 경험을 중시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에겐 에피소드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자신에게 잘해줬던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인데,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자신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다. 이런 유형은 타인의 관계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하여 무관심하는 경우가 많다. 관심 없는 사항에 마음 쓰는 것보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편할 뿐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유를 만든다.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나 잘해주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사실관계를 알아보거나 현상을 파악하기 전에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해관계가 없는 좋은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잘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잘해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행동에 기분이 나빠지는 것처럼 여기서도 의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의도를 가지고 잘해주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 의도로 인해서 다시 기분이 나빠질 확률이 높다. 의도를 파악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고, 불편한 일을 겪고서야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다.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의도를 지닌 불편한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좋은 사람이 멀어질 수도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생기는 마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에겐 '또 늦는군'이라는 생각이 들고 단 한 번도 늦지 않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개인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결국엔 모두가 싫어하게 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의사결정의 순간에는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분에 매몰되어 소중한 관계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과연 기분 좋은 일일까?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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