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것에 관하여
인간은 과연 의지의 존재인가?
흔히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 즐겨 찾는 탁구장에서 이벤트 경기를 진행했다. 탁구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복식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고안한 행사였다. 탁구 복식경기는 파트너와 공을 번갈아 가며 치는 규칙이 있다. 서브를 넣으면 복식 파트너가 다음 공을 편하게 칠 수 있게 빠져준다. 이벤트 경기에서는 이러한 탁구 규칙을 무시하고 테니스나 배드민턴처럼 자신 앞에 온 공을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정말 오랜 기간 탁구를 즐겨온 참가자들은 경기 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경기를 시작했다. 신기한 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기존의 탁구경기 방식으로 몸을 움직였다. 서브를 넣고 자신의 앞으로 오는 공을 쳐도 되는데 한 발 물러서 파트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테이블 두 개를 붙였기 때문에 파트너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음 공을 치러 가는 파트너의 모습이다. 관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이러한 행동은 신기하게 예외가 없었다. 분명 규칙을 말했고 자신 앞에 오는 공을 계속 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안 하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파트너가 서브를 넣었고 상대가 공을 파트너 쪽으로 넘겼다. 조건반사처럼 나도 모르게 파트너 쪽으로 이동해서 공을 받아넘겼다. 물론 내 파트너도 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뒤로 빠져줬다. 다시 한번 관중의 웃음이 터졌다.
경기 중반까지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었다. 경기에 참여하고 관전하면서 스스로 바보가 된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 '인간은 과연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32명의 참가자가 모두 헤매는 모습을 보며, '인간은 의지가 아닌 습관대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닐까?' 수많은 자기 개발서에서 말하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일맥상통한다. 멋지고 성공률이 높은 자세를 만들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훈련해도 막상 경기를 진행할 땐 평소의 습관이 나온다. 잘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수없이 많이 했을 것이다. 그들은 꾸준한 연습 끝에 마침내 좋은 습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타인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게 안 되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혹은 반대로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걸 할 수 있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생각들 뒤엔 우리가 모르는 남다른 노력이나 인내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습관을 만든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눈물과 땀방울이 숨겨져 있다. 신산(辛酸)한 세상살이를 이겨내는 힘 역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경기였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