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상록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이 나아지려면

by 유병천

목소리, 키, 내장 기관 등 타고난 것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분석해 주는 서비스도 유행한다. 운동능력이 뛰어나고 술에 대한 해독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잠을 잘 자는 사람, 근육이 잘 발달되는 사람도 유전자 분석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유전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선천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몇 가지 타고난 유전자의 영향을 제외하고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더욱 많지 않을까?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에 유전자 탓으로 돌려버리곤 한다. 노래를 멋지게 부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가 그렇고 운동을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가 그렇다. 가수나 프로 운동선수처럼 잘하길 바란다면 타고난 유전자 없이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노력으로 어느 정도 즐길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


노래나 운동이 아닌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에도 유전자의 영향이 있을까? 혹자는 공부를 잘하는 유전자가 있을 거라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후천적인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다. 언어를 배우고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문해력이 나아지진 않는다. 한 분야의 책을 처음 접할 때 낯선 단어들로 인해서 읽는 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가며 뜻을 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이 쌓이면 낯선 단어들이 익숙해지고 문맥을 이해하는 것에 능숙해진다. 독서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의사는 의사의 단어를 사용하고 법률가는 법률가의 단어를 사용하고 프로그램 개발자는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한다. 다른 분야 전문가의 문장을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분야의 단어는 숙달되면 이해가 용이한 반면, 문학의 경우에는 작가마다 사용하는 비유와 상징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난해한 경우가 많다. 모든 문학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은 아마도 비유와 상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에서 상정한 시대적 배경이라던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상태 그리고 주변의 상태 등 많은 것을 알아야 납득이 되는 경우 많기 때문이다.


문해력이 나아지려면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 무협지만 읽은 사람이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알리 없고, 철학책만 읽은 사람이 강룡십팔장(무공의 이름)을 알리 없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유받더라도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경험적으로 20명 중 1명 정도가 자신이 인정하는 상대가 조언을 할 경우 실천하는 것 같다. 조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머리가 좋은 사람일까? 간절한 사람일까? 상상력이 풍부해서 경험하지 않고도 내면화할 수 있는 사람일까? 요즘엔 정말 많은 양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까운 도서관에만 가봐도 막대한 양의 책에 주눅이 들곤 한다. 따라서 좋은 방법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추천받는 것이다. 스테디셀러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어린 왕자> 같은 책은 몇 년마다 한 번씩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좋다. 자신의 상태나 처한 상황에 따라서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꽃은 덧없는 것이니까."
"덧없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지리책은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야. 그것은 절대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 없어. 산이 자리를 옮긴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고, 큰 바다의 물이 마르는 일도 역시 드문 일이지.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만 기록한단다."
"하지만 죽은 화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잖아요."
어린 왕자가 대답하려는 노인의 말을 막았다.
"그런데 덧없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불을 뿜어 대는 화산이나 뿜지 않는 화산이 아니란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산이지."
"그런데 덧없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한 번 질문하면 끝까지 답을 듣고 마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염려가 있는 것이란 말이지."

- 생택쥐페리 <어린 왕자> P94-96 도서출판 쿵(자화상)


리터러시는 먼저 자기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기 인식이 어려운 이유는 타인의 관점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의 자라온 환경이나 아픈 경험을 절대 알 수 없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 자신조차도 기분 좋을 때와 화날 때, 우울할 때, 좋은 사람을 만날 때, 불편한 자리에 갔을 때, 아플 때 등 상태가 다르다. 순간순간의 나를 온전히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성적이라거나 외향적이라는 표현을 퉁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관점이 점점 확장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리터러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사람은 자신의 생각으로 타인을 판단하는데, 결국 타인도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할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관점 이동이 어려운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상대는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군가는 상상력의 한계가 그 사람의 한계라고도 표현했다. 리터러시는 상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학의 역할 중 하나는 다양한 세상, 다양한 환경, 다양한 처지, 다양한 인물, 다양한 성격, 다양한 관점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삶밖에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을 상상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학작품을 통해서 문해력을 높이면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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