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을 사랑하기
살면서 힘든 시기를 지나게 된다. 힘듦의 종류와 크기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 알아주더라도 혹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신기한 건 힘든 시기에는 꼭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마음이 자라난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일까? 자신만 빼고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혼자 던져진 느낌.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지난 시간 돌아보기. 앞만 보고 달려가는 느낌이 든다면, 잠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지나온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말이다. 작가에겐 글이 있을 것이고 화가에겐 그림이 있을 것이다. 취미로 프라모델을 만든 사람이라면 자신이 조립한 프라모델이 있을 것이다. 사진가에겐 사진이 남아 있을 것이고 조각가에겐 조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로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주변에 어떤 사람이 남아있는지 돌아보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순간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면 잠시 그 자리에 멈춰야 한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 때 '위로'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준다는 의미의 단어를 떠올리기 전에 주변에 위로해줄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미움보다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개인화와 무관심은 다르다. 타인과의 소통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까지 더해져서 거리두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있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가상의 세계인 메타버스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타인과의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과연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도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삶이 힘겨울 때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주변의 사람. 그런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에게 시달려 지칠 때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나만의 속도로 홀로 산에 오르면서 변함없는 바위에 걸터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평온함을 느낀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나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엔 산보다 사람의 위로가 도움이 되었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고 느꼈던 때 평소 알고 지내던 아동문학 평론가 선생님이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마 그때 난 앞만 보고 나아가던 걸 잠시 멈췄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후로 주변의 사람에게 '안아주기'를 하고 있다. 나도 위로받고 상대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