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포스터!
1990년대 대학로나 신촌 거리에는 온갖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대학가이기도 하거니와 소규모 극장이 많았기에 이곳저곳 홍보를 위한 전단과 포스터가 손짓하였다. 한꺼번에 4~50장을 하트 모양으로 말고 한 장씩 뽑아(심장을 도려내듯) 붙이던 몇 번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당시엔 소위 붙이는 자와 떼는 자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전봇대나 구석진 벽면, 바닥타일, 공원 벤치, 계단, 철교 등 손이 가는 곳, 아니 눈이 닿는 곳이면 이유 불문하고 포스터가 찰싹 붙었다.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밤이 되어서야 흩날리고 덧대지며 뜯기고 떼지곤 한다.
힘이 풀려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비라도 오면 신발창에 붙어 바스락 안부를 물으며 한참을 같이 걸어야 했던 그 포스터들. 대표는 당일까지 남아 주길 바라겠지만 그럴 운명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만이 알만한 암호 같은 섭섭함을 청 테이프로 입막음하고 손을 주머니에 넣은 뒤 어디론가 향한다.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토록 필사의 노력을 다해 지키고 싶었던 포스터들은 난민의 지위를 얻고 재생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