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2013
그의 포스터!
1990년대 대학로나 신촌 거리에는 온갖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대학가이기도 하거니와 소규모 극장이 많았기에 이곳저곳 홍보를 위한 전단과 포스터가 손짓하였다. 한꺼번에 4~50장을 하트 모양으로 말고 한 장씩 뽑아(심장을 도려내듯) 붙이던 몇 번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당시엔 소위 붙이는 자와 떼는 자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전봇대나 구석진 벽면, 바닥타일, 공원 벤치, 계단, 철교 등 손이 가는 곳, 아니 눈이 닿는 곳이면 이유 불문하고 포스터가 찰싹 붙었다.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찬 새벽이 되어서야 찢기고 흩날리다 떼지곤 한다.
힘이 풀려 바닥에 수북이 쌓인다. 비라도 오면 신발창에 붙어 바스락 안부를 물으며 한참을 같이 걸어야 했던 그 포스터들. 대표는 당일까지 남아 주길 바라겠지만 그럴 운명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만이 알만한 암호 같은 섭섭함을 청 테이프로 입막음하고 손을 주머니에 넣은 뒤 어디론가 향한다.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토록 필사의 노력을 다해 남고자 했던 포스터들은 난민의 지위를 얻고 재생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