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위악과 재치 사이

검정치마 3집 part2. THIRSTY 속 여성혐오에 대하여

by 유해



무엇이든 쉽게 사랑하지만 깊게 집중하지는 못하는 성미 때문에 음악과 음악가들 역시 그런 방식으로 좋아한다. 넓고 얕은 취향에, 많이 듣는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딱히 어디 가서 자랑을 할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하는 정도. 꽂히면 꽂히는 대로 그 한 곡만 죽어라 듣는 탓에 앨범의 나머지 수록곡은 일 년이 넘어서야 마저 듣는 경우도 왕왕 있다. 누군가 너 얘 팬이라며? 왜 이 노랜 몰라? 하면 아 팬은 팬인데, 진짜 좋아는 하는데, 그건 아직 안 들어봤어(=아직 꽂힐 순서가 안 왔어)- 하고 대답하며 내가 들어도 납득이 힘든 희한한 방법의 덕질이라 식은땀이 날 때도 있다.


취향에 맞는 음악과의 조우는 150퍼센트 우연에 의한 것이라, 좋은 평에 떠밀려 내가 찾아 들었을 땐 ‘소문에 비해 별론데?’라고 생각하고 넘겨뒀던 앨범이 갑자기 몇 달 후 랜덤재생 중에 심장을 때리듯이 파고들어와 인생곡으로 자리 잡은 적도 많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콘서트의 초청 가수나, 누군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에서 리메이크해 부른 노래의 원곡 가수, 이런 식의 뜬금없는 경로로 치이는 경우도 꽤 있었고.

하지만 그런 게으른 취향과 게으른 연구의 와중에도 유난히 애착을 갖고 집중하게 되는 가수들이 있다. 국내 가수 중에서만 따져보자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온 칵스, 그리고 20대 초반의 감성을 다 내맡긴 김사월, 곽진언, 김일두, 검정치마, 쏜애플이다.


그만큼 더 좋아하던 검정치마의 3집 part2 thirsty에 대해 논하려 한다. 앨범 <thirsty>로서 조휴일은 그가 애초 예고한 3집의 장기·대형 프로젝트 중 2/3만큼의 결과물을 발표한 셈이다. 3집의 첫 타자였던 저번 열 곡이 예상보다 훨씬 듣기 좋았기에 나는 정말 많이 놀랐었다. 그냥 듣기 좋은 수준이 아니라 열 곡 중 대여섯 곡이 인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명곡이었기에 더 그랬다. 1집의 거칠고 모난 데다 공격적이기까지 한 솔직함, 2집을 관통하는 강렬한 서정성. 앨범마다 곡마다 휙휙 달라지면서도 ‘조휴일스러움’을 잃지 않는 그 일관됨이 그의 재능이라고 믿었었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고갈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해가 갈수록 자기 자신의 전작을 오마주하게 되고 마는 수없는 뮤지션들을 보아 왔기에 더 의심스러웠다.(자가 복제의 미미한 낌새가 보이자마자 과감하게 ‘아름다운 퇴장’을 택한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 앨범을 랜덤 재생시켜 두고 멜론 댓글창을 두근거리며 접속했을 때 내가 마주한 건 격한 감동이나 간증이 아닌 격렬한 논쟁이었다. 그 논란의 근원적인 원인인 검정치마의 가사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싶다.





1집 수록곡 I Like Watching You Go

"어느 아빠나 마음은 똑같겠지만", "난 니가 학교 가는 뒷모습이 너무 좋아" 등의 직설적인 가사가 의미하는 것이 미성년자 자녀와의 근친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물론 팬들은 '대학생 연인 간의 권태기를 표현한 거라고 조휴일이 직접 해명했다'라며 적극 쉴드 중이었지만...


궁색한 해명의 내용이 믿기지도 않을뿐더러, 더 분명하게 씀으로써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은근하고 애매한 뉘앙스로 처리한 것이 바로 그의 위악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문제적인 지점을 굳이 삭제하지 않는 것. 본인은 장난스럽게 썼을지라도 마치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듯한, 어린 딸을 로맨스의 상대로 보는 듯한 가사의 내용이 전혀 유쾌하지 않다. 근친보다도 사회 경험이 현저히 적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분명하게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어린 인간을 욕망하는 것이 더 문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곡의 멜로디와 조휴일이 이 곡을 위해 사용한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한다. 특히 "우리 누운 침대보엔 사막이 배겨있나봐"라는 가장 은유적이고 위험한 부분에서 조휴일이 목을 길게 놓아 우는 듯한 방식으로 노래할 때를 사랑해 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짜증스럽다. '아빠'를 '누구'로, '학교 가는'을 '걸어가는' 정도로 보편적인 사랑 노래인 척 뭉개놨다면,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여전히 명곡이라 생각하며 잘만 들었을 텐데. 작사가의 의도에 이렇게 개입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무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이 이 곡을 이루는 영감의 핵심인데 감히 터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만약 '미성년자 딸에 대한 성적 상상'이 근원적 모티브라면, 그런 작품은 그냥 없는 것이 낫다.




1집 수록곡 강아지

"우리가 알던 여자애는 돈만 쥐어주면 태워주는 차가 됐고"

이게 재치 있거나 문제없다고 느끼는 사람과는 대화도 하고 싶지 않다. 왜 항상 성 구매자와 실질적 판매자인 포주에 대한 비판은 쏙 빠지고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조롱만 있는지? 뒤의 가사도 보면 자꾸 자기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식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늙어서도 철없지만, 여자와의 성애적 관계는 꼭 갖고 싶은 나'로서 자아를 구축하는 이 문법을 그의 또래인 남성들 사이에서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1집 수록곡 Dientes

대체 왜 조휴일에게선 모든 앨범을 통틀어 '처녀'에 대한 집착이 이토록 강하게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에 어디서 데인 적이라도 있나? 처녀인 줄 알았던 여자가 알고 보니 아니어서 무려 '배신감'을 느끼기라도 했을까?



2집 수록곡 음악하는 여자

이 곡 역시 약간 불편하다는 일부 팬들의 지적에 나머지 남팬들이 들고일어나 '조휴일이 그림 그리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는데 음악하는 여자가 자꾸 무리하게 들이대서 화났던 경험을 살려 쓴 곡이다'라며 정말 궁금치 않은 tmi를 막 알려주던 사례. '동종업계 여자랑 만나면 얼마나 피곤할지 생각해봤냐' 따위의 같잖은 맨스플레인까지 같이 나오는 경우도 봤다. 알게 뭔가. 창작자의 연애사 따위 궁금해해본 적 없다(대체 어떤 경험을 했길래 이런 곡이 나오지? 하는, 명곡에 대한 감탄조의 궁금함은 물론 제외하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누굴 만났고 어떤 불쾌함을 겪어서 누굴 비하하고 싶었는지 그런 소상한 디테일이 알고 싶어지는 건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음악하는 여자'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또 재치랍시고 이용해먹은 게 몹시 거슬린다. 가사를 읽을 때는 잘 티가 안 나지만 곡을 듣다 보면 '나는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기 전의 호흡이 '시집 / 이나 보면서 뒹굴어 아가씨'로 끊어지는데, 음악하는 여자는 시집가기 편하다 혹은 애초에 그들이 음악을 한 이유가 시집을 잘 가기 위함이라는 지겹고 낡은 폄하의 말들이 참 익숙하지 않은지. 나는 조휴일 정도로 똑똑한 인간이 이걸 '의도치 않게' 만들어 냈다거나, 자기가 끊어읽고도 끝까지 뭐가 문젠지 눈치채지 못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이건 분명 재밌답시고 의도적으로 삽입한 경멸의 코드다.



3집 수록곡 광견일기

이번 앨범에서 가장 시끄럽게 논란이 된 곡. 보면 알겠지만 누가 봐도 연인과 떨어진 사이 '구매'한 여자와의 관계를 은유한 곡이다. 성매매에 대한 포용력은 엄청나게 크고 분노 역치는 거의 없다시피 한 수많은 남성들은 이 곡 또한 피의 쉴드 중이지만.






나는 그의 천재성을 사랑한다.


위에서 저렇게 물어뜯어 놓고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그의 능력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수많은 팬들과 같이 나 역시도 인생의 어떤 시기를 그의 노래에 기대어 지나왔으며 그런 식으로 마음에 박힌 노래들은 여간해선 싫어지지 않는다. 그의 가사는 대부분의 경우 김사월이나 쏜애플의 가사와 마찬가지로 가히 시와 같다. ‘피와 갈증’에서 지난 앨범의 ‘love is all’을 비틀어 인용한 부분은 단순한 답가가 아니라 마치 연작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사랑에 대한 태도도 성숙하고 능숙하기 짝이 없다.

'Fling; Fig From France'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랑에 있어서는 가장 현실적인 염세주의자 같지만('날 가지고 노는 걸 알아'), 그럼에도 그 신뢰도 보험도 없는 사랑을 가장 즐기는 사람('그래서 난 니가 좋아')이 조휴일이다. 그의 음악은 자기 자신의 천재성을 아는 사람다운 당당한 오만함이 묻어 나오고('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걸요' - 난 아니에요 / '가삿말에 진심을 담지만 사람들은 어차피 못 알아들어' - 음악하는 여자), 그 오만함이 거슬리지 않을 만한 근거가 되는 재능까지 동반한다. 관계에 있어서는 어딘지 찌질하고 쭈그러든 자존감과, 뮤지션으로서는 이만하면 날 꺾을 자가 없지 않냐는 노골적인 자신감을 동시에 갖춘, 기만적이고 매력적인 경계인의 자아.


다만 그의 가사가 그 여성관을 드러낼 때마다 항상 심정적인 거스라미가 생긴다. 멜론 댓글창에서 발견한 다른 여성 청자들의 평에 깊게 공감하는 이유다. 그는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나는 그의 음악을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없고, 그를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없다. 누군들 내가 속한 집단을 이토록 맹렬하게 비하하는 뮤지션을 상처받지 않고 지지할 수 있을까.

강아지, 음악하는 여자, i like watching you go, 이번 앨범에서 구설수에 오른 광견일기까지 – 조휴일이 여성을 대상화, 상품화, 타자화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문제가 되어왔다. 십센치의 '킹스타'가 이거 좀 위험한 것 아냐? 하는 우려와 불쾌감을 조성하면서도 ‘재치 있다’ ‘특이하다’는 말로 포장되어 알음알음 잘 팔리던 시대는 갔다. 이제 시대는 음악으로 자아를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도 응당 알맞은 감수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물론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 믿는다.


어떤 이들은 '검정치마는 항상 이런 식으로 노래를 써왔는데 시대가 바뀌었을 뿐이다'라며 지적에 대한 반박을 시도하지만, 나는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그는 약간이라도 바뀔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다. 나와 더불어 수많은 '오래된' 여성 팬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그의 가사에 상처받고 불편함을 느낀다고 표현해왔는데 왜 그는 자기 가사의 여성혐오적 측면에 대한 조금의 성찰도 하지 않는지 따지고 싶다. 그는 영리한 음악가답게 아무런 변화 없이도 자신(이라는 남성)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각했을까?



물론 조휴일은 고집 있는 일관성을 무기 삼는 음악가다. 때로 그는 이 모든 소란에 눈 감고 귀 막은 채 재야의 실력가로 행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만큼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쓸 건데, 어차피 노래만 좋으면 들을 거면서, 뭐 어쩔 건데' 하는 듯한 특유의 무덤덤한 태도에선 위악을 자처하는 천재의 4차원적 정신세계가 엿보일 때도 있다. 결과물의 완성도에 있어선 절대 비판받지 않을 것을 잘 아는 예술가가 '내가 이만큼 과감하게 시도해서 이 분야를 개척해 둘 테니 넓어진 폭 안에서 따라와봐라'라고 말하는 듯한 그 무관심한 태도. 하지만 그의 그 신념이, 고집이, 일관된 가치관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의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하고 공격하고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그는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져야 한다. 재치 있고 고집 있는 예술가의 이미지만을 취한 채, 자기가 생산한 예술이 올바르지 못한 사회적 관념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에서 쏙 빠져나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어쨌든 그의 음악을 사회에 내놓으며 인정받고 음반을 팔고 공연을 열고 돈을 벌며 상호작용 중이니 말이다.


그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기를 바란 적은 없다. 다만 '차이가 차별을 야기하는 구조를 그대로 놔두지 말라'라고 당연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페미충'으로 조롱당하는 이 나라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것도 물론 죄가 되는데, 조휴일처럼 적극적으로 편견과 혐오에 일조하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 게 옳을까? 사실 2019년에 아직도 겁 없이 저런 가사를 내놓을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신의 성별이 보장해준 권력임을, 그는 인지하고 있을까?


첨언하자면 '평소에 듣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물고 늘어진다'라는 일차원적인 조롱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그런 부정은 이제 효력이 없다. 나를 비롯해 검정치마의 여성혐오를 지적한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그를 오래 알아왔고 많이 아끼는 팬들이다. 글의 서두에 저토록 장황하고 불필요한 ~나의 음악취향 설명~을 늘어놓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는 정말로 조휴일을 애증하는 팬이다. 그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갑자기 달려든 메갈련'이 아니라. 그리고 나는 그런 무논리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검정치마에게는 여혐에 대한 일관성이 있다. 이것은 비약도 망상도 아닌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물론 그의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고 그를 마음 놓고 덕질하고 싶지만, 그의 너무나도 한국적인 남성성 - 자조라고 포장되는 비겁함, 수동적 공격성 - 이 불거지는 순간마다 집중은 깨지고 애정은 식을 수 밖에 없다.


과거에 그의 가사를 지적했던 사람들은 '일부만 보고 맥락을 못 본 채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간 유구했던 검정치마 작품세계의 여혐적 맥락을 가장 현명하고 민감하게 잘 읽어낸 사람들이다. 여성혐오적 가사가 그의 음악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조휴일과 천박한 여성관은 떼어놓을 수 없고, '내 여자'와 처녀 / 창녀와 남의 여자와 쉬운 여자를 그토록 명확하게 분리해놓은 그의 정신세계는 분명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올바르지도 않다. 시대에 따라 도덕은 항상 변화하니까 그의 음악도 지금의 구설수만 넘기면 다시 '문제없다'라는 평가를 받으리라고,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PC함은 겨우 그 정도로 가볍고 가변적인 것이라고 우기는 남성들도 많겠지만. 과연 그럴까? 성차별이 당연한 시대가 과연 다시 돌아올까? 인류가 과연 그렇게 퇴화할 정도로 모자란 존재들일까?


그렇기에 ‘페미들 몰려와서 지랄한다’거나 '피해망상 오진다' 또는 ‘예술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아라’ 식의 얕고 고민 없는 겁박을 일삼는 검정치마의 열렬한 남팬들이, 그리고 그들을 그대로 방관하며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무심한 소회를 남기기만 한 조휴일이, 또 한 번 실망스럽고 아쉽다. 예술과 도덕에 대한 지리멸렬한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화두였으나, ‘예술에 윤리적 잣대를 적용하지 말라’는 제언은 왜 항상 남성 뮤지션을 보호하는 핑계로만 사용되는지 묻고 싶다. 아닌 말로 슬릭 등의 용감한 여성 아티스트가 검정치마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과 동일하게 연애 상대인 남성을 묘사했다면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알던 남자애는 상냥한 여자만 보면 바지를 내리는 개가 됐고' 따위의 가사를 쓰는 여성 뮤지션을 상상할 수 있는가? 분노한 남자들에게서 살해 협박을 받는 모습이 곧바로 그려지지 않는지. 그런 식의 비판 또는 조롱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쪽에 서 있는 기득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들이다.


검정치마가 이토록 쉽고 잔인하게 여성을 대상화하고도 안전하게 '생존'할 뿐만 아니라 보호받고 추앙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남성만이 쉽게 인정받고 쉽게 용서받는 이 사회의 카르텔, 우리 모두가 기여했고 남성들이 죽을힘을 다해 지키고 있는 카르텔 때문이다. 검정치마를 비롯한 인디 씬의 여러 남성 뮤지션들이 그들의 언행에 있어 범죄와 장난의 경계, 희롱과 무심함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는 와중에 조휴일만큼 당당하고 노골적으로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사람이 여전히 '팔린다'는 것. 심지어 몹시 잘 팔리고 그것이 이 판에서 그에게 상당한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 최근 불거진 인디 씬의 여러 사건들이 겹쳐져 떠오르면서 씁쓸해진다.



그는 분명 더 아름답고 문제없고 보편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 지난 3집 파트 1처럼.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무심한 도발을 던졌고, 나는 자신의 저급한 성차별주의를 위악과 재치처럼 포장해 팔아먹는 이 뮤지션에게 아주 상처받았다. 아직까지 이만큼 뒤떨어진 채로, 그 뒤떨어짐을 예술적 감수성이라고 포장해 내놓으며 뭇 남성들의 영웅 취급받는 그가 몹시 괘씸하다. 그것이 만약 의도된 도발이 아니라 그의 진심 그 자체라면 더욱 문제적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남성 팬들이 그토록 염불을 외는 '진정한 팬'이 할 일이라면 '우리 형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식의 유아적 방어보다는 비판과 보이콧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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