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정규 3집 [헤븐]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잃은 것들은 유난히 더 진한 미련으로 남아있다.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영영 잃어버려도 그때처럼 세상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진 듯한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뭔가가 좋아져도 ‘너무’ 좋아지지 않고, 거부당했다고 해서 나를 내다버리고 싶을 만큼 막막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포기를 배우면서 나는 자기방어에 능숙한 사람, 그러니까 ‘보통의 어른’이 되어가고, 내 잘못을 너무 심하게 자책하거나 남의 잘못에 너무 크게 실망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내가 더 완전했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 손상되기 이전의 나.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나. 아니 더 정확히는, 깨지는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래서 겁이 없던 나. 100% 사실도 아니고 되찾을 수도 없고 되찾을 필요도 없는 그것을 나는 여전히 죽어라고 그리워하고, 그때 잃어버린 것/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완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헛되이 기대한다. 그게 나를 죽도록 쓸쓸하게 만들고, 미치도록 슬퍼지게 한다.
-와 함께 있을 때만 완전해지는 기분이었다고. -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완전했었다고.
김사월의 음악은 그 허상의 결핍감과 가장 깊게 연루된 세계다.
손상되지 않은 나-를 찾아 헤매는 것이 유일하게 기록된 역사라면, 김사월의 노래는 그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접촉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고 포옹하고 싶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 그로써 가뿐해지고 싶은 욕구. 그걸 채울 수 없어, 닿을 길이 없어 더 애가 타고 서러워질 때마다 김사월은 한 치의 틀림도 없는 구도자처럼 근거리에 자리한다. 손에 닿는 유일한 생기로 거기 가만히 가라앉아 있다.
4년 전 도심을 지나는 버스에 실려 패잔병이 된 기분으로 귀향하다가 ‘접속’을 처음 들었을 때. 3년 전 타국의 인기 없는 관광호텔 욕조에 누워 시신 인도 절차 따위를 생각하다가 ‘어떤 호텔’을 들었을 때. 2년 전 매일같이 사람과 돈에 시달리며 내일 아침엔 부디 죽어있길 기도하던 밤길마다 ‘세상에게’를 들었을 때. 그럴 때의 강렬한 충격, 드디어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거한 착각, 내가 답 없는 사랑을 아무리 계속해도 이런 노래를 하는 이 사람보다 끈질기지는 못할 것 같다는 묘한 안심과 경외. 김사월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분명 나의 어떤 부분들이 망치로 얻어맞은 거울처럼 깨부숴졌고,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로부터 분리당했고, 내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란 걸 가장 절절히 체감하는 동시에, 진정했다. 혼자서는 두려워서 다 해낼 수 없던 직시와 비관을 김사월이 너무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탓에.
그렇게 느낀 것이 비단 나뿐일까. ‘누가 날 이해할까’와 ‘내가 누굴 이해할까’(새)의 간극. 그곳에서 사람들은 끝없이 비통해지고, 김사월은 그 구덩이에 그저 함께 빠져 있는 음악가다. 그는 자기 불운을 소화하기 바빠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섣불리 누굴 구원하려 하지 않는 무감함이 오히려 더 편안하다. 사랑을 느끼고 그 때문에 상처받는 일의 보편성 때문에 김사월의 불행도 나의 불행도 모두의 불행 속으로 섞여든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가치 없어진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그는 어떻게 이런 음악을 할까’ 따위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낼 뿐이다.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정답고 포근하고 달콤해 보이는 공간,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내 쪽에서 미리 몹쓸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 죽도록 미워지는 공간. 김사월의 정규 3집 ‘헤븐’의 정의가 이런 것이리라 멋대로 투시하면서, 그 근거로 발견하는 것들은 ‘잠깐’과 ‘순간’의 고집스러운 반복이다. ‘순간’은 잠깐이다. 지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때문에 그 찰나에 응축된 미련의 역사는 어마어마한 점성을 자랑한다. 너와 나의 역사. 억겁 같은 너와 나의 역사. ‘순간’을 놓치는 순간 한 사람의 생애는, 모조리 그 ‘순간’을 곱씹는 일로 수렴하고 만다. 모든 원망의 귀결 역시 그 ‘순간’이 된다. 그렇게 구원에서 탈락한 인간, ‘순간’에 발목을 잡힌 인간은 새로운 순간에의 응시조차 과분한 자기 처지 때문에 차라리 그 ‘순간’이 바로 천국이었다고 스스로 세뇌하기를 택한다. 도래한 적 없었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천국은 ‘이미 지나간 순간’으로 치환당한다.
김사월의 정규 1집이 내성적인 사람의 일기를 훔쳐 읽으며 그의 죄악감과 후회가 나의 것과 닮아 있다고 느끼는 동화(同化)의 과정 같았고, 라이브 앨범 7102의 정서가 주로 자기파괴적 무력감이었고, 정규 2집이 기묘하게 희망적인 외로움과 차차 돌출하는 소유욕과 여전히 가장 강력한 힘인 비관을 뒤섞은 마블링의 색채였다면. 이번 3집은 바로 이 ‘순간’의 시간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들어낸 사랑’은 ‘너무 오래전에 끝난’ 사랑이라고 스스로 선고한 여생(확률)에서, 종종 찾아오는 탈주의 기회는 ‘기쁨이란 잠깐’(일회용품) 이란 말로 경쾌히 부정당하고, 지금-여기의 현실이 아니라 ‘방금 전 이 세상에서 사라졌’던(사상키) 것들만이 재고의 기회를 얻는다. 노래들의 화자에게 진짜로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과거의 ‘노랗게 빛나는 순간’(나방) 뿐이다. 그러나 과거가 언젠가는 현재였듯, 현재도 금세 과거가 될 것이므로 사실 그가 조소하며 지나 보내는 지금-여기 또한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순간’에의 집착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고, 화자 역시 그 모순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하고 ‘자신을 잃어버린 자는요, 이미 끝났으니까’(교환)라고 답한다.
이토록 아집 같은 사랑. 마치 내장처럼 끊어지지도 않고, 너절하고, 징그러운 사랑의 단면을 낱낱이 펴 길가의 응달에 말려둔 비비 꼬인 이야기꾼. 글 쓰고 노래하는 시인이 계속 이야기를 하려면 영원히 지나간 순간에 집착해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지나간 순간에 집착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를 쓰고 읽고 부르는 시인이 되는 걸까. 때론 짓눌리고 때론 포박하며 영영 떨어지지 않을 ‘순간’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성실히 노래하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자주 안도한다.
김사월의 곡-세계가 더욱 귀한 이유는 그의 곡들이 연작처럼 기능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뿌리를 촘촘히 얽어놓고 동일한 수원에서 가사를 길어올리는 나무들처럼, 김사월의 곡들은 단 하나도 홀로 존재하는 법이 없다. 김해원, 윤중, 신해경 등과의 협업을 포함해 정식 발매된 곡만 70여 개를 넘어가는 지금, 이전에는 혼자 동떨어졌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던 곡들까지 이 간결한 세계 속으로 무사히 포섭되는 것을 확인하고 또 안도한다.
완벽한 사랑이 어디에 있다고 그것을 찾아 헤매는지 자조하는 일(완벽한 사랑 – 세상에게 – 엉엉), 용서하는 것도 용서하지 않는 것도 불가능한 사람에의 저주(새 – 지옥으로 가버려 – 그녀의 품), 그 용서를 내가 남에게 구할 때의 덤덤함(악취 – 접속), 이미 버려진 후에 혹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쓸 때 악착같이 자극하는 미련(콧바람 – 그리워해봐 – 사바스), ….
새로 내보인 곡들 역시 이 단단히 엮인 간절함의 그물로 모조리 잡혀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찾는다.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가 한층 더 강렬하고 풍부해져 마치 그루비한 재즈 같은 분위기를 내는데, 덤이라고 하기엔 너무 대단한 선물이다. 낮은 포복으로 조용하게 야금야금 다가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쾅 눈앞에 도달해 있는, 김사월의 방식으로 확장된 세계.
그 세계를 한꺼번에 주파하는 일도 황홀하고 귀해서, 한 곡 한 곡 만나가며 받은 첫인상도 급하게나마 메모해두었다.
01 일회용품 | 사운드 클라우드를 안 써본 나로서는 유일하게 미리 들어본 곡이었다(아마도 2019 김사월쇼 때). 반가워. ‘기쁨이란 잠깐’의 명랑한 반복이 여전히 마음을 철썩철썩 무너뜨린다.
02 스테이지 | 1집의 ‘수잔’과 김사월 산문집의 탈코르셋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는, 어쩌면 이 앨범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정치적(정말 이 단어는 쓰기 싫었는데 내 어휘의 한계다)인 노래. 드럼+베이스가 미쳐 돌아가요…
03 교환 | 잔혹동화 모티프?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취향과는 가장 멀었다. 이 곡까지 듣고 역시 가뭄에 콩 나듯 안 맞는 곡도 있나 싶어 잠시 풀 죽을 뻔… 계속 듣다 보면 금방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04 도망자 | 굉장히 그루비하다. 마지막 드럼 롤*4로 급작스러운 종결이 좋다. ‘용서해 주세요’(접속)에서 ‘나는 용서할래요’로, ‘도망치는 건 이미 수준급’(새)에서 ‘가장 먼저 도망가는 사람은 내가 돼야 해요, 남겨지는 건 당신이어야 해요’로. 점점 더 정면으로 부딪혀온다.
05 나방 | 버텨보려고 애쓰다가 ‘노랗게 빛나는 순간이었었지, 순간이었었지’에서 완전히 함락이었다. 역시나 가장 조용하고 우울한 곡에 가장 먼저 빠져버렸읍니다. 이미 오래전에 져버린 마음을 자꾸만 현재로 끌어오는 사월의 1집이 구현했던 사랑, 섹슈얼리티의 매개가 향기와 악취였다면 3집의 심상은 노란 불빛 아닐까. ‘까끌한 반팔 노란 불빛, 자정이 오는 색깔과 소리’(향기)부터 예고된 ‘노란 불빛’을 좇는 버릇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8월 밤의 고백’에서 이미 그날 다 헤어진 그일까,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에서 가망 없이 잠들어있을 너일까.
06 내가 사랑할 그 사람은 | 이랑의 노래 ‘평범한 사람’이 떠오르는 곡. ‘모두 널 사랑할 거야 내가 널 사랑하니까’에 담긴 건 내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자조일까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널 누가 감히 사랑하지 않겠느냐는 방자함일까.
07 확률 | 사랑 지겨운 사랑을 김사월은 질리지도 않게 말하네… 약간 라나 델 레이 생각나기도 하는 레트로 팝+보사노바 같은 선율이 가사보다 먼저 들린다. 선공개된 곡인데 사월은 언제나 싱글컷 고르는 솜씨가 탁월하다
08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 그야말로 타이틀. 그 자체로 자기완결적. 더할 말이 없다.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의 서문을 운 좋게 이 노래 들을 때 함께 읽었네.
09 오늘 밤 | birdy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피아노곡으로 재탄생한 복수의 언어들. ‘너의 차가움을 잊지 않게 해줘 너의 침대에 저주를 보내서…’ 곡 자체의 임팩트는 내겐 좀 약했는데, 참 꾸준한 저주만큼은 정다웠다.
10 헤븐 | 익숙한 김사월만의 자괴와 동경. ‘아름답고 무례한 사람의 말을 순순히 따르며’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사랑에 또 빠져버리고 마나 생각했더니 곧바로 ‘나도 누구도 세상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죠?’라며 찔러오는 서늘함. 2집 키스의 무력함과 닮은 엷은 목소리와 묵직한 드럼 조화가 특히 좋아. 나방 다음으로 좋아.
사바스의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널 떠나지 않을 거야’란 가사가 참 묘하다고 친구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네가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널 떠나지 않을 거란 약속. 바꿔 말해 내가 떠나지 않으면 넌 계속 행복할 것이란 확신. 내가 널 떠나도록 놔뒀다간 넌 대번에 불행해질 거란 경고. ‘넌 혼자 남게 될 거야’가 협박으로 들릴 정도의 완고함. 대체 어디서 이런 오만방자한 확신을 얻는가? 어떻게 이런 말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할 수가 있는가? 우리는 약간 경외감을 느끼면서 최근의 김사월이 전시해 준 사랑은 전반적으로 뻔뻔하리만큼 당당하고, 두려우리만큼 발칙한 어조로 말해진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건 거의 가스라이팅이 아니냐고, 이걸 남자가 불렀다면 우리가 어떻게 느꼈겠느냐고, 이런 확신에 찬 말은 여태껏 남자만 쓰는 줄 알았다고, 남자에게만 허락된 줄 알았다고, 그런 말들을. 더 정확히는, 남성 화자가 발화했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으로 교묘하게 작용했던 언어를 김사월이 써주니 너무나 좋았다고.
우리가 ‘교묘하다’ 또는 ‘가해의 언어 같다’라며 경험적 공포를 상기하면서도 전복의 쾌감을 짚어냈던 사월의 최근 음악들은 확실히 시퍼렇고 육중한 데가 있다. 한 축에 후회와 죄책감과 비관과 미련과 자해가 있다면 다른 한 축엔 서늘한 저주와 비소가 있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후자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이것이 과연 사랑 노래가 맞는지 헷갈릴 법도 한데, 여전히 확고하게 보편적인 사랑 노래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신기한 재능이다. 끈질긴 사랑 병든 채로 사랑 비웃으며 사랑, 하는 김사월의 ‘순간’은 그래서 대체 뭐였을까. 누구였고 언제였고 어디였을까. 응당 그의 몫이어야 했지만 영영 잃어버린 사월의 헤븐은. 나는 그게 궁금하고, 알고 싶지는 않다. 김사월의 음악은 아직 내가 잃어버리지 않은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에.
이 앨범이 결국 내게 냉랭함이 아니라 노란 불빛의 따스함으로 남은 건 (5번 트랙 나방의 몫도 무척 크지만) 김사월이라는 인간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 때문일 테다. 그는 평생 회의하겠지만 그럼에도 가망 없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신뢰, 저주하는 동시에 용서할 수 있는 어지러운 마음의 혼란까지 품을 줄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신뢰. 가사가 파멸과 방황뿐일 때 경쾌한 선율을 듣고, 선율이 한없이 침잠할 때 가사의 건조함을 찾아내다 보면 그냥 그렇게 믿게 된다.
덧) 우연찮게 임솔아의 시집, 김사월의 헤븐, <피리 부는 여자들> 중 서한나의 ‘끝나지 않는 춤을 추고’를 한꺼번에 읽고 듣는 호사를 누렸다. 좋아하는 시인 중 김사월과 어울리는 건 김이듬과 허연일 거라고 단정 짓곤 잊어버렸는데 임솔아도 꽤 잘 어울렸다. “잠 안 와서 힘들지”. 눈 감고 하는 그 말에 니가 날 사랑하는 줄 알았네.(서한나, 82쪽) 같은 문장은 말할 것도 없고. 며칠을 허덕이며 소화하고 나니 나도 간만에 애써 사랑을 하고 싶네. 애쓰는 사랑을 계속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