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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03. 2020

바뀐 사회적 통념만큼 아쉬움이 남는 리메이크

영화 <작은 아씨들> 시사회 참석 후기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루이자 메이 올콧의 고전 소설을 기반으로 여섯 번째 영화화된 작품이자, 2020년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후보 중 유일한 여성 감독의 작품인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의 개봉 전 시사에 다녀올 기회를 얻어 다녀왔다. (시사회에 뽑아주신 Kino Lights에 감사.)







원작 소설은 총 4부로 나누어 출판되었으며, 1부에서는 메그 · 조 · 베스 · 에이미 마치 家의 네 자매의 아버지가 전쟁에서 돌아오고 메그가 결혼하는 지점까지, 2부에서는 메그의 결혼 이후 결혼생활과 뉴욕으로 옮겨가 작가가 된 조의 이야기,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는 베스와 에이미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출판된 3 · 4부는 자매 중 둘째인 조의 두 아들의 이야기로 <작은 신사들(Little Men: Life at Plumfield with Jo's Boys)>, <조의 아이들(Jo's Boys and How They Turned Out: A Sequel to "Little Men")>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 네 개의 파트 중 네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1부와 2부의 이야기를 교차로 배열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소설을 팔기 위해 원고를 들고 출판업자를 찾아가는 조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2부를  읽지 못했던 관객들이라면 의아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후기를 쓰고 있는 나도 1부 소설만 읽었지 2부의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봤다.) 그래서 소설의 2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좀 더 집중해서 영화를 볼 필요가 있다. 계속해서 현재-소설로 따지면 2부의 타임라인-와 7년 전-소설로 따지면 1부의 타임라인-의 이야기가 교차되기 때문에 시간의 교차 구성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내용을 이해하기 버거울 듯하다. 영화를 자주 보고, 교차 구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무척 만족스럽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원작 소설처럼, 담담하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극적인 장치도 없고, 드라마틱한 위기나 절정을 맞이하지도 않는다. 마치 관객들 가까이에 있을법한 가난한 딸 부잣집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것처럼(이 딸 부잣집의 유일한 남자인 아버지가 어디 중동 파병이라도 갔다면 정말 비슷하지 않을까...). 원작 소설의 작가인 올콧을 모델로 한 둘째 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 


다만 이 영화가 이전에 영상화된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은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이야기인 여성 인권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주로 둘째 조와, 같은 이름을 가진 대고모 조세핀 마치의 대사로 전달되곤 한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조, 그리고 여자가 경제활동을 해 돈을 벌 수 없으니 결혼을 잘하거나 자신처럼 부자여야 한다는 대고모 조세핀의 대화에서 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이렇기 때문에 여권이 신장돼야 하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론 영화의 배경인 1860년대에 비해 현재의 여권은 많이 신장되었지만...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의 존재감은 네 자매의 소꿉친구인 ‘로리(테오도어 로렌스)’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시피하다. 로리의 할아버지인 제임스 로렌스 또한 셋째 베스에게 피아노를 선물하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병간호로 자리를 비웠을 때나 조력자로 잠시 얼굴을 비출 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자매의 아버지 마치 목사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당연히 없는 사람 취급이고, 돌아온 뒤에도 자매의 어머니인 마거릿에게 남들 앞에서 핀잔을 들을 정도로 그 캐릭터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로리만큼은 아니지만, 작가인 조 마치에게 조력자가 되어준 뉴욕 하숙집의 하우스 메이트 프리드리히 베어 교수의 경우는 조력자로서의 역할도 주어졌지만 또 다른 역할도 주어졌다. 베어 교수의 소설 평가를 부인하며 화를 내는 조의 모습에서 ‘여자는 남자의 평가를 필요치 않다’는 메시지를 심는 장치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아주 다른 종류의 영화지만, 영화 <캡틴 마블>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맞대결해보자는 욘-로그에게 “난 너에게 증명할 것이 없다.”던 캐럴 댄버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좀 더 섬세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 장면에서는 조의 글이 좀 더 좋은 글이 되길, 조가 좀 더 좋은 작가가 되는 데 자신의 평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베어 교수의 마음이 더 많이 와 닿았기 때문에... 냉정한 평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의 모습에서 건전하고 정당한 비평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집’이 보였으므로.



이 때문에 베어 교수와의 재회에서 갑작스레 커플로 맺어지는 것 또한 무척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졌다. 원래 원작에서도 로리-에이미의 결혼과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지만, 원작보다 나아졌다는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미가 로리를 오래전부터 좋아했지만 언니 눈치 보느라 티 내지 못했다는 복선을 심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리와 조가 쌓은 감정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에 로리-조 커플 탄생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그 때문에 조-프리드리히 커플 성사도 이상해 보인다. 


원작 소설이 출판될 때와 달리 결혼이라는 인생에서의 관문에 대한 생각이나 관념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이번 영화에서는 차라리 조가 처음 주장했던 것처럼 독신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땠을까. 그랬다면 거윅 감독이 이 영화에 녹여내고자 했던 여권 신장의 이데올로기가 더 확실하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지 않았을까. 원작의 틀을 깨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져간 한계라는 것은 알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 고전이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은, 그 시공간을 뛰어넘어 관통하는 공통된 메시지에 대한 가치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이번 영화 또한 그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꿈 많았던 눈부신 청춘 시절.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그레타 거윅은 예쁘고 반짝반짝한 캐릭터들과 장면들로 꾸며준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원작 소설을 읽던 꿈 많았던 청춘 시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또 감독의 전작 <레이디 버드>가 한 사춘기 소녀의 성장을 그린 영화라면, <작은 아씨들>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고전의 외형을 두른 채 마치 家 구성원들 모두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네 자매뿐 아니라 어머니 마거릿을 통해서도- 한 인간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성장을 그린다는 것 또한 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작은 아씨들
별점 : ★★★☆ (3.5개 / 5개 만점)
한 줄 평 : 그레타 거윅이 그의 페르소나 시얼샤 로넌을 통해 다시 한번 더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린 영화. 전작 <레이디 버드>가 소녀의 성장을 그린 영화라면 <작은 아씨들>은 고전의 외형을 두른 채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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