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는 23년차 덕후다. 예전엔 '빠순이'라는 멸칭도 많이 들었다. 가수나 배우의 팬일 때도 있었지만 어떤 장르 자체를 덕질할 때도 있었고, 어떤 방송 프로그램을 덕질할 때도 있었으며, 어떤 작품을 덕질할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덕질의 대상이 계속해서 바뀌거나 추가되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 지난 23년간 내 덕질전선은 늘 치열했고 나를 살아가게끔 한 원동력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의 성시원이 H.O.T. 의 팬픽을 쓰다 문창과를 가게 되고 방송작가가 되었듯, 실제 방송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수가 그와 같은 계기에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다. 글을 쓰게 된 것은 당시 베프가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는 걸 보고 '나도 한번 써볼까?' 하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지만, 방송작가에 대한 관심은 2003년 라디오 방송 청취자 게시판에서 활동하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쓴 사연이 방송을 탄 후 집으로 날아오는 청취자 선물도 좋았지만, 내 이야기가 진행자의 입을 빌어 생명을 얻어 불특정 다수의 청취자들에게 전해지는 경험은 할 때마다 짜릿했고 그런 희열이 받은 선물보다 더 좋았다. 해당 방송은 다음 개편 시즌 때 폐지되었지만 나는 그 이후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대학 전공도 미디어 전공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방송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내 진로를 정해준 건 라디오 프로그램 덕질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때 그 라디오 프로그램뿐 아니라, 첫 덕질 대상이었던 본진 최애 가수도 내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처음 집에 컴퓨터를 들이고 KT 인터넷 선을 연결해 두어 내 최애 가수가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들에 사연을 쓰기 시작했던 게 그 시작이었으니. 지금은 그런 소리 안 하시지만 우리 아빠는 “OOO가 내 딸을 망쳤다.” 는 말씀을 꽤 오랜 시간동안 하셨다. 아빠 입장에서는 공부 잘하고 있던 딸이 그놈의 아이돌 가수 때문에 한창 공부해야 할 때 성적이 떨어져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 생각하시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예전 본진 오빠들의 굿즈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아빠가 굿즈 불쏘시개 했거든... 공부하라고...^^ 작년 연말에 23주년 콘서트 갔다 왔는데 공연장에서 옛날 팬클럽 우비 입고 온 올드비들 보니 입이 쓰더라...^_T) 예전에는 그렇게 터부시 되던 덕질. 굿즈 불쏘시개를 비롯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나는 덕질을 끊지 않았다. 홈마가 되어 팬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TV 음악 예능 프로그램 덕질을 하면서 서울로 공방을 두 번이나 뛰었다.
덕질하며 알게 된 친구들과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 결혼식도 다녀오고, 아이 낳아 키우는 것도 보고... 만나게 된 계기만 다를 뿐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어떤 때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지낼 때도 있었다. 각자 살기 바빠 얼굴 못 본 지 오래된 친구들도 있지만 SNS를 통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근황 업데이트는 늘 하고 있기에 오랜만에 만나면 그저께 만났던 것처럼 수다를 떤다. 가장 오래된 덕(후)메(이트)는 20년도 넘게 알고 지낸 보조개가 예쁜 언니. 내가 오랜 시간 지방 안방순이로 살아서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은 이후에야 만날 수 있었는데, 처음 만난 건 알고 지낸 지 10년이 훌쩍 넘었을 때였다. 그날 우린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다른 분야를 덕질하는 친구들도 각자의 삶을 응원해 준다. 내가 첫 책을 출간했을 때 덕메들도 내 현실 친구들처럼 축하해 줬고 응원해 줬다. 지금 순간적으로 든 생각인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니 덕메와 실친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다. 덕질하다 알게 된 어린 동생이 직속 후배로 입학해 현실 친구가 되는 일도 있었으니까.
덕질로 얻은 게 커리어와 우정만은 아니다. 능력치도 올랐다. 포토샵이나 영상 편집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일찍이 독학으로 깨쳐 관련 수업을 들을 때는 학점도 잘 받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꽤 잘 써먹었다. 티켓팅 능력도 덕질로 얻은 산물이다. 현생 머글 친구들은 용아맥 명당자리를 겟하는 내가 용하고 신기하다고 하는데, 신기할 거 없다. 그보다 더한 티켓팅도 많이 했다. 요즘은 나이를 먹어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예전만큼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하지만... (아니 그건 매크로 쓰는 업자들 때문이라고 정신승리 해본다...)
이런 나의 덕질에 '뭐 저렇게까지 유난이냐'는 시선들을 보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내일모레 마흔이면 철 좀 들라고, 언제까지 그딴 '빠순이짓' 할 거냐고. 빠순이짓 그만두고 남자 만나 시집이나 가라고. 그런 이들에게 반박하고 싶다. 지금의 내가 있는 건 내가 덕후이기 때문이라고. 내가 덕질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라디오 게시판에 사연을 쓰지 않았을 거고, 작가도 되지 않았을 거며, 방송일을 하지 않았다면 팟캐스트도 만들지 않았을 거고, 전공도 하지 않은 클래식 음악으로 책도 쓰지 못했을 거다.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구절처럼,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덕질이다.' 덕질은 내 경험의 범위를 넓혀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하는 것을 찾게 해 준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쳇바퀴 굴러가듯 지루한 일상, 힘든 현생을 버티게 해주는 것 또한 덕질이다. 덕질로 엔도르핀, 도파민, 아드레날린을 공급받으면 또 한동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기니까. (돈 벌어서 또 덕질해야 하거든…^^)
오늘도 '파이팅 해야지' 하고 내 현생을 응원해 주는 덕질. 하든 안 하든 각자의 자유지만 남 덕질하는데 손가락질 하진 말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의 시 구절도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