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응집되었을 때의 힘을 믿어요
3n살이 되기 전의 나는 무척 급한 성격을 가진 채 늘 종종거리며 쫓기듯 살아왔었다. 아마 친구들보다 늦은 진학 때문에, 그리고 나이 때문에 타고난 성향에 더해 더 종종거렸던 것 같다. “너 네 동기들보다 2년 늦었다.”라고 채찍질하시는 아버지의 잔소리도 미미하지만 내 조급증을 더했을 거다.
그래서였을까,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 방송사에 모두가 알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늘 나 자신을 다그쳤다. 같이 일하는 취재작가들 중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과 가장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방송 날이 가깝지 않아도 회사 숙직실에서 잠든 날도 많았다. 늦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정받고 누구보다 빨리 입봉을 해야 했고, 누구보다 빨리 메인을 달고 싶었다. 그래서 몸과 정신을 갈아 썼고, 지금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단다.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공황발작을 일으켰으며, 이후 1n 년 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 대단한 회사를 그만뒀고, 우연한 기회에 기독교 방송국 클래식 라디오 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다. 기독교 방송을 나와서 종교를 가지게 됐으며, 팟캐스트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책을 두권이나 썼다. 강의를 하게 되었고 모교에 출강도 나갔다. 소속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 다 그렇겠지만, 내 노력에 결과가 절대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송국에 소속되어 있던 시절도 프리랜서였지만, 소속조차 되지 않은 프리랜서의 삶은 말 그대로 광야에 혈혈단신으로 선 투사와 같았다.
그렇게 광야의 투사가 된 지도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지 클래식> 팟캐스트 첫 에피소드 업로드가 2014년 5월 20일이니 올해 5월이 지나면 만 10년이 되는 셈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잊고 살고 있었다. 그저 당장 앞에 주어진 일들만 쳐내기도 급급했으니까.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게 된 것도 얼마 전 <꽃보다 할배 in 스페인> 편을 다시 보다가 신구 선생님께서 제작진에게 해 주신 말을 듣고서였다. 함께 촬영하던 스태프에게 CJ e&m 입사한 지 얼마나 되었냐 물어보시고 “10년은 묻어라.” 하신 그 말씀에 ‘나는 1인 크리에이터가 된 지 얼마나 되었나?’ 하고 세어보니 햇수로는 이미 10년이 지났고 만으로는 올해 5월 20일이 되면 10년이 되는 것이었다.
아주 가끔, ‘공황장애가 오지 않았다면’, ‘방송국을 뛰쳐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동기들이 메인 작가를 달기 시작한 지도 몇 년이 되었으니 나도 메인 작가를 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메인작가 타이틀을 달기 전까지 ‘내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온전한 내 창작물이라는 것은 가지지 못했을 거다. 광야의 투사 같은 외로움은 존재하지만 <이지 클래식> 만큼은 기획부터 구성 대본 진행 홍보 모든 것에 내 흔적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 없다. 아니, 내 흔적이 아닌 것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그러니 내가 혼자서 오롯이 빚어낸 85개의 에피소드와 두 권의 책은 오롯이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오랜 시간 클래식 길을 걸을지 모르지만 ‘작가’ 류인하로서, ‘크리에이터’ 류인하로서 계속해 살아간다면 <이지 클래식>이라는 이름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할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클래식 음악계의 마스터가 되진 못했지만 2015년 1월에는 아이튠즈 팟캐스트 한국차트 1위에 랭크되어 봤고, 2016년에 출간한 첫 책과 2019년에 출간한 두 번째 책에 베스트셀러 딱지를 붙였고 (중쇄도 꽤 했다. 우스갯소리로 하던 10쇄까지는 못 찍었지만) 팬데믹 전까지 클래식 음악 강의도 꾸준히 나갔다. 신구 선생님께서 꽃할배에서 말씀하신 ‘꿈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시간 10년’ 동안 전공자도 아닌 내가 거둔 성과라 하기에 과분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물론 부단히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많은 청취자와 독자들이 사랑해 주신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나서인지, 아니면 나도 나이 앞에 4자를 달아서인지, 혹은 크게 아프고 난 뒤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종종거리며 살지 않기로 했다. 온몸과 온마음을 부딪히며 뭐든지 빠르게 승부를 보려고 했던 20대와 30대처럼 살아갈 기력도 없지만, 그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 노력에 결과가 비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제 내 삶의 반환점을 도는 시기가 아닌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또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빠르고 쉽게 오는 것들은 빠르고 쉽게 가버린다는 것을 깨달아서이기도 하다.
신앙을 가지기 전 찾아갔던 철학관이나 점집들에서는 내게 ‘커다랗고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 같은 인생을 살 거라고 하나같이 얘기했다. 나무뿌리가 바위를 뚫어 뿌리를 내리고 아름드리 가지를 드리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고단하게 성장해야 할까. 요행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고 쉽게 뿌리를 내리는 꼼수를 쓰려다가는 바위가 박살 나 더 이상 뿌리내릴 곳이 없어져 뿌리부터 말라죽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 남은 생 동안 수적천석(水滴穿石)의 자세로 살기로 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말이다.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한 다음 10년 후의 내 모습을 정확히 그릴 수는 없지만, 지난 10년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