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한 시간, 6497일

나의 막냇동생, 복동아 안녕.

by 류인하

2008년 4월 13일. 마당의 꽃 냄새가 짙었던 그 밤에, 나는 현관 밖 의자에 앉아 친구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어. 내 방은 반지하라 3G 신호가 잘 안 잡혔었거든. 어둠 속에서 하얀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며 계단을 뛰어올라와 현관 앞에 있던 내 앞에 당도했지. 하얀 강아지 한 마리. 그게 너였어. 나는 깜짝 놀라서 현관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너는 그 자리에서 사람을 기다렸고, 외출하고 돌아오던 아빠로부터 밥을 얻어먹은 후 우리의 인연이 시작됐지.


집에 들어올 당시에 너는 귀털까지 예쁘게 잘 미용된 아이여서, 우리는 예전 주인이 소중한 너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어. 그래서 전단도 붙였는데... 아무도 연락을 해오지 않았어. 그리고 나중에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 동네 산책을 하다 이웃들에게 들은 얘기는... 네가 우리 집 근처를 떠돌아다니던 아이였다는 것. 그 얘기를 전해준 이웃들이 그랬어. “너, 가족 잘 찾아갔구나?” 이렇게 예쁘고 순한 너를, 전 주인은 잃었던 것일까, 유기했던 걸까?


2008. 4. 14. 이틀째 되던 날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 아빠는 ‘철수’라고 너를 불렀지만(나는 사람 이름이라서 싫다고 했어), 엄마는 동글동글한 너에게 ‘복동’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거 같다며(앞집 손자 태명이 ‘복돌’이라 그 이름을 줄 수 없으니) 그 이름을 붙여주었지. 그날 이후 너는 우리 집의 기쁨과 웃음 그리고 행복이 되었어. 할머니, 아빠, 엄마, 누나, 형아 다섯이 살던 집에, 우리 집 막내가 된 복동이, 너는 이름처럼 우리 가족에게 복을 가져다준 소중한 존재였단다.


동물병원에 처음 데려갔더니 수의사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만 1세에서 2세 즈음, 완전한 성견이고, 시츄와 몰티즈 같은 종이 믹스된 거 같다고 하셨었어.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하는 6500여 일간 생각했어. ‘너의 예쁘고 어렸던 소중했던 시절을 놓친 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고. ‘그 예쁜 모습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서 너무 속상하다.’고.


가족이 된 지 한 달이 채 되기 전... 마당에서 “복동아, 엄마한테 가봐라~” 하면, 엄마한테 쪼로로. “복동아 아빠한테 가봐라~” 하면 아빠한테 쪼로로. “복동아 물 먹고 온나~” 하면 수돗가 가서 물 벌컥벌컥 먹고 쪼로로 돌아오던 네 모습. 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당시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네 사진을 올리면, 누나 친구들이 ‘복동이 사랑받는 거 티 난다. 사진에 표정이 바뀌는 게 보인다.’고 하길래 처음 집에 들어온 후, 1주일 뒤, 한 달 뒤, 두 달 뒤... 차례대로 보니, 처음 찍힌 이틀째 사진에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경계가 눈에 묻어있더니, 1~2주 뒤엔 그런 경계 어린 눈빛이 사라졌더라.



가족 중 제일 좋아하는 건 누나, 다음이 형아, 그리고 아빠와 엄마, 할머니 순서. 그런 너에게 언제부턴가 형과 누나가 사라진 채 어쩌다 한 번씩 돌아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 뒤 형은 진학 때문에, 그로부터 또 1년 뒤부터는 누나도 취업 때문에 떨어져 살면서... 많아야 1년에 네 번, 적으면 1년에 두 번. 다니러 올 때마다 며칠만 곁에 머물렀지. 곁에 있는 며칠 동안은 함께 살 때처럼 목욕도 시켜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같이 놀아도 줬지만 그 며칠이 지나고 나면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가는 걸 너는 너무 잘 알았지.


짐을 싸서 현관 앞에 내놓기 시작할 때부터 가지 말라고 찡얼거리고, 누나와 형을 데려다 주려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은 귀신 같이 알아채던 너. 그 길에 들어선 걸 알면 뒷발로 서서 차창 밖을 보다가도 좌석에 내려와 엎드려 시무룩해지고... 고속버스 배웅 후 집에 오면 사료도 먹지 않은 채 하루에서 이틀을 우울하게 지냈다는 얘기에 어찌나 속상했는지. 분당과 서울 자취방으로 너를 데려오는 걸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비좁은 데다 밤에나 사람이 돌아오는 자취방 보단 넓은 마당과 옥상까지 오갈 수 있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 곁이 네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내 생각이지 네 생각이 아니었을 테니.



목욕하느라 진 빠진 너와, 너를 목욕시키느라 진 빠진 내가 같이 힘들어서... 너는 정해진 네 자리에 앉아 쉬고, 나는 내 자리에 누워서 낮잠 자다 깨어보면 내 옆구리에 몸을 웅크린 채 내 온기를 느끼려 했던 기억... 아침이면 일어나 온 집안 마당 구석구석 영역표시를 하겠다고 찹찹 발소리를 내며 뒤뜰과 옥상으로 가기 전, 내 방 창문 근처로 와 웅웅 거리며 아침 인사를 나누던 네 모습...


내가 본가에 내려가면 꼬리펠러를 흔들다 꼬리가 떨어질 듯 반겨주던 모습... 만족할 때까지 쓰다듬어주고 만져달라고 찡찡대던 모습... 산책 가자고 하면 신나서 앞장서다 20분 지나고 나서는 헥헥대며 뒤처지던 모습... 산책 가자고 꼬셔서 따라나섰더니 동물병원이나 애견미용실이어서 시무룩했던 모습... 산책 줄 몸에 차고, 아빠 차가 있는 방향으로 위풍당당하게 걷던 모습... 마당에서 장난을 걸며 썩소를 지으며 송곳니 한쪽을 보여주던 모습... 아빠 사무실로 가자 하면 정확히 사무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먼저 옮기던 모습... 엄마가 대문 앞에 주차를 하고 바로 들어가지 않으면 얼른 들어오라고 대문 아래 빈틈으로 주둥이를 내밀고 왈왈 짖던 모습... 드라이브를 좋아해서 아빠 차, 엄마 차 타면 뒷발로 서고 앞발로 창문틀을 짚은 채 바깥 구경을 하고 바람 냄새를 맡던 모습... 양반 강아지인지 맨바닥에는 잘 안 앉으려고 하고, 방석이나 수건이 놓여 있어야 꼭 그 위에 앉던 모습... 고양이처럼 물을 싫어하고, 상자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던 모습… 사람 말소리,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벽을 따라 쫒아다니며 집을 지키던 모습…


계절에 한 번씩 세탁물 수거·배달하러 오는 세탁소 사장님들 꽁무니는 쫓아다니며 짖어도, 1년에 두세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보는 친척들은 어찌 알아보고 꼬리 흔들며 반기고 좋아하던 똑똑한 녀석. 영상통화로 누나 목소리가 들리면 누나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네 모습. 임종 사흘 전 까지도 영상통화로 들리는 누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고 고개를 들던 네 모습...



지난 시간 너의 모습들이 이렇게 생생한데, 이제 네가 곁에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네가 사상충 감염으로 위독할 때도, 몰래 집 밖 마실 나갔다 다쳐 돌아와 위독했을 때도, 네가 열 살이 넘어 노령견이 된 이후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 나는 너와의 이별을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재작년 2024년 11월부터 치매가 시작되고, 작년 2025년 4월 할머니가 소천하실 무렵에도 안 좋아 할머니와 함께 떠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어도, 작년 가을에 심부전이 오고, 신장이 나빠지고,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서 앙상해진 걸 다 보고도... 약 14개월간 잘 버텨 왔다는 걸 알면서도... 진짜로 네가 떠나버리니 실감도 나지 않아 눈물도 터지지 않는구나.



2008. 4. 13 ~ 2026. 1. 25. 너와 함께한 시간 6497일. 6500일에서 딱 사흘이 모자란 시간.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복동이 네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랑 누나가 오늘 밤에 너 보러 갈랬는데. 하지만 우리 복동이는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사랑을 기다리다가 갔을 거라고 생각해. 스위스 출장 간 형이 한국 들어올 때까지 복동이가 기다린 거잖아. 누나랑 형이 늦은 거지, 복동이 네가 빠른 게 아니라는 걸 누나는 잘 아니까.


6497일, 그날들을 보내는 동안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여유가 있었으면 복동이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누나랑 형 곁에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네가 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누나랑 형은 한 번도 네 의사를 묻지 않은 채 너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너를 외롭게 뒀는지도 모르겠구나.


복동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누나의 동생이 되어줘서, 17년 9개월 13일간 누나 동생으로 살아줘서 고마워.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도 누나를 찾아와 줄래? 그때는 더 빨리 알아보고 더 잘해줄게, 더 사랑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