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안 반가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은지 닷새가 지나서야, 지난 2025년 을사년에 안녕을 보낸다. 명리상으로는 입춘이 돼야 새해라 하고, 음력으로는 한 달 정도 전이긴 하지만. 어쨌든.
만 40년을 살면서 이렇게 아팠던 해도 처음이고, 이렇게 힘겨웠던 해도 처음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꽤 오랜 시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불안했으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향 안동에 큰 산불이 났다. 당시 할머니가 계시던 요양병원 맞은편 산까지 화마가 밀려들어온 사진을 봤다. 안 그래도 1월 1일부터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준비 때문에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를 이중으로 받고 있었는데, 3월에 산불이 크게 나서 서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와 아빠, 할머니, 우리 집 강아지와 고양이까지 걱정하느라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산불이 잦아들기가 무섭게 대학원 입시를 준비해서 지원했다. 입시요강 맞춰 지원서 쓰느라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는데 엄마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더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지원서 내고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다녀온 다음 주에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95세셨으니 천수를 누리신 셈이었지만, 장례기간 사흘간 나는 일을 하느라 제대로 울 수 조차 없었다. 마지막 날 화장장에 가서야 울음이 터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공황발작 90분 끝에 실신했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가 많이 아팠다. 수술을 받았다. 처음은 별 거 아니라고 했는데 퇴원하고 병을 고백했다. 나는 길길이 뛰며 화를 냈다. 엄마는 수술을 받고도 치료를 받았다. 나도 아픈데 엄마 병원도 따라다닐 수가 없었다. 무력했고, 절망했고, 이대로 삶이 끝났으면 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병원 다니느라 서울 와서 나랑 같이 방 쓰는 엄마도, 실신 후유증으로 자율신경 실조증상이 나타난 나도, 모든 게 엉망이었다. 과호흡이 와 사람 많은 곳은 갈 수도 없었고, 지하철도 못 탔다(지금도 못 탄다). 일주일에 두 번 치료 다니는 병원(한의원), 일주일에 두 번 웨이트 PT,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 개인강습을 제외한 시간은 집에 머무르기만 했다.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고, 공연을 볼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연 초에 계약한 책은 써야 해서 브레인 포그가 심한 상태였음에도 책을 써서 11월 30일에 출간했다.
오늘 2026년 1월 5일. 실신한 지 정확히 236일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아프다. 예전처럼 온몸에 통증이 돌아다니지도 않고, 숨이 가빠오지는 않지만... 여전히 눈 한쪽이 떨리고, 고막의 이충만감도 있고, 때때로 이명도 들리고, 사지 경련도 때때로 온다. 후각은 미친 듯이 민감하고, 미각은 미친 듯이 둔해졌고, 식욕도 왔다 갔다 널을 뛰고, 어떤 날은 음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감이 치밀어 오른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를 심하게 했지만, 몸이 약한 편이지만... 이렇게까지 아파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원래도 삶에 미련 같은 게 없었는데, 더더욱 삶에 미련이 없어지는 것 같다. 정말 죽을 만큼 아팠기 때문에, 안 아픈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지. 죽는 거보다 아픈 게 더 싫은 나인데... 진짜 아프기 싫단 말이다.
지긋지긋했다 을사년. 인사신 삼형의 해.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