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돌에서 얻는 치유
내가 고등학교 시절 신문은 한글과 한문이 뒤섞여 있었고 흑백이었다. 나는 그 시절 신문을 꽤 열심히 읽었는데, 어느 날 한 광고에 눈길이 멈췄다.
누워 있는 와불 사진이 찍혀 있었고 전남 화순 운주사를 안내하는 한국 관광 공사 광고였다.
1000년 전부터 이곳 운주사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천불천탑을 세우면 미륵이 내려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는... 그런데 마지막으로 세우지 못한 와불 때문에 미륵이 못 내려왔다. 당신이 온다면 그 와불이 일어나서 1000년의 시간을 얘기해 줄지도 모른다."라는 매력적인 설명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광고를 잘라서 일기장에 오랫동안 보관했었다.
대학 간 후나, 성인이 된 후 나는 운주사를 가야 한다고 그렇게 외쳤지만 연고가 없는 전라도 땅을 혼자서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운주사를 방문한 건 그 후 몇십 년이 지난 후였다. 그곳은 내가 가본 그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곳이었다.
신라와 통일 신라를 통해 나온 금세공품이며 다보탑, 석가탑 등, 세련된 불교미술의 정수들이 있다. 하지만 이곳 운주사에서 본 불상이나 탑들은 지금까지의 기존 문화재에서 본 통념을 깼다. 정교하진 않지만 진심이 있고, 세련되진 않지만 불심이 가득한 일반 대중의 염원이 가득했다. 예술은 천재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다고 따뜻하고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듯했다.
예전 직장 다닐 때 만났던 그곳 출신의 선배 말로는 어려서 운주사에 가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탑과 불상이 있었단다.
그곳에서 어지럽게 널려 있는 돌이랑 탑들을 가지고 놀았고 집집마다 용도에 맞는 돌들을 가지고 가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탑들과 불상은 사라졌으리라...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건 오직 불상 90여 구와 석탑 21기 정도 남아 있다. 누워 있는 와불은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가리키는 곳에 누워 있었다. 운주사는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 거석문화가 어우러진 정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거석문화의 뿌리는 고인돌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돌과 관련된 민간신앙으로는 성황당이 있다. 마을 입구에 놓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안위와 염원을 담고 마을의 평화를 빌었다. 돌무더기를 쌓으면서 소원을 빌고 아니면 돌을 던지면서 나쁜 악귀를 같이 던져 버리는 풍습이다.
작년 추석에 한국에서 친구가 방문해서 같이 Rocky Mountains에 간 적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한 돌 덩어리들과 암석의 산맥이다. 돌이 많아서일까? 그들에게도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직접 가보진 못 했지만 Medicine Wheel이라는 장소가 그런 곳이다. 치유를 하는 곳으로 우리가 성황당에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하자는 비슷한 믿음이다.
Rocky Mountains 일정 중 만나는 Natural Bridge는 수천 년간 물이 내려와 거대한 바위를 깎아서 다리를 만들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세월이 깎아내린 다리 근처에는 작은 돌이 엄청 많았다. 시원하게 내리는 물소리와 태양이 부드럽게 돌 위를 비추는 곳에서 우연히 하나의 돌을 주웠다. 손바닥 위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회색 돌 사이에 하얀 선이 있었다. 작은 돌 속에 어떻게 그런 줄이 새겨졌는지... 원래는 거대한 바윗덩어리였을 텐데 두 개의 돌이 어떻게 합쳐져서 이런 무늬가 되었는지 신기했다. 그래서 알아보니 그 돌은 위싱 스톤이었다.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속설처럼, 그 선은 온전하게 이어져 있었다. 고대 유럽의 켈트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서 돌리면서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 그 여행 직후 나는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몸에 이상이 느껴져서 주치의와 상담 후 오랜 기다림 끝에 MRI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병명은 나를 절망에 빠뜨렸다. 다시 전문의를 만나고 다른 검사도 하며 치료를 했다. 그때 그 돌이 생각나서 기도를 드렸었다. 손가락으로 선을 따라 돌리면서... 다행히 내 증상은 심하게 안 나타나고 그냥 멈춤 상태다. 물론 그 행운은 꼭 돌의 영향은 아니었을 거다. 많은 지인들의 기도가 함께 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작은 돌이 나에게 평안함을 주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