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함께

음식으로 전하는 위로

음식으로 전해지는 사랑과 돌봄의 언어

by 김유인

음식은 시대나 문화를 넘어서 '나를 돌봐 달라!'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고,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인 듯했다. 사람은 엄마가 해준 음식이나 인생의 위기 시절에 먹었던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다.


어린 시절 사촌 동생이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동생을 위해 미음을 만들어 병원에 가져다주셨다. 쌀을 불려 보글보글 끓인 죽을 다시 체에 밭쳐 뽀얀 국물만 걸러내서 만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우리 세 자매는 그것이 너무 먹고 싶어 엄마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비록 지금은 그 맛이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 접하지 못한 음식이었기에 엄마 옆에서 한 숟가락이라도 맛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드라마 '대장금'에는 정말 많은 음식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전마마의 보모 상궁이 돌아가시기 전 가장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은 '찐쌀'이었다. 나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보릿고개 시절이나 아직 추수하기 전에 덜 익은 벼로 해 먹던 것이라고 했다. 극 중에서도 보모 상궁이 오빠가 마지막으로 한 움큼 손에 쥐여준 찐쌀을 먹으며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기다렸다고 한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오빠가 동생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우리 남편은 어린 시절 아플 때면, 어머님께서 멸치가루와 된장을 엷게 풀어서 끓이시고 그 안에 찹쌀가루를 익반죽 하여 넣고 끓여 주셨다고 한다. 반죽을 떼어 양 손바닥으로 비벼 올챙이 모양으로 만들어 끓여 주셨기 때문에 '올챙이 장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플 때 끓여주시던 그 추억 때문에 남편은 이 음식을 잊지 못하여, 가끔 나에게도 올챙이 장국을 끓여 달라고 한다.


내가 일하는 곳 어르신들의 소울 푸드(Soul Food)는 의외로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토스트이다. 단순하고 만들기 쉬운 조합이지만 남녀노소 좋아하는 국민 음식이다. 그래서 아침 식사 메뉴나 학생들 점심 식사 메뉴에도 빠지지 않는 메뉴이다. 식사를 거부하는 노인들도 커피와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토스트를 드리고, 조금 있다가 확인해 보면 다 드시고 빈 접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땅콩버터와 잼은 항상 구비해 놓는다. 기분이 언짢으신 노인분들께 슬쩍 가져다 드리면 조용히 드시고 기분이 풀어지시곤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먹을 것을 통해 소통하는 것은 만국의 공통인 듯했다. 우리가 주로 '식사하셨어요?'라고 묻는 것으로 인사를 하고, 밥 한 끼 먹으면서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릴 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몸이 아프곤 했다. 친구 도시락의 북어조림을 먹고 엄마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엄마가 막상 해주신 날 나는 아파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도 문득 자장면이 먹고 싶다든지, 인절미가 먹고 싶다든지 말을 하고 그걸 못 먹은 그날 밤에는 어김없이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가져다주셨으니, 참 키우기 까다로운 아이였던 것 같다. 아마 엄마의 관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옛날 부모님들도 조금이라도 덜 먹는 자식에게 관심을 갖고 더 먹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음식은 시대나 문화를 넘어서 '나를 돌봐 달라!'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고,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인 듯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음식을 내밀 때, 그것은 곧 '나는 당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가장 오래되고도 강력한 언어인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