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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Dec 03. 2024

지하철 활극과 날마다 새로움

12월 3일 출근길

  영하의 아침 지하철역, 가파른 계단은 언제나 위태로운 과정, 한 발 앞서 닫히는 문, 떠나 버리는 전동차의 무심한 뒷모습.

  플랫폼 낡은 벤치에 가서 앉는다.

  아, 엉덩이에 전해 오는 이 살가운 온기!

  누가 남겨 놓은 것일까? 불이 환한 차창으로 내다보던 눈이 상큼한 그 여인일까? 전동차 문이 닫힐 때 구부정한 등을 보이고 승객들 속으로 사라진 내 또래의 그 남자일까?

  “왕십리행 열차가 죽전역을 출발했습니다.”

  확성기의 날카로운 금속성, 순간 내 상상력에 금이 간다.

  데시벨 단위로 증폭되는 철로의 진동음.

  드디어 차가 들어온다.

  그 사람의 체온을 내 체온으로 덮여 놓고 서둘러 일어선다.

 

                                                                                                            -    손광성, 『바다』 –





  오늘은 후리스 부부와 같은 버스를 탔다. 돌곶이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후리스 부부가 버스에서 내리더니 뛰어가기 시작했다. 주변 몇 사람들도 뛰어가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지만 같이 달음질하기는 싫었다. 대합실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열차의 위치를 알려주는 전광판 속 열차표시는 돌곶이역 표시에 달라붙어 있었다. 대합실에 뒤이어 뛰어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들 알고 있다. 이미 늦었음을.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혹시 후리스부부가 있는지 살펴보며 움직였는데 보이지 않았다.

  '성공했군!'

  적잖은 달리기와 위태로운 계단 내려가기와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숨 넘김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들의 하루가 형통하기를.


  신당역에서 갈아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계단을 올랐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이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일부는 뜀박질을 하며 멀찍이 움직였고 일부는 잰걸음으로 뒤따라 갔다. 그 덕분에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여유가 생겼고 오랜만에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평소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긴 줄에 서느니 그냥 계단을 이용했었다. 바로 옆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몇몇 사람이 퉁퉁퉁퉁 뛰듯이 내려왔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에스컬레이터 발판을 보는 듯 내려왔다. 위로 올려보는 내 눈에 이들의 경직된 움직임과 조심하는 눈빛은 되려 불안감을 일으켰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추거나 하면 어쩌려구…'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청소하는 미화원이 보였다. 미화원은 두 손에 걸레를 하나씩 잡고 에스컬레이터의 한쪽 핸드레일 양옆을 누르며 지나갔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직진한 후 다시 수평의 무빙워크를 탔다. 무빙워크를 천천히 걸어가는데 무빙워크 핸드레일 아래 양쪽의 금속 벽면이 매끄럽게 빛을 발했다. 잘 닦여진 청결함이 느껴졌다. 핸드레일과 핸드레일 양 옆의 턱, 양쪽 벽면과 그 아래로 툭 튀어나온 부분까지 조명 빛을 균일하게 반사하며 깨끗하게 닦인 모습이다.

  '언제 이렇게 닦았을까?'

  요즘은 혼자서 핸드레일을 닦는 모습을 몇 번 봤을 뿐 한동안 청소하는 모습을 못 봤다. 청소시간이 빨라진 건가. 한두 달 전 이곳을 청소하는 여성 미화원 두 명을 봤었다. 군청색 상하의를 입고 같은 색의 조끼를 입었었다. 허리에 주머니가 달린 벨트를 매었다. 주머니에는 청소용 손도구들이 비죽비죽 나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각각 대걸레, 양동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양동이 속에는 걸레가 들어있었다. 

  그들은 걸레를 하나만 잡는 법이 없었다. 늘 두 개를 잡고 청소를 했었다. 대걸레를 쓸 때는 둘이 같이 했다. 대걸레를 맞닿게 한 후 호흡을 맞추어 바닥을 밀고 다녔다. 대걸레를 잡고 서있는 모습은 흡사 게임 속 여전사를 연상케 했다.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은 따로 대걸레질을 했다. 블록의 요철 때문에 대걸레를 왕복해 닦으며 진행하는 수고로움이 보였다. 바닥이며 벽이며 계단은 물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난간, 여러 시설물 등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이들의 손길은 부지런했다. 굴러다니는 먼지나 달라붙은 더께를 볼 수도 없었다. 미관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었다. 돌곶이역이나 신당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이인일조의 잘 짜여진 팀워크로 매일매일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다. 신당역의 이동통로는 천장이 없고 격자형 철망이 설치되어 천정 속이 보인다. 천정 속 조명이나 시설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격자형 철망에 먼지가 겹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천정은 이들이 청소하는 부분이 아닌가 보네…'

  신당역 2호선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 왼편으로 장애인 리프트가 움직이는 레일이 보였다. 그 앞으로 계단 참에 사람 키 한 배 반이 되는 사각의 철기둥이 서있고 기둥 맨 위에는 책 만한 크기의 사각 박스 철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박스의 아래 부분에는 작은 구멍들이 원형으로 뚫려 있었다. 스피커 모양이다. 그 위로 노란색 사각램프가 툭 튀어나와 설치되었다. 바로 거기에 소복하게 쌓인 먼지가 보였다. 

  

  최고의 효율성을 가진 미화원으로도 이런 아쉬운 부분이 없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일’이란 게 자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의 목적은 복잡해지고 왜곡되어 버리고 결국 본질을 놓치고 만다. 격자형 철망과 경광등의 먼지는 사라질 수 있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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