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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Dec 06. 2024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12월 6일 출근길

  7시 30분이면 아무래도 출근시간이다. 빠듯한 시간 속에 걸음을 재촉하고 시간에 좇기는 서두르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가기에 이렇게 서두르는 것일 까.


  며칠 전 노약자석에서 본 풍경이다. 70대 초반은 될 듯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모자 달린 녹색 코트형 파카를 입고, 코듀로이 검은 바지를 입었다.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연한 카키색 직물가방을 오른팔에 끼우고, 옆에 붙여 놓고, 앉아서는 붉고 검고 회색이 섞인 머플러를 동글게 동여맸다. 둥글게 솟은 볼살과 그 아래로 처진 살이 보였다. 맑은 피부에 맑은 손, 뽀글뽀글 파마머리였다. 또 한 사람이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상체를 옆으로 기대었다 머리를 숙였다 하며 휴대전화를 계속 바라보는 남자였다. 그렇다고 초점이 맹렬히 살아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뚜렷한 주목 없이 인터넷 포털을 검색하고 카톡을 하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을 지나며 자리에 여유가 생기니까 다리를 꼬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체격이나 표정이 균형 잡힌 모습으로 노년 초입의 느낌이나 나이 가늠은 어려웠다.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청국장 알아봤는데…"

  "…"

  "… 괜찮겠는데?"

  "…"

  "… 어떤 거 같아?"

  "…응…"

  휴대전화 속 여자의 찢어지는 듯 깔깔한 소리가 스피커폰으로 한동안 이어졌다.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무릎 위에 휴대전화를 놓고 손톱 끝을 만지작거리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건 좀 …, 심한데…'

  색 바랜 붉은 야구모자를 쓰고 상의는 검은 계열의 파카를 입었다. 하의는 등산바지를 입었는데 이 사람도 처진 볼이었다. 볼에는 검버섯이 일어났고 70대 중반쯤일 까.


  궁금함은 오늘도 이어졌다. 노약자석 쪽으로 승차했다. 오늘은 노약자석에 젊다고 해야 할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경량 파카를 입고 모직 바지를 입었다. 흰색 운동화에 머리는 짧고 반 곱슬이었다. 뿔테 안경을 쓰고는 계속 휴대전화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 남자는 연블루색 가죽 코트를 입고 아이보리색 면바지를 입었다. 검은색 운동화에 곱슬머리를 했다. 얇은 뿔테 안경 속으로 눈을 지그시 내려 휴대전화를 보았다. OTT인 듯. 귀에 이어폰을 끼더니 바로 눈을 감았다. 옆의 남자도 이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들은 출근하는 길일 것이다.


  신당역에서 갈아탔다.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열차는 이미 출입구를 활짝 열고 있었다. 서둘러 승차를 했다. 첫 번째 노약자석인 10-1번 출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노약자석에는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맨 왼쪽은 파란색 파카에 진파랑 등산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신발도 가벼운 등산화를 신었다. 검은 숱이 깔린 백발의 머리였고 깊은 이마 주름살 아래 미간을 아래위로 잡아 콧대에 주름이 잡혔다. 피부는 구릿빛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옆은 여자였는데 무릎길이의 파카를 입고, 검은색 바지에 색 바랜 흰색 운동화를 신었다. 무거워 보이는 검은색 등가방을 무릎 위에 두었고 굵은 안경알 때문에 눈가가 겹으로 보였다. 눈빛은 맑았으나 멍한 시선으로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이 여자도 흰색 마스크를 썼다. 머리는 뿌리에 흰 머리칼이 깔렸고 짙은 검푸른색 직모의 단발이었다.

  '염색이 과하네…'

  그 옆도 여자였는데, 빨간색 파카를 입고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를 했다. 눈가로 엷은 주름이 많이 보였다. 여자는 휴대전화 게임에 열중이었다.

  성수역에 도착했다. 왼쪽 남자와 빨간 파카를 입은 여자가 내렸다. 중간에 앉은 여자가 자리를 옮기더니 난간에 고개를 기댔다. 파카의 한쪽이 벌어져 옆자리에 걸쳐졌는데 한쪽을 잡더니 허벅지 안으로 집어 모았다. 다시 고개를 난간에 기댔다. 직모의 머리칼이 얼굴 위 반을 가리고, 아래 반은 마스크로 가려졌다. 난간에 기댄 모습이 깊다. 다행히 열차의 흔들림이 오늘따라 적었다.


  열차 안내방송이 나왔다.

  "모두가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분들을 위한 배려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가 힘들다니…'

  안내 방송의 '모두'는 열차를 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게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열차'를 타게 만들다니! 맘에 들지 않는다.  

  머리가 까맣고 마스크를 쓰고 등가방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남자가 들어와 노약자석에 앉았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머리가 새까맣고 마스크를 쓰고 손가방에 책가방 같은 사각의 가방에 검은 비닐봉지까지 해서 뭔가를 가득 담은 여자가 탔다. 두 사람은 노약자석에 앉자마자 눈을 감더니 미간까지 주름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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