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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Dec 10. 2024

휴대전화야, 고마워

12월 10일 출근길

  사거리에 섰다. 대각선으로 길 건너 마을 공원이 보였다. 조성되어 얼마 지나지 않은 공원이라 수목들은 아직 초라하다. 겨울은 한꺼번에 오지 않아 며칠째 영상의 기온이다. 공원 초입에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의 나뭇가지들은 아직도 이파리들을 듬성듬성 잡고 있다. 영상의 기온 때문일 까.


  ○○○번 버스를 탔다. 길가의 가게들이 보이고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모여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서둘러 뛰어와 숨을 고르며 합류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길 건너 자동차정비소는 아직 셔터가 내려져 있다.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약간 이른 건가? 주인이 늦는 건가?'

  별 쓸데없는 궁금함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바깥 경치를 보다가 돌곶이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지하철보다 붐비기도 하고 시간도 오락가락하고 무엇보다도 흔들거림에 불편하지만 그래도 버스가 좋은 쪽이다. 지상을 다니기 때문이다.


  내가 앉은자리 하나 건너 앞자리에 부부가 앉아있다. 둘은 열심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버스에서 내리며 언뜻 보니 알록달록한 둥근 구슬들이 이리 저리로 움직이고, 성공을 했는지 'Great!' 글자가 보였다. 옆자리의 남자도 비슷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열차를 탔다. 승객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노약자석과 객실 통로 좌우 좌석에 앉은 사람이 19명이었는데 그중 11명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서있는 사람은 17명이었는데 모두 휴대전화를 하고 있었다. 열에 여덟은 열차에서 휴대전화를 한다.

  '오늘따라 많은 걸까?'

  사람들은 포털 뉴스를 검색하고 온라인 쇼핑을 하고 OTT 시청을 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웹소설이나 유튜브 쇼츠를 시청했다. 참 다양하게도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있어서 다행이다.

  출입구에 내리려는 사람들이 십여 명 모여들었다. 승강장에 도착해 출입구가 열리는 순간까지 두세 명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출입구를 나가며 한 사람을 슬쩍 보니 축구경기였다.

  '아! 축구. 축구, 볼 만하지!'

  신당역에 내려서 계단을 올라갔다. 앞에 가고 있는 여자의 걸음이 느릿느릿 걸리적거렸다. 불편했다. 여자는 휴대전화를 보며 올라가고 있었다. 앞지르기엔 틈새가 작아서 얼마간 뒤따르다가 앞서며 얼굴과 휴대전화를 봤다. 중년 여성이었는데, 화투 게임이었다.

  2호선 열차를 탔다. 바로 옆에 한 사람이 섰는데, 특별한 장면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휴대전화가 폴더형인 듯 보였다. 다시 보니 서로 다른 휴대전화 두 개를 왼손바닥에 비스듬히 길이방향으로 붙여 놓고 오른손으로 이것저것 조작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게임이 시작되며 '프린세스◇◇◇' 제목이 위 화면에 고정되어 나타났다. 계속해서 아래 화면에 뭔가 설정하는 모양새였다. 게임 화면은 화려했다. 주인공이 나타나고 배경에는 화염이 터지고 휘몰아치고 회오리 돌더니 'WIN!'이라는 글자가 커지며 나타났다.

  '이겼어!'

  외치는 느낌이다. 옆사람은 30대 전후의 남자로 무릎길이 파카와 홀쭉한 등가방을 멨다.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게임에 흠뻑 빠져 열차 속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릴 장소를 지나치지 않고 내리기만 한다면 이들 모두에게 썩 괜찮은 출근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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