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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장준 Mar 23. 2020

이제 영화 보는 사람 말고, 찍는 사람이 되자.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로서 세상을 바라보기

"평생 영화를 보기만 했네, 정녕 내 영화 내가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마흔을 넘기던 어느 날, 문득 내 가슴에 오래 머문 생각이었다. 설레도록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혼자 극장에 갔던 어느 날, 온라인 예매 사이트에서 자리를 골랐다. 통신사 할인, 신용카드 할인 혜택을 확인했다. 유튜브에 가서 예고편을 봤다. 관람객들의 별점과 댓글을 보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당일 영화관에 도착해서 주차 확인 도장을 받았다. 팝콘과 콜라를 주문했다. 네이버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평론가들의 평가와 의미를 곱씹었다. 그러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을 머릿속에 채워 넣었다. 한술 더 떠 오스카 상이나 칸 영화제 상에 대한 예견까지 해 본다. 영화는 역시 재밌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니까.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한 거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한 걸까? 정말 희한한 발상이지만, 내가 영화를 보기 위해 했던 행동을 하나씩 열거해 보기로 했다. 이윽고 "했다"를 "소비했다'로 치환시켜 보았다. 나는 온라인 예매 사이트에서 티켓을 소비했다. 통신사, 신용카드 할인 혜택을 소비했다. 유튜브 예고편 영상을 소비했다. 관람객들이 제공한 댓글을 소비했다. 영화관에서 제공하는 주차 서비스를 소비했다. 팝콘과 콜라를 소비했다. 네이버 뉴스를 소비했다. 평론가들의 평가를 소비했다. 나는 정말이지 하루 종일 소비만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놀랐다. 내가 소비했던 그 많은 서비스는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지? 누가 공급하는 거지? 누군가는 소비하고, 누군가는 공급한다. 그런데 재화와 용역을 일대일로 교환하는 식이 아니라,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공급만 하고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소비만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평생 소비만 하면서 살았다. 옷도 남이 만들어 준 걸 사 입었고, 음식도 남이 만들어 준 걸 사 먹었다. 셀 수 없는 전자 제품과 매일 마시는 커피, 친구들과 라운딩을 갈 때 골프장 캐디피, 여행 갈 때 숙박 서비스, 심지어 스트레스 풀러 술 한잔 기울일 때도 엄청나게 소비를 한다. 연간 카드 값을 따져보면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야말로 소비하는 인간, 즉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라 할 만하다. 단순히 소비를 줄여서 부자 되겠다는 말이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다간 죽을 때까지 소비만 하다 세상을 떠날 것 같아서다. 그냥 수동적으로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을 쓰면서만 산다면 그건 뭔가 아쉬울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래야 인생이 조금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냥 남들이 차려 놓은 것들을 만끽하고 그냥 남들이 만든 것을 사용하면서 산다면, 나 하나쯤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을 것 아닌가?


우리는 흔히 "생산적인 일을 좀 해라"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 뜻은 뉘앙스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반적으로 해석하면, 조직이나 남에게 도움이 되거나 발전적인 일을 하라는 얘기다. 안방에 누워 수십 편의 영화를 보면서 이건 저렇고 저건 이렇다고 평가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도대체 우리나라 아파트는 왜 다 똑같이 생겼어?라고 투덜대 봐야 소용없다. 내가 건설사를 차리지 않는다면 영원히 똑같은 집을 보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다 썩었어, 정치가 썩었으니 이 세상 꼴이 이 모양이지!라고 저주해 봐야 소용없다. 내가 정치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 되지는 않더라도 정치와 관련된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그나마 조금 변할 것이다. 단순하게 관심만 가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시간이 없다. 이제 영화 보는 사람만 하지 말고,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세상을 한 번 바꿔 보면 어떨까? 아니 그렇게까지 혁명적일 필요까진 없고, 그저 세상에 도움을 좀 주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다시 말해 앞으로 이른바 "생산적인" 일을 좀 하면서 살아보면 어떨까? 그동안 소비 그거 "마이 했다 아이가?"라고 웃어 보자. 내가 창조한 나의 일, 나의 직업, 내가 만든 제품, 내가 만든 서비스... 그런 걸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지금까지 남이 차려준 대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남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차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어령 박사는 이런 시를 썼다.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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