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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 Nov 22. 2022

14살, 15년지기 동물원 친구들

캔모아, 수노래방, 스티커사진의 기억들

얼마 전, 15년지기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갓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만난 친구가 이제는 결혼을 한다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코찔찔이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도 결혼식에 함께였다. 비록 어른이 되고나서는 각자 하는 일도 다르고 바쁘기도 해서 예전만큼 많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라는 것에 나혼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오늘은 나와 그 시절을 함께했던 세 명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캔모아, 수노래방, 스티커사진의 기억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우리 넷은 키도 제각각, 성씨도 제각각이라서 전혀 친해질 수 있는 접점이 없었다. 급식 줄을 서거나 체육시간을 함께하면서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눴었지만, 으레 같은 반 친구들끼리 나누는 형식적인 대화들이었고, 딱히 서로 친해질만한 계기는 없었다.


때는 중간고사가 막 끝난 시점이었다. 생애 첫 중간고사가 끝나고, 반 아이들끼리 같이 놀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10명이 넘던 친구들이 당일이 되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파토내기 시작했다. 일부러 시간을 빼두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나는 원래 약속한대로 노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당시에 약속을 파토내지 않고 나와 함께 시험 뒤풀이를 했던 친구들이 바로 이 친구들이다.



경쟁이 꽤나 치열했던 캔모아 그네자리


당시 한 명의 친구가 건대 근처에서 살다가 이사를 왔었는데, 그래서인지 갓 중학생 답지 않게 대학가 근처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그래봤자 우리가 했던 것은 캔모아 가서 공짜빵 먹으며 그네타고, 스티커 사진 찍어서 한껏 꾸미고, 수노래방 같은 곳을 가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집근처, 학교근처를 떠나 대중교통을 타고 멀리 가본적이 없었던 나에겐 그날 하루가 정말 큰 충격이자 흥분이었다. 주도적으로 우리를 안내했던 친구를 제외하면 나머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 번 같이 학교 밖에서 놀고 나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후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롯데월드, 문화의 거리 등 시험 끝나고 혹은 주말에 놀러갈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만날 약속을 하나씩 잡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우리는 어느새 넷이서 뭉쳐다니게 되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이 이어져오고 있다.




동물원 친구들

오래된 친구들이 서로 이름 대신에 별명을 부르는 것처럼, 우리 역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서로 닮은 꼴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부터인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동물로 부르며 이름을 서서히 잊어가기 시작했다…(?)


코알라

코알라를 닮은 친구는 그의 성씨를 따서 ‘0알라’라고 보통 부르곤 한다. 이 친구는 우리의 분위기메이커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사회생활 N년차인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 친구를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는데, 학기 초 국어시간에 “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숙제에서 이 친구가 스스로를 “구름에 가린 달빛”으로 소개했던 기억이 있다. 원래 자신은 밤하늘의 달빛처럼 환하게 빛나며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지만, 친해지기 전까지는 구름 뒤에 그 빛이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당시 교실의 반응은 뜨거웠다. 스스로를 진실되게 잘 표현한 그 찰떡 비유의 문장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나도 그 친구에 대해 궁금해졌다. 친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 친구, 끼가 장난이 아니다. 구름 뒤의 달빛으로 숨어있던 그녀는 학교에 적응을 하자, 구름을 제 입으로 후후 불어내고는 금새 반의 분위기메이커가 되었다. 입담도 좋고 성격도 좋았기에 그녀와 함께라면 그 시간이 참 재미있었다. 학교 축제에서는 버즈의 ‘가시’를 열창하며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민경훈 진짜 잘생겼었구나


1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아마 내년에는 이 친구의 결혼식에 갈수도 있겠다.


두더지

두더지를 닮은 친구는 키도 작고 조용하며 내성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간 뿔테안경을 썼던 것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데,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흑역사 중 하나이다.(아마 두더지라는 별명도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채택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친구도 낯을 많이 가려서 이야기를 조금씩 트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마음이 너무 착하고 여려서 늘 걱정했던 친구이기도 하다.


당시 안경러들 사이에서 인기템이었던 빨간 뿔테안경...!


그때의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을 다 공유햇었기 때문에, 각자의 사랑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아직까지도 놀리는 단골 소재 중 하나가 두더지의 첫사랑이다. 같은 반 남자 회장 아이를 좋아했는데,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나쁘지 않은 호감형이었다. 이 친구는 그 남자아이를 본 날이면 우리에게 달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봤다던가, 우연히 청소를 같이 하게 되었다던가, 짝궁이 되었다던가 하는 사소한 일들을 신나게 풀어낼 때면, 우리는 ‘또시작이군’하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곤 했었다.


그렇다면 15년 뒤의 그녀는 어떨까. 빨간 뿔테안경은 이미 벗어 던진지 오래이다. 요즘 함께 모이면 그녀는 우리 사이에서 제일가는 이야기꾼이자 수다쟁이이다. 당당하기도 하고 푼수같은 매력도 있어서 그냥 이 친구가 이야기하는 것만봐도 시간이 흘러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다. 특히나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그 특유의 “엄마 잔소리 말투”는 여전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엄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미핥기

개미핥기를 닮았다고 해서 주로 “나끼”로 불리는 이 친구. 나였다면 꽤나 억울했을 것 같다. 사실 우리 넷 중 그 누구도 개미핥기의 생김새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마르고 키도 컸던 나끼는 착하고 여린 아이였지만, 불의에는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멋진 친구였다. 이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멋진 꿈이 있었던 이 친구는 손수 제작한 레시피 북이 있었을 정도로 요리를 사랑하고 요리에 열정적이었던 친구이다.


그런 친구를 둔 것의 가장 큰 이점은 아마 생일날일 것이다. 나끼는 늘 우리 셋의 생일이나 연말에 손수 만든 케이크나 브라우니를 한보따리 들고와서 우리를 마구마구 살찌웠다.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가 만든 케이크는 시중에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고, 우리는 그 때마다 친구에게 어서 빨리 케이크 집을 차려서 돈 주고 먹게 해달라는 애원을 했었다.


15년만에 처음보는 개미핥기의 실사. (닮은것 같기도 하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멋진 요리사가 되어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현실은 생각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서른도 되기 전에 경력이 10년이나 된 요리사가 되었지만, 업계 특성상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노동시간은 길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일하면서도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소중한 꿈을 마침내 이루어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멋지게 돈을 벌고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너무 예쁘게 결혼까지 해냈다. (잘 살아라 친구야…!)


나무늘보

동물원 멤버의 마지막인 나는 나무늘보라도 불리었다. 나무늘보의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수업시간에 너무 많이 자서 생긴 별명인 것 같다. 어떤 때에는 등교하자마자 잠들어서 점심시간에 깬 적도 있다.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듯,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잠도 많다.




15년이 지난 우리는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만큼 IT, 교육, 외식, 의료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로 제각기 뻗어나가 살고 있다. 그래도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함께일때 오히려 재밌는 것 같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더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이다. 특히나 다같이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여정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친구들에 대한 애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한가득이다. 이 글을 볼 일이 없을 것을 알기에 오글거리지만 전해보겠다. 사랑한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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