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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 Dec 03. 2022

22살, 영어와의 전쟁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10년 이상 영어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10대가 되었건 80대가 되었건 간에, 여전히 우리는 영어가 어렵고 불편하다. 어떻게 보면 국민들 대다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어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인데, 오늘은 내가 그 전쟁에서 싸웠던 이야기를 조금 해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21살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을 즈음, 아빠가 진지하게 나를 불러 이야기를 하셨다. 아빠 친구 중에 미국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 도움을 받아서 미국에서 1년정도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우리 아빠는 어린시절 일본에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가, 결국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가지 못하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뒤로 회사에 들어가시고 나서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출장갈 기회가 종종 생기게 되어 그러한 설움은 조금 푸셨지만, 그래도 ‘그때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아쉬움은 늘 가지고 계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린시절부터 우리에게 늘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을 중요하게 말씀하셨다.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이 도시가 끝인 것처럼 살지 말고, 경상도든 하와이든간에 가보지 않은 곳에서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주셨다. 이번 미국 유학 제안 건은 아마 그런 맥락에서 추천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만의 계획이 있었지만, 아빠 말대로 지금이 아니면 다시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이고, 마음껏 영어에만 몰두하여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20년 넘게 매일 같이 부대끼던 우리집을 벗어나 지구 반대편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먹고 싶은 햄버거 하나 못 먹는 서러움


아빠 지인분의 도움 덕에 미국에서는 한국 분과 플랫메이트로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고, 너무 친절하고 쾌활한 메이트를 만난 덕분에 나는 빠른 속도로 잘 적응해갈 수 있었다.


대충 짐도 정리했고, 집 근처도 이곳 저곳 산책했겠다, 이제 한국인 동네를 벗어나 좀 더 멀리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좀 멀리 떨어진 역까지 마실을 나갔다.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데, 저 멀리 맥도날드 하나가 보이는 것이었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해서 힘차게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는 이곳에 도착한지 얼마 안된 외국인이라는 사실과 실제로 미국사람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뜨문뜨문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할 수는 있어도, 되돌아오는 추가 질문들을 알아들을 수 조차 없어서 나는 ‘노우-!’만 반복하며 주문을 마무리했다. 햄버거 세트가 먹고 싶었던 내게 돌아온 것은 단품 햄버거 하나였다. 심지어는 그 햄버거 조차 내가 원래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햄버거 주문하나도 못하는 스스로에 허탈감을 느끼고 이런 나를 바라보는 맥도날드 직원들의 눈빛도 괜히 무시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 스스로가 너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미국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언어 뿐만 아니라 그곳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겪게된 에피소드도 참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레스토랑에서의 팁문화인데, 워낙 우리나라는 친절한 서비스가 디폴트처럼 여겨지는 문화라서 서빙을 해주는 분들에게 팁을 주는 기준에 대해서 알고있는 바가 별로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종종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1달러 정도만 내길래, 나도 그냥 그정도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 번은 엄청 좋은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맛있게 밥을 먹고 나오는데, 서빙하시던 분이 쫓아와서 혹시 식사 중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묻더라. 너무 좋은 서비스에 맛있는 음식까지 배불리 먹어서, 우리는 너무 만족했다고 대답하니, 그분께서 그렇다면 팁을 이렇게 주시면 안된다고 하시더라. 음식값이 조금 비쌌었는데, 우리가 그에 비해서 팁을 너무 적게 남겨놨던 것이다. 그때는 온지 얼마 안되서 잘 몰랐다고 말씀을 드리고 팁을 맞춰서 더 드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통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면, 음식값의 10-15%정도를 팁으로 남겨둔다고 하더라. (물론 이것도 내가 호구잡힌 것일수도 있으니,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렇게 언어도, 문화도 잘 모르는 낯선 외국에서의 삶을 시작하려니, 자연스럽게 나도 생존모드로 스위치가 전환되었다. 내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이렇게 서러움을 느끼며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았고, 목적은 역시 하나, ‘영어’였다.


이왕 이곳에서 1년간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상, 최선을 다해 제 1순위 목표인 영어를 마스터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불씨처럼 타올랐다. 그래서 나는 상황을 관찰하고 나름대로 치밀한 전략을 세워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영어와의 전쟁에서 이겨보기 위해 내가 사용했던 전략들이다. 누군가가 보면, 너무 당연할 수 있겠지만, 늘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남긴다. 혹시라도 언어공부를 위해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계신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전술 1. 주어진 인프라 이용하기

당시에 나는 한 대학교의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렇게 먼 나라에서 어학원 수업까지 등록할 정도면, 다들 영어공부에 진심이겠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곳 학생들 중, 정말로 영어공부에 진심인 아이들은 3분의 1도 안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그냥 미국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학생비자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업에도 엄청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었다.


그 사이에서 생존모드가 켜진 나는 거의 열정민호만큼이나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질문도 자주하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따로 질문도 하고 내주신 숙제는 모두 그날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다 처리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숙제를 열심히 하니 당연히 받을 수 있는 피드백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냥 그 수업들만 잘 따라가도, 무난하게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에 딸린 어학원의 이점 중 하나는 바로 대학교 수업을 청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미 대학교 1학년을 한국에서 보내고 왔기 때문에 내 전공과 관련된 수업이 궁금했고, 이곳에서는 아시아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듣고 싶은 대학교 강의가 있으면 몰래 들어가서 듣기도 하고 나름대로 노트필기도 열심히 했다. 물론 정말 내용을 1도 못 알아들은 채 3시간 수업을 끝마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절대 하지 않았을 이런 경험들을 내가 주도적으로 해봤다는 정도에 그래도 만족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의 대학생 친구들이 어떻게 수업을 듣는지, 강의실 분위기는 어떤지 그런 점들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전술 2. 나를 외국인으로 만들기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어학원에 가면 살짝 당황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영어만 쓰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려고 일부러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는데, 이곳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인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 만나도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다. 어떤 한국적인 그런 바이브가 느껴진다. 그래서 실패하는 유학생활 썰들을 듣다보면,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 친구만 잔뜩 만들어서 돈쓰고 펑펑 놀다가 결국 언어 공부는 별로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무서운 스토리가 많다.


다행히도 내가 다녔던 어학원에는 한국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고 배정된 반에서도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나는 일부러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분들과는 거리를 둔 채, 나와 영어로 밖에 소통할 방법이 없는 다른 나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래야 나도 그 친구들도 더 빨리 실력이 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비록 완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 매일같이 점심을 함께먹고 학교 끝나고 놀러다니면서 어울리는 과정동안 나와 친구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기 떄문이다. 외국에서도 나를 외국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영어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전술 3. 합리적 거래, 언어교류하기

그렇지만 내가 이 지구 반대편 미국까지 온 것은 바로 현지 친구들와 어울리며 본토의 언어를 배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어학원 반 친구들과 어느정도 친해지고 햄버거도 나 스스로 원하는 ‘세트’메뉴로 사먹을 수 있게 되니, 나는 현지 친구들과 좀 더 어울려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나랑 친구할래?”할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원하는 것과 나의 친구가 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잘 생각해보았다. 나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나의 영어실력을 높이고 미국 문화도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 그렇다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나와 왜 친구가 되어야 할까?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해결책은 간단해졌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면 되는 것이다. 당시 내가 그곳 현지 사람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것 한 가지는 바로 한국어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미국판 소모임 서비스인 “meetup”은 특정한 주제로 모임을 형성하여 온/오프라인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어플을 깔고 둘러보다가, 한 40명정도 대규모의 인원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언어를 공유하는 언어교류 모임이 있길래, 신청해서 나가보았다. 가서 한 마디도 못하면 어떡하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너무 친절하게 서로를 맞이해주었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꽤 인기를 즐기기도 했다! 


이런 대규모 모임이 좋은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한 번에 알게 되어 신난다는 점과 이야기가 잘 통했던 몇몇 친구들과는 따로 연락하여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여러번의 밋업 모임에서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 친구들과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힙한 거리를 다니며 좋은 시간들을 보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영어실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전술 4. 아르바이트하기

유학생활은 대부분 좋은 기억들이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인 압박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전적으로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도 컸거니와 약간의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능숙하게 일을 잘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는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 그러다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한인 커뮤니티를 발견했고, 그곳에서는 한국 사람들끼리 채용공고나 임대거래, 중고거래 등을 활발히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집 바로 앞의 한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바로 연락을 드려 면접을 보게 되었다. 사장님이 그래도 예쁘게 봐주셨는지, 바로 일하러 오라는 답을 들었고, 그렇게 아르바이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인 카페에서 일하면 한국 손님들만 올텐데 영어공부에 도움이 되나’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의외로 일을 해본 결과, 한국식 디저트인 빙수나 팥죽과 같은 메뉴를 먹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다른 커피숍보다 한인 카페가 더 저렴하기도 해서인지, 일부러 그곳 커피를 마시러 오는 현지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어 모드와 영어모드를 넘나들게 되었고, 비록 간단한 주문이더라도 그 분들이 말하는 발음과 억양을 캐치하여 나중에 메뉴를 내보낼 때, 나도 그 발음과 억양을 사용해보려고 노력했다.


사실 미국 가게에서 일할 수 있었다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되었겠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이 많이 않았고, 그때의 나는 아쉽게도 그것을 도전해볼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지금이라면, 현지 가게를 돌아다니며, 부족한 영어일지라도 열심히 면접을 보러다니며 어떻게든 일할 기회를 얻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 가게라도,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는 곳이면 나쁘지 않다. 소액이지만 돈도 벌고 (카페에서는 소소하게나마 팁도 준다) 영어공부도 하고, 손님들이 별로 없다면 혼자서 책도 읽을 수 있으니까!



전술 5. 많이 돌아다니고 다양한 경험하기

그곳에 사는 1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경험들을 했다. 주말만 되면 전시회나 박람회 같은 행사나 밋업 행사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짧게라도 계절마다 여행을 다니며,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이외의 곳도 열심히 탐방했다.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붉은 바위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찾아가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뇌진탕에 걸린 일, 오랜 꿈이었던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보고 싶어서 등록한 영화스쿨에서 친구들에게 먹방을 소개한 일, 서핑을 배우고 싶어서 또 무작정 3일짜리 코스로 매일 2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해변가에 갔던 일, 나를 보러 놀러왔던 가족들과 다투고 또 눈물의 화해한 일,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과 월남쌈 해먹으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던 일까지. 


워낙 계획도 없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무모한 일들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영어 실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될 것 같지만, 그 나라에서 언어를 배우기로 한 이상, 이렇게 자주 돌아다니면서 그곳 문화와의 접점, 사람들과의 교류를 늘리는 것은 알게 모르게 간접적인 도움을 많이 준다. 무엇보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물어다줄 수도 있으니, 마음껏 돌아다니시길!



사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전술을 펼쳤지만, 영어와의 전쟁은 아직 완전한 승리는 아닌 것 같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즈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내 영어 실력은 점차 원상회복 되고 있었지만, 가끔씩 영어를 사용할 일이 있다면, 10-20분 정도의 적응기를 거치고 나면 다시 그때만큼의 수준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다시 영어 공부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조금 막막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다보니, 무엇을 주저하고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나, 조금 허무해진다. 결국은 영어로 말하고 쓰고 고민하고 행동해야하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 나를 계속 낯선 상황에 두고, 그 속에서 해쳐나올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면 된다. 물론 그때보다 환경은 한층 열악해졌지만, 그래도 한번 경험치가 있으니 해볼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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