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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 Nov 29. 2022

21살, 아빠와의 배낭여행

우리집만의 성인식

우리집에는 독특한 성인식 전통이 있다. 바로 성인이 되면, 아빠와 단 둘이 함께하는 배낭여행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숙박부터 항공편, 교통비, 식비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아빠가 부담한다. 대신, 우리는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예약하고 준비해야한다. 오늘은 내가 치렀던 성인식, 아빠와 단 둘이 떠났던 배낭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디로 갈까

21살이 되고, 우리집 전통에 맞춰 아빠는 여름방학 기간동안 2박 3일 배낭여행을 갈 것을 제안하셨다. 아빠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의 모든 것을 내가 직접 기획하고 준비해야한다니, 걱정도 되었지만 그보다는 설레임이 가장 컸다. 난생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언니 때에는 일본에 갔으니, 나는 이웃나라 중국을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는 가장 만만한 수도이자 역사 문화 유적이 풍부한 북경으로 정했다. 그렇게 여행지를 아빠한테 공표하고는 바쁘게 준비에 들어갔다.



치트키 : 친절하지만 안친절한 여행상품

아빠가 이런 독특한 전통을 만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행하는 나라와 문화, 여행지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하고 확인하는 연습을 통해 기획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여행을 떠난 이후에는 내가 여행의 기획자이자 책임자로서 아빠를 이끌고 계획된 일정에 맞게 안내를 해야하며, 여행 중간 중간에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적절하게 잘 대응을 해야한다. 길찾기부터 모르는 중국어로 음식 주문하기, 입장권 끊기, 여행지에 대한 설명까지, 2박 3일용 가이드가 되어 아빠를 안내함으로써 나는 문제상황에 대한 빠른 대응능력을 기를 수 있고,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며 안되는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어떤 이에게는 이런 과정이 스트레스이고 고역일 수 있겠지만, 패키지 투어가 아닌 배낭여행을 좋아하나 돈이 없는 가난한 21살의 나에게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던 지라, 다소 막막한 상태로 여행 리서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웹서핑을 하던 중, 눈에 띄는 상품이 하나 있었다. “내일투어”라는 여행사에서 숙박과 항공권만 제공해주는 자유여행 상품이 출시된 것이었다. 마침 수만개의 호텔과 항공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나는 이 상품이야말로 우리에게 딱 맞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예약 후 결제까지 진행했다. 여행의 시작부터 순조롭다!



대륙의 위상, 걷다가 지쳐 쓰러지다

여행 날이 다가오고, 아빠와 나는 정말 각자 배낭 한 개씩만 메고 중국 북경으로 떠났다. 북경 역시 서울처럼 엄청난 대도시였기 때문에 사실 북경 공항에 도착해도 중국에 온 것이 별로 실감나지 않았었다. 북경 시내로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그 중국 향신료 특유의 냄새를 맡게 되자, 비로소 ‘아- 이곳이 중국이구나’ 싶었다.


중국은 정말 대륙이었다. 진짜 말도 안될 정도로 컸다. 천안문 광장, 자금성, 이화원 등 북경 시내 곳곳의 유적지를 갈 때마다, 그 규모에 우선 놀라고, 직접 걸어서 돌아보는 내내 그 거리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특히나 자금성 같은 경우, 제일 안쪽으로 도달하기까지 수 많은 문을 지나야 했고, 살짝 지치셨던 아빠는 “황제한테 소식 전하기 전에 이미 신하가 지쳐서 쓰러지겠다”고 농담을 던지셨다.



중국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

그렇게 우리는 2박 3일 여행 내내 정말 두 발에만 의지한 뚜벅이 여행으로 만리장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여행지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걸어다니니, 당연히 배도 고팠을만 한데, 사실 아빠와 나는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지 못했다. 부녀지간인 우리는 식성마저 똑같아서, 중국식 향신료가 잘 안맞았기 때문이다. 중국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언니와 동생을 생각한다면, 하필 아빠와 내가 중국을 오게 된 것도 참 아이러니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런 시도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워낙 많이 걸어다녔기 때문에 여행지마다 식당에 들러 이런 저런 맛있어보이는 메뉴를 주문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는 두 젓가락도 못먹고 일어서게 된 것이 다수였다. 여행 중간부터는 “고수를 넣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를 구글 검색해서 점원에게 보여주며 주문을 했음에도, 중국 음식 그 특유의 향은 계속 남아있었다. (나중에 야시장에 가서 알고보니, 이미 기본재료를 만들 때부터 엄청난 양의 향신료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 내내 쫄쫄 굶은 우리에게 불현듯 한국식당이라는 존재가 스쳐지나갔다. 재빨리 한인타운을 검색했고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한인 식당을 찾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건물이 낡아서 “우리 장기매매 당하는거 아니야?"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깔끔하고 전통적인 인테리어로 무장한 엄청나게 넓고 큰 식당이었다. 마침 삼겹살도 팔고 있어서 아빠와 나는 삼겹살부터, 김밥, 비빔국수, 라면 등등 거의 이틀치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는 그간 굶주렸던 배를 열심히 채웠다. 얼큰하게 소주도 한 잔했다.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우리 곁으로 식당 사장님이 오셨는데, 아빠가 이런 식당을 여기 차려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하셨다. 안그래도 중국에서 먹는 한식이라서 가격이 비쌌을텐데, 우리는 비싸더라도 너무 맛있고 귀한 식사를 해서 기분좋게 사장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생애 첫 비즈니스석 탑승

북경 대학에서 북경대학 교수님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눴고, 한국 식당에서 사장님과 오랜만에 한국어로 이야기도 나누고, 엄청난 규모의 중국 유적지들도 관람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신선한 경험이었던 중국음식들도 맛보다보니, 어느새 3일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는데, 항공사 직원 분으로부터 우리 항공편에는 이코노미 석이 다 매진되어버려서, 혹시 비즈니스 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줘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당연히도 “YES-!”를 외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난생 처음으로 비즈니스석에 탑승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기내식으로 피자빵 한조각을 받은 것이 전부였는데, 비즈니스석에 타니 담요 및 슬리퍼부터 기내식 코스요리, 무제한 술까지 정말 대우가 천지차이였다. 옆자리에 앉은 아빠가 너무 행복해보여서 나까지 기분이 좋았는데, 그때 돈을 정말 많이 벌어서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 것 같다. 그렇게 편한 의자에 앉아 와인 한 잔을 하며 짧았던 나의 성인식이 끝나게 되었다.




거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술에 얼큰하게 취하실 때면, 우리와 함께했던 배낭여행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신다. 여행 중 아빠와 싸웠던 일, 길을 잃어서 혼란스러웠던 일,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 술한잔 하게된 일, 비행기를 놓치게 되어 하루 더 머물러야했던 일까지, 누군가가 짜준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기획한 배낭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갓 성인이 된 우리 삼남매는 어리숙했지만, 여행 중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방법으로 잘 해쳐나갔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 아빠와 술잔을 기울이게 된 우리들이 낯선 환경에서 문제를 잘 해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 역시 그의 지난 인생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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