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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4. 2021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삶과 행복에 관한 Y와의 대화(2)

 예전에 나와 Y는 만날 때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다. 부모님과 사회의 기대 속에 그저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는, 다 크고 나서야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도대체 우리가 누구인지. 어리둥절하게 선 그 자리에서 손바닥을 탁탁 털고, 우리는 다시 걷는다. 이제는 오롯이 온전한 우리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며.


#4.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나: Y야, 나는 요즘 꿈이 생겼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예전에 이런 생각도 있었어. ‘내가 책을 써서 뭘 하지? 세상에 책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데 내가 무슨 가치를 줄 수 있을까? 돈도 안 될 텐데?’ 요새 책이 정말 많이 나와. 글을 쓰는 사람이 너무 많고, 책을 내는 사람도 너무 많아. 그러니까 엄청 흔해졌어. 개인도 책을 많이 내고, 소규모로 내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이런 거 다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니까, 나는 글쓰기가 좋고, 책 읽는 게 좋고 그런 거야. 사람들하고 삶에 대해 이렇게 얘기 나누는 게 좋고. 이게 내가 좋아하는 거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가 책을 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이걸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해봤어.

 남들 신경 쓰고 그랬을 때는 내가 정확히 무얼 좋아하는지가 안보였었어. 글을 쓰면서도 ‘이걸 내가 좋아하는 건가?’라는 의심이 들었었고. 그런데 그런 거 정말 다 신경 안 쓰고, 돈을 벌 수 있고 이런 것도 다 떠나서, 순수하게 오롯이 나만 바라봤어. 내가 그것을 하면서 기쁘고, 행복한 것, 남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니까 글쓰기였어.

Y: 나는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니까 그걸 찾는 게 어렵더라. 너는 글도 잘 쓰고 할 거야.

나: 모르겠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런데 내 글을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워낙 수준 높게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Y: 글은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나: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쓰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인 것 같아. 그 이상 사람들이 내 글을 인정해주고, 잘한다고 얘기해주고 그걸 바라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압박감에 글을 못 쓸 것 같아. 그래서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어. ‘내가 이걸 지금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자.’라는 생각까지만. 그러면 이 일이 너무 좋은 거야.

Y: 멋있어 유진아. 응원해 정말.

나: 내가 너랑 얘기하다 보니까 너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내 얘기를 하고 있네.ㅎㅎ

 근데 내가 지금 몇 명 친구들하고 얘기해봤는데,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다 몰라. 나도 사실 진짜 그랬고. 최근까지도 몰랐고. 나뿐만 아니고 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대. 그냥 공부해야 되니까 했고, 성적이 잘 나왔고, 지원했는데 됐고. 그렇게 살다 보니까 오히려 더 모르겠는 거지. 오히려 공부가 길이 아니라는 걸 어렸을 때 알았으면 다른 길을 찾으려고 더 많이 노력했을 텐데.

Y: 맞아, 이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걸 이 나이에도 모른다는 게 좀 슬픈 것 같아.

나: 이걸 정말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흔한 일이야.

Y: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 좀 위안이 된다.

나: 늦긴 했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반평생이 남아 있잖아?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지금이라도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도 있고. 우리 희망을 잃지 말자. ㅎㅎ


#5.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 해야 해!


나: 너는 삶을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Y: 만약 내가 20 대로 돌아가면, 정말 다시 해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어.

나: 어떤 걸 해 보고 싶었어?

Y: 나는 교직 생활 처음 시작했을 때, 애들한테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었어. 24살에 초임교사가 돼서 들어갔는데, 내가 감당하기에 중학교 애들이 엄청 셌어. 패싸움에, 폭행에. 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성추행 비슷한 발언도 막 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충격이어서 이 길이 안 맞는다 생각했어. 그때 막연하게 '다른 걸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

 사직서 내고 이제 다른 공부를 하겠다고 집에 얘기했더니, 그날 밤에 부모님이 시골에서 올라오신 거야. 나를 앉혀놓고 밤새도록 설득하셨어. 부모님은 그러셨던 것 같아. 동생은 아직 공부하고 있었고, 이제 나는 안정되나 싶었는데 다시 내가 그분들의 숙제처럼 남으니까. ‘인생이 다 그렇다, 어디 안 힘든 데가 있는 줄 아냐, 다 고생스럽다. 어딜 가도 견디기 힘든 게 있다.’ 그렇게 얘기하셨어.

 나는 그랬지. ‘나도 이게 좋아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시험 봐야 되니까 봐서 어떻게 교사가 됐는데, 내가 이걸 평생 해야 할지 모르겠고, 보람도 잘 모르겠다.’ 내가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미성숙한 아이들을 가르쳐 아이들한테 주는 영향이 옳지 못할까 봐 걱정도 됐어.

 ‘내가 애들한테 왜 그런 말을 했지?,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지?, 아이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 후회와 걱정들이 학년이 끝날 때마다 밀려오는 거야. 내가 가치관이 안 잡혀 있었어. 어른이 안됐는데 어른인 척해야 하는 것들이 힘들었어.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생각했고. 그런데 결국은 못 그만뒀지. 부모님이 말리셔서.

나: 아쉽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시도해보면 좋았을 텐데. 24살이면,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잖아. 뭐든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나이이고. 또 인생에 길이 많잖아.

 나는 대학 4학년 때 이런 생각을 했었어. 앞으로 길이 너무 뻔히 보이고, 공부가 너무 힘든 거야. 집에 전화해서 ‘나는 휴학이라도 하고 싶다. 이것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엄마가 조금만 참으면 졸업이라고, 참으라고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냥 알았다고 그랬지.

 그렇게 부모님한테 말하는 거면 많이 힘들다는 얘기잖아. 부모님도 두려운 마음이 있으셨을 거야. 그런데 그걸 좀 이해해주고, 같이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하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아. 그래서 결국에는 대학원 때 그만둬버린 것 같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고생이 많았다.

 그럼, 너는 선생님 안 했으면 뭘 했을까? 약대에 가고 싶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지금도 약 관련일 하고 싶다고 그랬잖아.

Y: 내가 그때는 약대가 가고 싶었었어. 첫째 임신했을 때 약학 전문대 입학하고 싶어 인터넷 강의를 끊어놓고, 입덧하느라고 못 들었네. 나는 원래 약사가 되고 싶다기보다 약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직접 해보지 않았으니까 모르지만,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어.

 여기 와서도 약대를 생각해봤는데, 여기는 4년이더라고. 영어로 공부해야 하고, 졸업도 어려우니까 약사는 못돼도 비슷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었어. 나중에 막상 해보고 나서 ‘뭐 이런 일이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 해보면 좋지. 마음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냥 해봐야 하는 것 같아. 해 보고 나면 배우는 것도 있고, 깨닫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

Y: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엄마고, 애들을 봐야 하잖아. 이런 상황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다.

나: 그래. 애들 보면서 공부까지 하려면 힘드니까. 아마 이제는 하면 예전처럼 완벽하게는 못 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거지.

Y: 맞아.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쯤일 거야.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6. 우리, 행복하자.


나: 공부 말고 해보고 싶은 것도 있을까?

Y: 공부 말고는 잘 모르겠어. 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뭘 만지면 다 망치고 그러거든. 재밌었던 거는 애들 성장 동영상 만들고, 편집하는 것, 문서 작업하고 그런 것들은 재미있었어. 만들기도 좋아하기도 했고. 그런데 잘하지는 않아. 센스는 없어.

나: 나도 어릴 때 만들기 특히 종이접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잘 못하겠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둘째가 종이접기를 엄청 좋아해. 내가 할 수 있는 수준도 넘어섰어. 그런데 나랑 같이 종이접기 하자 그러면 귀찮은 마음이 들어. 그냥 애가 혼자 알아서 잘 접었으면 좋겠어. 어릴 때 만들기를 좋아했었는데도 말이야. 좋아하는 걸 찾으려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아.

Y: 그러게. 순수한 마음으로 정말 좋아하는 거.

나: 근데 못 찾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완벽히 찾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잖아. 그냥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을 짧게라도 가졌으면 좋겠어. 아무 걱정하지 않고, 네가 무언가를 했을 때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 그런 것들을 하다 보면 그게 찾아지는 것 같아. Y야, 나는 정말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Y: 나도 네가 정말 행복하고, 좋아하는 일 한다고 하니 너무 기뻐.

나: 나도 해외 나와 살았고, 사정을 너무 잘 알잖아. 너한테 그동안 연락하고 싶었는데, 해외에 나와서 지내면서 힘든 걸 아니까, 쉽게 연락을 더 못하고 그랬었어.

Y: 나도 그랬었어. 괜히 우울한 얘기 하면 친구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물어보지도 못했었어.

나: 사실 세상 모든 것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잖아. 나도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마음이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시작이라고 생각해. 또 삶을 보면 하루에도 업 다운이 있고, 일주일만 봐도 어떤 날은 기분이 좋고, 어떤 날은 기분이 다운되어 있고 그렇잖아. 인생 전체를 보면 항상 좋을 수만도 없고. 그런 시기가 다 있는 것 같아. 그런 힘든 시기를 지나면 꼭 다시 좋아질 날이 있어. 그러니까 우리 같이 힘내자. 오늘 함께 얘기해줘서 너무 고마워.


 직접 만났다면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아쉬워하며 친구와 인사를 나누었다. 삶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더 힘들기도 했고, 더 기쁘기도 했다. 그저 이제는 남들의 기대가 아닌 우리의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굴곡도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를 즐기는 것처럼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CoverImage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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