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행복에 대한 Y와의 이야기 (1)
화면 너머로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펼쳐있었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Y의 머리가 부드러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힘들 때마다 Y를 찾았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품이 넓은 친구 Y를 오랜만에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1. 남편 따라 해외살이를 시작한 두 친구의 이야기
나: Y야, 거기 날씨 많이 좋아 보인다. 집인 거야?
Y: 어, 여기 뉴질랜드가 이제야 날씨가 좋아져. 계속 비 오고 그랬었거든. 여름이 드디어 오는데, 아쉽게도 나가질 못하고 있네.
나: 너랑 너무 오랜만에 연락한 것 같아. 뉴질랜드에 사는 건 어때?
Y: 그렇지. 나는 해외살이가 내가 원했던 게 아니었잖아. 올해 초까지도 내적 갈등이 엄청 심했었어. 나는 심지어 영어도 못하고, 뭔가 시작하기에는 남편이 대학원 다니면서 있던 돈을 다 써버렸고, 그리고 애가 셋이 있고. 이런 상황들이 참 어려웠어. 게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할 수 있는 직업이 있으니까, 한국에 다시 가고 싶었어.
나: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컸었구나.
Y: 애들이 어릴 때는 오히려 이런 생각을 안 했어. ‘애들을 잘 키우고, 애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지.’ 이런 생각들이 있었어. 그런데 애들이 크니까 점점 나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애들은 여기서 행복한데, 나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지.
나: 나도 사실 남편이 더 많이 오고 싶어 해서 말레이시아에 왔잖아. 내가 주체가 되어 온 게 아니었어. 나도 동의는 했지만, 남편이 가자 그래서 왔거든. 여기서 사는 게 좋은 점도 많아. 그런데 때때로 힘든 일이 생기면 남편이 오자 그래서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거야. 이런 생각들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어.
그런데 너를 생각해보면, 너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 나는 애가 둘이지만 너는 애가 셋이고, 거기는 영어가 네이티브인 나라잖아. 그래서 영어에 대한 압박도 더 심했을 것 같아. 여기는 영어를 아주 잘하지 않아도 통하거든.
Y: 진짜? 거기도 영어권이잖아?
나: 여기는 영어도 많이 쓰지만, 말레이시아어랑 중국어를 많이 써.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니까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 않고, 오히려 대충 해야지 서로 통하는 게 있어. 발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너는 거기서 처음에 시작할 때 남편이 대학원 공부를 했어야 했잖아. 진짜 네가 너무 고생도 많았고, 그 시간들을 잘 지난 온 게 참 대단한 것 같아.
Y: 아니야. 나는 나중에 그런 것들에 대해 자격지심이 생겨버렸었어. 남편한테, “너는 여기 와서 네가 다니고 싶은 대학원도 다니고, 네가 하고 싶은 회계사 하고 있잖아.” 이렇게 말하게 되는 거야. 남편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실제로 남편은 여기 사는 것을 만족하고 있거든. 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
나: 나도 그런 마음 진짜 이해해. 나도 아이들 키우면서 무기력해지니까 남편 탓을 너무 많이 했어.
Y: 너도 그랬어? 나는 네가 긍정적으로 다 잘해나가고 있는 줄 알았어.
나: 아니야, 나 남편이랑도 많이 다투고 그랬었어. 그런데 내가 했던 이런 생각을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좋아질 수 있었는데, 거기서 빠져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거야.
그리고 나는 여기 와서도 못 버린 게 있었어. 계속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한국에서 주변 친구들 다들 사회적으로 열심히 살고, 성장하고, 잘 나가는 게 보이는데, 나는 계속 애들만 보고 있고, 무언가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었어.
여기 오니까 그런 것들이 눈에 안보이니 좀 마음이 편했지 처음에는. 그런데 또 여기에 적응하고 나니까, 내가 여기에 온 한국 사람들하고 다른 게 보이는 거야. 여기 대부분 주재원으로 오거든. 그분들은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생활이 더 여유롭지. 나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고. 이걸 비교하기 시작하니까 불만이 생겼어. 그런데 이 불만의 원인이 남편 때문인 것 같은 거야.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니까 애들에게도 자주 화를 냈고. 그랬었어.
그래서 나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했고,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지. 결정적으로 언니 공동체라는 온라인 카페 활동을 하면서 ‘나’로 살아가게 됐어. 거기서는 내가 주체가 되어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활동들을 하니까 그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던 것 같아.
최근에는 나를 찾는 글쓰기라는 걸 했거든. 사실 이 수업을 듣기 전에, 내가 남편한테 ‘남편, 나 이 글 쓰다 보면 남편 욕을 너무 많이 쓸 것 같아.’라고 얘기했어. 나는 남편한테 내 생각이나 감정들을 다 솔직하게 얘기하거든. 그랬더니 남편이 살짝 삐졌었지. 자기가 무슨 얼마나 잘못을 많이 했다고 글도 쓰기 전에 자기 욕을 하겠다고 얘기하냐면서.
수업을 7주 정도 했는데, 끝나고 깨달은 것은 남편이 문제가 아니고 내 마음이 문제였어. 남들과 비교했던 것도 내 마음이었고, 모든 것을 내 컨트롤 안에 두려고 했던 것도 문제가 있었던 거야. 그걸 깨닫고 난 뒤에 보니까, 내가 불만을 가질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지금 애들 건강하게 잘 크고 있고, 남편도 잘 있고, 안정된 집에서 잘 지내고 있고.
Y: 맞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난 아직 거기까지 마음이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나: 아냐, 나 너 마음도 너무 이해해.
#2.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법
나: 근데 너 거기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보낸 거야?
Y: 나는 여기서 사람들 때문에도 너무 힘들었어. 사실 나도 여기서 영주권 받으려고 노력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잖아. 그런데 사람들은 고학력에, 한국에서의 영광을 못 버리고, 허드렛일도 해야 하는데 몸 편한 일만 하면서 영주권 받아 챙기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생활력이 떨어지고, 너네는 글러먹었다 그러면서. 안 그런 사람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남편에 대해서도 안 좋게 얘기하고.
나: 사람들이 왜 그래? 진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Y: 진짜 그래. 우리가 도둑을 당한 적도 있었어. 문을 다 잠갔는데 창문을 부수고 들어왔어. 컴퓨터며 예물이며 다 털어가고, 집안도 엉망이었고. 정말 괴로워서 다 정리하고 한국 가야겠다 생각했었어. 나는 안전한 나라라 믿고 살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기는 했어. 그런데 막상 우리한테 좋은 일이 생기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
나: Y야, 나는 그런 사람들이면 진짜 안 만나는 게 나은 거 같아.
Y: 그렇지. 근데 너 내 성격 잘 알지? 나 잘 못 끊는 거.ㅠㅠ 사실 이걸로도 남편이랑 많이 싸웠어. 적당히 멀어져서 적당히 지내야지 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것도 잘 안되더라고.
나: 내가 느꼈던 너는 사람들을 잘 품어주는 사람이었어. 얘기도 잘 들어주고, 사람들도 편안하게 해 주고 그랬었잖아. 그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너를 너무 쉽게 보는 거 같아. 듣기만 해도 너무 화나는데.
Y: 맞아. 그래서 내가 여기 와서 자아성찰을 정말 많이 했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거. 사람 때문에 마음 수련을 많이 한 것 같아.
나: 나도 한인 사회를 겪어 보니까 그냥 한국에서 살 때보다 인간관계를 더 조심해야 하는 것 같더라고. 사람 수도 적고, 소문 같은 게 너무 빨리 돌아. 예를 들어, 내가 남편하고 좀 힘든 일이 있어서 그걸 얘기했어. 그래도 나는 남편 하고 신뢰가 있으니까 괜찮은데, 오히려 이게 퍼져서 사람들이 남편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는 거야. 이걸 겪으니까 그냥 아예 힘든 일 있어도 얘기를 안 해.
Y: 만약 여기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내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 그렇지 못해 슬프기도 하고.
나: 그래서 네가 다른 데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랬었구나. 그런데 나는 너한테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까지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이면 그냥 끊어야 된다고 생각해. 냉정하게. 그냥 안 만나야 돼.
Y: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나: 나는 어떤 사람이랑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말을 다른 사람들한테 전하고 다니고, 그 사람이랑 만난 다음에 마음이 찝찝하고 그러면 만나는 횟수를 일단 줄여. 먼저 절대 연락하지 않고. 그리고 그럴 때 나는 기도를 많이 했어. 그 사람이 자신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했어. 그렇게 기도를 하다 보면 진짜 신기하게 저절로 멀어지게 되더라. 다시 그 관계를 좋아지게 만들려고 하거나, ‘내가 그 사람한테 안 좋게 했나?’ 그런 마음은 안 가져 그냥. 일단 그 사람이랑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스트레스받으면 관계를 끊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은 것 같아.
Y: 맞아.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안 미치게 해야 하는 건데.
나: 보니까 인간관계에서는 경계 짓기도 필요한 것 같아. 그 사람들이 내 경계를 넘어오는 건 내가 그만큼 또 허용했기 때문에 넘어오는 것일 수도 있어.
Y: 맞아. 공감해 진짜.
나: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선을 넘는다면 그냥 끊어야 돼.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거든.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너무 자기 생각만 해. 너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 얘기 다 들어주고 그랬을 것 같거든.
Y: 그 사람들이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본인들을 엄청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가 안 싫어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내가 표현을 안 하니까.
나: 내가 생각해도 너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있을 수도 있지만 네가 사람들에게 워낙 잘하니까.
Y: 아니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내가 그래서 자아성찰을 정말 많이 했어. 유진아, 어떻게 해야 정말 잘 사는 걸까?
나: 근데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내가 잘 살고, 우리 가족이 잘 살고, 우리 가족이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잖아. 그렇게 지내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고. 혹 그렇지 못하면 그냥 안 만나면 되고. 예전만큼 사람들 일일이 다 신경 쓸 에너지도 많이 줄은 것 같아. 나는 그냥 네가 온전한 너로 살고,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3. ‘엄마’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한 연습들
나: 너는 만약 지금 돈도 충분하고, 어떤 선택이든지 할 수 있으면 뭘 하고 싶어?
Y: 나는 돈이 충분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즐기면서 살겠지.ㅎㅎㅎ
나: 뉴질랜드에서 계속 살고 싶어?
Y: 그게 큰 문제야. 우리 영주권이 크게 걸려있었거든. 락다운 되면서 영주권이 닫혀 있었어. 그리고 내가 휴직을 3년 더 할 수 있어서 3년 안에 해결이 안 나면 한국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약간 운이 좋은 건지, 지금 3년 이상 워크 비자로 산 사람들한테 정부에서 선물처럼 영주권을 주겠다고 발표를 했어. 내년 3월에. 내년에 영주권을 받게 되니까, 이제 내가 내 인생의 길을 정말 정해야 되는 순간이 온 거지.
특히 첫째가 커서 중학교 되기 전에 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도 결정해야 하고. 첫째는 여기 사는 걸 너무 좋아해.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
나: 왜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Y: 여기에서 사는 거에 만족하고, 행복해해. 변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고, 친구들도 있고 그러니까. 한국에 가면 새롭게 적응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훨씬 많아지잖아. 뭐, 분명히 가서도 좋긴 할 거야.
나: 맞아. 가서도 잘할 거야.
Y: 그런데 만약에 내가 강요해서 한국에 들어갔는데, 안 좋은 일이 생기고 후회하게 되면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 할까 봐 무서운 점도 있어. 아직도 아이들이 내 마음속 비중이 큰 것 같아.
나: 엄마로서의 고민을 하고 있는 거구나.
Y: 결국 여기서 살게 되면 나도 뭔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여기가 렌트비도 너무 비싸고.
나: 그래, 그때 네가 얘기해줬었잖아. 여기는 한 달에 5~60 만원 들거든. 그런데 거기는 일주일에 그 정도라 했었지?
Y: 맞아. 한 달에 230~240 만원이 렌트비로 나가. 렌트비가 세니까, 남편의 월급으로는 렌트비에 더해서 학비랑, 생활비가 다 안 돼. 그래서 우리가 투잡을 뛰고 있거든. 그럼에도 자잘하게 돈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돈이 부족한 거야.
그래서 네 달 전부터 빵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 나한테는 큰 도전이었어. 어릴 때 카페 알바라도 해봤어야 했는데. 이런 일을 해본 것도 아니고.
나: 나도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나 남편이 식당 하면서 서빙하고, 일 도와주고 그랬었잖아. 그때 엄청 투덜투덜 대면서 했었거든. 내가 어릴 때도 안 해보던 서빙을 나이 들어서 한다면서. 그런데 그런 일하면서 나 진짜 많이 배웠어. 노동으로 하는 일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꼈어.
Y: 응 맞아. 다 알면서도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 시급은 나쁘지는 않거든. 이제 돈이 좀 모이고, 내년에 영주권 따면 학교 가야지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러거든.
나: 학교를 간다고?
Y: 내가 지금 알바를 막 잘하고 그러지도 않아. 손이 야무지지 못해서 빵을 망가뜨릴 때도 있고. 내가 빵을 잘 만들거나 그런 것도 아니라서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일 년 공부를 한 다음에 job을 구할 수 있는 게 있어서 그걸 준비해볼까 생각하고 있었어.
나: 그게 무슨 일인지 얘기해 줄 수 있어?
Y: 약학 테크니션이라고, 약사는 아니고 약국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거야. 약을 찾아서 꺼내서 넣는 등의 일을 하는 거야. 일 년 공부 과정이 있어. 그 공부가 끝나면 약국에 취업도 쉽고, 영어도 높지가 않고.
나: 영주권이 있으면 가능한 거야?
Y: 어. 영주권이 없으면 학비가 너무 비싸. 일 년에 3천만 원 정도 하거든. 그런데 영주권이 있으면 학비가 4백만 원으로 확 줄어.
나: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구나.
Y: 나는 여기 살면서 영어 때문에도 많이 힘들었어.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이 생기고. 학교 행사를 가거나 선생님을 만나도 힘들고. 영어 잘하는 동양인과 영어를 못하는 동양인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가 너무 달라. 내가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렇더라고. 영어공부가 먼저이고, 이제 내가 내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너랑 연락이 된 거야. 3달 전에는 진짜 밤마다 울면서 지냈어. 어떤 마음인지 알까?
나: 아고 힘들었구나. 근데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 나도 너처럼 매일 울고 그런 시기가 있었어. Y야, 진짜 고생 많았어.
자주 연락은 못했었지만, 나는 우리가 비슷한 경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각각 말레이시아와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지인도 없이 가족들과 함께 건너가 정착해 살고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친구가 겪어온, 그리고 견뎌온 시간 동안의 마음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