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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Oct 24. 2015

바보전쟁, 그리고 봇(Bot) 시대

불확실한 시대에 살기...대체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라

오늘이죠. 10월 24일 토요 예능 무한도전에서 전현무, 김구라로 대표되는 '뇌섹남'과 홍진경, 솔비, 간미연 등으로 구성된 '바보 어벤저스'의 퀴즈 대결이 진행됐습니다. 


바보 어벤져스 팀에 구성된 연예인들은 전력(?)이 있죠. 수능 전날 방송에서 장미(Rose)의 영어 스펠이 Lose라고 말했던 간미연, 덧셈과 곱셈을 못해 물에 빠졌던 채연, 그밖에 은지원, 김종민 등은 바보 캐릭터로 유명한 인물들이죠.


방송 중 짤막하게 진행된 명상의 시간에 솔비의 발언은 뭔가 뭉클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바보란 캐릭터를 이용해 '뜬' 스타들도 있는 반면, '뇌가 비었다'와 같은 식으로 욕을 먹던 연예인 중 1인이었기 때문일까요. 


나를 지식으로 판단했던 분들, 또한 나에게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미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 솔비


이들 바보 어벤저스팀이 뇌섹남 팀과 붙어 이깁니다. 뉴스 댓글을 보니 '수도랑 객관식으로만 퀴즈를 내는 게 어디있느냐', '자작극 아니야?'라는 식의 악플들도 많이 보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하하가 마지막에 한 말이 뇌리에 박히더군요. 


관심사가 다를 뿐이지 감히 누가 누구를... 바보라고 하겠어요 - 하하


홍진경이 피지 수도인 '수바'를 맞추며 전현무를 이겼다.


저는 오늘 방송에서 바보들이 똑똑한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외에 또 다른 메시지를 봤습니다. 다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지라도 한 가지 영역에서 절정에 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 


전통적으로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사회와 조직에서 대우를 받았습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줄세우기식의 교육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죠. 특정 영역을 잘해도 낙제점에 가까운 과목이 있는 학생보다는 평균 점수가 높은 학생이 인정을 받고,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들어갑니다. 지금도 그런 추세죠? 


12년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수능을 본 뒤 대학생활 4~5년(요즘은 6년?)을 거쳐 학점, 스펙을 관리하며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게 우리나라 20~30대의 모습입니다. 그러고는 복사, 문서작업, 끊임 없는 회의 등. 조직을 위한 철저한 부품이 됩니다. 사업 모델이 명확한 큰 조직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일을 한결같이 잘할 사람이 있어야 기업의 이윤을 보장할 수 있기에. 


부모 세대와 같이 사회와 국가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던 시기에는 이러한 역량만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성장 정체의 시대에 이르렀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찍이 40중반, 그리고 버티고 버텨 60대까지 일을 했다고 가정해봅니다. 조직에서 철저한 부품이 되고 난 뒤 그 다음은 무엇이 남을까요. 그 일이 하찮다는 게 아니라, 그러한 조직에서 나만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로봇이 기자만큼 스트레이트를 쓰는 시대입니다.

호주 광산에서는 무인 트럭만을 운영하는 곳이 2곳이나 생겼습니다.

국내 유명 대기업에서 희망 퇴직을 너나할 것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대체하는 봇(Bot)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느껴집니다. 정지훈 박사님이 지난 5월 한국일보에 게재했던 칼럼에서 '불확실성'을 말하며 아래와 같은 말을 해줬습니다. 


오랫동안 일해서 얻게 되는 그런 커리어가 지배하던 시대는 지났다. 영속할 것 같던 규칙들도 깨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명확하게 규정된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이나 조직의 승진 사다리를 꿈꾸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이다. 산업과 산업 사이의 경계를 짓는 격벽을 무너뜨려야 하며, 무엇이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래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보인다. - [정지훈] 미래에 대처하는 법: 불확실성을 즐겨라

  

대체 가능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이 정체된 시대에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처럼 시대가 확확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습니다. 조직이 변화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문제는, 결국 변한다는 겁니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기업들이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거나, 합병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파산하는 경우도 있죠. 


10~20년 뒤 소위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직장이 몇개나 남을까요. '봇'을 권장하는 조직에서 충실히 일을 했을 뿐인데 조직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지훈 박사님의 칼럼 말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현실적인 접근은 변화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커다란 쓰나미가 지속적으로 온다면 이를 대비해서 둑을 쌓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 둑을 넘거나 둑을 터뜨릴 쓰나미라면, 둑이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결국 쓰나미에 쓸려버릴 것이다. 그러나, 쓰나미가 오는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배를 준비하고,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살아남고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불확실성을 즐겨라. 그것이 미래사회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비결이다.


큰 조직에서 개인의 역할은 '대체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로봇이 모든 것에 적당히 뛰어난 사람들의 역할을 대체하는 시대까지 폭풍우 밀려오듯 다가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독보적인 관심사'가 아닐까요. 마치 오늘 홍진경이 피지의 수도 '수바'를 외치며 연예계의 브레인 전현무를 이겼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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